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용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웃음을 삼킨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 비슷한 거긴 했었지.”
“비슷한 거라니… 고약한 농담을 즐기는구나. 날 여러 번 서운하게 해.”
말과 달리 전혀 기분 나쁜 어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르케아스가 베일을 완전히 벗었다.
빛이 바랜 듯한 금발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얼굴과 황금색 눈동자.
…이래서 얼굴을 가렸군.
“조금 덜 눈에 띄는 외모로 변하시는 게, 가리는 것보단 편하지 않으시겠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의태하면 불편하단다. 주문과 몸이 이 형태를 기억하고 있거든. 그러니 처음부터 다른 모습을 택했어야 하지만….”
이안의 건너편에 앉으며, 아르케아스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어린 나이엔, 누구나 눈에 띄는 걸 즐기는 법이잖니.”
“지금은 꽤 불편하시겠소.”
고개를 대충 주억거리며, 이안이 남은 빵을 입에 넣었다.
아르케아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내 이 모습을 보고 한 첫 질문이 그런 거라니. 역시 넌 재미있구나. 보통은 정말 내가 소문대로 황금이 가득한 둥지를 가지고 있는지 묻거나, 성별을 확인하려 들거든.”
“…그런 질문에도 대답해 주시오?”
“물론이지. 소문이 아예 거짓은 아니나 그런 취미는 수백 년 전에 버렸으며, 용은 성별이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원한다면 어느 쪽이든 될 수 있다는 것도, 전부 알려 준단다. 지금 이 몸이 어떤 성별인지도.”
“친절하시군….”
친절한 절대자라. 적어도 이 세계에선 더없이 모순된 말이었다.
강자의 아량,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리라.
그도 아니라면 오래 산 자들이 늘상 그렇듯, 그저 떠들어 대는 걸 즐기는 것일 뿐일지도 몰랐다.
탁상에 팔꿈치를 얹은 아르케아스가 손바닥으로 턱을 괴며 이안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손가락이 느긋하게 까딱였다.
“널 보고 있자니, 날 보던 인간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 것 같구나.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아.”
“알고 있소. 그러니 내가 깨어나자마자 오신 거겠지.”
놀랍지도 않다는 듯 대꾸한 이안이, 물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는 용을 앞에 두고도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어차피 긴장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적어도 그게 아르케아스를 기쁘게 한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건 채, 그가 말했다.
“그러니 너도 내 질문들에 친절하게 답해 주지 않으련? 내가 네 목숨을 구한 것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
이안이 잔을 내려놓으며 그를 마주 보았다.
“나도 귀하를 구한 건 마찬가지 같소만.”
“물론 그렇지.”
아르케아스가 로브의 소매 속으로 손을 넣었다. 곧 날이 부러진 검이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단죄의 검. 자루가 이안 쪽으로 향하게 내려놓은 그가 덧붙였다.
“난 그 이후를 말하는 것이란다.”
“…날 발견한 게 귀하셨군.”
“그 폭발을 막아내고 뒤를 보니, 저 멀리 지원군이 보이더구나. 해서 나머지는 그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네 뒤를 쫓았지.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더구나. 나는 아쉽고, 또 슬펐지. 그때였단다. 네가 또 내게 놀라움을 선사한 건.”
이안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그가 미소 지었다. 그 거대한 백금룡이라고는 믿기 힘든 인간다운 감정이 묻어났다.
“네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네 육체는 그토록 처참한 몰골이 되어서도, 끝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더구나. 기적적인 일이었지.”
“…….”
능력치와 스킬을 찍은 보람이 있었네.
태초의 생명력은 잃은 생명력에 비례해 회복력이 높아졌다. 그때는 죽음 직전이었을 테니, 효과도 가장 강했으리라.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의 귓가로 아르케아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쩌면 네가 품은 그 혼돈 덕분일지도 모르겠군. 혼돈의 힘 역시 널 살리려 애쓰고 있었으니.”
“…….”
이안의 눈매가 설핏 꿈틀댔다. 하긴, 그의 몸속에 자신의 마력을 잔뜩 밀어 넣었던 존재였다. 그가 품은 혼돈 따윈 진작 눈치챘으리라.
그보다 뜻밖인 건 혼돈력이었다.
그를 살리려 했다니.
‘마력도 신성력도 될 수 있는 힘이니까….’
생명력이 될 수도 있었던 건가.
이안은 문득 악몽을 떠올렸다. 그를 중심으로 번지던 보랏빛 균열.
그 역시, 그가 품은 혼돈력이었던 모양이었다. 공허의 존재로부터 그의 의식을 지킨 것이리라.
이안의 눈빛 변화를 즐기듯 응시하던 아르케아스가 덧붙였다.
“하지만 힘에 부쳐 보였단다. 그대로 두었다면 너는 끝내 죽었을 거야. 해서 나도 조금 힘을 보탰단다. 네 회복력이 죽음을 앞지르도록.”
“교회로 날 옮긴 것도 귀하셨군… 의문이 풀렸소. 왜 여기서 눈을 뜬 건가 했거든.”
“뜻밖이구나. 네가 바로 알아챌 줄 알았건만. 저 겁 많고 엉덩이 무거운 자들을 움직일 이는 많지 않잖니.”
“하긴. 그건 그렇소만….”
“내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 줄 생각이 조금은 들었으면 좋겠구나. 보아하니, 넌 말을 길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만.”
그쪽은 말을 길게 하는 걸 아주 좋아하시고.
생각하며 피식한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알겠소. 그 후에 내 물음에도 답을 주신다면.”
“흥정을 잘 하는구나. 그리하마.”
“그래서, 뭐가 그리 궁금하시오?”
“가장 궁금한 건… 그래. 굳이 표현하자면 네 비법이란다.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았지만, 너와 같은 존재는 처음 보았거든.”
아르케아스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여러 신들의 총애를 받는 마법사라니. 심지어 혼돈까지 품고 있지. 그런데도 영혼은 전혀 오염되거나 물들지 않았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니?”
“포괄적인 질문이시군…. 내 영혼이 오염되지 않는 이유는….”
이안은 잠시 턱을 긁적였다. 그의 영혼은 다른 세계에서 왔으며 육신은 게임 캐릭터였다는 말이나. 그래서 아마도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타락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란 대답은, 물론 할 수 없었다.
사실 그게 정확한 이유인지도 불분명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소. 혼돈의 파편을 품고 있어서거나, 정신력이 강하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혈통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소. 내 몸에는 고대인의 피가 흐르니까.”
“호오… 고대의 혈통이라…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고대인의 피가 흐르지만, 너는 그보다 훨씬 진하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정말 타고난 것인가… 그래… 네겐 당연한 일이니 오히려 이유를 알 수 없을 수도 있겠지. 아쉽구나….”
홀로 중얼대며 결론을 내린 아르케아스가, 이윽고 작은 탄식을 흘렸다.
이안이 피식댔다.
“백금룡께서 아쉬우실 이유가 있소? 그 무엇도 귀하의 영혼을 오염시키진 못할 것 같은데.”
“대답하자면, 아니란다. 물론 용의 영혼은 단단하며 고결하지. 그러나 무한한 시간을 이겨 낼 수는 없단다. 오히려….”
아르케아스의 미소가 씁쓸해졌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기에, 모든 용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광기에 물들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대륙의 이변을 느꼈을 때, 거의 모든 동족들이 대륙을 떠났지. 타락과 광기가 빨리 찾아오게 될 것이 두려웠던 게야.”
“그럼 귀하께서도 떠나시면 되지 않소?”
“나는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으리라 여겼단다. 그저 그 순간을 유예할 뿐이겠지. 새로운 낙원을 찾는다 한들, 끝내 벗어날 순 없을 것이야. 타후므리트가 그랬듯….”
금색 눈동자가 허공을 훑었다.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기도, 예정된 미래를 헤아리는 것 같기도 한 흐린 눈빛이었다.
“그는 본래 아주 냉철하며 고고한 푸른 용이었지. 그런 그조차도 고작 사랑이란 광기에 물들어 타락했단다. 나 또한 언젠가는 그리되겠지. 예상치 못한, 아주 하잘것없는 이유로.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고.”
그가 다시 이안을 마주 보았다.
목소리에 초연함이 감돌았다.
“나는 이번에 너무 많은 힘을 소진했단다. 오염된 마력도 아주 많이 받아들였지. 그러니 정화의 시간을 가져야 한단다. 회복하는 게 녹록지는 않겠지. 마력의 황혼기잖니. 꽤 긴 시간이 필요할 테고, 함께 축적되는 독도 빼내야 할 거야. 어쩌면 그 과정에서 영혼에 흠집이 생길지도 모르지.”
이안의 낯이 설핏 굳어졌다.
둘 뿐인 줄 알았던 용이 사실은 셋이었지만. 어쨌건 다시 둘만 남았다. 그중 하나는 어딘가의 지하에 봉인되어 있으니, 현재로서 남은 용은 아르케아스뿐인 셈이었다.
그마저 미쳐 버린다면, 엄청난 희생을 초래하리라.
솔직히 이자와 싸워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지금도 전혀 들지 않았다.
“…루 솔라께 도움을 청하시면 될 것 같소만.”
“찬란한 여신께선 돕지 않으실 거란다.”
“귀하는 교단의 성자이자 신의 사자가 아니셨소?”
“그래서 이렇게,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아량을 베풀고 계시잖니?”
아르케아스가 느긋하게 양팔을 펼쳤다.
“신들은 용을 좋아하지 않으신단다. 균형을 파괴하는 존재로 여기시지. 과거를 돌이켜 보면, 틀린 말도 아니고. 내가 이번 일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동족이 관련되어 있었던 덕분이란다. 그게 아니라면, 신들이 나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으셨겠지.”
천벌이라도 내리는 건가.
하긴, 타후므리트가 자신의 권역을 형성한 이유가 하나 뿐일 리는 없었다.
생각하며, 이안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결국 또 설정 놀음이었다.
속내를 읽은 듯, 아르케아스가 미소 지었다.
“내 질문은 이제 거의 끝났단다. 하나. 둘. 어쩌면 세 개 정도.”
대답에 따라 질문의 숫자가 달라진단 건가.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본론만 짧게 해 주시오. 귀하의 호의에 따른 친절은, 이제 거의 다 닳아 없어지고 있소.”
“저런. 내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았나 보구나. 그래, 하긴.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지.”
아르케아스가 슬쩍 이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네 영혼은 오염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신들의 손길도 전혀 닿지 않았더구나. 이유가 있느냐?”
“그 누구도 섬길 생각이 없기 때문이오.”
“찬란한 여신이라 할지라도?”
“…여신께서 듣고 계실지도 모르오만.”
“걱정 말거라. 신들은 지금 너와 나의 대화를 엿듣지 못해. 내가 그분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거든. 너는 지금 태양 옆의 반딧불인 셈이란다.”
반딧불까지야…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선선히 대답했다.
“나는 이미 루 솔라의 제안을 거절한 바가 있소.”
“호오… 그럼 앞으로도?”
“그렇소. 그 누구도.”
“그렇다면 공허는? 잊힌 고대의 신들이라면 네게 달콤한 속삭임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만.”
“그것들은 죽여야 할 대상이오.”
“혼돈의 진리와 비의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그 대가로 다들 돌아 버리더군.”
“그래… 과연… 너는 마법사이지만 마법사가 아니구나. 그야말로 너다워.”
아르케아스는 이안이 내뱉는 말의 진위를 즉각적으로 판가름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안이 짧게 코웃음 쳤다.
“말씀하신 질문 횟수는 이미 넘은 것 같소만.”
“그래. 이제 네게 제안할 것만 남았구나. 이 말까지 하게 되리란 기대는, 사실 그리 크지 않았는데.”
“제안…?”
이안은 여전히 그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사고의 전개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용이란 본래 죄다 이런 존재들인지도 몰랐다.
이안의 시선을 지레짐작한 듯, 아르케아스가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염려 말거라. 네가 거절한다 해도 강제하지 않을 것이며, 탓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을 테니까. 나는 그저 제안하려는 것뿐이란다. 그러니 들어보지 않겠니?”
그 순간 이안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백금룡의 제안.
그의 이야기를 듣겠다 수락하면 완료되는, 간단한 퀘스트였다.
‘또 조건부 퀘스트인가.’
하지만 이안은 이것이, 아주 많은 조건을 달성해야만 비로소 해금되는 퀘스트이리라 직감했다.
앞선 문답만으로도 근거는 충분했다.
또 다른 연계 퀘스트의 시발점이기도 하리라.
그런 생각들과 달리 무표정을 유지한 채, 이안이 입을 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소만, 내 본업은 용병이오.”
“합당한 보상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겠구나.”
“바로 그렇소. 아무리 귀하라 해도, 나는 의뢰에 걸맞은 보상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소.”
“이런… 무게추가 협상을 시작하기 전부터 기울어졌구나. 나는 이미 가진 패를 많이 보여 줬으니.”
말과 달리, 이번에도 아르케아스는 전혀 기분 상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안의 대답에서 희망을 본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귀하의 의뢰 내용을 자세히 듣기 전에, 나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있소. 보아하니 귀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오.”
“중간중간 물은 건 치지도 않는구나. 그래. 그 뻔뻔함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 순서대로 말해 보렴.”
“나는 귀하와 함께 싸웠소.”
“그렇지.”
“그러니 타후므리트의 유해에 대한 소유권은, 내게도 일부 있다 할 수 있소. 거기다 나는 죽다 살아나기까지 했잖소?”
“…….”
아르케아스가 순간 눈을 깜빡였다.
잠시 입술을 움찔댄 그는, 곧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용의 앞에서 다른 용의 유해를 내놓으라 하다니! 내 수많은 인간을 보았지만, 정말 너 같은 인간은 처음이다. 넌 정말 나를 조금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
그게 저렇게까지 웃을 일인가.
이안은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아르케아스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덧붙였다.
“그래서, 얼마나 주실 거요?”
아르케아스의 웃음이 커졌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지독하다는 말을 종종 듣지 않느냐? 너라면 난쟁이나 오크들조차 혀를 내두르겠구나. 그래… 본래는 네게 작은 보답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말을 듣고 보니, 그걸로는 부족해 보이네.”
이윽고 내뱉은 아르케아스가 이안을 마주 보았다.
“그의 머리는 이곳에 남길 것이다. 북부가 용의 시련을 이겨 냈다는 증표로써. 나머지는 내게 양보하지 않겠느냐? 합당한 곳에 묻어 주어야 하니. 용의 뼈는 다루기도 어렵고 쓸 곳도 많지 않단다. 대신….”
타이르듯 말한 아르케아스가 미소 지었다.
“그에 걸맞은 가치를 지닌 보물을 주마. 가치는 충분할 것이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애초에 그는 용의 뼈를 트라벨가에 팔아넘길 생각이었으니까. 일부 부위를 남기긴 했겠지만, 제국에 발을 들이고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나야 가공할 수 있으리라.
그보단 당장 눈앞의 이 백금룡이 줄 보물이 더 값어치 있을 터였다.
“들어 보겠소.”
“네게 세 가지 선택지를 주마.”
물잔과 포크, 스푼을 집어 든 아르케아스가, 이안의 앞에 하나씩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하나는 북부의 대전사인 네게 힘이 되어 줄 것이고, 또 하나는 엄정한 여신의 성전사인 너를 지킬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혼돈을 품은 마법사인 네게 신비를 더해 줄 것이란다.”
그가 양손을 펼치며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 중에서 무엇을 받고 싶니?”
“…다 주시면 안 되오?”
아르케아스가 다시 한번 웃었다.
이거, 재롱부리는 손주가 된 기분인데….
이안이 생각하는 사이, 그가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다만. 신들이 노하실 거란다. 네게 이 셋을 전부 준다면, 내 손으로 세상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과 다름없을 테니까. 네 위업에 걸맞은 보상은 하나란다. 이에 필적하는 다른 보물은, 네 힘으로 손에 넣도록 하렴.”
하여간, 신이란 것들이 제일 문제라니까.
이안은 짧게 혀를 찼다. 어쩌면 이 역시 부여된 현실성일지도 몰랐다.
어쨌건, 더 받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할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안이 물잔을 들었다.
“마법사의 보상으로 받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