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debuff RAW novel - Chapter 151
제149화.
사실 사천에 있는 아미산은 아주 먼 옛날 분화했던 초화산으로, 지금도 지하에 어마어마한 양의 용암을 품고 있는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그런 아미산의 용암을 다시금 분출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대폭발.
사천은 물론이고 최소 호북성까지는 불바다로 변해 버릴 테고, 수천만 명이 타죽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말은…….
“그러니까.”
연오랑이 심히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청성악선에게 물었다.
“백련교에서 말하는 진공가향의 이상향이 결국 천하를 멸망시킨다는 거냐?”
“예, 주인이시여.”
청성악선이 대답했다.
“백련교주는 진정한 이상향이 이루어지려면 천하가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얼씨구.”
“기존의 체계들과 관습을 송두리째 무너뜨리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어쩜 그렇게 똑같냐. 쯧쯧쯧.”
연오랑은 판타지 서버에서 활동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사악한 교단이라는 놈들이 추구하는 바는 대체로 똑같았다.
세상의 멸망.
그리고 재건.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새로 건설하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하곤 했다.
“어찌 그리 허무맹랑한……!”
당괴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했다.
“그런다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말인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그건 어르신께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죠.”
“음?”
“인간이 그래요. 늘 세상을 뒤집어엎고 싶어 하죠.”
“그게 무슨 말이냐?”
“어르신은 사천당문이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나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세상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그, 그건.”
당괴괴는 순간 연오랑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어쩌면 태어나는 것이 축복이 나닌 저주일지도 몰랐다.
“그런 사람들 입장에선 이런 세상 따위 멸망하든 말든 말게 뭡니까. 당장 하루하루가 지옥인데.”
“그건 그렇다만…….”
“그런 사람들한테 힘이 쥐어진다면?”
“……!”
“천하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들의 한을 풀어줄 구원자가 나타난다면?”
“그야…….”
“어느 세계나 어느 시대나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구원자가 떠오르는 법이죠.”
“아!”
당괴괴는 문득 연오랑의 말에 인간에 관한 깊은 고찰에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겉으로는 까불까불 힘만 센 원숭이 같은 모습에 속으면 곤란했다.
연오랑은 그 누구보다 통찰력이 뛰어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험을 가진 인물.
그 속내가 얼마나 깊은지, 당괴괴로서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 사는 곳 어딜 가나 똑같단 말 있죠?”
“그, 그렇지.”
“이게 딱 그런 경우입니다.”
“그렇구나…….”
“세상에 불만을 가진 자들. 단순히 파괴와 학살을 원하는 자들. 그런 자들을 이용해 자신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길 원하는 자들. 그런 사람들이 뭉쳐서 이루어진 게 백련교인 거겠죠.”
“으음.”
“기존 질서와 체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자들인 거고, 우리는 그걸 막아야 하는 입장인 거죠.”
“안타깝구나. 허허허.”
“딱히 그럴 것도 없습니다.”
“음?”
“각자의 이상을 위해 싸우는 게 인류 역사 아닙니까?”
연오랑이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죠.”
“허허허.”
“일단 빨리 수습하고 아미파로 가보죠.”
“그렇게 하자꾸나.”
연오랑 일행은 우선 청성파 도사들부터 도와주기로 했다.
아미파에는 여러 정파의 고수들이 있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기에, 급한 불부터 끄기로 한 것이다.
연오랑 일행의 도움 덕분에, 청성파는 비교적 빠르게 부상자들을 수습할 수 있었다.
“어, 어찌 이런 일이!”
잠시 산을 떠났다가 돌아온 청성파 생사약선은 초토화된 사문을 보고 황망해했다.
“그래도 다행일세. 자칫 전멸할 뻔했으니.”
“당괴괴 영감…… 정말 고맙네.”
약선은 당괴괴와는 의술의 천하제일을 다투는 인물.
그는 당괴괴와 의기투합해서 곧장 청성파 도사들의 치료와 응급조치에 나섰다.
그렇게 연오랑 일행은 이틀 동안 청성파에 머무르며 구조 활동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청성산에 머무를 수는 없는 법.
“슬슬 아미산으로 가 보죠. 걱정되네요.”
“그러자꾸나.”
연오랑은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마자 아미파로 향했다.
아무리 정파의 고수들이 있다고 한들 백련교의 전력은 상상 이상.
혹시 늦기라도 했다간 아미파마저 초토화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럼 끝이었다.
백련교가 축융로를 손에 넣은 이상 아미산을 점령한다면, 그땐 대재앙이 펼쳐질 터.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축융로를 파괴하는 것만이 이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시오, 연 대협. 부디 천하의 평화를 지켜주시길 바라겠소이다.”
“알겠습니다.”
연오랑 일행은 청성파 장문인 옥영진인의 배웅을 받으며 청성산을 떠나 아미산으로 향했다.
* * *
한편, 백련교는 청성산 습격 당시 연오랑이 나타났다는 걸 파악하자마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축융로를 확보했으니 이번 작전은 성공적이었지만, 백련교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은 셈이었다.
청성파 습격에 가담했던 백련교 전력 중 무려 팔 할이 날아가 버렸기에, 그야말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백련교 주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오랑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백련교주가 사천에 자리한 백련교의 비밀 분타에 세 개의 관을 보내왔다.
“이, 이것은!”
“허어!”
“세 개의 관이라면…… 그들인가?”
주교들은 백련교주가 보내온 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천 개의 부적이 붙어 있는 그 관들에는 무시무시한 고수들이 잠들어 있었다.
검마(劍魔).
귀도(鬼刀).
그리고 벽력제(霹靂帝).
그들은 하나 같이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로서, 몇십 년 전에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종된 게 아니었다.
그저 백련교의 습격을 받아 제압되었고, 비전의 술법으로 세뇌되었을 뿐…….
“교주께서 놈을 확실하게 제거하시기를 원하시나 보오.”
“검마와 귀도와 벽력제라니. 단 한 명만 투입해도 현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조차 승부를 장담하기 힘든 전력일 터인데.”
“실로 무섭지 않소이까?”
주교들은 백련교주가 검마, 귀도, 벽력제의 투입을 결정한 것에 혀를 내두르며 놀라워했다.
연오랑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를 무려 세 명이나 투입할 줄이야…….
“관을 열어라!”
“예!”
백련교도들이 부적을 걷어내고 관 뚜껑을 열었다.
절그럭, 절그럭!
그러자 그 안에서 온몸이 쇠사슬로 칭칭 휘감긴 검마, 귀도, 그리고 벽력제가 몸을 일으켰다.
“진공가향의 명을 받듭니다.”
“진공가향의 명을 받듭니다.”
“진공가향의 명을 받듭니다.”
백련교에 의해 세뇌된 검마와 귀도와 벽력제는 주교들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때는 온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절세고수들이었으나, 지금 그들은 그저 백련교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 * *
연오랑 일행은 곧장 청성산을 떠나 아미파가 자리한 아미산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선 꼬꼬의 공간도약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조금은 관도를 따라 이동해야만 했다.
“뀨! 주인놈아!”
“응?”
“백련교 놈들 괜찮겠냐? 뀨우?”
“뭐가?”
“백련교 놈들 엄청 세지 않냐! 더 강한 놈들을 보내서 공격해 오면 어떡하냐! 뀨우!”
“언제는 우리가 그런 거 신경 쓰면서 살았냐?”
연오랑이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 대꾸했다.
“어떤 놈들이 오든 그냥 싸웠지, 언제 생각 같은 걸 했다고.”
“뀨! 그건 그렇다!”
다른 때 같았으면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딱히 머리를 굴린다거나 상황에 대비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당장 청성파가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아미파마저 위험한데 더 강한 적들이 나올 걸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싸우는 거지. 누가 오든.”
“뀨! 역시 주인놈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뀨우!”
“흰 개 꼬리 땅에 3년을 묻어 놔도…….”
바로 그때.
“얼씨구.”
연오랑의 얼굴에 냉랭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온다.’
저 멀리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셋? 다 어마어마하게 강해. 잔챙이들이 아냐.’
연오랑이 피부로 느낄 정도라면, 다가오는 적들의 강함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야 이.”
연오랑이 햄찌에게 눈을 부라렸다.
“말이 씨가 됐잖아.”
“뀨?”
“안 느껴져?”
“뀨우~?”
햄찌가 귀를 쫑긋거렸다.
“뀨? 주인놈아! 뭔가 센 놈들이 오는 거 같다! 뀨우! 어중간한 놈들 아니다! 뀨! 진짜 센 놈들이다! 뀨우!”
“그래, 이번엔 센 놈들이야.”
연오랑이 자세를 다잡으며 사천당문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진짜배기들이 오니까, 각오들 단단히…… 아니.”
연오랑이 고개를 저었다.
“독왕 어르신 빼고 나머지는 잠시 뒤로 빠져 계시죠.”
“그게 무슨 말이냐? 뒤로 빠져 있으라니?”
“최소한 화경급 고수가 셋 이상 오는데요?”
“그, 그게 정말이냐?!”
당괴괴의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다.
화경급 고수가 무려 셋이라면, 정말이지 엄청난 전력.
상황이 받쳐준다면 천하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고수가 셋이나 오고 있다니…….
“어서 피하시죠. 휘말리면 죽습니다.”
연오랑은 그렇게 말하고는 햄찌, 그리고 독왕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절그럭, 절그럭!
이윽고 온몸에 쇠사슬을 칭칭 감은 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근처에는 새하얀 백련교의 도복을 입은 술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네놈이 연오랑인가.”
백련교의 주교가 연오랑에게 말했다.
“감히 본교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더는 좌시할 수 없다. 그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아이고, 무서워라.”
연오랑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서 화경급 고수를 셋이나 데려오셨어?”
“물론.”
백련교 주교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의 그 자신만만함도 오늘로써 끝이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연오랑은 전혀, 눈곱만큼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흥분해 있었다.
‘이거 오랜만에 재밌겠는데?’
정말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생각에, 연오랑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이곳 무림 서버를 시작한 이후로 진짜 강자와 한바탕 화끈하게 붙어본 적이 없었는데, 때마침 화경급 고수가 세 명이나 나타나 주었으니 간만에 신이 났다.
저 세 명이라면 전력을 다해 싸워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래, 네놈이 언제까지 자신만만할지 두고 보도록 하지.”
백련교 주교는 그렇게 으르렁거리고는 쇠사슬을 놓았다.
“크으으으……!”
“벤다…… 모조리…….”
“반으로 접어 주마…….”
꽁꽁 묶여 있던 봉두난발의 괴인들.
검마, 귀도, 그리고 벽력제가 절그럭거리며 연오랑을 향해 다가섰다.
파직, 파지직!
연오랑이 씨익 웃으며 초월무극 스킬을 켜 스스로를 강화했다.
“먼저 간다.”
다음 순간.
번쩍!
연오랑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검마, 귀도, 벽력제를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