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77
“허…… 그게 참이더냐?”
“예, 틀림없습니다.”
소림의 기둥이라 불리는 선진.
그가 탄식을 내뱉으며 질끈 눈을 감았다. 수개월 전, 호남단가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하였고, 그곳에 있던 이들은 종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모든 상황이 뒤늦게 알려진 이유는 바로 호남단가가 워낙 외진 곳에 있다는 점과 홍원창을 비롯해 그들과 가까이 있던 이들 중 누구 하나 입을 연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원은 어찌 되었더냐?”
선진의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당사휘가 물었다. 후루륵 차를 마시며 제법 담담하게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그 역시 잔잔한 떨림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호남단가의 힘을 곁에서 보아 왔던 당사휘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 않으니, 호남단가를 무너트린 이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는 무림 최대 위기였던 혈천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무너졌습니다. 고치려 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지금까지 누구 한 명 되돌아온 이가 없습니다.”
“하…….”
당사휘가 한숨을 토했다.
그렇다면 모든 이들이 죽었든지 혹은 모든 이들이 도주를 했다는 말이 된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간에 어느 쪽이든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었다.
“아미타불…… 어찌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인지…….”
“최근 무림을 들쑤시고 있는 자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슬쩍 운을 뗀 것은 보고를 하고 있었던 당문혜였다.
수개월 전, 그러니까 호남단가가 습격을 당한 직후부터 중원 무림 전체에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무리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또한 호남단가를 경외하는 이들을 베어 내고 그들과 연관 있어 보이는 자들 역시 잡아 죽였다.
그 시체를 확인해 보면 고문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기에 현재 단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하오문은 물론이고, 홍원창마저 그 종적을 감추었다. 많은 이들이 찾아 나서 보았지만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어찌 되려고 이러는 것인지…….”
선진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무호가 어찌 지내는지 혹은 무사한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사태가 사태이고 그 하나 무사하다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곳에는 바로 검황과 마황이 있었지 않은가?
그렇기에 선진의 미간에 주름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찾아봐라. 은밀히 말이다.”
당사휘가 당문혜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은밀히’라는 것은 결코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말라는 것. 호남단가의 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한 벌집을 건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당문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는 것 역시 안다.
이는 현재 이 무림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디로 갔을까? 아니, 애초에 그 사람이 도망을 치기나 할까?’
당문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녀가 본 단우현은 죽으면 죽었지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죽는다는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 * *
“이렇게까지 보이지 않으면 한 곳이야. 거기밖에 없다고.”
천무광이 소리를 치며 인상을 썼다.
단우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한다. 호남단가가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단우현의 몸에 어떠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말함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소미를 버리고 몸을 숨길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끄럽다, 네놈은! 쫑알쫑알 말 참 많네. 그렇게 확신하면 천무제 그놈 멱살 잡고 좀 물어봐라.”
“뭐야? 이 쪼그만 새끼가?!”
천무광이 유백을 쏘아보며 인상을 썼다.
그가 팔선을 배신하지 않았을 때에도 유백과는 성격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는 때가 많았다. 또한 천무광은 한 번 배신을 한 인물이다 보니 유백의 말투가 곱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격렬한 말싸움이 벌어졌다.
남주련이 지끈거리는 미간을 부여잡았다.
“좀…… 조용히 좀 하죠?”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가볍게 기세를 풀어 말을 내뱉으니 천무광은 물론이고 유백마저 입을 다물어야 했다.
단우현의 행적이 사라진 직후부터 그녀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건드리면 언제든 폭발할 것 같았다.
“차라리 그놈들 옆에서 기다리는 편이 좋지 않겠어?”
“아니요. 저희가 그곳에 남아 있다면 오히려 역으로 노림수가 될지도 모르죠.”
호남단가의 사람들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 역시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리 없는 일이니, 자신의 목숨 정도는 본인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모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중원 무림의 현실이다.
또한, 오로지 지켜 준다는 것은 미호 역시 반대했을 것이다. 거친 곳에 내던져져야 무언가 하나를 더 익히고 깨닫게 된다.
천무광은 물론이고 남주련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그것이 무신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죠?”
“물론이다.”
천무광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한때나마 삼천이라 불리는 이들이 허물을 벗었던 곳. 그곳 벽에 새겨진 흔적들은 어찌 보면 난잡하고 의미 없어 보이기는 해도 무신에게 닿기 위한 세 사람의 깨달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태공진, 아니, 천무제가 다소 방해를 해 놓긴 했지만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놈들 머리로 가능하려나 모르겠군.”
천무광이 부정적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가 보기에 사도학은 깨닫기는커녕 벽에 상처나 더 내고 아예 의미 없게 만들어 놓는 것은 아닌가 했다. 사도학은 어느 의미에서 그와 성격이 많이 닮은 탓이다.
“어쨌든 그놈들은 되었고…… 이제 정말로 남은 곳은 주산군도다. 애초에 그곳 문파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하니 틀림없다니까.”
“알아요! 알고 있다고요!”
남주련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주산군도는 천무제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곳. 그렇기에 단우현이 찾아갔다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여 가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또다시 눈으로 본다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적으로 남주련의 생각이었고 천무광 역시 툴툴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곧이곧대로 그녀를 따르며 다른 곳들을 뒤지는 것은 그 역시 떠오르는 것들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었을 거다.
유백은 그러한 마음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애초에 그리 가려고 서서히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던 거 아니냐? 또 천천히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이렇게 하나둘 찾아오니 얼마나 좋아?”
유백이 우뚝 멈춰 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천무광과 남주련 역시 발검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무수히 많은 기척이 세 사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같은 기운.
틀림없이 무신도경을 익힌 천무제의 수하들이다.
“본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수하들만 보내다니…… 얼마나 우리를 얕보고 있는 건지…….”
남주련이 짜증스레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몇 번째 습격을 받고 있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정작 천무제 밑에 있는 선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수하들만 찾아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수를 줄여야 할 판국에 말이다.
“살(殺)!”
이윽고 속속 모습을 드러낸 이들이 세 사람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러한 말을 입에 담는 것을 보며 천무광이 어이없이 웃었다.
“지랄들을 해요, 지랄들을…….”
“우리를 굉장히 얕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남주련은 생각했다.
천무제는 남주련을 얕보지 않는다. 또한, 정말로 단우현이 주산군도에 있다면, 합류하는 것을 원치 않아 어떻게 해서든 막아서려 할 것이다.
본인이나 류태서가 직접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
그런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있을 터.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든가, 아니면 우리가 간다고 하여도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하나하나 정황들이 맞아떨어지자 그녀는 인상을 썼다.
이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앙칼지게 깨물고는 달려오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 * *
“푸에취!”
장삼태는 덜덜 몸을 떨며 옷을 껴입었다.
모닥불 앞에 있으면서도 코를 훌쩍이고 새하얀 입김을 내뱉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곳은 더욱 한기가 몰아치고 있었다. 집도 절도 없는 상황에서 홀로 남아 버린 그는 당장 얼어 죽는다 하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미쳤지, 미쳤어.”
장삼태는 콩콩 머리를 쥐어박았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곳은 그들을 태우고 들어온 장량이 없으면 결코 나갈 수조차 없는 곳이다.
‘그놈…… 분명히 그놈이야.’
장삼태는 인상을 찌푸리며 장량의 얼굴을 떠올렸다. 느닷없이 사라진 늙은이. 단우현조차 깜빡 속을 만한 엄청난 고수가 틀림없을 거다.
그를 저리 만들어 놓은 것 역시 장량일 가능성이 컸다.
장삼태는 주먹을 으스러지도록 말아 쥐었다.
힘만 있다면 당장 놈을 찾아 얼굴을 뭉개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복수보다 당장 급한 것이 있었다.
“찾았다!”
“이런 망할!”
그래, 더욱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분명 이곳에 있던 말도 안 되는 고수들은 단우현이 모조리 죽이기는 하였지만, 장량의 꼬임에 넘어가 살려 둔 이들이었다.
“그만 좀 쫓아오라고!”
“잡아!”
무신도경을 익힌 자들.
천무제의 수하들이라는 자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며, 장삼태가 잠시 단우현을 걱정하는 사이, 하나둘 깨어나며 어느새 위협이 되어 버렸다.
수준 차이가 상당하니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도망을 치며 하루하루 생존을 하는 것이 장삼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런 미친!’
장삼태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단우현이 장원에 남아 있으라고 할 때 곱게 남아 있을걸, 하는 후회를 해 보았지만, 후회란 언제나 뒤늦은 법이다.
한참 동안 도망을 치며 또다시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것만이 살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수 개월간 계속되면 화가 나지 않겠는가?
응당 사람이라면 그럴 법했다.
힐끗 뒤를 돌아본 장삼태가 쫓아오는 이들을 쏘아봤다.
그 수는 몇 되지 않는다.
고작해야 셋.
‘해봐?’
부글부글 속을 끓이던 장삼태가 드디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경공을 멈추며 뒤로 돌아섰다.
언제까지 저놈들에게 쫓기며 살 것인가?
결국 저놈들이 전부 죽거나 장삼태가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놈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으로 싸움에 임해야 하는 법이다.
그것이 단우현이 내린 가르침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저들은…….
‘따뜻해 보여.’
입고 있는 옷마저 따뜻해 보였다.
저것을 빼앗아 입는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삼태가 그런 마음을 먹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옷 내놔, 이 새끼들아!”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