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
“하지만······ 저희는 연가장이 아니라 금벽장으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이쪽으로 가면 오히려 좀 돌아가는 셈이 됩니다.”
좀이 아니라 많이 돌아가야 한다. 일정이 촉박한 건 아니지만 굳이 먼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천추신의나 유서연도 금벽장 쪽으로 오라고 해뒀고 말이다.
“지름길을 우리만 이용하는 게 아니잖아.”
벽태산의 말에 천경완이 입을 다물었다. 이제야 왜 굳이 이쪽으로 왔는지 이해한 것이다.
이 지름길을 이용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연가장에서 종리세가 쪽으로 바쁘게 갈 사람들이다.
“종리세가 사람들을 중간에 만나고자 하시는군요.”
“실전 훈련할 좋은 기회잖아.”
천경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예전 종리세가 무사 열한 명을 박살 냈을 때는 유서연과 함께였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연가장에서 나오기 전에 봤던 종리세가 무사들은 확실히 예전 놈들보다 강했다.
거기에 압도적인 고수가 둘이나 섞여 있었다.
‘과연 그런 놈들을 내가 혼자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약점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저기 온다.”
벽태산의 말에 천경완이 고개를 번쩍 들고 앞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앞을 노려보며 눈에 내력을 흘리자, 저 멀리 점 같은 것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점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사람 형체가 되었다.
예상과 달리 고작 한 명이었다.
‘종리세가 사람이 아닌가?’
천경완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벽태산이 중얼거렸다.
“기세가 제법 매서운데?”
그 말을 들으니 긴장감이 확 올라왔다.
벽태산이 저 정도 평가를 내린 사람이 지금까지 누가 있었을까?
이내 그 사람의 얼굴이 확실히 식별될 정도로 가까워졌다. 천경완은 그가 누군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종리세가의 그 고수입니다.”
“싸울 엄두도 안 난다던?”
저런 놈이 둘이나 있다고 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법이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이내 양측이 만났다.
“호오. 여기서 만나는구나. 쥐새끼처럼 도망치기에 금벽장으로 돌아간 줄 알았더니 여기 있었어.”
종리성락이 환하게 웃었다.
솔직히 벽태산을 잡으려고 고생을 좀 했다. 금벽장과 연가장을 몇 번이나 왕복했다.
그리고 수소문해서 금벽장에 벽태산이 있는지 여러 번 확인했고.
그러던 와중에 종리세가에서 일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세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원문광은 연가장에 남아 있었다. 그는 하던 일이 있었기에 몸을 뺄 수 없었으니까.
내심 벽태산을 만나는 걸 포기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보아하니 동호 쪽에서 오는 것 같구나.”
종리성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벽태산이 왜 동호 쪽에서 온 걸까?
그쪽에는 종리세가가 있다.
왠지 벽태산과 천경완이 종리세가에 다녀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설마 우리 세가에 다녀오는 길인가? 아니지 그쪽에서 너희들을 봤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당연하지. 동호표국 안에만 있었으니까.”
벽태산의 대답에 종리성락이 눈을 크게 떴다.
“동호표국? 거기랑은 무슨 관계지?”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그건 알아서 뭐하게?”
종리성락이 눈살을 찌푸렸다.
“버릇이 없구나. 안 그래도 널 만나고 싶었는데 잘 됐다.”
천경완이 벽태산 앞을 막아서며 종리성락을 노려봤다.
“그쪽에서 우리 공자님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종리성락이 빙긋 웃었다.
“따끔한 훈계가 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게 어른의 도리 아니겠느냐?”
종리성락이 그렇게 말하며 기세를 쏟아냈다.
뭉클 쏟아진 기운이 천경완을 거세게 휘감았다.
거친 기운이 온몸을 압박해 제법 고통스러웠지만, 천경완은 담담하게 종리성락을 쳐다봤다.
웬만한 고통으로는 이제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살점이 뭉텅뭉텅 뜯어져 나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데 고작 이 정도쯤이 무슨 대수겠는가.
“호오. 제법이구나. 그래도 좀 이상한데? 제법이긴 하지만 우리 애들을 한꺼번에 압도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때 벽태산이 나섰다.
“그건 내가 종리세가 무공의 약점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거고.”
“뭐?”
종리성락의 표정이 확 굳었다. 저 말은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우리 무공의 약점을 알고 있다고?”
“그것도 아주 속속들이 알지. 공격할 때의 빈틈, 방어할 때의 허점, 특정한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치명적인 사각 같은 것들 말이야.”
“믿을 수가 없군. 그게 정말이냐?”
종리성락의 시선이 이번엔 천경완에게로 향했다.
천경완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벽태산이 이렇게 말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보통 훈계만으로는 안 되겠구나. 아무래도 나랑 같이 우리 세가로 좀 가줘야겠다.”
벽태산이 그 말에 씨익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말이야. 여기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네?”
종리성락의 표정이 확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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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무슨
종리성락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순도 높은 분노가 그의 눈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종리성락의 몸에서 정제된 살기가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그러자 천경완이 벽태산 앞을 슬그머니 가로막았다.
벽태산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직 병이 다 낫지 않았다.
이런 살기에 노출되어서 좋을 게 하나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명문세가의 고수다. 보아하니 장로쯤 되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마음먹고 기습하면 과연 그걸 벽태산이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한 번이라도 막으면 그 빈틈을 벽태산이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네까짓 것이 과연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종리성락의 분노가 이번에는 천경완에게 쏟아졌다.
그러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죽일 생각 아니었나? 나만 납치할 거였잖아. 안 그래?”
벽태산의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종리성락의 눈빛이 확 가라앉았다.
“살인멸구를 입에 담은 건 네놈이다.”
“평소 행실이 말과 생각으로 나오는 법이지. 살인만 생각하고 있으니 무슨 말을 들어도 그쪽으로 연결되는 거잖아.”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종리성락을 한 차례 훑어봤다.
“그러니까 그렇게 혼백이 지저분하지. 정말······ 더럽게도 살았구나.”
안 그래도 화가 난 상태인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이노옴!”
종리성락이 내공을 가득 담아 외쳤다. 제대로 방비하지 않으면 고막이 터져 버릴 수도 있었다.
기교가 없이 투박하긴 하지만 일종의 음공이었다.
천경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공을 이용해 막아내긴 했는데, 온몸이 쩌릿쩌릿했다.
천경완은 뒤에 있는 벽태산이 걱정됐다. 과연 벽태산이 이런 걸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런 천경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벽태산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어설픈 것도 못 흘리는 거냐? 정말······ 수련이 부족하구나.”
천경완은 수련이 부족하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종리성락의 기세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말을 섞어봐야 화만 날 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대로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차라리 일단 한 놈은 죽이고 나머지 놈을 잡은 다음에 천천히 얘기하는 편이 나았다.
벽태산은 종리성락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천경완에게 물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해보면 되겠네. 딱 천추신의가 고칠 수 있을 정도까지만 다쳐.”
천경완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겠는가.
“최대한 발버둥 쳐 보겠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더 강한 놈이랑 붙어보는 게 성장에는 최고지.”
천경완은 숨을 한 차례 훅 내뱉고는 검을 뽑았다.
스릉.
종리성락이 가소롭다는 듯 그 모습을 노려봤다.
“단숨에 목을 날려주마.”
종리성락의 몸이 깜빡이는 듯하더니 어느새 천경완 앞에 서 있었다.
천경완은 차분하지만 빠르게 검을 들었다.
쩡!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검격을 막아냈다.
“그걸 막아?”
종리성락의 눈이 커다래졌다. 방금 그 공격은 기습까지 동원한 회심의 일격이었다.
한데 천경완이 그걸 막아낸 것이다.
종리성락의 검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연이어 검격을 쏟아냈다.
쩌저저저정!
종리성락의 검격은 빠르고 강했다. 그리고 매 검격마다 강한 살기가 담겨 있어 그저 막는 것만으로도 몸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다.
한데 천경완은 그걸 어찌어찌 다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게 힘을 분산시키지 못했기에 충격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만일 예전의 천경완이었다면 한 번이나 제대로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 지금도 종리세가 무공의 약점을 다 파악하고 있기에 이나마 막은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목이 날아갔으리라.
‘할 수 있다!’
천경완의 눈에 점점 자신감이 차올랐다.
종리성락은 그것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그의 검에 점점 더 많은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꽝! 꽝! 꽝! 꽝!
검격을 막을 때마다 울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폭음이 되었다.
천경완이 이를 악물고 검격을 막아냈다.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투지는 전혀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힘과 투지가 넘쳤다.
종리성락은 그런 천경완을 보며 감탄했다. 그는 몇 차례 검을 더 휘둘러 천경완을 밀어내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고작 금벽상단에 머물기에는 아까운 실력이구나. 어떠냐? 우리 세가로 들어오는 것이? 내가 확실히 키워주마.”
종리성락은 그렇게 말하면서 천경완 뒤에 있는 벽태산을 힐끗 쳐다봤다.
한데 벽태산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안 든 종리성락이 인상을 살짝 쓰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무공을 봐주마. 이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네 뒤의 아이를 배신하는 것도 아니다. 넌 어차피 죽는다. 그러니 죽었다고 여기고 한 발 물러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천경완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천경완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 종리성락에게 달려들었다.
쩌저저저정!
종리성락이 천경완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그 때마다 기파가 터져 나가며 천경완의 몸 곳곳에서 피가 튀었다.
그리고 천경완의 검이 교묘히 종리성락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슈각!
종리성락의 뺨에 얇은 실선이 생기며 피가 살짝 튀었다.
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감히!”
종리성락의 검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스아악!
천경완의 검이 매끄럽게 잘려 나갔다.
그리고 부드럽게 이어진 종리성락의 검이 천경완의 어깨를 쿡 찔렀다.
“쿠웨에엑!”
천경완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쿠당탕탕!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더니 이내 다시 몸을 일으켜 자세를 잡았다.
종리성락은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은 어깨가 아닌 가슴을 노린 일격이었다. 한데 공격이 빗나간 것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뭔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강해졌다. 그래서 점점 짜증이 쌓여갔다.
종리성락은 그 짜증을 분노로 바꿔 천경완을 노려봤다.
천경완의 팔이 축 늘어졌다. 찔린 어깨 때문에 팔이 아예 안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천경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반토막 난 검으로 종리성락을 겨눴다.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의 투지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걸 본 종리성락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죽여주마.”
종리성락은 그렇게 말하며 새하얗게 물든 검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천경완은 그걸 보며 토막 난 검에 내공을 잔뜩 불어넣었다.
최소한 동귀어진이라도 노려볼 생각이었다.
한데 그 순간 천경완의 어깨에 손 하나가 턱 올라갔다.
벽태산이었다.
“거기까지다. 더 다치면 그 팔 못쓰게 될 수도 있어,”
그냥 검에 당했다면 괜찮은데, 검기에 당했다. 아마 상처가 보기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그래도 검강에 당하지 않은 것이 어디인가.
그랬다면 팔이 아예 핏물로 뭉개졌을 것이다.
“눈도 깜빡이지 말고 잘 지켜봐. 혹시 알아? 뭔가 하나 얻어갈지?”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달라지긴 많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이런 말까지 친절하게 해주는 걸 보면 말이다.
천경완을 뒤로 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벽태산을 보는 종리성락의 눈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너 따위가 나와 검을 맞대겠다는 거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검은 무슨. 너 하나 상대하면서 나보고 검을 들라고? 장난해?”
벽태산은 그렇게 대꾸하며 몸을 점검했다.
꾸준히 기루에 들락거린 덕분에 그래도 몸 상태가 아주 바닥은 아니었다.
손 몇 번 휘두른다고 후유증이 심하게 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에 종리웅의 혼백을 살살 구워서 빨아들인 힘도 제법 쌓여 있었다.
종리세가에서 받은 힘이니 종리세가에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후우우. 나중에 내 반드시 네놈 혓바닥을 잘라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