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64)
지금은 오히려 물러나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연하린은 아슬아슬하게 도기를 흘려냈다.
그 와중에 체력과 내공이 급격히 소모되었다.
연하린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거기!”
거한은 마치 귀에다 대고 말하는 듯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머릿속에 직접 말을 때려 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건 내공을 이용해 소리를 멀리 전달하는 그런 종류의 수법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수법이었다.
거한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의 눈에 당황한 연하린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그 소리를 연하린도 들었음이 분명했다.
거한이 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강변에 누군가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벽태산이었다.
그를 발견한 연하린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 되는 상황이다. 전투에 눈물은 방해가 되니까.
“그래. 돼지, 너.”
거한이 어이없는 눈으로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크게 떴다.
“거기 돼지가 너밖에 더 있어? 뭘 계속 물어? 귀찮게.”
거한이 코웃음을 쳤다.
“하! 너 이 새끼, 내가 누군 줄은 알고 그따위로 말하는 거냐?”
“그걸 알아야 하나? 그러는 넌,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모른다, 이 새끼야.”
벽태산이 차갑게 웃었다.
“그럼 죽어야지. 날 모르는 죄로 그 정도면 남는 장사 아니겠느냐?”
거한이 당당하게 서서 벽태산을 노려봤다.
“그래? 날 죽이겠다고? 그럼 와서 한 번 해봐라.”
거한의 시선이 이번엔 연하린에게로 돌아갔다.
“네놈이 여기에 오기 전에 내가 저걸 어떻게 다루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거한이 연하린을 향해 도를 겨눴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도신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기서 당하면 죽고 싶어질 테니, 미리 죽어라.”
거대한 기운을 머금은 거한의 도가 연하린을 향해 뚝 떨어졌다.
연하린은 다급히 그것을 막으려했다. 하지만 아무리 각을 재도 저걸 막거나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벽태산까지 여기에 왔는데 말이다.
연하린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검과 도가 막 충돌하려는 순간 그 사이를 무언가가 파고들었다.
땅!
맑은 소리가 울리더니 거한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의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났다.
거대한 도가 거한의 손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제대로 도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거한은 다급히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돌멩이?”
조약돌 하나가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잠력 함부로 쓰지 마라. 의원들 안 데려와서 살릴 수도 없으니까. 너무 쉽게 죽으면 안 되잖아?”
거한은 강가에서 느긋하게 말하는 벽태산을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설마 저기에서 돌멩이를 던져 자신에게 그 정도 충격을 줬단 말인가?
“그게 말이 돼?”
거한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방금 잠력을 폭발시키듯 썼는데, 돌멩이가 방해하는 바람에 힘이 역류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몸은 무사했다.
기맥이 꼬이는 바람에 잠력이 외부로 흩어지지 않고 내부에 고여 버렸으니까.
물론 더 이상 싸울 수는 없는 상태가 되었다.
거한이 쓰러지자, 연하린은 나머지 호무련 무사들을 도와 반강시와 싸웠다.
그러면서도 수시로 벽태산을 확인했다.
어느새 벽태산 뒤로 천경완과 유서연이 도착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하린은 왠지 안심이 되었다. 아직 안심할 상황은 절대 아닌데 말이다.
* * *
벽태산은 강가에 서서 거리를 가늠하는 중이었다.
과연 한 번에 뛰어서 배에 올라탈 수 있을지 확인하는데, 거리가 약간 애매했다.
수적들이 혹시라도 뛰어서 도망치는 자들이 있을까봐 되도록 뭍에서 먼 곳에서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하, 진짜 예전 같으면 반걸음도 안 되는 건데, 진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원.”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뭔가 발을 디딜만한 것이 없는지 찾았다.
중간에 나무판자 몇 개만 놓으면 충분히 배에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금옥루주가 도착했다.
그녀는 한아름이나 되는 나무판자를 들고 왔다.
“기특하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판자를 받아 강 위로 휙휙 던졌다.
대충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 같은데 정확한 간격으로 배까지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징검다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물이 흐르고 있기에 나무판자도 떠내려가고 있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라.”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뛰었다.
정확히 첫 번째 판자를 밟고서 또 한 차례 몸을 띄웠다.
놀랍게도 판자는 물 위에서 약간 흔들리기만 했을 뿐,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강물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판자를 몇 번 디디고 쭉쭉 나아가더니 이내 가장 가까운 배 위에 훌쩍 올라탔다.
그 순간, 배 위에 있던 반강시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흐음. 이것 역시 내 것이지.”
배가 순도 높은 영력으로 꽉 찼다. 그 중 벽태산에게 맞는 영력이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것도 한 번 해봤다고 전에 했을 때보다 영력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반강시들이 모두 쓰러지자, 배 위에는 강시가 아닌 멀쩡한 사람들, 즉 수적들만 남았다.
벽태산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수적들이 우르르 달려와 벽태산 앞에 무릎을 꿇었다.
벽태산은 손가락을 들어 강변에 있는 천경완과 유서연을 가리켰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수적들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벽태산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한데 그 순간 놀랍게도 수적들의 혈도 몇 군데가 꽉 막혔다.
“금제다. 도망치면, 펑. 알지?”
수적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벽태산은 가까이 있던 배로 또 훌쩍 뛰어서 넘어갔다.
그 뒤로 수적들이 모는 배가 강변으로 줄지어 이동했다.
그리고 수적들은 얌전히 천경완과 유서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금옥루주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나름대로 살기 위한 그들만의 발버둥이었다.
* * *
벽태산이 가장 나중에 오른 배가 연하린이 탄 배였다.
정 반대쪽에 있었으니 당연했다.
벽태산이 배에 올랐을 때는 이미 호무련 무사들과 연하린이 반강시들을 정리한 뒤였다.
벽태산이 나머지 배의 반강시를 모조리 정리해 버리는 바람에 이쪽으로 반강시가 충원되지 않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벽태산은 좀 아까운 표정으로 배 위를 둘러봤다.
지금까지 먹은 영약이 훨씬 많았지만, 다다익선 아니겠는가. 아까운 건 아까운 것이다.
“공자님······.”
연하린이 눈물이 살짝 고인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벽태산은 손을 뻗어 단호히 말했다.
“울 거면 딴 데 가서 울어라. 딱 질색이니까.”
갑자기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연하린이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으면서도 방금 한 행동이나 말이 굉장히 벽태산과 어울렸다.
“우는 거 아니거든요?”
그러는 사이 벽태산이 바닥에 주저앉은 거한에게 다가갔다.
연하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쯧, 다 죽어가는구나. 내가 죽일 필요도 없겠는데?”
“조롱할 거면 그냥 죽여라.”
벽태산은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대편 강가를 쳐다봤다.
여전히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즉, 아직 많은 반강시가 저기에 있다는 뜻이다.
“영약이 남았네.”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 배에 남은 수적들을 찾아봤다.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이미 연하린이 초기에 다 처리했으니까.
벽태산은 자연스럽게 남은 사람들, 호무련 무사들에게 명령했다.
“이제부터 강가로 이동한다. 알아서 강가로 배를 몰도록.”
벽태산의 말에 호무련 무사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그들 중 몇이 배를 몰아본 경험이 있었기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배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들을 태운 배가 빠르게 강가로 이동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줄어들자, 벽태산이 훌쩍 몸을 날렸다.
생각보다 거리가 좀 됐기에 연하린이나 호무련 무사들은 아직 배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배에서 뛰어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벽태산이 지나갈 때마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던 반강시들이 힘없이 픽픽 쓰러지는 광경을.
반강시는 그렇게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달려들었고, 그러는 족족 바닥에 쓰러졌다.
벽태산은 쓰러진 반강시들 한가운데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런 벽태산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반강시와 함께 한 수적들의 후기지수 습격 사건이 끝났다.
* * *
벽태산이 반강시들이 쏟아낸 영력을 흡수하는 동안 호무련 무사들을 비롯한 후기지수들과 그들이 속한 가문의 사람들이 주변을 정리했다.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시체를 넣은 다음 태웠고, 사로잡은 사람들을 한데 모았다.
배는 대부분 멀쩡했기에 배를 통해 반대쪽 강가에 있는 수적들을 전부 이쪽으로 옮겼다.
일단 한 번 정리를 한 다음, 다들 배에 태워서 호무련으로 압송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창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호무련 무사들을 잔뜩 이끌고 나타났다.
백화루주가 호무련 쪽에 소식을 전했고, 호무련이 부랴부랴 무사들을 모아 보낸 것이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벽태산이 이쪽으로 갔다는 말에 놀라서 달려온 것이고.
두 사람은 상황이 이미 끝난 걸 보고 안도했다. 그리고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딱 그때에 맞춰 벽태산이 눈을 떴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천추신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질문에 벽태산이 수적들을 이끌던 거한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놈이나 살려라.”
그러자 천추신의가 바로 대답했다.
“저놈은 이미 살아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거한에게 달려들었다.
잠력을 폭발시키다 힘이 역류해 기맥이 꼬인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일침괴의 침 한 방에 꼬였던 기맥이 풀렸다.
그리고 들끓는 잠력을 이번엔 천추신의가 침으로 해결했고.
천추신의는 의기양양한 눈으로 일침괴와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어떻소? 이 정도면 형님보다 내가 침술도 더 나은 거 아니오?”
“지랄은 거기까지만 해라.”
“또 저렴하게 말한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오? 말에서 인격이 만들어지는 법이라니까? 그러다 정말 말년에 손가락질만 받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요?”
일침괴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살렸습니다.”
“잘했다.”
벽태산의 칭찬에 일침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보다가 얼른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침괴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걸렸다.
그걸 본 천추신의가 얼른 달려와 먹이를 갈구하는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결국 한 마디를 던져주었다.
“너도 잘했다.”
“우흐흐흐흐흐.”
천추신의의 괴상한 웃음소리에 벽태산이 멀찍이 떨어졌다.
벽태산은 주위를 둘러보며 연하린부터 찾아봤다.
어쨌든 여기에 온 이유는 첫 번째가 영약이지만, 연하린 역시 제법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까 느꼈던 그 묘한 익숙함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 한다.
연하린은 제법 떨어진 곳에서 아까 계획을 함께 세웠던 노인과 대화 중이었다.
벽태산은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끝
연하린에게 가려던 벽태산은 연하린과 노인이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굳이 저기에 끼어들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딱히 볼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벽태산의 시선이 좀 떨어진 곳에서 금옥루주가 심문하고 있는 근육질 거한에게로 향했다.
역시 이럴 때는 누구 하나 잡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최고다.
벽태산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거한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그쪽으로 이동하면서 아까 처음 연하린과 저 거한의 싸움을 봤을 때 느꼈던 왠지 모를 익숙함에 대해 떠올려봤다.
‘왜 익숙했을까?’
천마였던 시절의 기억을 원하기만 하면 마치 다시 겪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데도 그 익숙함의 정체가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익숙하긴 익숙한데,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거한이 원래 알던 사람인가 싶었다. 한데 그건 아니었다.
저 거한이 비록 제법인 건 맞지만, 천마와 알고 지내기에는 격이 너무 떨어졌다.
‘그럼 저놈이 들고 있던 무기?’
거한은 몸집에 걸맞은 거대한 도를 썼다. 벽태산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아니다. 저런 저급한 도를 천마이던 시절 접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천마가 되기 전이라면 모를까.
‘가만, 천마가 되기 전?’
벽태산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저었다.
그것도 아니었다. 천마가 되기 전의 기억에도 저런 거대하면서도 질 낮은 도는 기억에 없었다.
설사 접한 적이 있다고 해도 익숙할 정도로 인상에 남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사이 거한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