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68
제168화
‘성전사-J’ 조에 속한 김진서는 전자시계를 통해 고지된 시작점으로 갔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실기고사 탓에 긴장을 해버린 건지 분위기가 싸늘했다.
“…….”
김진서는 말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조원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성전사과의 실습이나 훈련을 할 때 봤던 것 같기는 한데,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그녀에게는 거의 모두가 그런 사람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으나…….
“또 보네!”
하나,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여전히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 녀석.
“……너 뭐야?”
“뭐긴 뭐야, 같은 조인 거지. 너도 ‘성전사-J’ 조 아니야?”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아 쫑알쫑알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그 아이와 같은 조였다. 아이는 반색하며 인사를 건네고는,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전자시계를 들어 자신의 조를 보여주었다. ‘성전사-J’라고 또박또박 적힌 글씨가 그녀와 같은 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맞지?”
아이가 물었다. 김진서가 언짢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운도 지지리 없네.”
“너무하네!”
“쯧.”
김진서는 혀를 차며 아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싫은 티를 내도 꿋꿋이 다가오는 애들이 한둘은 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집요하게 상처를 안 받는 애는 또 처음이었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에, 김진서는 체념하고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작전이나 짜자.”
김진서는 그렇게 말하며 조원들을 불러 모았다.
성전사과에 속한 조에게는 두 종류의 특수한 장비가 주어졌다.
하나는 소형 유탄 발사기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신성 섬광탄과 연막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전투 시 상대의 시야를 가리는 데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당 두 자루씩이었고, 신성 섬광탄과 연막탄은 각각 4발씩 주어졌다.
“이건 또 뭔…… 채찍?”
김진서는 다른 하나의 장비를 손에 들고, 시험 삼아 몇 번 휘둘러 보며 중얼거렸다.
얼핏 보기에 채찍처럼 생겼지만, 무게가 너무 가볍고 달려 있는 끈도 하나라서 전투에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올가미처럼 발목에 던져서 상대를 넘어뜨리는 게 아니면. 이 역시 조당 두 개씩 주어졌다.
김진서는 10명 중 2명은 사제과 진영으로 가서 인질을 포획하고, 나머지 8명은 성직자를 찾아 토큰을 획득하자고 했다. 8명도 굳이 같이 다니지 말고, 4명씩 찢어서 다니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흩어지면 전투에 있어 불리하지 않겠냐고 묻는 조원도 있었으나, 김진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성전사는 흩어지는 게 나아.”
성전에서도 성전사는 별동대로 편성되어, 소수 인원으로 작전을 진행했다.
각자의 개성이나 프라이드가 강한 성전사들은 각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역량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억지로 모이면 오히려 오합지졸이 되고는 했으니.
무엇보다 성전사에게는 두 종류의 장비가 추가로 주어졌기 때문에, 상황이 불리하면 장비를 이용하여 도주하면 그만이었다.
그리하여 김진서가 속한 ‘성전사-J’ 조는 2명, 4명, 4명, 총 3개 조로 나누어 행동하기로 했다.
사제과 진영으로 이동하여 인질을 포획할 2명을 누가 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미루던 와중에 김진서가 나섰다.
“없으면 내가 가고. 아무나 한 명 나 따라와.”
“내가 갈래!”
“……얘 말고 없어?”
김진서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지원자를 찾았지만, 모두가 눈을 피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4인으로 편성된 다른 두 조에게는 소형 유탄 발사기를 주었고, 김진서는 채찍을 들고 왔다.
솔직히 들고 다녀도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이 쓰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사제과 진영으로 간다고 그랬나?”
“…….”
아이가 옆에서 쫑알거렸으나, 김진서는 대답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알아서 지쳐서 입을 다물 것이라 생각했으나, 아이는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자꾸 튕기네. 오기 생기네.”
말을 몇 번이나 걸어도 대답이 없는 김진서를 향해, 아이가 놀리듯 말했다. 김진서는 굳은 표정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너 한 번만 더 입 열면.”
그녀가 들고 있던 채찍을 들어 손으로 끈을 위협적으로 어루만졌다.
“이걸로 묶어서 버리고 간다.”
“…….”
아이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지만,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입은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 * *
[‘성기사-D’ 조 인질 포획: ‘사제-H’ 조 성하연]전자시계 화면에 위와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수갑과 전자시계가 접촉하면서 자동으로 ‘인질’ 상태로 인식이 되는 모양이었다.
사제과 전투력의 구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성하연을 포획한 것은 성기사과 입장에서 크나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반면 성하연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예전부터 비를 싫어했다. 불행이 닥쳐오는 날은 언제나 비가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적, 신원 미상의 괴한에게 납치를 당했을 때. 저번에 머리와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노는 박제와 마주했을 때. 모두 비가 오는 날이었다.
비가 옷을 적셔서, 차가운 옷감이 몸에 달라붙는 느낌조차 성하연은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비를 피하고자 잠깐 건물에 들어와 있던 것인데, 하필이면 그때 강대만을 만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조원들과 함께 다닐 걸 그랬다. 괜히 혼자 다니겠다고 까불어서는…….
“푸, 풀어줘요.”
“안 된다.”
“못 걷겠어요. 이거 때문에 힘이 빠져서…….”
성하연은 턱짓으로 수갑을 가리키며 애원했다. 그러나 강대만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안 된다. 조장이 지시하기 전까지는.”
“조장…… 당신 아니에요?”
“아니, 도선우다.”
강대만이 말했다.
성하연은 입을 다물었다. 설마 강대만과 도선우가 같은 조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교사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둘을 같은 조로 편성했는지 모르겠다.
조 편성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더니, 개뿔.
“그럼 도선우는 어디에…….”
성하연이 물었다.
말을 끝까지 맺기가 힘들었다. 수갑 때문에 힘이 풀렸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강대만의 풍채가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차라리 도선우라면 괜찮은데, 강대만은 얼굴도 몸도 너무 무섭게 생겨서 차마 말을 편하게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른다.”
강대만은 성하연의 물음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성하연은 멀뚱멀뚱 강대만을 쳐다보았다.
“아니…… 이걸로 연락할 수 있잖아요. 시계로.”
“해봤는데 꺼져 있다.”
“조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개인행동을 해도 되는 거예요?”
“너도 혼자 다니지 않았나? 그래서 우리가 널 포획할 수 있었던 거고.”
“…….”
강대만은 항상 멍청한 모습만 보이다가도, 가끔 허를 찌르는 말을 할 때가 있었다.
성하연은 반박할 말이 없어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괜한 말을 하는 것보다, 조원들이 자신을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슬슬 비가 그치고 있군.”
그러는 동안 강대만은 성당의 깨진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바깥 날씨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직 비가 완전히 그친 것은 아니었지만, 빗줄기가 조금은 가늘어진 것 같았다. 천둥과 번개도 더 이상 치지 않았다.
성당에서 비를 피하고 몸을 식힌 덕분에, 조원들의 컨디션도 아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이만하면 성당을 나와, 사제 진영으로 이동하거나 혹은 성직자들을 만나 토큰을 획득하러 다녀도 될 것 같았다.
성하연이라는 인질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도선우가 오기 전까지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자, 나가지.”
강대만은 성하연을 일으켜 같이 나가려 했으나, 성하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비가 와요.”
“이 정도는 맞아도 괜찮다.”
“…….”
성하연은 한 방울의 비도 맞고 싶지 않았다. 강대만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성하연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성하연은 ‘성기사-D’ 조의 조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종도 아니었다. 그저 ‘인질’에 불과했으니 성하연이 강대만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따를 의무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여기 붙박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성하연만 두고 떠나기에는 도선우와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니…….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내가 너를 들고 다니면 되겠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도출해낸 결론이었다. 성하연은 두 눈을 깜빡이다가 놀라서 몸서리를 쳤다.
“그, 그건 더 싫어요!”
“기어코 안 나오겠다면 그 수밖에 없다.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 있을 수도 없고.”
“자, 잠깐만요. 곧 우리 조원들이 올 거예요. 내가 부를 테니까, 그때 가서─”
벌컥!
그때였다. 성당의 문이 열렸다. 성하연은 조원들이 자신을 구하러 온 줄 알고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구하는 게 아니라 토큰과 인질을 두고 협상을 하는 것에 불과할 테지만, 어떤 식이든 이 수갑을 풀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뭐야?”
그러나, 들어온 것은 성하연의 조원이 아니었다.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괴상하게 생긴 무기를 든 두 여학생이었다.
비에 머리카락이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탓에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두 사람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젖은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제야 얼굴이 드러났다.
“이럴 수가, 한수련이다!”
강대만이 놀라서 외쳤다. 한수련도 말은 안 했지만 놀라워하는 기색을 표정에 선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한수련의 손에는 성전사과에 속한 조에게 주어지는 소형 유탄 발사기가 있었다.
한수련은 섣불리 그것을 발포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놀란 얼굴로 강대만을 보고만 있었다.
“……대만아. 거 씨발 아무리 그래도 내 얼굴을 까먹으면 되냐?”
대치 중에 찾아온 찰나의 정적 속에서, 한수련의 옆에 있던 여학생이 말했다.
입가에 차마 웃음이라고 부를 수 없는 뒤틀리고 흉측한 웃음이 걸려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었다.
여민서.
회복에 전념하느라 필기고사조차 응시하지 않았던 그녀가, 한쪽 발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난 것이었다.
강대만도, 성하연도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아직 몸이 다 낫기도 전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병원에 있어야 할 애가 어째서 고사장에 등장한 건지.
“한수련!”
그때, 여민서가 채찍을 휘두르며 한수련에게 신호를 주었다.
퉁!
한수련은 능숙한 솜씨로 탄을 장전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둔탁한 총성과 함께 탄환이 발사되었다.
한 발은 연막탄으로 성당의 한 가운데 떨어져 희뿌연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연기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하게 성당을 메웠다.
퉁!
한수련은 이어서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두 발째의 탄환은 신성 섬광탄이었다. 탄환은 성당을 가득 메운 연기를 꿰뚫고 나아갔다.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강대만의 미간을 정확히 강타했다.
쩌엉─!
“억!”
신성 섬광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강대만의 낮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탄환에서 축복의 빛과 비슷한 종류의 섬광이 터져 나와 강대만의 눈을 잠시 멀게 만들고 있었다. 강대만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눈을 깜빡이며 시력을 되찾으려 했다.
“나이스, 한수련!”
그러나, 여민서는 그 찰나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 개의 축복진을 그려 융합하며, 희뿌연 연막을 뚫고 강대만을 향해 달려갔다.
강대만은 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융합의 실패로 충돌 현상이 일어나, 폭파하기 직전의 축복진이 강대만의 코앞에 들이닥쳐 있었다.
“강대만, 너한테 악감정은 없어! 있을 수도 있고!”
어쩐지 입원하기 전보다 정신이 더 나간 것처럼 보이는 여민서의 말이었다.
퍼어엉─!
그리고 축복진이 폭발했다. 성당 중앙을 장식하던, 불 꺼진 샹들리에가 폭발의 여파로 흔들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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