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5)
“굳이 왜 온다는 거지?”
“장주님께서 백방으로 알아보신 모양이에요.”
“천추신의가 있는데?”
“전에 천 무사님께 들었는데요, 장주님이 공자님 건강에 관심이 정말 많으시대요.”
소소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일침괴라는 의원 분은 침 하나로 모든 병을 다스린다고 하니 공자님 병도 한 방에 낫게 해주시지 않을까요?”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웃기는 소리. 그게 말이 돼? 침 한 방에 하긴 뭘 해?”
“아니에요! 정말 그런 소문 많다니까요? 절맥을 침 한 방에 치료한 걸로 유명해지신 분이잖아요.”
“아닐걸?”
“예?”
“일침괴가 유명한 건 치료 때문이 아니라고.”
“그럼 뭐로 유명해진 건데요?”
소소는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른 얘기에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 또 호기심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놈 침 한 방에 사람 한 명씩 죽일 수 있는 놈이야. 내가 알기로는 그걸로 단숨에 유명해졌다.”
“예에? 설마요!”
“뭐야, 그건 모르는 거야?”
“그런 얘기 들어본 적도 없다고요!”
“그놈이 침으로 문파 하나 작살을 냈는데 그걸 모른다고? 한두 명도 아니고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침 하나로 죽였는데?”
소소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의원이 대체 왜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뭐, 기분이라도 상하게 했나보지.”
“기분이 상한다고 사람을 죽일 리가 없잖아요. 더구나 의원인데.”
벽태산은 순진한 말을 하는 소소를 보며 빙긋 웃어주었다.
“그래, 그럴 때가 제일 좋은 거다.”
“어린애 다루듯 말씀하지 말아주실래요? 저도 이제 다 컸어요!”
“그래, 그래. 다 컸겠지. 요즘 혼백에 때가 조금씩 끼는 걸 보면 확실히 크긴 했다.”
“또 그 말씀 하신다.”
소소는 입술을 삐죽이며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벽태산은 그런 소소를 보며 묘한 감상에 빠졌다.
자신이 시비를 놀리며 시시덕거릴 거라고 과연 누가 생각했겠는가.
이건 자신조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재미있군.’
자신은 확실히 변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 * *
백화루주는 긴장한 표정으로 다소곳이 앉아 앞에 있는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오늘 백화루에 와서 무려 세 명의 기녀를 기절시킨 다음, 이곳으로 왔다.
기녀 한 명당 한 시진의 시간을 할애했는데, 쉬지도 않고 세 명을 연달아 기절시키고도 벽태산은 여전히 쌩쌩했다.
사실 이렇게 자신을 찾아올 줄 몰랐다.
지금까지는 기녀들과 일을 치르고 나면 반 시진쯤 방에서 머물다가 돌아갔으니까.
한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일이 끝나자마자 곧장 여기까지 온 것이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생각이 더욱 복잡해지고 난잡해졌다.
“조사는 잘 했나?”
“예? 그동안 조사한 내용은 전부 보내드렸습니다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아니, 그거 말고. 내 뒤를 캤잖아. 그거 잘 되고 있느냐고.”
백화루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저······ 그, 그것은······.”
벽태산이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백화루주는 흠칫 놀라 몸이 굳었다가 얼른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엎드려 용서를 빌면서도 문득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벽태산에게 너무 겁을 먹고 있었다.
“됐으니까 일어나라. 뭐라고 할 생각 없으니까. 난 그저 조사가 다 끝났는지 물은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긴장이 풀리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긴장했다.
보통 권력자들은 저런 식으로 말한 다음, 은밀히 손을 쓰곤 하니까.
백화루주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슬그머니 들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표정과 눈빛을 확인해야 한다.
벽태산의 표정과 눈빛은 더없이 담담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백화루주는 일단 움직였다. 그녀는 비밀스러운 공간에 보관한 서류를 꺼내 벽태산에게 공손히 바쳤다.
벽태산은 당연하다는 듯 그걸 받아 대충 훑어봤다.
“나에 대해 조사했다기보다는······ 금벽상단에 대해 조사를 했군?”
“예.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는지라······.”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감이 좋은데?”
분위기가 괜찮아지자, 백화루주도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한데 그 순간, 벽태산의 표정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그래서 나에 대해 뭐 좀 알아낸 건 있나?”
백화루주는 마치 호랑이 앞의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온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에 몸서리쳤다.
“어, 없습니다!”
있어도 없어야 했다. 사실 정말로 얻은 것이 별로 없기도 했고.
“없다고? 그건 또 그것대로 실망스러운데?”
“제가 알지 못하는 비밀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 말고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다. 혹시 일침괴에 대한 정보가 있나?”
“있습니다.”
무림의 유명인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꾸준히 조사하기 때문에 일침괴에 대한 정보는 제법 많았다.
대부분이 그의 행적에 관한 것이었지만.
벽태산이 가져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이자, 백화루주가 얼른 비밀공간으로 가서 일침괴에 대한 정보를 찾아서 가져왔다.
그걸 확인한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이거 아주 웃기는 놈이네.”
“오죽하면 별호에 괴자가 붙었겠습니까. 그만큼 종잡을 수 없는 자이기 때문이지요.”
“종잡을 수 없다기보다는······ 그냥 제멋대로인 거 아냐?”
백화루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무림에서는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일침괴의 제멋대로인 행동이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함으로 포장된 것은 그가 가진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
“내가 또 이런 놈들 다루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지.”
백화루주는 왠지 조만간 폭풍이 한 차례 몰아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고 있지 말고 이거나 받아라.”
벽태산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휙 던졌다.
나풀거리며 날아간 종이가 정확히 백화루주 앞에 내려앉았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벽태산이 무언가 조절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게 중요하지도 않고.
하지만 만일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백화루주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은 경지의 무인이라면, 예를 들어 무림맹주쯤 되는 무인이라면 방금 벽태산이 보여준 한 수에 담긴 오묘함을 꿰뚫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물에 자연스러움을 담아내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니까.
백화루주는 바닥에 내려앉은 종이에 담긴 내용에 집중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게 바로 암영보였으니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보면 알지?”
백화루주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품에 넣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걸 분석해서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오랫동안 하오문에서 정보를 만지고 다루면서 얻은 감이 이건 진짜라는 확신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앞으로 잘 해. 그걸 이용해서 네가 하오문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벽태산이 툭 던진 말에 백화루주의 심장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뛰었다.
‘내가 하오문주······!’
벽태산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백화루주는 벽태산이 자리를 뜬 것도 모른 채 멍하니 상념에, 아니, 욕망에 잠겨 있었다.
* * *
천추신의는 동호표국의 국주와 마주앉아 있었다.
오늘 그가 여기 온 것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천마신교에서 비밀리에 깔아놓은 조직이나 세력이 이렇게 서로 관여하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서 천마신교를 위해 일하다보면 비밀이 노출되기 쉬우니까.
딱 필요할 때만 잠깐 쓰는 것이 비밀유지에는 가장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었다.
적어도 천추신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오. 애초에 우리가 같은 소속이라는 것도 서로 모르지 않았소.”
동호표국의 국주가 차갑게 말했다.
예전 벽태산에게 보여주던 태도와는 너무나 달랐다.
“아예 어긋나는 건 아니지요. 지금은 아주 특수한 상황 아닙니까.”
천추신의의 능글능글한 태도에 동호표국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현천진은 시간이 지나면 풀리게 되어 있소. 새 지존이 나타나실 테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제법 오래 걸릴 거라더군요.”
“오래 걸린다고? 누가 그랬소?”
“누군 누구겠습니까? 우리 공자님이지. 최소 십 년을 보고 계시더군요.”
“십 년······!”
“그것도 최소로 잡은 거니까 그보다 몇 년 더 쓰셔야 할 겁니다.”
동호표국주가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그 분께서는 대체 그걸 어찌 아시는 거요? 내가 좀 알아보니 금벽상단의 둘째 공자인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우리 천마신교와 접점을 찾을 수가 없었소.”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계시는 걸로 봐서······ 추측이 되는 신분이 하나 있긴 합니다.”
동호표국주가 눈을 빛냈다.
“그게 뭐요?”
천추신의라면 벽태산과 오랫동안 붙어 있었으니 진짜 정체를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정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자 아닌가.
“현천진이 발동했다는 건 지존께서 돌아가셨다는 의미라는 거 아시지요?”
“물론이오. 아마······ 그 과정에서 교의 상층부에 손실이 생겼을 거라는 것도 짐작은 하고 있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건 피해가 크다는 뜻일 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공자님이 중요하지요.”
동호표국주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천추신의는 그 시선을 즐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돌아가신 지존께서 숨겨두신 아들 같습니다.”
동호표국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 그게, 그게 정말이오!”
천추신의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쉿! 쉿! 조용히 하십시오. 누가 듣겠습니다.”
동호표국주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해 흔들리는 눈동자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최근 우리 공자님 주위로 날파리들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좀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뭘 도우면 되겠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말씀만 하시오.”
“일단 유사시 무력이 필요할 때 무사들을 동원해 주십시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소! 우리 공자님의 일인데 무력이야 당연히 아끼지 않을 거요!”
어느새 동호표국주도 벽태산을 우리 공자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다른 비밀조직을 찾아내는 겁니다.”
“확실히······ 그건 중요한 일이오.”
미래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벽태산의 지지기반을 확실히 만들어 놔야 나중에 여차하는 순간 확 치고 올라갈 수가 있다.
“참고로 우리가 하는 일은 나중에 아무런 보상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시지요?”
“물론이오.”
이건 혹시나 해서 벌이는 일이다. 일종의 도박이었다.
하지만 안전한 도박이다. 안 되더라도 잃을 것이 없으니까. 조심만 한다면 말이다.
“그러니 차근차근 준비를 좀 해주십시오.”
“나한테 다 맡겨두시오. 종리세가 쪽 일도 대충 마무리 되었으니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오.”
천추신의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동호표국주가 마주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나야말로 잘 부탁드리오.”
두 사람의 눈동자 속에서 욕망이 살짝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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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들었다
“이쪽입니다.”
금벽장의 총관 가무진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오늘 도착한 귀한 손님인 일침괴를 안내했다.
생각해보니 예전 천추신의도 이렇게 안내했었다.
그리고 그때와 아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일침괴의 시선이 벽태산의 전각 근처에 서 있던 단영에게 꽂힌 것이다.
“저 아이는 누구요?”
일침괴의 물음에 가무진은 여상하게 대답했다.
“우리 공자님의 시비입니다.”
“시비란 말이오? 저 아이가?”
가무진은 일침괴의 눈에 맴도는 빛을 보고는 얼른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데도 안 갈 겁니다. 설사 어르신의 제자가 되라고 해도 말이지요.”
일침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제자 자리를 거절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방금 가무진이 한 말의 행간을 읽은 일침괴의 표정이 굳었다.
“하긴, 천추신의가 먼저 왔었지······.”
“예. 그분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참고로 우리 공자님의 시비는 저 아이 하나가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겁니다.”
전각 안으로 발을 들이는 가무진은 왠지 우쭐해졌다.
자신이 언제 일침괴 같은 대단한 사람을 이렇게 대해보겠는가.
아마 일침괴는 이 전각 안에 들어가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예전 천추신의가 그랬듯이.
아니나 다를까, 전각 안으로 들어선 일침괴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전각 곳곳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시비들을 둘러봤다.
“시비가······ 좀 많은 것 같소이다.”
모두 일곱 명이나 되는 시비가 있었다. 밖에 있던 단영까지 하면 총 여덟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