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1)
단연코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여인들보다 아름다웠다.
아니, 벽태산의 시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황보엽이 그동안 봤던 그 어떤 미인들도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연하린은 그보다 더했다.
황보엽은 성큼성큼 연하린에게 다가갔다.
그 앞을 유서연이 나서서 가로막았다.
황보엽이 걸음을 멈추고 유서연을 노려봤다. 유서연 역시 미모가 상당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 거칠고 강력해서 미모가 살짝 가려졌다.
“비켜라.”
황보엽의 단호하면서도 위압적인 말에 유서연이 기세를 날카롭게 벼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긴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청하지 않은 손님은 들어오실 수 없는 곳입니다.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
유서연의 말에 황보엽이 피식 웃었다.
“나 황보엽이다. 설마 황보세가도 모르는 무지렁이는 아닐 테고······ 지금 하는 행동에 책임질 수 있겠느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보세가 무사들이 황보엽 뒤쪽으로 쫙 펼쳐지듯 포진해 기세를 내뿜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난폭한 기세가 공터를 싸하게 훑고 지나갔다.
양치백은 그곳에서 한 발 떨어진 채, 돌아가는 분위기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사실 무공은 별로인지라 끼어들 깜냥이 되지 못했다.
방금 황보세가 무사들의 기세가 쫙 펼쳐질 때는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리고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이건······ 뭐지?’
방금 그 기세는 범인이 함부로 받기 어려울 정도로 난폭하고 강렬했다.
한데 저 공터에 있는 사람 중에서 그 기세에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뭔가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치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것 외에는 말이다.
황보엽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묵직한 기파가 한 차례 회전했다.
“내가 몹쓸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얘기나 좀 나눠보겠다는 건데, 끝까지 막을 테냐?”
유서연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녀의 뒤에 있던 연하린이 나섰다.
“아가씨?”
유서연이 당황해 연하린을 바라봤다. 연하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얘기만 한다잖아.”
연하린은 유서연 옆에 나란히 서서 황보엽을 쳐다봤다.
“할 말이 있으시면 해보시죠. 무슨 일로 여기에 오신 건가요?”
연하린의 물음에 황보엽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렇게 앞에서 보고 있으니 더더욱 마음이 흔들렸다.
“혹시 어느 가문에서 오셨는지 알 수 있겠소? 내가 가주께 말씀드려서 정식으로 매파를 보내도록 하겠소.”
연하린이 피식 웃었다.
“전 이미 정혼자가 있는 몸입니다. 볼일이 끝나셨으면 이만 돌아가시죠.”
연하린은 냉정히 돌아섰다.
하지만 황보엽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정혼자가 있으면 뭐 어쩌란 말인가.
“그 말은 아직 혼례를 치르지 않았다는 뜻 아니오? 그렇다면 내게도 기회가 남아있는 것 아니겠소?”
연하린이 다시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칼로 잘라내는 듯 차갑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거 없어요. 혼례를 치르고 안 치르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미 제 마음이 그분께 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만 돌아가세요.”
연하린이 그 말을 남기고 휙 돌아섰다.
황보엽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좋소. 사적인 용무는 이제 끝났으니, 공적인 용무를 꺼내야겠군. 우리 황보세가를 능멸한 놈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왔다. 순순히 나와서 무릎을 꿇어라.”
황보엽의 몸에서 기파가 확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황보세가 무사들의 몸에서도 막대한 기운이 확 뿜어져 나왔다.
일단 기세부터 짓눌러야 뒤가 편해진다.
연하린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돌아섰다.
그녀가 막 뭐라고 말하려는데, 전각 쪽에서 벽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서 수련을 할 수가 없구나.”
모두의 시선이 벽태산에게로 향했다.
벽태산은 전각에서 막 나왔는지 입구에 서 있다가 천천히 걸어왔다.
황보엽은 벽태산 쪽은 그저 힐끗 쳐다보기만 했다. 그의 시선은 연하린에게서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한데 벽태산을 바라보는 연하린의 표정이 갑자기 꽃이라도 피우는 듯 화사해졌다.
그제야 황보엽의 시선이 다시 벽태산에게 향했다.
‘양치백이 말했던 기생오라비가 저놈이로군.’
황보엽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벽태산을 노려봤다.
“소저가 말하던 그분이 저 사람인 모양이군.”
황보엽의 입매가 비열하게 뒤틀렸다.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놈인지 보여주겠소. 바닥이 드러나면 어떻게 변할지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연하린이 그 말을 듣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이 달라지는 걸 확인한 황보엽이 씨익 웃었다.
“원래 사람은 항거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누구나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오.”
황보엽은 그 말을 남기고 벽태산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들 그 모습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특히 벽태산의 사람들 중 몇몇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하겠는가.
황보엽이 벽태산 앞에 섰다.
벽태산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고, 황보엽의 표정은 누구든 한 명 죽여 버릴 것 같이 무시무시했다.
벽태산은 그런 황보엽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식쯤은 되겠구나.”
“뭐? 후식? 그게 무슨 말이냐?”
황보엽이 인상을 팍 썼다.
벽태산은 그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슥 훑었다.
벽태산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천경완이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사적으로 후다닥 달려온 천경완이 벽태산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 부르셨습니까.”
벽태산이 턱짓으로 황보엽을 가리켰다.
“딱 맞을 거 같으니까 싸워봐라.”
“예?”
벽태산은 더 말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시비들을 쭉 훑어봤다.
시비들 역시 벽태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른 움직였다.
“너희는 저쪽이다.”
시비들이 다가오려 하자, 벽태산이 황보세가 무사들이 있는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화옥이 빠진 상태였기에 시비의 수는 아홉이었다.
그리고 황보세가 무사들은 열 명이었고.
벽태산의 시선이 이번에는 유서연에게 닿았다.
유서연은 움찔 하더니 얼른 시비들 옆에 붙었다.
그걸 본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재미있겠구나.”
벽태산은 뒤로 슥 물러났다.
황보엽이 눈을 부릅뜨고 벽태산을 쫓아가려 했지만, 어느새 앞을 막은 천경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죽고 싶으냐?”
황보엽의 주먹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천경완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기세를 가다듬었다.
그 순간, 황보엽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천경완을 바라봤다.
“이것 봐라?”
별 거 아닌 놈인 줄 알았는데, 막상 기세를 피워 올리는 걸 보니 만만한 느낌이 아니었다.
황보엽이 기습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쩌엉!
어느새 천경완이 검을 반쯤 뽑아 주먹을 막아냈다.
슈가가각!
천경완은 주먹을 막자마자 검을 뽑아 빠르게 휘둘렀다.
황보엽은 유연하게 그 공격을 다 피해냈다.
그리고 주먹과 발을 정신없이 내질렀다.
쩌저저저저정!
천경완은 검으로 주먹을 막고, 다리를 이용해 각법을 막아냈다.
검을 쓴다고 해서 꼭 검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뭐든 쓸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몇 번이고 뼈저리게 느꼈기에 수련도 그런 식으로 해왔다.
그리고 실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경완의 검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며 황보엽의 가슴을 노리고 쭉 뻗어나갔다.
황보엽은 팔뚝을 바깥으로 쳐내듯 검을 쳐냈다.
꽝!
폭음이 일었고, 그와 동시에 천경완의 발이 황보엽의 종아리를 노리고 채찍처럼 날아갔다.
빠악!
황보엽도 발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부딪힐 때마다 타격이 내부로 파고들어왔다.
이대로 싸움이 길어지면 불리해진다.
‘어디서 이런 놈이······!’
황보엽은 정신없이 검을 피하고 쳐내고, 다리를 놀리고 주먹을 내지르며 싸웠다.
그러다가 문득 황보세가 무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역시 싸우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작 열 명의 여인을 상대로 황보세가의 무사 열 명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밀리지도 않고 팽팽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들이 누구인가. 황보세가의 무사들 중에서도 최고중의 최고들만 고르고 골라 뽑은 투사들이었다.
황보엽조차 저들 중 다섯이 한꺼번에 덤비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한데 고작 열 명의 여인이,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자들이 어찌 저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대등한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황보세가 무사들 쪽이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싸움이 눈에 들어왔다는 건,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천경완은 잠시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목숨으로 대가를 내놓아야 하는 수련을 수시로 해왔다.
그런 만큼 상대의 빈틈 또한 결코 놓치지 않는다.
천경완은 검을 내지르며 황보엽에게 파고들었다.
보통 권을 쓰는 자와는 거리를 벌려야 하는데, 천경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짝 붙으며 팔꿈치를 올려쳤다.
빠악!
황보엽이 다급히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기세가 밀려 버렸다.
천경완은 더 이상 검을 쓰지 않았다. 손에 검을 든 채, 팔꿈치와 무릎으로 황보엽을 마구 가격했다.
뻐버버버버버벅!
황보엽의 특기라 할 수 있는 초 근접전이었지만, 황보엽은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하고 계속 밀리기만 했다.
변변한 공격을 못하고 막는 데 급급했다.
이런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장차 황보세가의 가주가 될 몸이 검을 쓰는 놈에게 박투로 밀리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황보엽은 무리하게 내공을 운용해 몸을 비틀었다.
발바닥에서 시작해 발목, 종아리, 허벅지, 허리를 타고 막대한 힘이 회오리치며 솟구쳤다.
팔꿈치와 무릎을 서로 교환하는 동시에 이걸 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 말로 억지로 내공을 돌려서 만들어낸 힘이었다. 당연히 내상을 각오했다.
꽈르릉!
허리에서 팔로 이어진 힘이 벼락같은 일격을 만들어냈다.
강렬한 회전이 천경완의 팔꿈치를 확 날려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틈으로 황보엽의 주먹이 파고들었다.
쩌어어엉!
황보엽이 눈을 부릅떴다.
천경완이 검을 버리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주먹을 막아낸 것이다.
“크아악!”
황보엽은 주먹을 통해 팔뚝으로 파고드는 기묘한 힘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상까지 각오한 혼신의 일격을 손바닥 하나로 막아낸 것도 놀라운데, 그와 동시에 반격까지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 기묘한 힘은 황보엽의 팔을 타고 올라가 몸 내부를 심각하게 타격했다.
“쿨럭!”
황보엽이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천경완은 버렸던 검을 다시 집어 들고 황보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황보엽이 다급한 표정으로 팔을 내저었다.
천경완은 무심한 눈으로 검을 내리쳤다.
뻐억!
검면으로 정수리를 내리찍어 버린 천경완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 납검하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황보엽은 두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해 쓰러졌다.
천경완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자신이 무려 황보세가의 첫째 공자를 이긴 것이다.
그동안의 수련으로 강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성과를 확실히 확인하고 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벽태산은 천경완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싸울 줄 아는구나.”
천경완의 입가가 한껏 올라갔다.
끝
천경완과 황보엽의 싸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보세가 무사들과 시비들과의 싸움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벽태산의 시비들은 따로 무기를 쓰지 않았다.
황보세가 무사들이야 당연히 주먹이 무기나 다름없으니 무기를 들지 않았고.
본래는 철심이 박힌 수투를 착용하고 싸우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투를 쓸 일이 없을 거라 여겨 꺼내지도 않은 상태였다.
싸움은 상당히 치열했다.
벽태산의 시비들만 있었다면 당연히 황보세가 무사들에게 밀렸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온 열 명의 무사는 평범한 자들이 아니었다.
다섯만 모여도 황보엽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자들이었다.
황보엽의 수준이 황보세가 장로들과 비슷하거나 약간 넘어설 정도니,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그런 황보세가 무사들을 상대로 팽팽하게 싸울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유서연의 힘이었다.
유서연은 바쁘게 움직이며 위험에 처한 시비들을 구하고, 전체적인 싸움의 흐름을 이끌어갔다.
유서연은 천경완과는 다른 의미로 좋은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싸움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건 때에 따라서는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능력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싸움이 이어지는 와중 황보엽이 쓰러졌고, 그것이 황보세가 무사들의 동요를 이끌어냈다.
자연스럽게 드러난 빈틈을 벽태산의 시비들이 아주 정확히 찔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