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53
제 53 화
제 동아린 제가 만듭니다! 고로 한유림은 제가 쟁탈합니다!!
…라고 떠들고 나오긴 했는데… 이놈의 동아리 만들기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공표하고 나니 일단 시끄럽게 찾아오는 사람은 많이 없어졌다. 뭐, 종종 진짜냐? 그냥 우리 동아리 들어와라 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결론적으론 조용해졌고 한산해졌다.
문제는 이놈의 동아리 만들기가 참 거시기하다는 거다.
[동아리를 만들려면-!]1. 동아리의 목적이 분명해야 함.
2. 간부급 교수 세 명과 이사장의 승인이 있어야 함.
3. 최소 세 명 이상의 인원이 있어야 함.
4. 꼭 동아리 담당 교수 한 명이 있어야 함.
5. 10,000젬(금화 한 개)의 개설금이 필요함.
라니……. 뭐 인원이야 그렇다 치자. 근데 왜 네 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승인받고 금화까지 지급해야 하는 거지?
자본주의에 찌든 교내 방침은 유림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뭐, 동아리원이 많으면 내야 할 개설금이 줄어드니 그렇게 비싸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듯 돈을 요구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유림은 머리를 북북 헤집으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어째 똥 피하려다 그대로 절벽에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컴컴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귀찮음의 절벽으로.
몸을 빙그르르 돌려 엎드린 유림은 종이 끄트머리를 찢어 펜으로 변형한 후, 안내문의 여백에 낙서를 끄적였다.
동아리원이 최소 세 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건 유림을 포함했을 때 필요한 인원일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둘 이상을 모아야 했다.
마음 같아선 은하부터 집어넣고 싶었지만, 괜히 저 때문에 하고팠던 것이나 좋은 기회를 놓칠까 싶어 말을 꺼내기가 뭣했다. 거기다 유림에게 있어 가장 걸리는 것은 인원이 아니었다.
바로 1번 문구.
“분명한 목적이라니…… 쉬는 게 내 목적인데…….”
유림은 그 외는 떠오르지 않는 목적에 펜 끝으로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은하가 유림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림, 뭐해?”
유림이 대답 대신 종이를 들어 보이자, 그제야 뭘 하고 있는지를 파악한 은하가 제 베개를 들고 유림의 침대 위로 올라왔다.
유림은 은하가 편히 누울 수 있도록 꿈틀거리며 침대 안쪽으로 들어가 베개를 턱밑에 깔았다.
제 자리가 확보되자 은하가 기다렸다는 듯 유림처럼 베개를 깔고 엎드려 종이를 봤다. 유림의 고민이 드러나듯 여백에 간단한 선으로 된 낙서가 가득했다.
“어려운 거라도 있어?”
“어렵다기보단 동아리 설립 목적이 마땅찮아서 말이지. 귀가부, 잉여부 이러면 좀 좋아.”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할까? 글쎄…….
물론 유림의 입장에선 꽤 타당한 목적이었지만, 학교의 입장에선 꽤, 아니, 엄청나게 쓸모없는 목적 중 하나일 것이다. 우선적으로 ‘귀가부’, ‘잉여부’라는 명칭이 통할 리 없지 않은가.
유림은 끙끙거리며 그대로 머리를 헤집었다.
으으으으으, 골 아파.
그냥 어디 들어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잠깐 떠올랐지만 이내 깔끔하게 접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일은 이미 터졌고 결과는 정해졌으니 말이다.
지이이잉.
유림이 동아리 개설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 키르가 통신을 알려왔다.
“네-”
[림?]기분까지 상큼해질 정도로 산뜻한 목소리. 하민이였다.
“하민이다!”
[은하도 있었네~ 안녕, 혹시 림 대신 받은 거야?]“아니, 나 옆에 있어. 무슨 일이야?”
[그냥, 이제 괜찮나 해서. 선배들이 안 괴롭혀?]아무래도 유림이 식당에서 선포한 뒤가 걱정됐나 보다.
유림은 따뜻한 배려에 옅게 웃었다.
“지금은 괜찮아. 근데 그보다 큰 문제가 생겼어.”
“동아리 개설 문제랄까.”
[동아리 개설 문제?]약간의 침묵이 통신구를 통해 전해졌다. 하민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아주 잠깐 가만있더니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음……. 림, 지금 나랑 디하르가 너희 방에 가도 괜찮아?]하민의 질문에 유림이 은하를 바라봤다. 괜찮냐는 거였다.
은하는 그런 유림의 의도를 파악하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와도 돼.”
[그럼 지금 바로 내려갈게.]라는 상큼한 말과 함께 통신의 종료되고 얼마 안 있어,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디하르와 함께 하민이 방문을 알렸다.
“애매하네.”
하민이 동아리 개설 방법 안내문을 보고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거였다. 디하르 또한 그 사실에 동의하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유림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일단 동아리원은 다 모았어?”
“음…… 우선 나 하나?”
“…….”
디하르는 유림을 빤히 바라봤다. 제 친구가 어릴 적부터 대책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 성격을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왠지 나중에 큰 사고 한 번 칠 거 같은데…….
디하르는 이 말을 어떻게 좋게 돌려 말할지 고민했다. 그때 옆에 있던 하민이 입을 열었다.
“그럼 둘이네.”
알쏭달쏭한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하민에게로 모였다. 그러자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할 거야, 림이 만든 동아리.”
하민의 눈꼬리가 매력적일 만큼 사르르 휘었다.
천사가 땅에 내려오면 이런 느낌일까? 유림은 하민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정말이지 존재 자체만으로도 치유되는 녀석이었다.
“하민아, 넌 정말 내 인생에서 최고로 착한 녀석이야.”
“하하하, 별말씀을. 큰 힘이 될진 모르겠지만, 끝까지 도와줄게.”
“응응, 고마워.”
연신 감동했단 눈빛으로 하민을 바라보는 유림과 그런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는 하민. 그들의 사이에 앉아 있던 은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꼭 잡은 손 위에 제 손을 올리며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얼굴 가득 그려냈다.
“그럼 나도 할래!”
은하의 말에 이번엔 유림이 은하를 휘둥그레한 눈으로 쳐다봤다.
“너도?”
“응! 나도”
“나야 좋지만, 너 괜찮겠어? 너 배우고 싶었던 거 많잖아.”
“괜찮아. 내가 아니면 누가 도와! 그리고 림이 하는 동아리도 재밌을 거 같으니까 나도 할래.”
으아~ 이건 좀 감동이다.
유림은 곧 울 것처럼 감동이 가득 찬 눈으로 은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감동에 쐐기를 박듯 디하르가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합 넷이네. 나도 할 거거든.”
“디하르, 너도?”
“응, 그래.”
감동이다. 진짜 감동이다.
유림은 앞에 있는 세 사람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지금은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가슴이 뭉클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림은 동아리를 같이 하자고 말하는 식의 권유에 약간 소심한 부분을 보였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는 친구들의 태도가 그녀에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유림은 의욕을 담아 두 주먹을 불끈 쥐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좋아. 그럼 이제 어떤 동아리를 만들지 생각해 보자.”
유림의 말에 디하르가 물었다.
“유림이 네가 하고 싶은 동아리는 뭔데?”
“귀가부.”
“기각.”
“……그럼 잉여부?”
“그것도 기각.”
단호하게 떨어지는 디하르의 음성에 유림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거 동아리를 만들기도 전에 디하르에게 까일 분위기였다.
유림은 종이와 펜을 들고 이것저것을 적기 시작했다.
유림이 만들고 싶은 동아리는 정말 간단했다. 그냥 수업 끝나자마자 집에 가고, 여유롭고 한가하게 학교생활을 보내는 것이 주된 활동인 동아리.
그럼 그러한 것을 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진 동아리가 필요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것을 가장하거나.
뭐가 좋을까? 학생들이 한다고 했을 때, 교수가 이해할 만한 동아리(정확히는 그런 허울 좋은).
유림이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하민이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그럼 이런 건 어때?”
“뭐?”
“마법 연구 동아리.”
“…….”
뭐지, 그 이름만으로도 엄청나게 귀찮을 것 같은 동아린?
너무나도 건실한 이름에 유림의 눈썹이 가볍게 꿈틀거렸다. 뭔가 생각한 의도와는 정반대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건 유림뿐만이 아니었는지 은하와 디하르의 표정 또한 썩 좋지 않았다.
“하민아, 그건 정말 아니야.”
라며 은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 바보가 저렇게 정색하며 아니라 말할 정도면, 정말로 아니란 뜻이었다.
은하의 반응에 디하르와 유림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하민이 아, 소릴 내며 옅게 웃었다.
“미안, 내가 설명이 부족했다.”
“응?”
“그니까 그 마법 연구가, ‘마법 연구-는 각자 집에서 알아서 하는-동아리’. 뭐 이런 의미로 말한 거였어.”
“아!”
이번엔 세 사람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들은 하민의 범상찮은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이 자식 천잰데?
정말이지 저 상큼하고 올곧은 애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마법 연구 동아리. 그 이름은 꽤나 고리타분하고 전형적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가장 괜찮은 이름이었다. 우선적으로 교수들이 봤을 때 납득할 수 있는 동아리였으며 자율 학습-을 빙자한 방으로 귀환-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수업 후나 방과 후에 꼭 동아리 활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됐다. 후에 ‘동아리에서 뭘 했냐?’ 하고 물어보면 수업 시간에 했던 거 복습했다고 받아치면 되니 이래저래 안전하고 자유로운 동아리가 아닌가.
뭐, 나중에 문제가 제기되면 동아리 이름을 저렇게 길게 지을 수 없으니, 대충 줄여 적은 거라 우기면 된다.
하민은 괜찮지 않냐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유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은 거 같아.”
“그치?”
“응.”
유림의 말에 하민이 환하게 웃으며 종이에 확정된 동아리명을 적었다. 왠지 모를 뿌듯
함에 저도 모르게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무언가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상태로 가면 분명 자신이 꿈꾸는 편안하고도 안락한, 그러나 이름만은 제대로인 동아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거기다 동아리원도 은하, 하민, 디하르라는 최적의 인물들이었다.
유림이 앞날을 생각하며 바보같이 헤픈 웃음을 짓고 있을 때, 동아리명과 인원을 다 적은 하민이 운을 띄었다.
“그럼 이제 문제는 교수님들 승인과 담당 교수님이네?”
그리고 그 말에 유림의 얼굴이 엄청난 속도로 굳어졌다.
전임 교수들의 승인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클레이즈의 전임 교수들이 그냥 교수들이던가. 그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무시무시한 인물들이었다.
유림은 허탈함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정말이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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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