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2)
열 명의 황보세가 무사들은 사정없이 얻어맞아 온몸에 시퍼런 멍을 단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싸움이 끝났다.
이제 황보세가에서 온 사람들 중에 멀쩡히 서 있는 건 양치백 한 명뿐이었다.
양치백이 별 거 아닌 놈이라는 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한 눈에 알아봤다.
그래서 굳이 그와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양치백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펼쳐지자,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양치백에게 천추신의가 다가갔다.
양치백은 긴장한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저, 저희가 여기 온 걸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양치백은 천추신의가 손을 쓰기 전에 얼른 외쳤다.
일단 이렇게 해둬야 아무도 죽지 않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황보세가의 사람들을 대놓고 죽이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천추신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양치백을 쳐다봤다.
양치백은 슬그머니 천추신의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냥······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조심성이 좀 많아서······ 저기 기절하신 분이 황보세가의 차기 가주님 되실 분이라는 것도 참고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천추신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고개를 돌려 화옥을 찾았다. 이런 걸 알려줄 사람은 여기서 화옥뿐이었다.
하지만 화옥은 지금 전각 꼭대기 층에서 열심히 벽태산이 건네준 정보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 아는 놈 없어?”
천추신의가 투덜거리자, 후원 바깥쪽에서 계속 눈치를 살피던 하오문도 한 명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현재 황보세가에는 아직 소가주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후보자 중 한 명일뿐입니다.”
천추신의가 그 말에 씨익 웃었다.
“그럼 우리가 이놈을 죽여주면, 나머지 후보들이 얼씨구나 하겠네?”
“판을 잘 짜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오문도의 대답에 양치백이 기겁했다.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황보세가는 가문의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보복이 돌아올 겁니다!”
천추신의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은 벌써 생긴 거 아냐? 저렇게 처맞았는데?”
양치백이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없던 일로 만들겠습니다.”
“이게 없던 일이 되겠어? 그리고 아까 저놈 하는 짓 보니까 개차반이 따로 없던데, 제대로 다룰 수나 있겠어?”
“합니다! 제가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천추신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렇다는데, 어쩌시겠습니까, 공자님?”
벽태산이 담담히 말했다.
“필요 없다.”
벽태산의 말에 양치백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천추신의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럼 싹 죽이겠습니다.”
양치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벽태산은 죽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됐다. 어차피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 테니까.”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황보엽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덥석 쥐고 전각으로 향했다.
“나머지 전부 데려와라.”
어딘가에서 하오문도들이 우르르 나타나 황보세가 무사들을 번쩍번쩍 들고 벽태산을 따라갔다.
그리고 천추신의가 양치백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양치백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느릿느릿 행렬의 가장 뒤에 따라붙었다.
가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애절한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하지만 천추신의는 그 때마다 눈을 위아래로 부라리며 얼른 따라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렇게 양치백까지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전각 안에서 폐부를 뽑아내는 듯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 * *
벽태산은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전각 입구를 쳐다봤다.
하오문도들이 황보세가 무사들과 황보엽을 어깨에 짊어지고 막 나가는 중이었다.
양치백도 마찬가지로 정신을 잃은 채 하오문도의 어깨에 축 늘어져 있었다.
혼백을 절반만 뽑아서 살살 돌려 굽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데, 그동안 증혼마공에 대한 깨달음이 제법 있었는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일단 혼백을 태우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태운 영력을 흡수하는 비율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쓸모없던 영력 중 일부를 흡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제법 많은 상념을 추려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조만간 화옥에게 전할 것이다.
황보세가의 직계가 가지고 있던 기억이니 제법 괜찮은 정보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보통 황보엽처럼 살인 경험이 많은 놈의 혼백은 때와 혼백이 뒤섞여서 때만 골라서 태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데 그동안 얻은 깨달음 덕분인지, 아니면 이번에 새롭게 깨달음을 얻게 된 건지, 그걸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물론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꼼꼼하게 시간을 들여서 태웠으면 가능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황보엽 따위에게 그런 공을 들여서 뭐 하겠는가.
아무튼 앞으로는 원한다면 혼백의 상태가 무너지지 않게 하면서도 혼백의 때를 깔끔하게 태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작은 경험과 깨달음들이 쌓이고 쌓여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벽태산은 하오문도들이 밖으로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직 아까 혁련휘로부터 뽑아낸 정보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는 화옥이 있었다.
벽태산은 그런 화옥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던져주기 위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 * *
황보엽은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인상을 썼다.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래도 억지로 눈을 떴다.
힘겹게 눈을 뜨고 나니, 몸에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먼저 청각이 천천히 깨어났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후각도 깨어났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확 찔렀다.
“끄응.”
억지로 상체를 세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데리고 다니던 세가의 무사들이 보였다.
다들 정신을 잃은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황보세가 무사들과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빙 둘러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아주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제야 그들의 표정이 보였다. 다들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의 얼굴에서 놀람의 감정이 보였다.
그리고 황보세가라든가 황보엽이라는 단어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뭐지?’
황보엽은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보니까, 황보세가 무사들의 엉덩이 부분이 이상했다. 저게 뭔지는 그냥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화들짝 놀라 자신의 상태도 확인했다.
‘이런 미친!’
저들과 상태가 똑같았다.
황보엽은 황급히 세가 무사들을 깨웠다.
“다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일어나!”
황보세가 무사들이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끝까지 돌보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황보엽은 일단 벌떡 일어나 경공을 펼치며 세가를 향해 달려갔다.
후두두둑!
그가 가는 길을 따라 지저분한 잔해가 후두둑 떨어졌다.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좌우로 비켜섰다.
황보엽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보세가 무사들도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황보엽과 똑같은 반응을 보여준 후, 세가로 달려갔다.
황보엽이 지나쳐가면서 생겨난 흔적 위에 열 명 분의 흔적이 더해졌다.
* * *
황보엽에 대한 소문은 아주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자리는 남창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남창에서 황보엽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물론 거기에 하오문이 약간 거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나칠 정도로 빨랐다.
그로 인해 황보엽은 후계자 경쟁에서 한참 뒤쳐지게 되었다.
아니, 이 정도면 거의 탈락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로에서 똥을 지린 사람을 오대세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의 후계자로 내세울 수는 없었다.
어쨌든 황보엽이 후계자에서 탈락한 건 탈락한 것이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해야 했다.
황보세가에서는 황보엽을 비롯해 열 명의 황보세가 무사들과 양치백까지 한 명씩 불러 세밀하게 조사를 했다.
하지만 그들 중 당시의 기억이 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황보엽과 양치백은 자신들이 포양호에서 수채를 토벌하려다가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황보세가에서는 자체적으로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조사를 시작했다.
황보엽과 양치백, 그리고 열 명의 무사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모든 행적을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열심히 조사를 한 결과가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원후에게 전해졌다.
황보원후는 가주의 집무실에 홀로 앉아 제법 두터운 문서를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대부분은 별 의미 없는 내용이었다.
열두 명이나 되는 자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역으로 캐서 작성한 보고서였으니 양은 많고 핵심은 별로 없는 것이 당연했다.
원래는 이걸 정리해서 핵심만 추린 보고서가 따로 있었는데, 황보원후는 굳이 그걸 보지 않고 직접 모든 보고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직접 읽고 핵심을 파악한 뒤, 따로 올라온 보고서를 읽고 비교해보는 것은 황보원후가 즐겨 쓰는 방식이었다.
황보원후는 문서의 대부분을 옆으로 치워 버리고 몇 장만 남겼다.
정확히는 양치백에 관한 것이었다.
양치백은 황보엽의 최측근이었다. 특히 황보엽이 대놓고 하지 못하는 일을 알아서 잘 처리하는 자였다.
그런 방면으로는 제법 능력이 있어서 황보원후도 눈 여겨 보던 자이기도 했다.
양치백이 남창의 정보조직에 무언가를 의뢰했다는 정황이 기록되어 있었다.
정확히 뭘 의뢰했는지는 모른다. 그 부분에 대해 양치백에게 물었지만, 양치백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정보조직을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만 말했다.
“일단······ 이놈들부터 만나봐야겠군.”
남창의 정보조직을 만나서, 양치백이 그들에게 무슨 의뢰를 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그게 이 모든 조사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 * *
이제 남창에서 할 일은 대부분 끝났다.
오히려 원래 목표로 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성과를 냈다.
남창에는 무명의 근거지 두 군데와 여섯 명의 고수가 있었는데, 그 모두를 처리한 것도 모자라 추가로 소규모 근거지 두 군데를 털었다.
거기에 혁련휘까지 잡았으니 얼마나 큰 성과인가.
이제 장사로 돌아가면서 중간에 있는 무명의 근거지를 싹 처리하면 된다.
원래의 계획은 그랬다.
한데 혁련휘를 잡아 혼백을 태우면서 얻은 정보가 문제였다.
“예? 황산에 가신다고요?”
화옥은 화들짝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아직 벽태산이 준 정보를 모두 정리하지 못했다. 양이 워낙 많고 모호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였다.
혁련휘는 생각보다 아는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았다.
화옥은 혁련휘가 최소한 무명의 주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혁련휘의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데 막상 정보를 정리하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혁련휘는 무명의 주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무명의 주인이 직접 거느리는 직계 수하들에 대해서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직계 수하의 자리에서 물러난 자들에 대해 약간의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황산에 있었다.
화옥이 확인한 황산에 대한 정보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혁련휘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한 자였다.
“바쁠 테니 넌 여기서 기다려라. 나 혼자 슬슬 다녀오마.”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천마이던 시절에도 종종 이렇게 했다.
다만, 그 때마다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물론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공자님을 모실 사람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벽태산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
생각해보니 최소한 시비가 세 명은 필요하다. 천마이던 시절과 달라진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비를 데리고 다니면 정말 편하다. 그 편안함을 버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출발할 테니, 알아서 세 명을 준비시켜라.”
“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화옥은 못 간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녀는 이 일을 시비들에게 그냥 넘길 생각이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정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는가.
과연 누가 가게 될지, 또 그녀들이 어떻게 갈 사람을 선정할지 왠지 궁금해졌다.
화옥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끝
황보세가에도 당연히 정보를 관리하는 조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조직은 오직 가주만 쓸 수 있는 가주 직속의 조직이었다.
이는 황보세가뿐 아니라 나머지 오대세가 전부 마찬가지였다.
가주가 정보를 독점하고, 가주가 원하는 자들에게 정확히 원하는 수준으로만 정보를 풀었다.
그들은 철저히 가주에게만 충성했다.
심지어 가주가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나면, 바로 권한이 사라질 정도로 철저했다.
그 조직은 그저 비각이라고 불렸다.
비각의 조직원인 황규는 지금 가주의 지시로 남창 최고의 정보조직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정보를 다루는 비각은 당연히 남창은 물론이고 천하 곳곳의 정보조직에 줄을 대고 있었다.
그들이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감시하는 것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있는 법이니까.
당연히 남창의 정보조직에도 줄을 댔고, 주기적인 거래를 통해 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가주의 명령을 받았을 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보조직은 비밀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비밀 또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적절한 대가와 협박을 통해 정보를 뽑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 정보조직은 남창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남창은 황보세가의 영역이고.
어느 모로 보나 실패할 이유가 없고, 어려울 일이 없는 임무였다.
한데 그 별 거 아닌 임무가 시작부터 꼬여버렸다.
평소 연락하던 비선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보름에 한 번 정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관리를 했는데, 분명히 지난 번 연락할 때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이번에는 일이 생겨서 중간에 연락을 한 것이기에 고작 열흘 만에 연락을 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