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6)
거기에 소소까지 해서 아홉 명의 시비가 벽태산을 모시고 있었다.
소소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기녀 출신으로, 벽태산을 모시겠다고 스스로 찾아온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정말 성심성의껏 벽태산을 모셨다. 아무리 궂은일을 해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미모는 또 어찌나 대단한지 그녀들을 본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또 우쭐해졌다.
가무진은 이게 다 우리 공자님을 모시는 사람들이라고 자랑이라도 하듯 일침괴를 바라봤다.
“다들 우리 공자님을 모시겠다고 직접 찾아와 몸을 의탁한 아이들입니다.”
“직접······ 찾아왔다고요.”
가무진이 일침괴를 보며 물었다.
“혹시 어르신께서도 저 아이들의 체질 때문에 관심을 가지신 겁니까?”
일침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아무래도 저 아이들에게 내 수발을 들게 해야겠소. 저렇게 재능을 낭비하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소.”
“그거야 저 아이들이 선택할 일이지요. 그리고 우리 공자님의 허락도 필요하고 말입니다.”
가무진의 말에 일침괴가 고개를 저으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니까.
고작 금벽상단 따위가 자신의 행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일단 그 전에 할 일부터 마무리 한 다음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천추신의라는 의원을 보고, 그놈을 여기 내려앉힌 애송이도 한 번 보고 말이다.
온 김에 진맥을 해보고 흥미가 일면 침도 놔줄 용의가 있었다.
“일단 들어갑시다.”
일침괴의 말에 가무진이 빙긋 웃으며 안내를 이어갔다.
“이쪽입니다.”
* * *
벽태산은 앞에 앉은 일침괴를 가만히 쳐다봤다.
지금 벽태산 옆에는 천추신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천추신의는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침괴 옆에 앉은 가무진을 노려봤다.
가무진은 천추신의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굉장히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신의께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디 우리 장주님의 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천추신의가 한 마디 하려는데, 벽태산이 손을 슬쩍 들었다. 더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천추신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알았으니까 총관은 이제 가도 돼. 나머지 얘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벽태산의 말에 가무진이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일침괴를 살폈다.
“그래도 제가 있는 편이 좀 편하지 않겠습니까?”
벽태산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끼리 얘기하는 게 훨씬 편해.”
가무진은 최대한 정중히 일침괴와 벽태산에게 각각 허리를 숙였다.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침괴에게는 벽태산의 치료를 잘 부탁하는 것이고, 벽태산에게는 제발 일침괴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인사였다.
가무진이 밖으로 나가자, 일침괴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여기 오면서 보니 네 시비들이 제법이더구나.”
시비 얘기부터 하자,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옛날 생각도 나고, 일침괴의 성향도 약간 들여다볼 수 있어서였다.
벽태산은 대답 대신, 일침괴의 수준을 가늠해봤다.
처음 본 순간 어느 정도는 파악했는데, 더 자세하고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집중이 필요했다.
확인을 마친 벽태산이 눈을 빛냈다.
제법이었다. 처음 봤을 때 가늠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경지가 높았다.
제대로 기를 갈무리할 줄 알았고, 그것을 확실히 지배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기를 확실히 지배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무림에서 그게 가능한 사람이 백 명쯤 될 것이다. 조금 더 많을 수도 있고.
“내 시비들한테 관심이 있다고?”
벽태산의 말에 일침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다. 감히 누구에게 하대를 한단 말인가.
한데 왠지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굳이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 네 시비들, 보아하니 재능을 썩히고 있던데, 내가 데려다가 잘 키워보마. 의술도 가르치고 무공도 가르치고.”
“무공은 지금도 나름 가르치고 있는데?”
일침괴가 피식 웃었다.
“어디 알량한 무공을 내가 가르칠 고명한 무공에 비비려 하느냐.”
일침괴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다만 상대가 금벽상단일 경우에 해당한다. 불행히도 지금 일침괴의 상대는 벽태산, 전직 천마였다.
“그 알량한 무공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 말에 일침괴가 피식 웃었다.
“알 필요도 없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무공은 화월공이니까.”
“화월공?”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 색마가 쓰던 무공 아닌가?”
맞다. 화월공은 화월괴마라는 색마가 쓰던 무공이었다. 하지만 일침괴는 당당했다. 뭐 어떤가. 누가 쓰던 무공이건 뛰어나기만 하면 되지.
“우연히 좋은 무공을 손에 넣었지.”
화월괴마는 한창 이름을 날릴 때, 무려 남궁세가의 무사대 중 하나인 천강검대와 싸워서 살아남았다.
이기진 못했지만, 살아남은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다.
일침괴는 어떠냐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역시 다른 꿍꿍이가 있었군. 화월공이 그냥 수련만 한다고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잖아. 안 그래?”
“아무렴 그런 대단한 무공을 익히는 건데 그 정도 대가를 치르는 건 당연하지! 수발을 들다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걸 조금 당겨서 할 뿐이야.”
벽태산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얼른 말했다. 일단 기를 한 번 꺾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애들한테 가르친 건 비령신공인데. 혹시 들어봤는지 모르겠네.”
“비령신공?”
일침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혹시 그 비령신공이 내가 아는 비령신공은 아니겠지? 어디서 이름만 같은 잡스러운 무공을 가지고 생색을 내는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쪽이 아는 비령신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 비령신공은 예전 비령신군이 쓰던 비령신공이야.”
“거짓말하지 마라! 그 비령신공은 실전된 지 백 년이 넘었어!”
비령신공은 비령신군이 실종되면서 실전된 무공이었다.
하지만 벽태산이 가르친 건 정말로 비령신공이었다. 비령신군이 실종된 이유가 바로 천마신교 때문이었으니까.
“믿든 말든 그건 네 자유고. 이제 네가 직접 선택해 봐. 비령신공이랑 화월공 중에서 뭘 선택할 건데?”
벽태산의 물음에 일침괴가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무공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비령신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침괴는 방향을 틀었다.
“난 의원이야. 그러니 내가 가르치는 것도 의술이고. 좋은 무공? 그걸 익히는 것도 좋지. 하지만 의원이라면 모름지기 의술이 뛰어나야지. 그래야 세상을 이롭게 할 것 아닌가. 안 그래?”
“자기 인생을 돌이켜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게 확실하군.”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불쑥 내밀었다.
일침괴는 순간 긴장했다.
‘뭐지? 호흡을 빼앗겼다고? 내가? 저 애송이한테?’
벽태산이 손을 뻗은 순간이 너무나 절묘했다.
어쩌면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 같은 고수의 호흡을 빼앗으려면 찰나의 찰나 벌어지는 빈틈을 찔러야 한다.
아무리 우연이라도 그걸 아무나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갑자기 경계심이 확 올라갔다.
“이건 무슨 의미지?”
“무슨 의미긴. 진맥은 안 할 거야?”
“아······ 진맥. 해야지. 해 봐야지.”
일침괴는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게 하나도 없어서 약간 짜증이 났다.
그는 벽태산의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 일단 조사를 해봐야 한다. 방금 그 일이 우연인지 실력인지.
일침괴가 일으킨 기운이 벽태산의 몸에 스며들었다.
일침괴의 진맥은 철저히 내공에 의한다. 그의 진맥이 정확한 이유였고, 그의 침술이 뛰어난 이유이기도 했다.
‘일단 내공은 없고.’
아무래도 우연이었던 모양이다. 비령신공 같은 대단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놈이 내공조차 없다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진맥이 이어지자, 일침괴는 자신이 애초에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놈은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놈이었다.
“몸이 아주 걸레짝 같구나.”
그것이 진맥이 끝나고서 일침괴가 한 말이었다.
벽태산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 그렇게 안 좋아?”
“대맥들은 그나마 간당간당 살아 있는데, 세맥이 대부분 끊어져서 기의 흐름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치료할 수는 있고?”
“치료는 당연히 가능하다. 다만 품이 좀 들겠구나. 침을 여러 방 맞아야 한다.”
“일침이 아니네?”
일침괴가 씨익 웃었다.
“내 일침이 발휘되는 건 죽일 때뿐이다.”
벽태산은 담담히 물었다.
“고친다는 게 대맥 얘기하는 거지?”
“당연하지. 세맥을 침으로 다스리려면 대체 내가 침을 몇 방이나 놔야 할 것 같으냐? 게다가 오랫동안 세맥을 다스리다보면 처음 이었던 놈이 끊어진다. 그런 식으로 무한히 반복해야 하는데, 그걸 내가 왜 하고 있겠느냐?”
그 말을 들은 벽태산이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그렇다는데?”
천추신의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맺혔다. 그걸 본 벽태산이 말을 이었다.
“실력은 네가 위다.”
벽태산의 선언에 일침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저쪽이 더 뛰어난 의원이라고. 쟤는 몇 년이면 완치 가능하다고 했거든.”
“웃기지 마라! 내가 못 하는 걸 저놈이 한다고?”
벽태산은 씨익 웃으며 자기 할 말만 했다.
“자, 그럼 무공도 떨어지고 의술도 떨어지네. 이제 뭘 보여줄 건데?”
일침괴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힘을 보여주마.”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머리로 안 되니까 힘을 써서 빼앗겠다?”
일침괴가 당당히 말했다.
“뭐가 문제지? 보물을 가졌으면 그걸 지킬 힘이 필요한 건 당연하잖아.”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이건 어때?”
일침괴가 경계심어린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계속 말려들기만 해서 또 일이 꼬이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내기를 하자.”
“내기?”
일침괴의 눈이 번득였다.
벽태산이 내기 얘기를 한 건 하오문의 정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오문에서 파악한 바로, 일침괴는 내기를 정말 좋아했다. 또한 내기로 인한 결과를 반드시 지키는 걸로도 유명했다.
대부분의 내기를 일침괴가 이기긴 했지만.
“내기 좋아하잖아. 안 그래?”
“내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정정당당한 승부를 좋아하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까 하자고, 그거.”
“좋다. 다만 내기 종목이 마음에 안 들면 안 한다.”
“마음에 들 거야. 싫으면 싫다고 말해. 얼마든지 바꿔줄 테니까.”
“넌 네 시비들만 걸 생각이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 네 옆에 있는 놈도 같이 걸어라.”
“호오. 세게 나오시는데?”
벽태산이 그렇게 말하고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어쩔 거야?”
“우리가 손해입니다. 저쪽이 내기로 걸 수 있는 건 저놈을 가지는 것뿐인데, 제 의술이 더 뛰어나지 않습니까.”
일침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걸 본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뭐, 대충 하자고. 어차피 이기면 되는 일인데. 안 그래?”
마지막 말은 일침괴를 보며 말했다. 일침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기면 끝이지.”
“그러니까 너도 좀 더 써봐. 어차피 이기면 끝인데.”
“더 쓰고 말고, 난 걸 게 내 몸뚱아리밖에 없다.”
“가진 게 몸뿐이야? 그렇게 오랫동안 의원 생활을 했는데?”
“그럼 더 뭐가 있겠느냐? 몸뚱아리 하나면 거칠 것이 없는데.”
벽태산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진짜는 몸이 아니라 머릿속이지. 네 혼백까지 싹 걸어. 내기에서 지면 몸은 물론이고 혼백까지 내 소유가 되는 거야. 어때?”
일침괴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뭐, 내 진정한 충성, 그딴 걸 바라는 게냐?”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의 의미야. 몸뚱아리랑 혼백을 걸면 돼.”
“좋아. 걸겠다.”
벽태산이 씨익 웃으며 내기 종목을 말했다.
“나랑 정정당당하게 일대일 대결. 어때?”
일침괴가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너······ 이길 생각이 아예 없구나?”
벽태산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일침괴를 쳐다봤다.
걸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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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봅시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일침괴는 벽태산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질 내기를 대체 왜 했단 말인가.
내기의 종목이 만일 다른 것이었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무려 자신과의 일대일 대결이다.
‘게다가 진맥까지 해봤고.’
일침괴가 진맥한 벽태산의 몸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대체 왜 금벽상단주가 그렇게 열심히 명의들을 찾아다녔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추신의라는 명의가 있는데도 자신을 수소문한 이유도.
그 정도로 벽태산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아마 그것도 천추신의가 어느 정도 치료를 한 거겠지.’
어쩌면 대맥들도 많이 끊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천추신의가 간신히 이어놨을 가능성이 높았다.
솔직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서, 아까 천추신의가 한 말이 정확한 사실이라면, 천추신의의 의술이 자신보다 살짝이나마 위에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런 말도 안 되는 걸레짝 같은 몸을 가진 놈이 자신과 일대일 대결을 제안했다.
‘싸우다 죽을 생각인가?’
보아하니 자신에 대해 조사도 제법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