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90
제 190 화
“열쇠 획득~”
유림은 손에 들린 아담한 열쇠를 보며 싱긋 웃었다.
운이 좋았다. 설마 거기서 작은 생명이 은하의 모습을 할 줄이야.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때리지 못했을 것이다.
고맙다, 은하야. 덕분에 열쇠를 얻을 수 있었어. 시험 끝나면, 네가 좋아하는 고기 잔뜩 사줄게.
유림은 그리 생각하며 제 뒤에 쓰러진 작은 생명을 바라봤다.
정말 그 이름대로 작고 아담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 한 손에 들어올 정도였고, 외모는 병아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털색은 하얗고, 또 눈도 하나밖에 없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예상했듯 작은 생명은 꽤나 약했다. 얼마 때리지 않았음에도 본 모습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의 배 위엔 녀석의 키만 한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금으로 만들었는지 제법 묵직했고, 반짝거렸다.
……슬쩍 챙길까? 나가서 팔면 꽤 짭짤하게 벌 수 있을 텐데.
오래간만에 세상에 찌든 생각을 하며 유림이 열쇠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서 그런지 마음속의 조급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유림은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때 짜 맞추기라도 한 듯, 키르가 진동을 울리며 통신을 알렸다.
“네~”
기분이 좋아 저도 모르게 콧소리가 가득 섞인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약간의 침묵 후, 테오의 정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쳤냐? 목소리가 왜 그래?」
“너야말로 왜 첫마디부터 시빈데?”
「내가 콧소리 잔뜩 섞어가면서 말하면 어떨 거 같아?」
아주 잠깐 그 장면을 상상한 유림이 자신의 뛰어난 상상력을 욕하며 표정을 굳혔다.
“미안. 잘못했다.”
「인정이 빠른 거 하난 좋군. 하여튼 방금 륜도 미로를 빠져나왔어. 근데 열쇠는 못 얻었대.」
“후후~ 그거라면 걱정 마시라~”
마치 그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유림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어깨를 좍 폈다.
“이 몸이 열쇠를 얻었다, 이 말씀~!”
그리고 이 말에 통신구 너머에서 아이들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림의 콧대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졌다.
“후후후후- 거기서 얌전히 날 맞이할 준비나 해. 내가 금방 갈 테니까.”
「길 잘 찾아와라, 괜히 뺑뺑 돌지 말고.」
“내가 넌 줄 아냐? 걱정 마셔.”
거기다 륜을 비롯해 아이들이 미로 이곳저곳에 길을 표시해 놔 출구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로 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유림은 얼마 안 있어 출구의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대놓고 출구 티 내는 곳을 멍청하게 그냥 나갔다고?
“은하도 아니고, 진짜.”
유림이 허리를 짚으며 피식 웃자 이를 발견한 루아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유림이 왔다.”
테오도 유림을 발견하곤 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야! 열쇠!”
“……열쇠만이 아니라 그걸 가지고 온 날 반겨줄 의향은 없어?”
“뭔 헛소리야. 여튼 빨리 나오기나 해. 시간 없어.”
진짜 칭찬에 인색한 놈이라니까.
유림은 입을 샐쭉거리며 그렇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하민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건 한 발짝 내밀었을 때였다.
“……하민이는?”
“아직 미로.”
륜의 대답에 유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미로라고?
작은 생명에게 당해 세 번째로 입구로 되돌아갔을 때, 유림은 하민과 만났었다. 그리고 그가 저보다 먼저 들어갔다.
근데 왜 아직 도착 못 했단 말인가.
저도 잘 찾아온 표시를 못 볼 린 없고…….
싸한 느낌에 유림이 키르를 꺼내 곧바로 하민에게 통신을 걸었다.
한차례의 신호 후 그가 연락을 받았다.
“하민아, 너 어디야?”
「림…….」
하민의 목소리에 유림의 표정이 뚝 하고 굳었다.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축 처졌다 못해 땅으로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마치 유림의 불길함이 사실이라고 확정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어?”
「미안…….」
“뭐야? 뭔데?”
「나 막 입구로 되돌아왔어.」
역시나……!
“정확히 언제?”
「이제 1분 지났어…….」
꺼질 듯한 목소리에 유림을 비롯하여 같이 통신을 듣고 있던 애들 모두가 동시에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일행이 미로에 들어온 시각으로부터 어느새 한 시간 48분이나 지나 있었다. 즉, 남은 시간이 12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이 미로는 입구로 돌아가면 10분이 지날 때까지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하민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 3분.
그 짧은 시간 안에 미로를 통과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무리 골목의 표시를 보고 전력으로 내달린다 해도 족히 10분은 걸릴 것이다. 테오처럼 화력이 좋은 친구가 없기에 연이어 벽을 부수는 것도 사실상 쉽진 않았다. 그렇다면…….
“…….”
끔찍한 결론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미안…….」
풀이 죽은 목소리에 파뜩 정신을 차린 유림은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생각했다.
지금은 시간 계산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알았어. 괜찮아, 하민아. 일단 입구에서 기다려. 디하르들한텐 내가 말할 테니까.”
유림은 키르를 주머니에 찔러 넣은 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륜, 받아.”
그리고 그대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열쇠가 륜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가서 문 열어놓고 있어.”
“뭐? 너 안 나올 거야?”
결계가 있어 미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루아가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물었다.
“일단 입구로 돌아가야지.”
“입구로 간다고?!”
“하민이랑 같이 올게.”
“같이 온다고?!”
유림은 쭈그려 앉아 나뭇조각 세 개를 꺼내 삼각형 모양으로 내려놓더니 가볍게 늄을 부여했다. 어쩐지 얼굴에 비장함이 가득했다.
테오가 결계 있는 곳까지 바싹 다가왔다.
“야, 어차피 하민이한텐 마조나 새디가 있잖아. 걔들이 미로 부수면서 달리면 되는 거 아냐?”
“알아. 근데 안 될 가능성도 있잖아. 솔직히 걔네 발길질이 네 폭발만큼의 위력을 가졌는지도 모르겠고, 또 그게 된다 하더라도 넘어지거나 그럼 어떡해. 2, 3분밖에 안 남았어. 확실하지 않은 거 하나에 걸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해. 쪽팔리게 남들 다 붙는 1차 진급시험, 그것도 2차에서 떨어질 순 없잖냐.”
“그럼 어떻게 하려고.”
“뭐든 해야지. 가만있을 순 없잖아. 아, 혹시 모르니까 출구 밖에도 하나 두자.”
유림이 나뭇조각 하나를 더 꺼내 늄을 부여하며 륜에게 던졌다.
“그거 그냥 바닥 아무 데나 놔줘. 위험하니 들고 있진 말고. 알았지?”
“그래, 그건 알겠는데…… 괜찮겠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유림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더니 기다리란 말과 함께 몸을 돌려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
디하르를 비롯한 네 사람은 유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사라지자 나뭇조각으로 시선을 내렸다.
부디 별 탈 없어야 할 텐데…….
륜은 걱정을 삼키며 유림이 부탁한 대로 나뭇조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히야스 교수님과의 수업이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유림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쓰게 웃었다.
지금 유림이 생각하고 있는 방법은 히야스와의 수업 때 생각해 낸 거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만 했지, 이를 도와줄 만한 여건이 안 돼 포기했던 것.
‘……제발 잘돼야 할 텐데.’
유림은 마른침을 삼키며 뜀박질을 빨리했다.
운 좋게도 작은 생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이 상황에 작은 생명에게 당한다면 그거야말로 뭘 해도 답이 없는 탈락이니 말이다.
친구들과 자신이 해놓은 표시를 보며, 미로의 골목골목을 누비던 유림은 어쩐지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걸 느끼며 입술을 질겅거렸다.
머리가 아파서 그런지 괜히 몸에도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젠장. 여러 의미로 최악이네. 대체 시간 제약은 누가 만든 거야? 10분의 규칙은 뭐고.
유림은 속으로 온갖 불평을 터트리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하민은 입구의 벽에 손을 짚은 채, 깊게 심호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은 생명한테 당한 것이 이해가 안 갔다. 물론 자신의 누나로 변한 것은 좀 타격이 컸지만, 그래도 그게 가짜인 걸 못 알아볼 정돈 아닌데.
뒤늦은 후회에 한숨이 연거푸 올라왔다.
하민은 그렇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다 이내 도리질하며 정신을 차렸다.
저 때문에 친구들이 탈락할지도 모르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후회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침착하고 냉정하게 미로를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마조나 새디가 할 수 있을까?
그 둘의 위력이라면 벽을 부수는 건 문제없었지만, 다리가 짧고 몸이 커 뛰는 걸 잘 못 하는 탓에 2, 3분 사이에 출구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이 안 섰다.
“으으…… 어떻게 해야 하지.”
하민은 조급한 마음에 시간을 확인했다. 약 1분 30초 후면 10분의 한정 시간도 끝났다.
그는 시간이 되자마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초침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하민!”
그런 그의 귀로 유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언제 왔는지 입구의 근처에서 거친 숨을 내모는 그녀가 보였다.
“허억…… 흐억…….”
정말 숨도 못 쉴 정도로 억세게 달려왔는지 붉어진 얼굴로 고개까지 숙여가며 가쁜 숨을 토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미로 진짜 더럽게 넓어……. 하아…… 아, 숨차. 몇 분 남았, 억쿠엑- 컥컥-”
사레가 제대로 들렸는지 시뻘게진 눈으로 반쯤 쓰러진 유림을 보며 하민이 안절부절못했다.
“괜찮아?!”
“괜, 찮…… 컥, 쿨럭, 켁.”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 모습으로 가까스로 숨을 고른 유림이 몇 분 남았냐며 다시 물어왔다.
“약, 1분.”
“1분. 다행이네. 콜록 콜록. 하아-”
유림은 심호흡하듯 크게 숨을 몇 번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탈출할 방법 있어?”
“일단 벽을 부술 생각인데, 시간 안에 가능할지 잘 모르겠어.”
자신이 없는지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림은 정말로 제 계획을 실행해야 한단 사실에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후우…… 좋아. 그럼 내가 생각한 걸로 움직이자.”
“방법이 있어?”
“어…… 하나 있어. 솔직히 너만 있으면 가능해, 탈출할 확률도 높고. 근데…… 방법이 좀 과격해.”
“과격하다니? 얼마나?”
“까딱하다간 우리 둘 다 올겨울을 침대에서만 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
유림의 말에 하민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탈락이었다. 그렇다면 뭐든 해보는 것이 옳았다. 애초에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괜찮아. 그래서 그 방법이 뭔데?”
그리고 그 질문에 쓰게 웃으며 입을 여는 유림이었다.
===============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