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4)
그리고 벽태산 휘하로 들어간 지금, 승도흥을 비롯한 진법가들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지식으로 그 수준이 훨씬 높아졌다.
바로 오늘, 그렇게 높아진 수준이 중요한 일을 해낸 것이다.
“진법의 규모가 생각보다 거대한데?”
하오문도 하나가 진법을 차분히 살펴보면서 말했다.
이곳에 진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자마자 진법을 전문으로 하는 하오문도들이 우르르 달라붙어서 진법을 분석하는 중이었다.
무명이 보유한 진법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거점에까지 대단한 진법을 설치하지는 않았다.
물론 웬만한 자들은 건드리지도 못했겠지만, 여기 모인 하오문도들은 승도흥으로부터 한동안 진법에 대한 특별교육까지 직접 받은 자들이었다.
진법을 완벽하게 해체하지는 못해도, 약점을 비틀어 박살 낼 수는 있었다.
물론 그러려면 그에 해당하는 막대한 힘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진법에 구멍을 뻥 뚫을 수 있었다.
그저 구멍을 뚫은 것뿐인지라,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닫힐 것이다.
진법을 완벽하게 해체하거나 깔끔하게 부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시간제한이 있기에 하오문도들은 서둘러 움직였다.
그들은 빠르게 진법 내부로 들어가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다.
“어? 이게 뭐야? 여기 왜 시체가 있지?”
진법 안에는 시체가 가득했다.
처음에는 다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른 건 또 없는지, 그리고 이 시체들은 대체 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다들 분주히 움직였다.
몇몇 하오문도들이 빠르게 안쪽 깊은 곳으로 들어가 탐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명은 시체로 향했다.
시체를 잠깐 살피던 하오문도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아직 죽지 않았다! 살아있어!”
그의 외침에 진법 주변에 있던 하오문도 몇 명이 우르르 달려왔다.
“살아있다고?”
“그래. 그냥 기절한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가사상태인 것 같다.”
하오문도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 중 하나가 다급히 외쳤다.
“일단 전부 밖으로 내보내! 시간 없다!”
진법에 뚫은 구멍이 닫히기 전에 이 시체들을 전부 내보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닫히더라도 다시 열면 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돈도 그렇고.
다른 두 곳의 거점에도 진법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곳을 생각하면 진법에 구멍을 뚫을 때 쓰는 재료들은 아껴두는 편이 나았다.
하오문도들의 움직임이 더욱 빠르고 다급해졌다.
이내 모든 시체를 밖으로 내보냈고, 진법 안에 있던 재화나 문서들을 전부 빼냈다.
워낙 서둘렀기에 아슬아슬하지는 않았다.
일을 마치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고 있으니 구멍이 서서히 메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진법이 다시 윙윙 돌아갔다.
“이제 철수한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밖으로 옮겨. 그리고 주변 입단속 철저히 하는 거 소홀히 하지 말고.”
하오문도들은 일제히 빈민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각종 재화나 가사상태에 빠진 반 시체들을 잔뜩 들고서.
* * *
벽태산 일행은 둘로 갈라졌다.
일단 열 명의 시비와 연하린이 하나였고, 나머지는 다른 쪽에 모였다.
숫자는 연하린 쪽이 많았지만, 전력은 다른 쪽이 압도적으로 위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 명의 시비 중에서 제대로 힘을 쓸 만한 사람은 화옥뿐이었다.
실제로는 화옥과 연하린이 대부분의 일을 하고 나머지 시비들은 그저 손만 살짝 거드는 정도가 될 것이다.
반면 다른 쪽은 천경완 유서연에 육태구와 장각우까지 있다.
그 넷만으로도 웬만한 조직은 단숨에 뭉개버릴 수 있었다.
거기에 천추신의와 일침괴까지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전력인가.
하지만 천추신의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쪽에 벽태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럴 거면 뭐 하러 나눠······ 그냥 혼자서 가지.”
천추신의가 나직이 투덜거렸다.
평소 같으면 그 말을 들은 일침괴가 한 마디쯤 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천추신의의 말이 옳았으니까.
벽태산이 저쪽으로 혼자 가고, 나머지가 이쪽에 붙으면 아주 균형이 잘 맞지 않겠는가.
아까 벽태산이 빈민가에서 그놈들을 쓸어버리는 광경을 보고 나니까 과연 자신들이 이번 일에 필요하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우리가 무관을 맡아서 그나마 다행이야. 그냥 차례대로 돌아다니면서 싹 박살 내면 되잖아. 안 그래?”
일침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일단 무관부터 정리하고, 혹시 그 사이에 무관에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한 사람 정도는 거기에 대비해야 합니다.”
“감시는 하오문에서 알아서 해줄 거야.”
무관에 있는 자들의 가족들도 전부 무명의 조직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가족 중에는 아이가 없었다.
그 모든 가족들을 전부 하오문이 감시 중이었다.
그러니 뭔가 일이 생기면 바로 하오문이 알려줄 것이다. 그때 적절히 대응하면 된다.
그들이 그렇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벽태산이 가만히 쳐다보다가 불쑥 말했다.
“어설픈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가라. 너희가 생각할 건 딱 두 가지다.”
벽태산이 손가락 두 개를 펼친 다음 하나를 접었다.
“임무에 성공할 것.”
남은 손가락도 마저 접었다.
“생채기도 나지 말 것.”
다들 표정이 확 굳었다. 그제야 아까 벽태산이 한 말이 떠오른 것이다.
“아니, 공자님······ 우리가 가는 곳은 아까 그 빈민가가 아니라 무관이란 말입니다. 무관 애들이 더 강한 것이 상식 아닙니까?”
천추신의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벽태산은 그런 천추신의를 가만히 쳐다봤다. 아무 말도 없이.
천추신의는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헤헤 웃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예, 생채기도 나선 안 되지요. 암요.”
그 말을 남기고 천추신의 일행이 하오문도의 안내를 받으며 그곳을 떠났다.
벽태산은 시비들과 연하린에게 턱짓했다.
“가자.”
* * *
금월상단의 주인인 평자림은 서탁에 펼쳐진 문서를 차근차근 살폈다.
이번에 구룡문을 동원해 벽태산 일행을 습격한 일에 대한 보고서였다.
누구를 어떤 식으로 동원했고, 어떤 계획을 세웠다는 것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지막에 딱 한 줄로 간단히 쓰여 있었다.
‘실패한 걸로 추측됨.’
평자림은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실패했다’도 아니고 ‘실패한 걸로 추측됨’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보고란 말인가.
장사에서 활동하는 하오문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들이 벽태산 일행과 구룡문의 싸움에 대한 뒤처리를 맡고 있다고 예상해서 은밀히 조사 중이었는데, 아직까지는 딱히 건져낼 만한 것들이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장사의 하오문도들이 움직이는 건 금월상단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점이었다.
평자림은 문서를 치우고, 다른 문서를 펼쳤다.
그것이 바로 최근 하오문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였다.
오늘 있었던 따끈따끈한 일을 정리해 놓았는데, 아무리 금월상단이라고 해도 하오문의 움직임을 모두 포착할 수 없기에 상당 부분이 추측과 예측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걸 가만히 살피던 평자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지도를 한 장 꺼냈다.
장사를 세밀하게 그려놓은 지도였다.
평자림은 하오문의 움직임에 관한 내용을 지도와 하나하나 맞춰봤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이것 봐라?”
평자림은 하오문도들의 움직임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정확히 세 군데를 탁탁 짚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아주 잘 아는 곳이었다.
다름 아닌 혁련휘 아래에 있는 세력 중 하나의 거점이었으니까.
평자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총관! 총관 어디 있나!”
평자림이 워낙 다급히 소리치는 바람에 총관이 놀라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애들이 누가 있나?”
총관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머리를 팽팽 돌려 대답했다.
“청무방과 상천문 애들이 각각 서른 정도 있고, 구룡문에서 지룡이 어제 스무 명쯤 데리고 상단에 방문했습니다.”
“전부 황천무관으로 보내라.”
“예?”
“어서!”
평자림의 호통에 총관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총관이 부리나케 달려가자, 평자림이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 음흉한 놈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수작을 부려?
끝
연하린과 열 명의 시비들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벽태산은 한 발 뒤에서 느긋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일행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화옥이었다.
하오문의 모든 정보를 자신이 받아서 정리하고 있기에 무명의 거점이 어디 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화옥이었으니까.
이들이 가는 곳은 무명이 거점으로 만든 거리였다.
무한에서와 마찬가지로 상권이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리였기에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니,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각 주루나 상점 앞에 나와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보아하니 주루나 객잔의 점소이, 혹은 주인이 분명했다.
한데 이런 상황인데도 그들의 표정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의욕이 넘치거나 희망찬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모든 걸 포기한 자의 표정이나 눈빛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거리에 벽태산 일행이 들어섰다.
젊고 잘 생긴, 게다가 기녀들의 혼백을 태워 얻은 영력 덕분에 몸에서 이성의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의 색기를 풀풀 날리는 공자에, 지나가다 보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자가 무려 열한 명이나 한꺼번에 나타났으니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 나와 있던 자들의 시선이 단숨에 벽태산 일행에게 꽂혔다.
벽태산은 일행의 뒤쪽에서 느긋하게 걸으며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아마 예전 무한에서 이와 똑같은 놈들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상한 점을 거의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벽태산은 이미 이들과 비슷한 놈들을 한 번 겪었고, 그 특징을 확실히 감각에 새겨두었다.
벽태산은 자신의 감각 안에 들어온 자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놈이 한 명도 없구나.”
벽태산의 말에 연하린이 슬그머니 벽태산 옆으로 이동했다.
“어디까지인가요?”
“이 거리에 입구를 둔 건물 전부라고 보면 된다. 그 뒤쪽은 괜찮은 듯하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한다.
하오문도들이 이미 그 뒤쪽에 은밀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나서서 그곳을 철저히 봉쇄할 것이다.
“그래도 아까 그 빈민촌보다는 훨씬 낫네요. 우리가 솎아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냥 보이는 놈들 다 때려잡으면 되는 거죠?”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연하린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런 거야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산공독 풀기 전에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벽태산이 그런 연하린을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해약은 안 받았느냐?”
“예? 해약이요? 그런 것도 있었어요?”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근처에 있던 화옥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효과시간이 짧으니 시작하기 직전에 먹어야 합니다.”
화옥의 말에 연하린은 물론이고 나머지 시비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화옥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하지만 벽태산과 화옥은 당연하다는 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해약이 없을 리 없지 않은가.
산공독도 구했고, 그걸 분석해서 해약을 만들라고 했다. 초서란을 비롯한 천약방이 나서서 해약을 제작했고,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거들어 빠르게 완성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당연히 같은 일을 겪을 테니 해약을 준비하라고 미리 지시했다.
물론 그 모든 일을 화옥이 맡았기에 벽태산이 직접 무언가를 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화옥이 일행에게 해약을 나누어주었다.
다들 새까만 단약을 하나씩 받았다.
벽태산은 화옥이 내민 단약을 받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이런 조잡한 독 따위 통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벽태산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일행을 슥 둘러봤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영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영력을 처음 만들어준 것은 벽태산의 증혼마공이었고.
그렇다면 이들의 영력에도 증혼마공의 효능이 어느 정도 깃들어있지 않을까?
물론 확실한 건 아니었다. 그저 가정일 뿐이었다.
영력이라는 것이 아직 벽태산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기에 무슨 일이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또한 영력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특성이나 힘이 많이 달라지기에 애초에 시작을 무엇으로 했는지는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은가.
증혼마공의 효능이 들어 있다면 산공독 따위에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궁금한 건 바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바로 벽태산이었다.
벽태산은 막 단약을 입에 넣으려던 연하린의 손에서 단약을 낚아챘다.
연하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공자님?”
잠시 당황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던 연하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전 내공 없이 싸우라는 건가요? 또요?”
방금은 그저 연하린의 영력이 증혼마공의 효능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한데 막상 연하린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벽태산은 그런 것들을 구구절절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손을 휘휘 내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결국 연하린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약 없이 거리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뭔가 속에서 울컥 올라왔다. 그리고 그걸 굳이 참고자 하지 않았다.
연하린은 곧장 거리 중심부로 달려갔다.
이왕 할 거 아주 제대로 휘저어주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았다.
스릉.
그녀의 검이 근처에 나와 있던 주루의 점소이에게 쭉 뻗어 나갔다.
내공은 쓰지 않았지만 실력이 실력인지라 그녀의 검격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점소이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넘어지듯 연하린의 검을 피했다.
아무리 내공을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피해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뭐야, 이 미친년은!”
점소이가 그렇게 외치며 뒤춤에서 길쭉하고 거무튀튀한 검을 뽑았다. 아무리 봐도 일개 점소이가 들고 다닐만한 무기가 아니었다.
어느새 바닥에 새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그리고 거리의 건물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다들 손에 흉흉한 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연하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