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07
104. 누구냐? 넌! (2) >
104.
이한은 자신이 호언장담한 대로 ‘쿤’의 영향력에 있는 스테이션들을 빠르게 점령하기 시작했다. 딱히 ‘쿤’에게 속한 곳만 점령한 건 아니고 쿤의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길목에 위치한 리퍼의 시설이라면 가리지 않고 점령했다.
21명의 슈퍼솔져와 등급외의 초능력자가 이한과 함께하니 대체 누가 이들을 막을 수 있을까? 삼대 세력이 작정하고 막으려고 해도 어려울 테니 리퍼는 속수무책으로 거점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습격받을 수 있는 리퍼의 상황을 고려하면 저들이 방심을 했다라기보다는 이한 등의 실력이 리퍼의 대비를 넘어설 정도로 탁월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한은 스테이션을 점령하며 스테이션을 지킬 자치대를 구성하길 원했지만 순조롭지는 않았다.
범죄조직과 싸우려는 이한에게 왜 힘을 보태지 않냐고 묻는다면 저들에겐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착취당하고 불합리한 일을 겪더라도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리퍼에 대항하다가 패배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아주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고 리퍼와 대항하려는 자들에게 무슨 승산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실제로 리퍼는 다수였고 그 세가 막강했으며 이한 등은 정찰함 크기의 함선 한 척이 전부였다. 스테이션 탈환과 같은 특수임무에는 적합한 자들인지는 몰라도 스테이션 등을 수호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패배할 경우 이한 등은 함선을 타고 도망치면 될 일이지만 스테이션의 거주민은 어디로 도망칠 곳도 없다.
뉴트럴에 호소? 애당초 리퍼에게 자치 방위권을 허가한 이들이 뉴트럴이었다. 리퍼의 행사를 막아서는 일이 뉴트럴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움직일 자들이 아니다.
결국 거주민들은 패배의 처절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적개심을 가진 자들은 이미 이한에게 가담했지만 모든 거주민이 극심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진 않다.
일단 리퍼가 모든 거주민이 적개심을 가질 정도로 착취하지도 않은데다가 설혹 그런 상황이라고 해도 승산이 없는 전투에 가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한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할 생각은 없었다. 영웅놀이나 잠깐하다가 끝낼 생각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내 목적은 이뤘으니 남은 일은 이제 너희가 알아서 해.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동이다.
이한은 앞으로의 일을 머릿속으로 다시 정리했다.
리퍼를 제거하고 저들이 보유했던 기반 시설을 이용해 함선을 건조, 나아가 함대를 만들어 뉴트럴의 한 축이 될 것이다. 그러는 와중 각 스테이션은 자치 방위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고 그런 뒤 차근히 훗날 있을 전투를 대비하면 된다.
타고르스함은 물론 에스타른족과 함께하는 이한이라면 아예 맨땅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삼대 세력의 견제를 뚫고 또 다른 세력을 만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타고르스함과 에스타른족의 기술을 이용한다면 삼대 세력을 병합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너무 비효율적이다. 새로운 세력을 만든다면 이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격이니 자연히 타고르스함이나 에스타른족의 존재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타고르스함이 모든 준비가 되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황.
일단은 테라의 역량 자체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발전시킨다. 스톰함에 적용된 기술은 적당한 이들에게 차차 막대한 돈을 받고 팔면 되고. 그럼 너나 할 것 없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지. 모든 것을 일일이 수행할 이유도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함교에 있던 이한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륭샤오핑이 보고했다.
“사령관님. 총 인원 300명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출격을 준비해라.”
스테이션은 각 스테이션마다 보급하는 물품이 조금씩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스테이션 하나하나가 거대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식품, 광업, 제약, 에너지, 신소재 등등 우주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대다수 물품을 생산하는 생산시설이기도 했다.
아르투가 ‘쿤’이 소유한 비타스 스테이션 정도야 날려버리면 그뿐이라고 말했지만 이건 ‘쿤’이라고 해도 타격이 매우 크다. 리퍼라고 해서 생산 시설이 필요없는 게 아니니까.
그런 곳을 상당수 빼앗겼으니 리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테이션의 경계를 강화하고 자신들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다. 리퍼가 ‘스톰’을 인정해서? 리퍼는 같은 리퍼들끼리도 인정하지 않고 다투는 족속이다. 자신들의 것을 빼앗은 스톰을 인정한다고? 개가 똥을 끊지.
륭샤오핑이 이한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사령관님께서도 아시겠지만 함정입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륭샤오핑에게 말했다.
“맞아. 스테이션을 방어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막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니 기다렸을 거다. 거점이 없는 우리가 어느 정도의 거점을 마련할 때까지. 이번에 향할 베로프 스테이션 근방에는 놈들의 함선이 잔뜩 대기하고 있겠지.”
잠시 말을 멈춘 이한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함내방송 연결하도록.”
“연결했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한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령관 스톰이다. 이번에 향할 목적지는 베로프 스테이션이다. ‘쿤’이 소유한 가장 거대한 스테이션이기도 하지. 아마 리퍼 놈들은 함대를 구성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을 끊은 이한은 다시 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가명마저 스톰이라 정한 모양이었다.
“이번 전투는 리퍼가 무너지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각 부서는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리퍼 놈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우리의 축포가 될 것이다. 이상.”
통신을 마친 이한은 륭샤오핑을 바라봤다.
“출격해!”
“알겠습니다. 베로프로 워프를 시행합니다.”
“5. 4. 3. 2. 1. 워프!”
이윽고 스톰함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저편으로 금세 모습을 감췄다.
*
“준비는?”
얼굴에 칼자국이 엑스자로 난 사내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구릿빛 피부에 매우 잘 단련된 육체를 가진 사내였다.
“쾌속정 70척, 호위함 30척, 구축함 20척, 순양함 1척 모두 준비완료되었습니다.”
같이 보고를 듣고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마쿤 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고작 한 척을 처리하기 위해서 조직의 거의 모든 함선을 동원하시다니요.”
구릿빛 피부를 가진 사내 마쿤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꺼낸 사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야비하게 생긴 사내는 순식간에 날아와 그의 손에 머리가 잡혔다.
“마···. 마쿤 님. 이건 어디까지나. 아아악! 부디 요···. 용서를. 주제 넘은 짓으으윽···. 아아아악! ”
퍼석!
마쿤은 그대로 사내의 머리통을 손으로 으깨버린 뒤 함선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콰아앙!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바닥에 떨어진 시체는 다시 이리저리 부러지고 터져나갔다.
마쿤은 시체에 눈길도 주지 않고 보고하던 자를 바라봤다.
“노···. 노. 놈들이 나···. 나. 나타나는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제야 눈을 돌린 마쿤은 항로맵을 바라봤다. 마쿤은 바로 ‘쿤’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스톰. 스톰이라···. 항로맵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흉포한 살의와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
흑색을 바탕으로 두고 짙은 푸른색이 멋스럽게 가미된 외관을 지닌 스톰함이 공간의 왜곡을 통과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모두가 정신을 잃었을 때 이한만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역시나 워프의 후유증으로 인한 울렁거림이 느껴졌지만 이한은 묘하게 전보다 심하지 않다고 느꼈다.
‘이것도 자꾸하다보니 익숙해지는 건가?’
이한은 생각과 별개로 계기판을 조작해 지금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긴 하지만 워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역시나 제한적이 부분이 많았기에 사람이 직접 조작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조작하는 중에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편이다. 인공지능의 도움이 없다면 전문화된 지식이 없이는 어떻게 함선을 움직이기도 어려울 테니까.
승무원들이 전문화된 지식을 배우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다.
이것저것을 조작해본 이한은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정확한 지점에 도착했음을 확인했다.
위이잉! 위이잉!
그때 갑자기 함선에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이한은 급히 계기판과 홀로그램으로 이뤄진 항로맵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함선 주변을 모습을 말이다.
그곳엔 상당한 숫자의 함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시 경고음과 함께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이한이 급히 계기판을 조작할 때 경고음에 정신을 차렸는지 시에라가 말했다.
“쾌속정 70척, 호위함 30척, 구축함 20척, 순양함 1척. 적은 리퍼입니다.”
“대함미사일의 숫자는?”
“호위함 30척에서 각기 2발씩 모두 60발입니다. 스톰함에 적용된 배리어라면 모두 막아낼 수 있습니다.”
“배리어도 나쁘진 않겠지만 쾌속정이 같이 쇄도하고 있군. 아군의 배를 나포라도 할 생각인 모양이다.”
쾌속정은 함선을 나포하기에 매우 적합한 용도라 해적들이 주로 이용하는 함선이었다. 호위함급 이상은 애초에 다가서기 전에 폭파되기에 나포를 시도할 수도 없지만 일단 배가 가까이 붙는다면 함내에서 백병전을 치르게 될 것이다.
물론 스톰함은 겉모습만 정찰함급이지 성능은 순양함을 넘어서니 문제 없었지만 배리어를 펼친 채 대함미사일을 얻어맞으면 몇몇 쾌속정이 함내로 침투할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백병전도 사실 문제없지만 쓸데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지양하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 그럼 회피기동을 실시하겠습니다.”
륭샤오핑이었다. 그도 막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흔들며 급히 계기판을 조작하고 있었다.
“실행해!”
이에 스톰함은 추진체에서 불꽃을 토해내며 빠른 속도로 가속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함선이 회피기동을 실시하자마자 이윽고 함선이 있던 자리에 대함미사일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 나갔다.
혹 피하더라도 폭발에 휘말려 피해를 입을 수 있게끔 폭발 신관 등을 조정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예상과 달리 스톰함은 배리어로 인해 미미한 진동만 일으켰을 뿐이었다. 60발의 대함미사일을 직격으로 얻어맞아도 스톰함을 보호할 정도로 단단한 배리어였으니 폭발의 여파 정도야 별문제 없었다.
그때 륭샤오핑이 급히 보고했다.
“사령관님. 시간차 공격입니다. 회피기동을 한 곳에 다시 대함미사일이 발사되었습니다.”
이에 다른 승무원 역시 보고했다. 역시나 워프의 여파로 정신없어 보이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맡은 임무부터 신경 쓰고 있었다. 이는 정신을 차린 모든 승무원이 그러했다.
“저···. 전후좌우 피할 곳이 없습니다. 숫자는 아까보다도 많은 120발입니다!”
이 정도 수준의 폭발이 중첩되면 배리어로 막아도 에너지 손실이 막대하다. 아군은 한 척이고 적은 여러 척이니 정면으로 붙는 행동을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계속해서 회피기동을 하되 피할 수 없는 미사일은 레일건으로 요격해라!”
“알겠습니다.”
이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톰함은 더욱 빠른 속도로 가속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속도가 빛의 속도에 이를 만큼 빠르진 않았지만, 미사일을 피하기엔 충분한 속도였다.
120발에 달하는 대함미사일은 상당한 속도로 스톰함을 추격했다. 유도미사일인지 여러 발은 폭발을 일으키며 공간을 진동시켰고 여러 발은 움직이는 스톰함을 바짝 추격했다.
그런 가운데 스톰함에 장착된 레일건이 포신을 들어 바로 탄환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퉁퉁퉁퉁!
레일건의 탄환은 대함미사일의 머리를 부수고 이윽고 추진체까지 부순 후 다시 우주 공간 저편으로 사라졌다. 몸이 아예 관통된 대함미사일은 얼마간 더 움직이다가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콰아아앙! 콰아앙!
레일건을 조작하고 있는 자들은 스테이션에서 이한에게 합류한 자들이었다. 아직까지는 미숙한 실력이지만 그런 모든 부분을 인공지능이 교정하고 있었고 앞서 말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리퍼와 싸우고자 함께하는 이들이라 열의와 열정을 가지고 훈련에 임했기에 실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이에 결국 120발에 달하는 대함미사일은 스톰함에 닿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폭발해버렸다.
콰아아앙!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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