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추측이다. 야인 전사들에게 북쪽이 심상치 않단 얘길 들었으니까.”
“하… 어쩐지. 그날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난 또 오늘 아침에 새로 들어온 전령이 가져온 소식이라도 알아내신 건가 했소.”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트루드가 다시 이안을 돌아보았다.
“그걸 미리 아시고서도, 왜 아직도 안 떠나고 계셨소?”
“그러는 너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뻐끔거린 트루드가, 이윽고 하나둘씩 여관을 떠나는 용병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술잔을 들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북부인인 모양이오. 머리로는 저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발이 안 떨어지는군, 시벌….”
“흠….”
이안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떠나는 용병들 사이에 북부인도 있긴 했지만, 어쨌건 남는 자들은 전부 북부인이었다.
돈벌레처럼 굴던 것들이 막상 북부에 문제가 생기니 남겠다니.
그야말로 모순된 짓거리였지만, 이안은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내뱉었다.
“들은 얘기나 해 봐.”
“먹구름과 어둠이 장벽을 집어삼켰다더군. 그게 첫 파발이 들고 온 소식이오. 그자 말로는 일식이 일어나는 것 같았더군. 그리고 장벽 너머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수없이 들렸다고 했댔소. 요새를 나와 말을 몰고 달리는 내내 계속. 장벽이 무너지는 걸 직접 보진 못한 모양이지만… 아마도… 시벌….”
술을 벌컥 들이킨 트루드가 덧붙였다.
“옛 북부 왕국들의 전설이 전부 사실이었던 거요. 정말 거인 왕국의 재건을 꿈꾸는 망자 군단이 있었던 거지. 아… 북부의 초인이여….”
마지막엔 혼잣말처럼 탄식한 트루드가 다시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이안은 자신의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장벽 요새가 얼마나 버텼을지는 몰라도, 지금쯤이면 함락되고도 남았으리라.
“오늘 아침에 온 전령이 무슨 소식을 들고 온 건진 모르지만, 좋은 소식은 아닐 거요. 낯이 당장 뒈질 것처럼 파랬다니까.”
“곧 알게 되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점을 떠나는 용병들을 눈에 담던 이안의 눈빛이, 이내 묘해졌다.
“…어쩌면 바로 알게 될지도 모르겠군.”
“……?”
고개를 갸웃하던 트루드도 다시 주점의 문을 바라보았다.
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장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짐을 꾸린 용병들을 경멸하듯 돌아보던 그의 시선이, 이윽고 이안에게서 멈췄다.
이안의 행색을 훑어본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혹시 엄정한 여신의 성전사이자 거인 여왕의 징벌자인 이안 호프 경이 맞으시오?”
“……?!”
트루드를 비롯한 주변의 용병들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심드렁한 얼굴로 기사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부르는 걸 보면, 교회에서 나온 작자인가?
“맞소만. 기사가 아니니 경이라 부르실 필요는 없소.”
기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엄정한 여신께서 인정하셨는데 서임 따위가 대수겠습니까. 반갑습니다, 이안 경. 저는 자치령 2군단에 소속된 기사, 밀드레드 아니스라고 합니다.”
“반갑소, 밀드레드 경. 그런데, 무슨 일로?”
“경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만….”
말을 흐리며, 밀드레드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용병들이 눈을 돌렸다.
방금 내려와서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시발….
생각하며 작게 한숨 쉰 이안이, 트루드의 술병을 집어 들며 일어섰다.
“올라갑시다.”
***
“떠나지 않으시는 것 같아 안심했습니다. 역시 엄정한 여신의 성전사께선 다른 용병들과는 다르시군요.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꼬리를 흔들어 대더니, 정작 정말 북부에 위기가 닥치니 죄다 꼬랑지를 말고 도망치는 꼬락서니라니-”
“나도 다를 바 없는 용병이오.”
이안은 자리에 앉자마자 떠들어대는 밀드레드의 말을 잘랐다.
밀드레드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그가 잔에 술을 따르며 덧붙였다.
“내가 남아 있는 건 돈 될 일이 생길 것 같아서일 뿐이지. 지금 경과 마주 앉아있는 것도, 그래서고.”
밀드레드의 입가에 억지로 빚은 미소가 번졌다.
“하, 하하… 들은 것처럼 단호한 분이시군요.”
이안이 웃음기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얘긴 어디서 들으셨소?”
“교회에서 들었습니다. 페르마 사제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거인 왕국 최후의 여왕을 참수한 징벌자가 이곳에 있으니, 도움을 청하라고요. 엄청난 업적을 이룬 분이니 백인대에 버금가는 전력이 되어 주실 거라 했습니다. 용병들을 이끌 구심점이 필요하니까요.”
비로소 이안의 입가에 헛웃음이 번졌다. 아무래도 페르마 사제가 원한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말이 도움이지,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에 그를 밀어 넣으려는 게 분명했으니까.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퀘스트만 있다면야.
‘다음 전리품 정리도 그 사제를 찾아가야겠군. 거인 머리라도 들고 갈까….’
술잔을 들며 이안이 내뱉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오. 나 같은 일개 용병에게도 손을 벌려야 할 만큼.”
밀드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미소를 지었냐는 듯, 그의 낯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젊은 기사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감정선이 들쭉날쭉한 언행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해서일 터였다.
“…혹시, 북쪽의 상황이 어떤지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대충은. 장벽이 어둠에 먹히고, 망자들이 울부짖고….”
“그렇다면 대화가 편하겠군요. 오늘 들어온 소식입니다. 장벽을 뒤덮었던 어둠이 남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너머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상태는 아니겠죠. 앞으로 어둠에 덮일 도시와 요새들도 그럴테고요. 그러니까-”
“본론만.”
이안이 말을 잘랐다.
“본론만 간결하게 하시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나도 아니까.”
“…울라프 대공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 부정한 것들이 트라벨가 인근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라고요. 해서 용감한 겔루드 장군이-”
이 자는 말을 짧게 하는 방법을 아예 모르는군.
이안은 한숨을 삼켰다.
하긴, 이런 미친 명령을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면 아무도 설득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러니까 경의 말은.”
술을 한 모금 마신 이안이, 밀드레드의 장광설을 잘랐다.
“트라벨가가 아니라 길목인 벨리움 요새에서 망령 군단을 막을 거고, 병사가 부족하니 함께 싸우다 죽을 용병들이 필요하단 말씀이시군.”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는 겁니다. 성벽이 함락될 것 같으면 퇴각할 거고요. 어쩌면… 망자들보다 지원군이 먼저 도착할지도 모르죠.”
잠시 굳어졌던 밀드레드가 이윽고 덧붙였다. 목소리가 공허한 건, 그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이안은 낮게 실소했다.
사실 이 명령 자체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 대공은 게임에서도 같은 명령을 내렸었으니까.
‘그래놓곤, 정말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을 줄은 몰랐다는 식이었지. 그 늙은 대머리 새끼.’
이안의 표정을 오해한 듯, 밀드레드가 재빨리 덧붙였다.
“이미 출정 준비를 거의 끝마쳤습니다. 늦어도 내일 오후에는 본대가 출정할 겁니다. 몇 시간 뒤에 용병들에게도 동원령을 내릴 예정이지만, 그들이 도망치는 것까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이안 경께서 이룩한 업적은 들었습니다. 분명 큰 힘이 되어 주실 겁니다. 뜻을 함께할 용병들을 모아서-”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는 이안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무려 두 개였다.
지원군 모집. 벨리움 항전.
루카스가 주던 퀘스트인데, 이런 식으로도 받을 줄이야.
생각하며 퀘스트 창을 닫은 이안은, 아직도 떠들고 있는 밀드레드를 바라보았다.
불안을 잊기 위해 필사적인 젊은 기사.
“밀드레드 경.”
“루 솔라께서도 우리를- 예?”
“경도 함께 가시오?”
“…예.”
“그럼 헛소리 그만 하시오. 경도 이게 죽으러 가는 거랑 다를 바 없단 건 이미 아시잖소.”
“…….”
밀드레드가 입을 몇 번 달싹였다.
이번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피식한 이안이 술잔을 들었다.
“그러니 차라리 현실적인 제안을 하시오. 살아 돌아오면 받게 될 보수라던가.”
밀드레드의 눈이 커졌다.
비로소 숨을 내쉰 그가 말했다.
“이안 경께는 최소한 제국 금화 오십 개를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경이 모집한 이들에게도 스무 개씩 드리겠습니다. 모두, 공평하게.”
“최소라면 더 받을 수도 있단 건가?”
“공적에 따라서 충분히요.”
“그래… 하지만 진짜 공평하려면 전부 오십 개씩 주셔야지. 어차피 살아 돌아와야 받을 수 있을 텐데.”
“맞습니다. …그렇게 하죠. 교단의 지원이 있으니, 허락될 겁니다.”
“그리고?”
“또요…? 더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트라벨가의 병기고에는 제국 강철로 만든 물건들이 많다던데.”
“…그건 군에 요청해야 될 일인데요.”
“어차피 내가 죽으면 없던 일이 될 계약인데. 그 정도도 자신 없으시오?”
“…….”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말문이 막힌 표정이 된 밀드레드가, 이윽고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이안 경뿐 아니라, 살아남은 모든 용병이 하나씩 받을 수 있도록요. …또 이 조건을 붙이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훌륭하군. 이제 마지막 절차만 남았소.”
“마지막… 절차요?”
“방금 한 계약을 문서로 써 오시오. 군단의 인장이나 교단의 인장까지 찍어서.”
“…….”
이렇게까지 하리라곤 예상 못한 듯 밀드레드가 입을 뻐끔댔다.
이안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는 귀족이나 교단과의 구두 계약은 전혀 믿지 않았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의 계약은 특히나.
방문이 벌컥 열린 건 그때였다.
“또 초대할 때 뜸 들이기만 해 봐. 이안한테 다 이를….”
샬롯에게 내뱉으며 들어서던 테사이아가 멈칫했다. 안대 두른 얼굴을 밀드레드 쪽으로 돌린 그녀가 덧붙였다.
“손님이 있었네.”
“…….”
밀드레드가 당황한 듯 둘을 바라보는 가운데,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약서 준비해 오시오. 의뢰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니까.”
“…아!”
화들짝 일어선 밀드레드가 곧바로 방을 나섰다. 다급하게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테사이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저거?”
“의뢰인이다.”
그녀를 지나쳐 느긋하게 복도로 나서면서 이안이 내뱉었다. 이번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이안은 어디 가?”
“식사하러. 둘 다 따라와라.”
***
어느새 주점은 고요했다.
트루드를 비롯해 말없이 앉아 있던 몇몇이, 이안의 턱짓에 두 말 하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우리, 괜찮은 걸까요?”
음식을 놓으며 여급이 물었다.
그녀를 흘깃 올려다본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여기 잘 붙어 있으면, 죽지는 않겠지.”
“그렇겠죠?”
“아마도.”
여급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몸을 돌렸다. 그녀가 주방 너머로 멀어지자, 테사이아와 샬롯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거리 분위기 장난 아니야. 다들 축 쳐져서, 관문은 바글대고 병사들도 엄청 바쁘게 움직여.”
“출진을 준비하는 것 같던데. 이해할 수가 없군.”
“그 이해 안 되는 짓에, 내가 동참하게 됐다.”
스튜를 퍼먹던 이안이 툭 내뱉었다.
샬롯의 미간이 좁아졌다.
“뭐라고…?”
“방위군을 따라 벨리움으로 갈 거다. 용병들을 모아서.”
“벨리움이라면… 그때 우리가 지나친 그 계곡?”
“그래. 너희는 자세히 알 필요 없어. 너희 둘은 이번 일에서 빠질 테니까.”
이어진 말에 샬롯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빠지다니. 네가 가는데 내가 어떻게 빠진단 말이냐?”
“맞아. 우리 셋은 한 몸이잖아.”
“한 몸은 너희 둘이지, 내가 아니라.”
헛웃음을 지은 이안이 나무 수저를 테사이아를 가리켰다.
“몇이나 살아남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중 누군가는 이 녀석이 싸우는 걸 보게 될 거다. 그럼 뒷수습이 피곤해져.”
“그럼 귀쟁이만 두고 가는 건….”
“알 텐데. 너희 둘은 한 몸이야. 네가 곁에 있어야 내가 안심하고 싸울 수 있을 거다.”
“…….”
샬롯의 입이 닫혔다. 이안이 테사이아를 돌아보았다.
“너도 샬롯과 있는 게 더 안심될 테고.”
“사실 야옹이가 나 없인 안 되는 거지만.”
“그러니까 당장 짐을 싸라. 곧바로 야인 정착지로 가. 그 녀석들은 반겨줄 거다. 그리고 정착지를 함께 지켜. 벨리움이 뚫리지 않더라도, 성벽을 넘어가는 것들이 나올 수 있으니까.”
“그냥 여기 조용히 있으면… 읍.”
테사이아의 입을 틀어 막은 샬롯이 그대로 그녀를 들고 일어섰다.
“그렇게 하겠다. 다만… 무사히 돌아와 주면 좋겠군. 반드시.”
피식한 이안이 말했다.
“걱정 마라. 네 꼬리를 안고 죽진 않을 테니까. 올라가는 김에, 트루드도 내려오라고 해.”
“…꼬리 때문에 한 말은 아니었다.”
나지막이 덧붙인 샬롯이, 반항을 포기한 듯 축 늘어진 테사이아를 든 채로 몸을 돌렸다.
이젠 걱정을 다 해 주네.
낮게 실소한 이안은 다시 묵묵히 앞에 놓인 음식을 입에 넣었다.
트루드가 배를 긁으며 내려온 건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나서였다.
잠들었다 깬 듯,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부르셨소…?”
빈자리에 걸터 앉은 그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씹던 고기를 삼킨 이안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계속 남을 거냐?”
“…그러니 아직 있는 거요.”
“병사들이 벨리움 요새로 떠난 거다. 아마 오늘 오후부터 물자부터 옮기기 시작할지도 모르지.”
“벨… 리움 말이오?”
“그래. 아마 도시에 남은 용병들도 동원할 거야. 그러니까 너한테, 아니, 너희에게 남은 선택지는 세 개야.”
스튜를 우물대며, 이안이 세 손가락을 펼쳤다.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을 이었다.
“하나는 헐값에 따라가거나, 또 하나는 밤중에 튀거나.”
“…마지막 하나는 뭐요?”
“나한테 미리 자원해서 함께 가거나.”
“……?!”
“위험할 거다. 난 너희 사정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싸울 거니까. 대신….”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살아 돌아오면 금화 오십 개와 제국 강철로 만든 병장기를 손에 넣을 수 있지.”
“제국제라고…?”
“선택은 네 몫이야.”
트루드의 입이 벌어졌다. 잠은 이미 진작 달아난 얼굴이었다.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이안은 느긋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그가 다시 트루드를 마주 본 건, 앞에 놓인 접시를 전부 깨끗이 비운 다음이었다.
“어쩔래?”
술로 입을 헹군 이안이 물었다. 그때까지 수많은 내적 갈등에 휩싸여 있던 트루드가, 이윽고 내뱉었다.
“대장… 을 따르겠소.”
“좋아.”
주점의 문이 열린 건, 이안이 싱긋 미소 지은 그때였다.
숨을 헐떡이는 밀드레드가, 손에 든 서류를 내밀었다.
“계약서… 가져 왔습니다.”
오늘은 타이밍이 잘 맞는군.
일이 잘 풀릴 징조인가, 생각하며 트루드를 마주 본 이안이 턱짓했다.
“보이지? 그럼 당장 일어나서, 도시에 남은 놈들에게 죄다 말을 전해라. 살아 돌아오는 놈들은, 모두 같은 보수를 받게 될 거야. 숫자가 많을수록 살아 돌아올 확률도 높아지겠지.”
“……! 알겠소!”
눈을 치켜뜬 트루드가 우당탕, 의자를 밀치며 달려 나갔다.
그 사이 느긋하게 일어나 밀드레드에게 다가간 이안이, 그의 손에서 받아든 계약서를 차근히 눈에 담았다.
샬롯과 테사이아가 주점으로 내려온 건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래, 훌륭한 계약서군.”
비로소 계약서를 말아 든 이안이 밀드레드를 마주 보았다.
“내 친구 둘을 북문 밖으로 먼저 내보내 주실 수 있으시겠소, 밀드레드 경?”
“…예. 못 할 것 없지요.”
밀드레드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이안이 비로소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럼 내일 봅시다.”
용병들에게도 동원령이 내려진 건, 마차 여러 대가 북부 관문을 넘은 오후였다.
그날 밤 남아 있던 용병들 몇이 몰래 성을 빠져나갔다.
다음 날, 이안은 스무 명 남짓한 용병들을 이끌고 북문을 나섰다.
벨리움으로 향하는 행렬의 가장 끝 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