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20
제 120 화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이먼의 몸이 붕 떠올랐다.
입술을 짓씹으며 성물을 소환하자 등 뒤로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 얼마 안 있어 성물의 따스한 몸에 푹 하고 안기게 되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고맙다 말한 뒤 앞을 노려봤다. 더럽고 또 더러운 인상으로 음흉하게 웃고 있는 미친 곰 한 마리. 정말이지 유난히도 감질나게 때리는 녀석이었다.
지금 레이먼은 하민의 두 마리 곰 중 하나인 새디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 큰 몸으로 어찌나 무식하게 공격하는지. 가장 기분 나쁜 건 자꾸 변태같이 웃으면서 때린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한 번 맞을 때마다 몸이 하늘로 붕붕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한이 눈치껏 앉아 있어 배가 아직 무사하단 거랄까? 아니지…… 저건 그냥 움직이기 싫은 건가.
레이먼은 성물에게 계속 안겨 있는 채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어어어, 머리 아파. 대체 왜 이런 미친 곰들이 여기 있는 거야?!”
레이먼의 비명에 마조에게 벼락을 내리꽂던 루아가 외쳤다.
“하민이가 소환했다니까!”
“아니, 그니까! 쟤들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난들 아냐, 멍청아!!”
“와-! 오빠한테 말하는 것 좀 봐!”
“시끄러워! 그보다 좀 어떻게 해봐! 너 성물하고 친하잖아!”
“그게 이거랑 또 뭔 상관인데?”
“같은 소환 계통이잖아! 으힉?!”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루아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레이먼은 정말이지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다. 6형과 7형이 같은 소환 계통이라 해도 애초에 계약이며 교감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그런데 뭘 어쩌란 말인가.
거기다 뒤따라 올 선배들도 걱정이 돼 집중이 안 되었다. 이제 곧 있으면 그들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제길. 멋들어지게 뒤통수를 쳐 놓고 이게 대체 뭔 일이란 말인가.
레이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대로 성물의 등에 올라타 늄을 채웠다.
하민이 이렇게 나온 이상 이쪽도 큰 놈을 하나 소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형성되는 거대한 늄의 진. 그 속에서 서늘한 바람과 함께 거대한 새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레이먼이 가장 아끼는 셋째, 모르땅이었다.
레이먼의 눈과 같은 쪽빛 깃을 단 성물. 그는 나오자마자 7형을 공격하던 새디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새디는 그를 잡기 위해 육중한 손을 휙휙 흔들었다. 그러나 성물인 모르땅이 괴물인 새디에게 잡힐 리 만무했다. 애초에 성물은 같은 성물이나 교감자가 아니면 만질 수 없는 특징을 가졌으니 말이다.
[이거 뭐야! 이거 때리고 싶은데!!]새디의 시선이 모르땅에게 쏠린 사이 레이먼이 성물의 등에서 뛰어내려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요한의 어깨를 잡으며 다급히 말했다.
“요한, 이 틈에 출발하자.”
“모르땅은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까 이 틈에…….”
“저기 있다!!”
레이먼의 말을 가르고 들려오는 낮고도 걸걸한 목소리.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헐, 설마……!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두 척의 배. 레이먼은 단박에 2형과 4형의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홍색과 하늘색의 가로 선을 봤을뿐더러 배 위에 서 있는 두 선배가 ‘넌 죽었다’를 내포한 살기를 내뿜었기 때문이었다.
살벌한 두 선배의 모습에 레이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레이먼, 이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빠드득 이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만큼 분노를 고스란히 표출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앞을 막고 있는 미친 곰 헤프슨보다 더 무서울 지경이었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레이먼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요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도망치자! 출발해! 요한, 빨리!!”
“아…… 무리야.”
“왜 또?!”
“저 곰이 모르땅의 주인이 너란 걸 알았거든.”
“어?”
요한의 말에 레이먼이 뭔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그 순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새디와 두 눈이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새디는 지능을 가진 괴물이었다. 당연히 성물이 술사의 정신과 교감한다는 것도, 정신이 흩트려지는 순간 교감이 풀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쉽게 말해 레이먼만 공격하면 된다는 것이다.
잠시 후, 새디가 입꼬리를 길게 끌어올리며 7형의 배에 묵직한 주먹을 내리꽂았다.
쾅-!
마치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었다. 분수처럼 물이 치솟았고, 거센 물결에 배가 크게 출렁였다.
“으악!”
흡사 거센 해일에 떨어진 한 척의 배 같았다. 뱃머리가 거의 90도 가까이 들렸고 엉덩이가 자리에서 떨어졌다. 레이먼은 이를 악물며 배에 꽉 매달렸다.
그 모습에 옆에서 마조를 상대하던 루아가 혀를 찼다.
“저 호구가!”
루아는 본능적으로 7형의 배 뒤쪽으로 작은 전기 폭발을 일으켰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엔 뒤쪽의 물이 튀어 오르고 배가 오뚝이처럼 다시 반대쪽으로 휘청거렸다.
“으악!!”
비가 내리듯 강물이 쏟아져 내렸다. 레이먼은 이번엔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흔들림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잠시 후, 크게 요동쳤던 물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물에 젖은 부분이 따끔거렸다. 레이먼은 퍼렇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한 또한 보기 드물게 굳은 얼굴로 루아가 터트린 강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지직.
강을 타고 울리는 강렬한 스파크, 그리고 강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타다 만 물고기를 봤을 땐 저도 모르게 루아를 향해 쌍욕을 내뱉고 말았다.
“이런, 미친…….”
루아가 그런 레이먼과 요한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레이! 요한! 나 잘했지!”
물론, 그 소리를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레이먼이 자리에서 일어나 루아를 향해 소리쳤다.
“닥쳐!! 너 지금 나 죽이려 했지?!!”
물속에서 전기를 터트리다니! 뭐 저런 무식한 년이 다 있어? 대체 부모가 누구야? 아, 우리 엄마 아빠구나. 제기랄!
“살려줬는데 왜 성질이야?!”
“살려주긴 개뿔!! 루아, 너 나중에 보자!!”
“그리고 넌 지금 우리 좀 보자.”
“에?”
등 뒤에서 들리는 살벌한 목소리에 레이먼의 고개가 마치 태엽 인형마냥 뻣뻣하게 돌아갔다. 언제 다가왔는지 양쪽에 바짝 붙어 있는 2형과 4형의 배, 그리고 그 위에 선 재우와 코니룸이 레이먼을 사이에 둔 채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 감히 네가 우릴 가지고 놀아?”
“건방진 후배님이네. 우리 도박장 다시 한 번 갈까?”
살벌하기 그지없는 미소에 레이먼이 최대한 태연을 가장한 채 웃었다.
“제가 선배님들을 가지고 놀다니…… 오해십니다.”
물론, 이 말에 넘어갈 만큼 우리의 두 선배는 단순하지 않았다.
“오해? 우리가 8형을 뒤집고 엎어진 사이에 사라진 후배님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이리 존경스런 선배님들의 뒤통수를 치겠습니까. 제가 먼저 간 것은 저 극악무도한 1형을 잡기 위해서라고요!”
레이먼은 정말로 억울하다는 듯 결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향해 설명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사람은 이 말도 전혀 믿지 않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구라를 까고 있어.
재우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속으로 생각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새디의 묵직한 주먹이 그 주위를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배가 크게 흔들리고 물이 비처럼 흩뿌려졌다. 재우와 코니룸이 입안에 들어간 물을 뱉으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거대한 몸뚱이와 날렵한 눈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흉포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생물이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클래스의 톱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 그 생물을 모를 리 없었다. 심지어 재우는 그들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헤프슨?”
“뭐야, 마조랑 새디가 왜 여기 있어?”
레이먼에게 모든 집중이 쏠려 있어 다른 존재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두 사람이 이내 헤프슨의 존재를 깨닫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저게 올해의 방해꾼은 아니겠지?”
“하하하. 미치겠네.”
두 사람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내 인상을 팍 구기며 짜증을 냈다.
형별 토너먼트 중간에 방해꾼이 있다는 건 지난날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설마 헤프슨 같은 상급 괴물이 나올 줄은 몰랐다.
재우는 이 막돼먹은 괴물을 소환한 인물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시야에 강의 중간에 튀어나와 있는 큼지막한 돌이 들어왔다, 정확하겐 돌 위에서 부드럽게 웃고 있는 한 인영이.
재우가 낮게 욕설을 지껄이며 이마를 짚었다. 햇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제길. 역시 하민이잖아.”
그리고 하민이에게 이 일을 시킨 건 100% 제 형일 것이다.
“이 망할 애늙은이가.”
재우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대체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감이 안 섰다. 그때,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새디가 그 묵직한 손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재우와 코니룸, 그리고 요한이 각자의 후배를 밀친 뒤 키를 확 잡아당겨 배를 뒤로 이동시켰다.
“왁!!”
“켁!!”
“으힉!!”
뒤로 넘어간 세 사람이 배에 머릴 부딪치며 짧은 비명을 터트렸다.
쾅! 하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강물이 크게 튀어 올랐다.
코니룸은 카드 두 장을 꺼내 배의 키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한 뒤 검을 뽑아들었다.
“후배님, 괜찮냐?”
“네, 넵.”
테오는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코니룸은 그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곤 배를 움직여 4형의 배 쪽으로 붙였다.
“석재우, 설마 쟤가 하진 교수님 동생이냐? 애는 착한데, 능력은 안 착하다던 애 말이야.”
코니룸의 질문에 재우가 미간을 팍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걔 맞아.”
“어찌 된 일인지 알겠군.”
“야. 방심하지 마라. 저거 겁나 골치 아……!”
재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디가 다시 손을 움직여 뭉쳐 있는 배들을 공격했다.
큼직한 손이 바람을 가르는 살벌한 소릴 내며 배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잽싸게 몸을 낮추지 않았다면 저 손바닥에 맞아 강 밖으로 퉁겨져 나갔을 것이었다.
코니룸은 검을 고쳐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장난이 아니라는 건 날렵한 움직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젠장! 이걸 대체 어떻게 잡아야 해?”
“그니까 방법을 강구해 보라, 이거야.”
두 사람이 이 자릴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했다.
땅이라면 어떻게 반격이라도 해볼 텐데 애석하게도 그들의 두 다리가 있는 곳은 흔들거리는 물 위였다. 공격하기도, 피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코니룸과 재우, 그리고 요한은 매끄러운 솜씨로 배를 움직이며 공격을 피했다. 뒤에 앉아 있는 은하와 재우, 레이먼의 입장에선 죽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은하가 혹까지 난 뒤통수를 움켜쥐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배, 저게 대체 뭐죠? 하민이 뭘 소환한 거예요?”
“헤프슨. 무식하게 센 괴물이지. 하민이 소환한 헤프슨이면 마조랑 새디가 분명할 거야.”
“마조, 새디? 무슨 이름이 그렇게 변태적이야?”
‘변태 맞아.’
코니룸의 말에 속으로 한마디를 보탠 재우는 ‘흠흠’ 목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