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121
제 6 장 일어서는 법을 잊었어요
“왜 지풍을 쏘셨어요?”
장건의 다그침에 오황은 정신을 차렸다.
상달도 혀를 내둘렀다.
‘나도 전혀 몰랐는데 그걸 알고 피했다는 거야?’
오황이 약간 말을 더듬거렸다.
“으응? 아, 그러니까 그게 말이다.”
“제가 너무 먹어서 그만 먹으라고 하신 거죠?”
“아니, 그냥…….”
오황이 딴청을 피우다가 말을 돌렸다.
“다른 종류가 더 있는데 그것도 먹어 볼 거냐고 물어볼라 그랬지.”
듣는 상달이 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가 그딴 걸 물어보려고 지풍을 쏴!’
장건은 바로 이해했다.
“아아, 그러셨군요.”
상달은 자기가 뭔가 잘못된 듯 착각을 느꼈다.
‘그걸 이해하지 마!’
장건은 지풍과 비슷한 기의 가닥을 뽑아내어 손처럼 움직이는 게 더 편하다. 장건의 입장에서라면 말로 부르는 거나 내공을 써서 어깨를 툭툭 치는 거나 같았다.
장건이 대답을 하고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어유, 머리가 갑자기 띵하더니 아파 가지고 깜짝 놀랐네요. 잠깐 속도 울렁거리고.”
딱 숙취 증상이었다.
“…….”
장건은 그걸 딱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독초를 먹었을 때는 더 심한 증세가 많았다. 지금처럼 혀가 마비되는 건 물론이고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독초 먹을 때나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오히려 이런 증상이 반갑기까지 하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장건이 희한하게 술을 잘 먹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구토 증세를 느끼면서도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게 의아하다.
사람들의 의문을 뒤로한 채 장건은 오황이 했던 말에 대해 물었다.
“근데 다른 것도 먹어 볼 거냐고 하셨잖아요. 곡차도 종류가 있나요?”
대답은 굉료가 했다.
“방금 건 쌀, 옥수수, 찹쌀 등을 섞어 만든 곡차란다. 무엇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맛도 향도 천차만별이고, 이름도 다 다르지.”
오황이 은근히 제안했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다른 것도 맛만 보자. 어차피 안 마시면 다 버~려~야 할 거니까.”
맛만 보자는 말과 버려야 한다는 말이 교묘하게 죄의식을 덜어 주는 느낌이다.
“그, 그럴까요?”
☆ ☆ ☆
장건의 체질은 아끼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몸의 잔근육 하나조차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움직여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의 근간에는 ‘살아남는 것’이라는 대명제가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 먹어야 하고, 뭐든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장건은 독초도 소화시켰고 독선의 독정마저도 흡수했다.
몸이 아파 먹은 탕약조차 약효를 보기 전에 소화시켰을 정도로 강한 흡수력을 가졌다.
술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흡수가 빨라서 술기운이 한꺼번에 돌았다가 해소된 것이었다. 주독(酒毒)마저 해소가 아니라 독정으로, 내공의 일부로 흡수해 버렸다.
예전과 달리 훨씬 무공이 깊어졌기 때문에 그 과정이 지극히 빨라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장건의 체질까지는 미처 알지 못한 오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준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장건이 워낙 빈틈이 없다는 점이었는데 그것도 가뿐히 해결되었다.
장건이 고정공주를 한 모금 마시고 아주 잠깐, 정확히는 눈 다섯 번쯤 깜박일 시간 만에 두 번째로 취해 버렸을 때.
오황이 실력을 발휘했다.
“맛은 괜찮으냐?”
인자하게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거추장스러운 듯 소매를 살짝 젖힌다. 그 소매의 끝이 닿을락 말락 장건의 잔 위를 스쳐 지나간다.
사라락.
미량의 잿빛 가루가 잔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취해있던 장건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효과는 확실했다.
오황이 속으로 숫자를 셈하며 장건을 지켜보았다.
‘하나, 둘…… 일곱.’
무려 이십을 셀 때까지 새빨개진 얼굴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씨익.
성공했다.
☆ ☆ ☆
뭐라고 해야 할까?
몸에 열이 오르는 게 조금씩 느껴지지 않으면서 반대로 마음은 느긋해져 간다.
눈을 감고 있으면 잔잔히 파도치는 물 위에 두둥실 누워 있는 기분이고, 눈을 뜨고 있으면 보이는 모든 것들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만 같다.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몸도 노곤하니 풀어진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의지도 좋지만 이렇게 잠깐 늘어지는 것도 참 좋은 일이구나…… 지금 노사님이 있었다면 분명히 날벼락을 쳤겠지만…….’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막힌 우물에 갇혀 있다가 환히 터진 곳으로 나오듯, 장건은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한 발을 내밀었다.
화악-
환한 빛이 장건을 감싸 안…… 기는커녕!
꽈당!
어느새 장건은 차가운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어, 어라라?”
장건은 일어나려다가 다시 넘어졌다.
쿠당탕.
“아하하하…… 내가 왜 이더지.”
머리가 빙글빙글.
다리는 흔들흔들.
“끄응.”
일단은 가만히 있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된다. 앉아 있을 때엔 잔잔한 물결에 떠 있었는데 지금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장건은 어질한 머리를 붙들고 고민했다.
“으응, 내가 어떠케 일어났떠라?”
일어나는 법을 잊어 버렸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방법을 알고 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러나면 돼썼는데?”
긁적긁적.
“어떠케 했더라…….”
장건은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전에는 누워 있다가도 허리를 퉁겨서 단번에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반쯤 주저앉아 있는데도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렇게 앉아 있을 때는…….
“아, 그러치! 손을 짚고 일어나면 돼.”
장건은 바닥에 손을 짚었다. 다리가 흔들거리고 힘이 없어서 팔에는 힘을 주었다.
쿵!
너무 힘을 주었는지 바닥에 손을 대고 있었는데 바닥이 꺼졌다. 땅에 손바닥이 박혔다.
“아이고.”
분명히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장건은 심각함을 느끼지 못했다. 외려 재미있었다.
일어나려다 말고 손을 빼어 옆에 보이는 작은 돌멩이를 집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처음 장건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홍오가 돌멩이를 부수는 시범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흐응?”
두 손가락만으로 돌멩이를 부수는 게 당시엔 참 신기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장건도 그것을 할 수 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할 수 있다는 건 안다.
손가락에 힘을 주고 돌멩이를 꾹 눌렀다.
안 된다.
단전에서 내공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삐질댄다.
‘이잉! 얘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장건이 배에 힘을 주었다. 오밀조밀 엮인 실타래가 아니라 엉성하게 엮인 실타래처럼 내공이 흘러나왔다. 속도도 일정하지 못하고 느려졌다 빨라졌다 하며 쓸데없는 혈도를 탄다.
그러다가 결국 어깨와 손을 타고 두 줄기의 경락으로 내공이 흘러들었다.
푸숙.
손가락이 돌멩이를 파고들었다.
투투툭.
돌조각과 가루가 떨어진다.
그땐 장건도 자기가 이렇게 무공을 배우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될 줄 몰랐었다.
왜 차를 마시다 말고, 일어나다 말고 이런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누가 뭐라든 상관없이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을 따름이다.
장건은 손을 털고 바닥을 짚고, 그리고 나무 탁자에 등을 기대어 일어서…… 려다가 또 넘어졌다.
쿠당.
“아이, 씨.”
조심조심.
이번엔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한 번에 밀쳐서 일어나…….
콰당.
앉아서 일어나기 힘드니까 엎드려서 일어나겠다고, 또 꽈당.
‘어쭈? 이런다고 내가 몬 이러날 줄 아라?’
중심이 안 잡혀서 쿠당, 손을 잘못 짚어서 콰당탕.
거의 일어섰다가 다리가 풀려서 쿠당탕탕.
탁자를 짚었다가 탁자가 부서져서 우당탕.
옷이 온통 흙 범벅이 되고 엉망이 될 때까지, 장건의 시련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멀쩡하던 장건이 갑자기 넘어지더니 일어나지도 못하고 허덕거린다.
“뭐, 뭐지?”
“갑자기?”
술에 취해서 못 일어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보이는 행동은 완전히 맛이 간 사람 같았다.
늘 빳빳하던 장건이 부러진 나무토막처럼 삐거덕거리면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공포스럽기도 했다. 사람이 사람 몸으로 보이지 않고 부러진 나무토막처럼 보이다니.
말리고 싶어도 섣불리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일어나려다가 흙바닥에 손을 박아 넣는다거나 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내공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음이 분명했다.
장건이 바닥을 구를 때부터 이미 대여섯 걸음이나 떨어진 곳으로 대피해 있던 중이었다.
이쯤에서 나설 수 있는 것은 오황이나 상달 정도뿐이다. 사실 상달도 조금 미덥지 못했다.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세 소녀는 오황을 쳐다보았다.
좀 말려 달라고.
오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오황은 그녀들의 눈빛을 다른 식으로 해석했다.
누가 보기에도 자랑스럽다는 듯, 매우 뿌듯한 얼굴로 오황이 말했다.
“내 예상대로였다.”
“……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 하고 또 다른 눈빛으로 세 소녀가 오황을 보았다.
오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너희들은 사람이 저 녀석처럼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느냐?”
물론 그렇진 않다. 당금 강호에서, 아니, 무림 역사상 장건처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설사 움직일 수 있다 쳐도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도 없을 터다.
그래도 사람을 두고 사람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다니! 완전히 장건을 비인(非人)이 아니라 불인(不人)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조금은 떨떠름한 세 소녀였지만 오황은 그런 사소한 것쯤 가볍게 무시했다.
“나는 이러한 가설을 세웠다. 저 녀석의 움직임은 상당한 부분을 내공에 상당히 의존해 있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그렇게 움직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사람은 근육과 뼈, 관절로 움직이기 때문에 동작에 한계가 있다. 팔을 내밀고 제자리에 선 상태로 상체를 움직이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때려 보라고 하면, 무슨 수를 써도 강하게 때릴 수 없다.
다리를 굽히고 허리를 회전하고, 직후 어깨를 당겼다가 굽힌 팔을 뻗는다, 는 일련의 동작들이 있어야만 제대로 힘이 실린다.
내가 기공이 깊은 사람은 내공을 이용해서 힘을 가해 줄 수 있다. 육체로 낼 수 없는 힘을 내공으로 배가(倍加)하여 큰 동작 없이 강한 힘을 낸다.
오황은 그 같은 이치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건이 저놈은 어떤 조화를 부렸는지 몰라도 내공을 이용해서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던 거지. 보거라, 내공을 제대로 쓰지 못하니 일어나는 것조차 못하고 있는 걸.”
양소은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조금 이상한데요?”
“뭐가 말이냐?”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다면 장랑은 아예 내공을 쓰지 못해야 하는 거 아닌 가요?”
제갈영이 얼빠진 얼굴로 장건을 보고 있다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누구 마음대로 장랑이야! 자꾸 그러면 난 정랑(情郞)이라고 부른다아?”
“시끄러우니까 꼬마는 가만히 있어라, 응?”
양소은이 제갈영의 머리를 누르며 오황의 대답을 기다렸다.
오황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분공산(紛功散)이다.”
“분공산이요?”
지켜보고 있던 굉료가 ‘호오. 분공산이라.’며 아는 척을 했다.
“산공독의 일종인데 내공을 완전히 흩어 버리는 게 아니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
“아하…….”
“내공을 잘 못 쓰는 데다 술까지 독하게 취했으니 평소처럼 움직이는 게 쉽지 않겠지.”
그 와중에도 장건은 넘어지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심하다 싶을 정도다.
백리연은 의아함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백리연이 오황에게 물었다.
“혹시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아무리 내공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대도 너무 심해 보여요.”
“그만큼 내공에 의존한 바가 크다는 뜻일 게요.”
오황도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독하긴 독하구나. 너희들 같으면 내공이 없고 술에 취했다고 일어서지도 못하겠느냐?”
오황의 말대로 굉장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황은 혀까지 찼다.
“쯧쯧쯧. 분공산을 쓰길 잘했군.”
혹여 아예 내공을 쓰지 못하도록 산공독을 썼다면 아무리 장건이라도 내공이 없으니 어떻게든 그냥 일어섰을 것이다. 지금 저러는 건 늘 그래 왔듯 내공을 써서 움직이려 하는데 그게 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걷는 걸…….”
“……그렇게 못 했던 거구나.”
양소은과 제갈영이 차례로 말을 잇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해가 되니, 한편으로 장건이 불쌍하기도 하다.
‘좀 미안하네…….’
왜 못 하냐고 남들이 책망하고 다그칠 일이 아니었다. 이 정도까지 몰아세워도 못 하는 걸 멀쩡한 때에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휴우.”
“하아.”
“히잉.”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소녀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 나왔다. 불쌍한 만큼 미안한 감정도 더해졌다.
몇 번의 탄식을 한 후.
“어르신?”
양소은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해 불안한 얼굴로 오황을 불렀다.
“응?”
“그럼 이젠 장 소협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이대로 지켜보고 있으면 되는 건가요?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
오황은 부드러운 얼굴로 양소은을 쳐다보았다. 양소은이 다시 물었다.
“네? 없나요?”
“…….”
“……?”
표정은 금방이라도 대답을 할 것 같은 표정인데 말이 없었다.
웃는 얼굴 그대로 오황은 멈춰 있었다.
세 소녀가 곧 오황의 생각을 읽었다.
‘예상대로였다더니!’
‘다음 계획 같은 건 없었구나!’
애매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 오황을 구해 준 것은 굉료였다.
굉료가 약간 화가 난 투로 외쳤다.
“뭘 하긴. 쟤는 저러라고 냅두고 일단 차려진 음식은 먹어야지. 저 음식을 만드느라 삼백칠십이 번의 불호를 외웠는데, 기껏 만든 음식을 식게 내버려 둘 텐가?”
☆ ☆ ☆
오두막에서는 장건만 빼고 잔치를 즐겼다.
맛있는 음식에 향기로운 술까지 곁들여져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작은 잔치다.
그런데 말소리가 없다.
냠…… 냠 쩝…… 쩝.
음식을 먹고 마시는 소리만 난다. 심지어는 눈알 굴리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할 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
잔칫상은 그럴 듯한데 분위기는 전혀 잔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장건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손으로는 음식을 집고 있는데 눈은 장건을 본다. 입에 음식을 넣으면서도 장건을 봐야 한다.
내공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오황도 그리 편한 인상은 아니다. 단순히 무공만으로 위험의 경중을 따지기에 장건은 너무 위험한 존재다. 워낙 예측이 불가능한 짓을 하기 때문이다.
방금도 일어나려다가 아무 연관 없이 멀쩡한 돌멩이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는데 또 무슨 짓을 할 줄 알겠는가!
돌멩이를 부술 공력으로 갑자기 뭘 던진다거나 하면 피해야 한다. 한눈을 팔고 있다간 아차 하기도 전에 머리통이 터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음식에 집중을 할 수 있겠는가!
먹다가 떨구고 젓가락질을 못 해서 음식을 떨어뜨리고…… 먹는 것보다 흘리는 게 많고…… 씹지도 않고 삼키거나, 혹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음식을 계속해서 씹고 있다거나…….
참다못한 굉료가 소리쳤다.
“아!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맛없게들 드시오!”
굉료가 욱하고 성질을 부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자면 음식의 맛 따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느 순간부터 장건의 움직임이 굉장히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 느릿느릿, 혼자서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처럼 보는 이들을 더욱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먹는 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분위기가 전쟁 나기 일촉즉발인지라 공기가 너무 답답했다. 숨이 막힐 지경이어서 참을 수 없었던 백리연이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뭔가 말은 해야겠는데 장건에게 신경을 집중하느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주 잠깐 눈을 돌린 백리연은 굉료를 보았다. 굉료는 성질이 나서 술이 담긴 단지들을 죄다 자신의 옆에 두고 혼자서 신나게 들이키고 있었다.
벌컥벌컥!
거의 퍼붓듯 술을 마시는 굉료에게 백리연이 물었다.
“대사님은 저녁에 소림으로 돌아가셔야 할 텐데 그렇게 드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감당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한줄기 청아한 백리연의 목소리가 적막을 깬 것은 실로 시의적절(時宜適切)했다.
굉료는 흐뭇하게 대답했다.
“와하핫! 빈승은 땡초라서 상관없…….”
그 때 장건이 쿠당하고 넘어졌다.
백리연이 번개처럼 장건 쪽을 보았다.
아무도 굉료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나름 어디 가서 절대로 무시당할 배분이 아닌 굉료였다. 아무리 겉치레를 따진다고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땡초 운운하고 말을 던졌으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이건 뭐, 혼자서만 뻘쭘하게 웃으면서 병신 같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부글부글.
굉료의 속이 끓어 올랐다.
음식도 정성껏 맛있게 만들었고 그만큼 고생도 했다. 황제의 끼니때에 올리는 수라보다도 더 맛이 있을 거라 자신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의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 두어 시진 내내 요리를 했는데, 요리가 맛있다고 칭찬하기는커녕 그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조차 해 주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괴감은 이 자리를 기획한 오황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졌다.
‘준비는 다 할 테니까 재밌게 한탕 놀아 보자더니!’
굉료가 오황을 째려보았다.
워낙 다혈질인데다 고수인 굉료이다보니, 미움이 그대로 드러나서 살기처럼 쏘아졌다. 묵직한 공기 사이로 날카로운 바늘 같은 것이 오황을 쿡쿡 찔렀다.
오황이 눈치채고 굉료를 쳐다보았다.
“아, 왜!”
굉료도 한마디 했다.
“그러게 왜 분공산 따위를 썼습니까! 그냥 산공독이나 쓰지!”
굉료의 기파(氣波)를 받은 오황은 기분이 나빠졌다. 인상을 확 쓰고 똑같이 기운을 쏘아 냈다.
“필요하니까 그랬지! 아니, 왜 나한테 성질을 부려? 이게 내 탓이야?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야, 대사?”
“호오, 그렇습니까? 이 몸이 워낙에 땡초라서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는 않습니다만!”
홍오에게도 지지 않고 덤볐던 굉료였는지라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거 재밌겠네!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까 순 핫바지로 보이는 모양인데!”
두 고수가 내뿜는 기파가 허공에서 어지러이 얽혔다. 살기는 아니지만 투기와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투툭, 찌이익.
옷이 뜯어지는 미묘한 소리가 허공에서 울렸다. 기파가 휘몰아치면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휘이이이-
옷이 날리고 서서히 분위기가 고양되어 간다. 가까이에 있던 세 소녀와 상달은 피부가 따끔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그, 그만들 하세요!”
제갈영이 비명을 질렀지만 오황과 굉료는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그 순간 엉거주춤 반쯤 일어나 있던 장건이 움찔했다.
두 고수가 뿜는 기파가 장건의 감각을 건드린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몸에 와 닿는 기파를 위협적이라고 생각해서 저절로 반응했다.
어쨌거나 장건의 반쯤 풀려 있던 두 눈에 약간의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장건의 발아래에서 한순간 소용돌이가 일었다.
화―악!
장건의 옷이 순식간에 팽팽하게 부풀었다. 장건이 공력을 일으킨 것이다!
“으아아앗!”
“허엇!”
“시작이다!”
오황과 굉료 때문에 약간 시선이 분산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장건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공을 배운 무림인들이다.
공력을 일으킨 장건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게다가 분공산 때문에 내공을 제대로 조절하지도 못한다! 그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피햇!”
“위험해!”
파팟.
파파팟!
오황과 굉료를 제외한 넷은 제각각 긴박하게 외침을 내지르면서 공력을 일으키고, 공력으로 몸을 보호하며 알고 있는 신법을 최대한 활용해서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장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파에 대응해 본능적으로 방어를 하려 한 것뿐.
“…….”
결과적으로는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애써 차려 놓은 음식들 위에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는 중이었고…….
일부 음식들은 기파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날려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굉료의 눈에는 그저 허탈함이 감돌뿐이고…….
“…….”
오황은 뿜던 기세를 멈추었다. 굉료는 기세를 거둔 지 이미 오래였다.
“어흠흠? 이보게…… 대사?”
“…….”
말없이 난잡하게 된 음식들을 보는 굉료의 눈에서 마치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았다.
“…….”
오황이 눈치를 주자 상달이 얼른 나섰다.
상달은 어지럽혀진 탁자 위에 손을 뻗어 고기를 한 점 집었다.
“후우 후우, 이거 그래도 어떻게 살살 잘 불면 먹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요? 어이구, 이 맛있는 거 흙 좀 묻었다고 못 먹을 건 아니잖아요.”
침 발린 그의 말도 굉료에게는 별로 위안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굉료의 눈에 한순간 불이 켜진다 싶더니 번들거리는 머리통 옆으로 시퍼런 핏줄들이 돋아났다.
꿍!
오두막 전체가 흔들릴 만한 진각까지 밟고서 몸을 웅크린 굉료가, 양손을 탁자 밑으로 넣었다.
그리고는 누가 말릴 틈도, 그럴 시간도 주지 않고…… 굉료는 그대로 잔칫상을 엎어 버렸다.
“에라이! 다 처먹지 마―! 먹지 말아 버려!”
굉료가 탁자를 힘껏 밀어 올림과 동시에 음식과 음식이 담긴 그릇들, 심지어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비싼 술이 담긴 술 단지마저도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운명을 다했다.
와장창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