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23
제 223 화
그는 계속 숲을 향해 ‘은하’라는 이름을 불렀다.
귀가 아플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샤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금 앓는 소리를 냈다.
“아저씨…… 시끄러우니까 제발…….”
“야! 아저씨라니! 내 나이가 몇인데 아저씨야! 또 한 번만 아저씨라 해봐! 걷어차 줄 테다!”
샤이는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혼나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숲에서 낭랑한 여자애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선생님! 어디 계세요?!”
계세요- 계세요… 계세요…….
메아리치는 아이의 목소리에 남자가 다시 소리쳤다.
“여기야!!”
여기라고 말하면 어떻게 알아…….
샤이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는 은하라 불리는 여자애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여기가 어딘데요?!”
“숲 중앙! 호수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곳!!”
“남쪽이 어디죠?!”
“아래!”
“아래요? 여기 평지인데요?!”
“그냥 목소리 들리는 쪽으로 튀어와!!”
네-! 하는 우렁찬 대답이 다시 숲을 울렸다.
남자는 샤이의 배를 꾹 눌렀다. 지금 보니 그곳에서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너 재수 없게 죽지 마라. 나 이런 거 완전 싫어하거든. 좀만 기다려, 엄청난 녀석이 오니까.”
욱신거리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던 샤이는 문뜩 느껴지는 그의 늄에 입을 열었다.
“떼요…….”
“뭐?”
“아저씨…… 손 떼라고요…….”
샤이의 말에 남자는 ‘이게 미쳤나’ 하는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봤다.
“야, 너 내가 아저씨라 하지 말라 했지. 염병…… 돌겠네.”
그는 시선을 내려 샤이의 배를 바라봤다.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게 용할 정도로 많은 피가 눈밭을 적신 뒤였다.
창백한 피부에 차가운 체온…….
농담이 아니라 조금만 늦었어도 산 사람이 아닌 시체를 발견했을 정도였다.
“너 가급적 입 열지 마라. 아니다. 자면 더 큰일 나니까 말해야 하나?”
“괜찮아요…… 어차피 죽으러 온 거니까…… 그러니까 그냥 가요…… 좀 조용히 좀 있게…….”
“쪼끄만 게 웃기고 자빠졌네. 야, 네가 뭔 생각으로 여기 있는진 모르겠는데 내 앞에 떨어진 이상 못 죽거든? 헛소리할 정신 있으면 좀만 더 버텨.”
남자가 이를 갈며 웃옷을 벗어 샤이의 위에 덮었다. 그때 짤막한 비명과 함께 여자애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악! 웬 시체예요?!”
“아직 안 죽었어. 그니까 빨리 튀어 와.”
남자의 손짓에 은하라 불린 여자애가 뛰어왔다.
“은하야, 어서 얘 좀 살려라.”
“으헤? 저 다친 사람 상대론 처음인데, 괜찮아요?”
괜찮냐는 그 질문에 약간의 침묵을 지킨 남자가 은하의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그럼. 난. 은하를. 믿는걸.”
어색한 태도며, 국어책을 읽는 딱딱한 어투며. 척 봐도 ‘믿지 않아’를 풍기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은하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짝였다.
“네! 선생님! 저 열심히 할게요!”
그런 뒤 샤이의 배에 손을 올려놓았다. 순간 차갑고도 청명한 늄의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샤이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늄이었다.
곧이어 바람이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저를 감싸던 기운이 사라졌다.
샤이는 두 눈을 깜빡였다. 흐릿했던 시야가 깨끗해졌고, 찢어질 것만 같았던 몸이 마치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했다. 그뿐인가, 어쩐지 머리도 맑았다.
“치유 마법…….”
멀쩡하게 튀어나오는 목소리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 그것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대단한 인재지.”
“하…….”
샤이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죽으러 왔는데 졸지에 엄청난 녀석에게 목숨을 빚져 버렸다. 남자는 샤이의 등을 잡고 천천히 일으켜 앉혔다.
“괜찮냐?”
난감한 상황에 샤이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쿨럭.”
목구멍을 타고 묽은 덩어리가 넘어왔다. 컥컥거리며 입안에 고인 물을 뱉었다. 순간 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핏덩어리가 제가 덮고 있던 남자의 외투 위로 떨어졌다.
상처는 이미 다 나았다, 컨디션까지도 멀쩡하게. 그럼에도 이렇게 피를, 그것도 깨끗하다 할 정도로 선명한 붉은 피를 토하는 경우는 단 하나였다.
“…….”
“…….”
“…….”
세 사람 사이로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샤이가 뒤로 넘어갔다.
“꺅-! 선생님 어떡해요! 실패했나 봐요!!”
“괘, 괜찮아! 죽진 않을 거야! 끽해야 과부하니까……!”
“진짜 괜찮겠죠? 괜찮은 거겠죠?”
“그, 그럼 괜찮을 거야……! 야! 정신 차려!”
두 사람의 비명이 숲을 울렸다.
샤이는 점점 아득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제발 괜찮다는 대답을 내가 하게 해줘……’라는 다소 뜬금없는 생각을 끝으로 그만 기절하고 말했다.
눈을 떴을 땐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 있었다.
샤이는 남자의 집에 누워 있었고, 은하의 능력으로 인해 끝없이 쌩쌩해진 세포들 탓에 녹초가 되어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차라리 칼에 찔리는 게 더 낫겠다 싶을 몸 상태였다.
더 끔찍한 건, 움직이지 못하는 샤이를 붙들고 잔소리를 해대는 남자였다.
그는 샤이가 순간 이동을 한 것을 안 뒤로부턴 정말 귀에 못이 박도록 혼내고 또 혼냈다.
입도 걸쭉해 개중 1/3은 욕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한하림.
동쪽 이름을 처음 접하는 샤이에겐 꽤나 이상하고, 또 쉽게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깔끔한 생김새에, 샨과 닮은 갈색 머리칼을 가진 상당히 유쾌한 남자였다. 게다가 끈질겼다.
샤이가 아저씨란 말을 내뱉자, 끙끙 앓고 있는 애 옆에서 무려 세 시간 동안 자신이 아저씨가 아닌 이유를 강의했으니 말이다.
실로 그가 그런 호칭을 들을 만큼 나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20대 중반? 많이 잡아야 후반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름이나 다른 호칭을 부를 순 없었기에 샤이는 계속 고집 있게 ‘아저씨’란 단어를 사용했다.
샤이가 이불 생활을 할 동안 은하도 자주 놀러 왔다.
그녀는 상당히 단순한 뇌 구조의 소유자로, 원숭이가 친구 하자 했대도 믿을 정도였다.
하림은 그런 은하를 수시로 놀렸고, 별거 아닌 장난에도 넘어간 은하는 샤이에게로 도망쳐 아픈 몸뚱이에 얼굴을 묻고 하림의 만행을 일러바쳤다. 그리고 하림은 그런 은하를 또 놀리고…….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샤이는 어떻게 해서든 이 집을 탈출하겠다며 기를 쓰고 몸 회복에 열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끄럽고 요란스럽고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 약 열흘이 지났을 때에야, 샤이는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간의 숙원을 이루듯 이 집을 떠났다. 아니, 떠나려 했다. 저를 잡으러 온 하림과 은하만 아니었다면.
눈밭에서의 치료 이후, 샤이는 타인의 늄을 민감하게 느끼진 않았지만, 반대로 은하가 샤이의 늄을 느끼기 시작한 건지 정말 기똥차게 저를 찾아왔다.
더욱이 하림도 늄을 꽤나 잘 다루는 마법사여서 샤이의 기척을 예민하게 알아챘다.
종국엔 샤이는 도주를, 하림과 은하는 포획 계획을 짤 정도였다.
“대체 왜 죽으려 하는데?”
하림은 샤이에게 늘 이 질문을 건넸다. 물론,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질문을 했다. 어디서 왔냐, 이름이 뭐냐, 나이는 몇 살이냐 등등…….
샤이는 그 무엇도 답해주지 않았다.
“이름은 왜 안 가르쳐 주는 거야. 부르기 힘들잖아.”
“그냥…… 그 이름으로 불리기 싫어요.”
“어째서?”
“말 안 할래요.”
“넌 다 좋은데 비밀이 너무 많아.”
“아저씬 다 좋은데 말이 너무 많아요.”
“아저씨 아니라니까!”
“네네-”
샤이는 양쪽 귀를 막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 그런 샤이의 머리 위로 하림의 잔소리가 떨어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그는 이것저것 별걸 다 잔소리했다. 밥 좀 먹어라, 일찍 자라,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등등.
그 끝없이 이어지는 타박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샤이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보며 하림은 기특하다는 듯 짧은 칭찬과 함께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 건넸다.
이런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샤이로선 참으로 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샤이가 그렇게 이 집에 적응하고, 은하 가 샤이를 잡아 오는 것에 도가 텄을 즈음에는 3월이 되었다.
사혈은, 특히 소난은 봄이 늦게 왔기에 아직도 찬 바람이 창문을 매섭게 두드렸다.
은하는 허리까지 긴 샤이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 하림을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 머리끈 있어요?”
“아니, 왜?”
“얘 머리가 너무 길어서 자꾸 흘러내려서요.”
“잘라야 하나.”
“아깝잖아요!”
샤이는 유자차를 마시며 왜 제 머리칼을 두고 이 둘이 이러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한참을 떠들던 그들은 이내 원주인인 샤이에겐 의견을 1도 묻지 않은 채, 올려 묶는 것으로 합의했다.
“우리 집에 머리끈은 없지만 그건 있다고.”
“그거요?”
궁금해하는 두 아이를 보며 하림이 선반 서랍에서 가는 나무 막대기 하나를 가져왔다.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샤이와 달리, 은하는 단박에 그 물건을 알아챘다.
“비녀다.”
“응. 우리 누나 거.”
“아, 엄마가 그랬어요. 예전에 여기 살던 이모가 선생님 누나라면서요? 전혀 몰랐어요.”
“뭐, 우리 집안이 사정이 좀 복잡해서 따로 살았으니까. 거기다 누나랑 나랑 나이 차가 많이 나서 남매로 보는 사람이 드물기도 했지.”
샤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럼 아저씬 원래 여기 사셨던 게 아니에요? 누님은 어디 가시고, 아저씨 혼자 여기 살아요?”
하림은 샤이가 궁금함을 표한 게 기뻤는지 아저씨란 호칭을 들었음에도 흔쾌히 답해주었다.
“우리 누나는 시집갔지, 갈 때 나 주고 간 거고. 그래서 지금 여긴 내 집.”
“아…….”
‘그렇구나’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샤이를 제대로 앉게 한 하림은 아이의 머리를 곱게 빗긴 뒤, 긴 머리를 하나로 꼬아 올려 비녀로 고정해 주었다.
살짝 어색한 손놀림이었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다.
끈으로 묶은 게 아닌데도 이리되다니, 신기하네.
샤이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거울 속의 머리를 확인했다.
“하는 법 가르쳐 줄 테니까, 다음부턴 직접 해봐.”
“네.”
“오……! 오늘은 대답도 잘하네. 이러니 괜히 불안해지잖아.”
“뭐가요?”
“나 오늘 밖에 나갈 일 있단 말이야.”
아, 그래서 은하가 와 있던 거였구나…….
샤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샤이를 절대 혼자 두지 않았다. 오늘처럼 하림이 나갈 일이 있을 땐 늘 은하가 와서 집을 지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샤이가 도망 못 치게 감시하는 거였다.
“언제 나가시는데요?”
“지금.”
참으로 빨리도 나가십니다…….
샤이는 뺨을 긁적이다 다녀오라며 짧게 인사했다.
그것도 의외였던 걸까. 하림이 참으로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집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다 오늘은 도망 안 칠 거니 걱정하지 말라는 샤이의 확답을 받고서야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나가기 무섭게 은하가 눈을 반짝이며 샤이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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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