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99)
* * *
혼천마는 안내하는 무사를 따라 무한에 들어섰다.
그리고 현천장으로 향했는데, 가는 내내 누군가 지켜보는 시선에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통과해서 갔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시선이 아니라, 좀 더 먼 곳에서 파고드는 시선이었다.
보아하니 자신을 안내하는 무사는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혼천마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지켜보는 놈들을 과연 가서 잡아야 할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둘지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걷고 있는데, 시선이 찰나지간 사라졌다가 다시 붙었다.
‘구역을 나눠서 여러 명이 감시하는 모양이군.’
그렇게 몇 번이나 시선의 주인이 바뀌었다.
혼천마는 한 놈을 잡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가다보니 어느새 현천장에 도착했다.
혼천마는 고개를 들어 현천장 정문에 붙은 현판을 확인했다.
“정말로 현천장이로군. 진짜 겁 없는 놈들이야.”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지금 천마신교가 현천진에 갇혀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나와 활동하던 자들이 있을 것 아닌가.
어쩌면 그놈들이 여기에 자리 잡고 현천이라는 이름을 썼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더더욱 용서하지 못한다.
혼천마는 정문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혼천마는 정문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가볍게 밀었다.
떠엉!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정문이 활짝 열렸다.
혼천마는 그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여기 주인 보러 진짜 현천에서 나왔다고 전해라!”
혼천마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끝
혼천마는 현천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멈칫했다.
장원 안에 들어오니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장원의 담장을 경계로 안쪽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특별한 기운이 가득했다.
혼천마가 멈칫한 이유는 그 기운 안에서 아주 익숙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혼천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장원 안쪽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
“뭐야, 왜 아무도 안 나와?”
혼천마는 안으로 쭉쭉 들어가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누군가 문을 박차고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누구든 내다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더구나 이렇게 큰 장원이라면 상주하는 무사의 수도 상당할 텐데,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이 장원의 주인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장원의 주인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든 박살을 내든 하면 된다.
그것은 자신을 여기에 보낸 자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뜻이기도 했다.
‘갑자기 짜증이 나는구나.’
죽었다가 새 몸으로 다시 살아난 것까지는 좋다. 한데 이렇게 목줄이 잡힌 채 질질 끌려 다녀서야 되살아난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안으로 쭉쭉 들어가던 혼천마의 눈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드디어 자신을 막기 위해 사람이 나온 것이다.
한데 나온 사람을 확인한 혼천마가 다시 걸음을 멈췄다.
“검귀?”
혼천마가 아주 잘 아는 놈이었다. 천마신교에 있을 때 여러 번 마주쳤으니까.
혼천마는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너, 이 새끼, 너 따위가 감히 현천이라는 이름을 써? 미쳤어? 아니면 누가 뇌를 반쯤 파먹었어? 이따위 짓을 하고도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나?”
혼천마가 마구 쏟아내자, 검귀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혼천마를 쳐다봤다.
“확실히 아무나 와서 상대할만한 자는 아니로군.”
검귀의 말에 혼천마는 귀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걸 간신히 떠올리고는 화를 가라앉혔다.
“후우우. 그래.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귓구멍 열고 똑똑히 들어라. 나 혼천마다.”
혼천마라는 말에 검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얼굴이 전혀 다른데? 그 얼굴로 혼천마 어르신을 사칭해?”
“이건 그럴 사정이 있다. 아무튼 그러니까 정문에 있는 현판 내려. 이름도 다른 걸로 바꾸고.”
검귀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당장 손을 쓰지는 않았다.
현천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저렇게 난리 치는 걸 보니, 천마신교와 관계된 자가 분명했다.
그래도 혼천마는 너무했다. 하지만 그 순간 벽태산이 떠올랐다.
‘어?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벽태산을 먼저 겪었기에 혼천마도 비슷한 상황일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걸 판별해 낼 방법이 없지 않은가.
혼천마와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그래서 안면은 익혔지만, 그렇게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혼천마는 활동한 시간보다 뇌옥에 갇혀 있던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설마 못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검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혼천마를 바라봤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무튼 그건 내 권한이 아니오.”
검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살짝 말을 조심했다.
만일 상대가 진짜로 혼천마라면 함부로 말했다가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
혼천마가 한 번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도 못 말린다.
“권한이 아니라고? 네가 이 장원을 만든 것이 아니란 말이냐?”
혼천마의 표정이 달라졌다.
“널 부릴 정도의 사람이 외부에 나가 있었다고? 대체 그게 누구냐?”
검귀는 잠시 고민했다. 과연 저 사람을 벽태산에게 데려다 줘도 될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벽태산의 걱정을 왜 한단 말인가.
걱정은 자신이 아니라, 벽태산을 만나게 될 저 사람이 해야 한다.
“따라오시오. 장원의 주인께 안내해 드릴 테니.”
혼천마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내 직접 어떤 놈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는지 똑똑히 확인하고 징치할 것이다.”
검귀가 걸음을 옮기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혼천마를 바라봤다.
“당신이 진짜 혼천마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모르겠소. 원래라면 웃기지 말라고 호통을 쳤겠지만, 요즘 하도 요상한 일들을 많이 겪어서 확신을 못하겠소. 다만, 공자님 앞에서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요.”
“공자님? 설마 네가 모시는 사람의 나이가 어린 것이냐?”
혼천마는 기억을 열심히 뒤적였다. 하지만 천마신교에서 어린 나이로 검귀를 부릴 만한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럴 만한 강자들이 많이 남지도 않았다. 전부 죽었으니까.
아무리 뇌옥에 갇혀 있다고 해도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가끔 환마가 찾아와 얘기를 해주기도 했고. 물론 환마의 말은 다 믿기 어렵지만 말이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오. 공자님께 무례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 말 명심하시는 게 좋을 거요.”
혼천마가 피식 웃었다.
“얼른 안내나 해라. 무례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테니.”
검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뱀인지 지렁이인지 물리고 난 다음 확인하겠다면 굳이 말릴 생각이 없었다.
“갑시다.”
검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벽태산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검귀는 그렇게 말하고 벽태산에게 알리러 가려고 했다. 한데 혼천마가 그런 검귀를 앞질러서 훅 지나가 버렸다.
“아니, 잠깐······!”
검귀가 손을 뻗어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혼천마가 집무실 문을 벌컥 열어버린 것이다.
집무실 안에는 벽태산과 화옥이 있었다.
마침 화옥이 이번 십대고수와의 싸움에 대해 보고하던 중이었다.
벽태산은 검귀와 혼천마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벽태산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온 혼천마를 힐끗 쳐다봤다.
“제법이군.”
단숨에 혼천마의 경지를 파악했다. 영력은 없지만 저 정도면 검귀가 상대하기 살짝 버거울 듯했다.
혼천마는 벽태산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제법이라고? 지금 그 말, 나한테 한 거냐?”
혼천마의 뒤를 따라 들어가다가 그 말을 들은 검귀가 뜨악했다.
“미, 미쳤습니까!”
혼천마가 인상을 팍 쓰며 뒤를 돌아봤다.
“이놈들이 진짜······.”
혼천마가 검귀를 향해 기세를 내뿜었다.
하지만 검귀는 혼천마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오직 벽태산만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벽태산의 기분을 살폈다.
벽태산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검귀는 그걸 보고는 살짝 안도했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혼천마를 바라봤다.
“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니 이제부터는 알아서 하시오. 부디 당신이 진짜 혼천마 어르신이길 바라겠소.”
“진짜라니까!”
혼천마가 버럭 소리 질렀다.
검귀는 혼천마의 외침을 싹 무시하고 벽태산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물러가겠습니다.”
벽태산이 검귀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검귀는 얼른 집무실에서 나갔다. 그러자 벽태산의 시선이 혼천마에게로 옮겨갔다.
벽태산의 눈에는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네가 혼천마라고?”
혼천마가 인상을 팍 썼다.
“말이 짧구나.”
벽태산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순간, 짜릿한 소름이 등골을 쭉 치고 올라갔다. 혼천마는 식은땀을 흘리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뭐지? 이건 또 뭐야.’
고작 일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거대한 압박이 온몸을 짓눌렀다.
보아하니 상대는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그냥 일어나기만 했는데, 자신이 알아서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보통 놈이 아니었다.
혼천마가 긴장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그런 혼천마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정말로 혼천마냐고 물었다.”
“그, 그렇소. 내가 혼천마요.”
“너 뇌옥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나왔느냐.”
혼천마의 눈빛에 약간의 혼란이 깃들었다. 자신이 뇌옥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 검귀가 말해줬겠구나.’
그 생각을 하니 혼란이 가라앉았다.
벽태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너도 죽였느냐?”
혼천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자신을 죽였냐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뇌옥에 있었으면 나한테 죽었을 리가 없는데?”
혼천마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라 입을 쩍 벌렸다.
‘에이, 설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던가. 혼천마의 눈빛이 또 혼란스러워졌다.
“왜 대답이 없느냐.”
혼천마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날 죽인 건 환마입니다.”
혼천마는 어느새 자신이 존대를 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환마? 환마가 널 죽였다고? 언제?”
“모릅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현천진이 발동한 건 아느냐?”
혼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그때는 살아 있었으니까.”
벽태산의 눈이 번득였다.
“이상하구나. 현천진이 발동했으면 혼백이라도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리 없는데.”
벽태산이 혼천마를 빤히 쳐다봤다. 혼천마는 무언의 압박을 받으며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어······ 그러고 보니까 제가 이 몸으로 깨어날 때, 호리병을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혼백을 담아서 넘긴 건가?”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재미있구나. 환마가 현천진에 구멍을 뚫었어.”
혼천마는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슬그머니 발을 뒤로 뺐다.
벽태산이 혼천마에게 무심한 어조로 말을 툭 던졌다.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죽어서도 뇌옥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잊은 모양이구나.”
그 말을 들은 혼천마는 냅다 도망쳤다.
설마 설마 하면서 차곡차곡 쌓은 의심이 방금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확신이 되었다.
‘잡히면 뒈진다!’
왜 현천의 이름을 썼는지 이제 알았다. 아까 검귀가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도 이제 알겠다.
현천이라는 이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여기 있었다.
혼천마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록 도망쳤다.
덜컥!
“컥!”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목을 콱 잡아채는 바람에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온몸에 충격이 왔다.
하지만 고통은 아예 느낄 새도 없었다. 결국 잡혔다는 공포가 모든 걸 다 잡아먹은 것이다.
“도망까지 쳐?”
혼천마는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살려주십시오.”
* * *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주루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술과 가벼운 안주를 놓고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술과 안주에는 아직 입도 대지 않았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천추신의가 입을 열었다.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형님, 이게 말이 되오? 기루가 하나도 없다는 게?”
“나도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데는 처음이다. 독검방인지 뭔지 거친 애들 모인 데 아냐? 그런 놈들이 기루에 안 가고 버틸 수 있다고?”
“분명히 뭔가 있소. 독검방은 그렇다 치고, 천독검 그놈이 여자 없이 잠을 잘 리가 없잖소.”
일침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