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77)
“저······.”
검귀가 호칭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그냥 공자님이라 불러라.”
검귀의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공자님이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천하의 지존이신 천마를 어찌 공자님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벽태산의 서늘한 눈빛에 결국 검귀는 자신의 생각을 고이 접어 마음 깊은 곳에 내려놓았다.
“예, 공자님. 앞으로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벽태산은 여전히 귀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모시는 건 내 시비들이 알아서 잘 하니, 넌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강해질 궁리나 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검귀는 새삼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을 되새겼다.
“이리 가까이 와라.”
“예?”
검귀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천마는 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벌 줘야 한다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벌을 줄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이 있어도 역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져올 수 있다.
한데 가까이 다가오라니.
저런 말은 미녀들을 대할 때나 하는 말이었다. 아니, 미녀들을 품을 때도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다들 알아서 가까이 다가갈 테니까.
그도 아니면 힘으로 끌어올 수도 있다.
검귀는 예전 수십 장이나 떨어진 곳에 있던 사람이 허우적거리면서 천마에게 날아가는 광경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핏물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검귀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걸 본 천마가 인상을 썼다.
“내 말을 못 들었느냐?”
검귀가 화들짝 놀라 얼른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벽태산은 달려들듯 다가오는 검귀의 정수리에 손을 턱 올렸다.
마치 손으로 머리를 콱 움켜쥔 듯한 모습이 되었다.
“끄아아아아아악!”
검귀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벽태산이 혀를 찼다.
“많이도 죽였구나. 혼백에 낀 핏물 좀 봐라. 이걸 다 제대로 닦아내려면 한 번으로는 안 되겠는데?”
검귀의 혼백을 뽑아 살살 굽는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다른 사람의 혼백을 태우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아서 그런지 굽는 맛이 남달랐다.
검귀는 자신이 앞으로 무슨 꼴을 더 당하게 될지 꿈에도 모른 채 비명만 질러댔다.
“으아아아악!”
그렇게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지만, 그가 미리 쳐 놓은 기막 덕분에 당장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가지는 않았다.
혼백이 타면서 기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졌기에 서서히 기막이 흩어져가긴 했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비명이 밖으로 새 나갔다.
벽태산은 한 시진 정도 검귀를 태우고 놔줬다.
검귀는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반듯하게 누웠다.
잠시 후, 벽태산의 부름을 받은 나헌탁이 비천단원들을 데리고 들어와 당황한 표정으로 검귀를 들고 나갔다.
* * *
금월상단과 무명이 손을 잡고 일으킨 장보도 사건은 났던 소문이나 들인 공에 비해 너무 싱겁게 끝났다.
물론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제법 많았다.
싸움이 많이 벌어졌으니 죽거나 다친 사람도 있었고,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장사에 엄청나게 많은 무림인들이 모였기에 객잔이나 주루에서 하루가 멀다고 시비가 일어났고, 대부분 싸움으로 이어졌다.
무림인들이 싸우면 주변이 부서지는 거야 당연했다. 또한 근처에 있다가 괜히 칼 맞는 사람도 생겨나는 법이다.
그런 식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꼭 그렇게 다들 피해만 입고 손해만 보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돈 쓰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아니, 대부분 낭비가 심했다.
그렇게 막대한 무림인들이 돈을 풀기 시작하니 장사의 경기가 대번에 끓어올랐다.
당연히 큰 이득을 얻는 사람도 많았다.
그 중 한 명이 벽태산이었다.
물론 벽태산이 뭔가를 한 건 아니었다.
벽태산이 아니라, 벽태산의 시비 중 한 명이 그렇게 한 것이다.
벽태산의 시비 중에 자향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장사 쪽으로 재능을 발휘해서 하오문과 화옥이 나서서 그 재능을 키워주었다.
또한 금벽상단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해주었고.
그 자향이 장사에 와서 하오문과 각월객잔의 힘을 이용해 몇 가지 장사를 시작했다.
일단 당연히 이렇게 될 거라 예상하고 준비해온 천약방의 금창약과 내상약을 비싼 값에 팔았다.
몇 배의 폭리를 취했지만, 상황이 상황이고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순식간에 팔아치울 수 있었다.
심지어 그 와중에 하오문을 이용해 무한에 있는 천약방으로부터 약을 더 가져오기까지 했다.
그 외에도 무림인들이 많이 오는 것을 이용한 몇 가지 장사를 함께 진행했는데, 장사에 돌아다니는 돈을 말 그대로 빨아들였다.
자향은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이용해 다른 투자를 시작했다.
이번 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돈을 벌어들이고자 함이었다.
자향은 앞으로 벽태산에게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 예상했다. 그건 자향뿐 아니라 다른 시비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녀들은 향후 벽태산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것을 미리 준비하고자 했다.
그 중 하나가 돈이었고, 자향은 성공적으로 씨를 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 장사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 알게 모르게 꼬이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경쟁 물품을 판매하는 다른 점포가 방해를 하거나, 상인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놈들이 방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큰 상단은 대부분 그 정도는 방비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둔다.
자체적으로 호위무사를 양성하기도 하고, 힘을 가진 문파와 계약을 맺기도 한다.
자향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하오문과 비천단의 비호가 있었기에 웬만한 놈들은 그럴 분위기도 풍기지 못했다.
하오문이 예전에야 힘이 없어서 이리저리 채였지만, 지금은 웬만한 중하급 흑도 문파 정도는 눈도 못 마주친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니, 자연스럽게 이름이 알려졌다.
하오문이 처음에는 최대한 이름이 퍼지지 않게 막았지만, 장사로 성공하는 사람의 이름을 보호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자향의 점포를 주시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 중 하나가 옥천상단이었다.
옥천상단은 금월상단의 비호를 받아 장사와 근방의 현들을 오가며 물건을 사고팔았는데, 주로 취급하는 것이 약재였다.
장사에서 남쪽으로 이백 리쯤 있는 곳에 위치한 형산에서 채취한 약초를 다듬어 약재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당연히 장사에서 약 장사를 하려면 옥천상단의 약재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근방 약초와 약재를 대부분 독점하다시피 했으니까.
한데 자향은 애초에 만들어진 단약을 무한에 있는 천약방으로부터 공급 받아 팔았기에 그들의 약재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옥천상단이 보기에는 굉장히 거슬리는 것이 당연했다.
옥천상단의 주인인 평대언은 금월상단주 평자림의 팔촌쯤 되는 친척이었다.
지금 그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앞에 있는 총관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고작 그거 하나 알아내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놈들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그렇다고 그 많은 양의 물건을 들여오는 것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걸 어찌 이해하겠는가.”
“죄송합니다.”
총관도 할 만큼은 다 했다.
장사에 있는 모든 표국을 샅샅이 조사했다.
당연히 표국이 그런 일을 했을 리 없었다. 장사에서 활동하는 표국은 금월상단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니까.
그래서 표국까지는 안 되더라도 소규모로 심부름이나 간단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조직들까지 싹 뒤졌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도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상단 이름도 안 걸고 장사하는 놈들 때문에 이 무슨 꼴인지······쯧.”
평대언은 불만스럽게 혀를 한 번 차고는 잠시 고민했다.
“그쪽 점포 주인은 만나봤나? 듣기로는 제법 반반한 여자라고 하던데.”
“거의 앞에 나서지를 않습니다. 저도 아직 못 만나봤습니다. 우연히 본 자들이 말하길 천하절색이라고 하더군요.”
“그래? 흐음.”
평대언의 고민이 좀 더 깊어졌다. 일을 잘 벌이다보면 겸사겸사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았다.
총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금월상단의 힘을 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대언이 인상을 썼다.
“그걸 누가 모르나? 지금 금월상단도 발칵 뒤집힌 상황인데, 내가 가서 고작 이런 문제로 앓는 소리를 내야겠나?”
총관은 또 입을 다물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정말 몇 가지 없었다.
“사람을 더 투입하게.”
“여기서 더 말입니까?”
“그래. 그 소규모 조직들, 닷새만 싹 모아서 움직여 보게.”
“아무리 닷새라고 해도 그들 전부를 움직이려면 돈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쩔 수 없지. 그놈들 철저하게 감시해서 어떤 놈들이 접근하는지 확실히 알아내게. 그리고 바로 연락하고 뒤를 밟아.”
“예. 일단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난 힘 쓸 놈들을 준비해 놓겠네. 연락만 받으면 곧장 달려갈 테니까, 확실히 해야 하네. 알겠나?”
“예. 염려 마십시오.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쪽 주인이라는 자와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가능하면 자리를 한 번 마련해 보게. 말로 끝나면 서로 좋은 일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총관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자, 평대언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거······ 금월상단이 빨리 제자리를 찾지 않으면 큰일 나겠어.”
장보도 사건으로 장사에 온 무림인들은 여전히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아직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천마비동에 있던 천마의 보물을 무림맹 천검단주인 방두립이 들고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장사를 크게 뒤흔들고 있었다.
방두립이 장사를 벗어났다는 소문도 살짝 돌긴 했는데, 그 소문은 등장과 함께 금세 사그라졌다.
대신 그 소문이 사라진 자리에 더 자극적인 다른 소문이 끼어들었다.
매번 그런 식이니 방두립이 장사에 숨어 있다는 소문은 점점 더 크기를 부풀려, 이제는 더 흔들 수 없는 확고한 진실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많은 무림인들이 사방을 쏘다니고 있는데도, 옥천상단은 생각보다 큰 재미를 못 보고 있었다.
이게 다 그 망할 놈들 때문이다.
자향의 점포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눈치를 보던 다른 소규모 상단들이 슬그머니 나서서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청무방에 다녀와야겠군. 또 얼마나 찔러줘야 하려나······.”
힘 쓸 일이 있을 때 써먹을 수 있는 패가 있다는 건 제법 든든하다.
다만, 그 때마다 돈이 팍팍 깨지니 좀 아깝긴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 해결은 해야지.
또한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금월상단주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니까 한 번 할 때 확실하게 해야지.”
평대언의 눈빛이 탐욕과 살기로 뒤범벅되어 스산하게 빛났다.
* * *
검귀는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방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까 벽태산이 다가오라는 말에 다가간 것까지 기억났다. 하지만 그 뒤의 기억이 없었다.
다만,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기분만 남아 있었다.
‘공자님이 날 팬 건 아니겠지?’
검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몸 여기저기를 확인했다. 멍들거나 생채기가 난 곳은 하나도 없었다.
가볍게 운기를 해보니 내상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몸 상태가 너무 좋았다. 머리도 굉장히 맑았고.
이 정도로 좋았던 때가 언제쯤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한창 젊고 팔팔할 때는 이러지 않았을까?
“왠지 지금이라면······.”
뭐든 될 것 같았다. 최근 꽉 막혀서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던 것도 왠지 가능할 듯했다.
검귀는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챙긴 다음 밖으로 나갔다.
후원으로 나간 검귀는 그곳에서 수련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검귀는 검을 뽑은 뒤, 차분히 앞을 향해 겨눴다.
좀 떨어진 곳에 조경을 위해 가져다 놓은 제법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검귀는 검 끝에 집중했다.
집중하고 또 집중해 자신의 모든 마음과 의념을 검 끝에 모았다.
그리고 무아지경에 빠진 채 검을 가볍게 들었다가 휙 내리 그었다.
서걱!
바위가 둘로 쪼개졌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검귀가 멍하니 쪼개진 바위를 바라봤다.
십 년 전, 자신이 천마신교에 있을 때, 보고서 충격을 받았던 바로 그 광경, 검마가 보여줬던 것을 지금 재현했다.
검귀의 뇌리에 검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습이 안개가 흩어지듯 지워지고 그 자리에 벽태산이 나타났다.
검귀는 고개를 휘휘 저어 상념을 털어내고는 다시 검을 겨눴다.
이제 벽을 부쉈으니 익숙해질 때까지 수련하는 일만 남았다.
검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끝
자향이 운영하는 점포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데다가 간판도 달려있지 않았다.
어차피 자향은 이 점포를 시험적으로 운영하는 중이었고, 제대로 된 상단을 만들었을 때의 시행착오를 미리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기 위한 수련으로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운영을 대충하는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이 점포에 애착이 상당했다.
자향이 워낙 신경을 쓰고 애지중지하니, 다른 시비들도 그녀를 최대한 돕고자했다.
그녀들은 할 일이 많았다.
일단 벽태산의 시비였기에 가장 중요한 건 벽태산을 모시는 일이었다.
벽태산이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시중을 들어야 한다.
또한 벽태산이 잠든 뒤에도 필요한 일이 있다면 해야 한다.
그 와중에 수련까지 해야 한다.
벽태산은 그녀들을 위해 딱 맞으면서도 굉장히 뛰어난 무공을 가르쳐 주었다.
심지어 수련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러니 제대로 보답하려면 무공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천경완이나 유서연, 연하린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수련에 쏟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수련하는 동안은 목숨을 던질 각오로 집중했다.
그 두 가지만으로도 바쁜데, 거기에 더해서 장사까지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시비들이 생각한 것은 자향에게 수련할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었다.
그녀들이 돌아가면서 자향 대신 점포를 지켜주기로 했다.
생각보다 자잘하게 할 일이 많았는데, 그런 일을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재고를 파악하는 일이라거나 미리 준비한 대로 점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일, 그리고 하오문이 전해준 정보를 확인하는 일 등을 처리했다.
기본적으로 벽태산 덕분에 모든 재능이 활짝 열린 상태였기에 대부분의 일을 상당히 잘 처리했다.
자향 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들 제법 괜찮은 상재를 갖고 있었다.
점포의 일을 돕다보니 상재가 개발되어 그 쪽으로도 조금씩 능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점포가 조금씩 성장하고, 돈이 쌓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