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심드렁하게 중얼대던 용병의 목소리가 칼로 자른 것처럼 끊어졌다. 이안을 바라보는 그의 미간에 와락, 골이 패였다.
“지금, 이안 호프라고 하셨소?”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유독 더 크게 느껴졌다. 시끌벅적하던 장내가 한순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
“…….”
주점의 모든 남녀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쏟아지는 시선에, 이안은 반사적으로 그들 쪽을 일별했다.
신경이 조금 곤두선 덕분인지, 그것만으로도 거의 모두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었다.
‘어떻게 아는 얼굴이 하나가 없네.’
그와 동시에 루시아의 망토 한쪽이 슬쩍 불룩해지는 게 느껴졌다. 팔꿈치를 구부려, 허리 뒤편에 달아 둔 철퇴 자루에 손을 가져간 것이리라.
과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쏟아지는 시선 대부분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으니까. 불신과 의심. 몇몇은 노골적인 적개심을 머금고 있었다.
‘…아, 그래. 날 사칭하던 간 큰 놈들도 있었던 모양이지.’
이안은 내심 실소를 삼켰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볼만한 일들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리라.
하긴. 비단 요정들이 아니라도,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작자들이 널리고 널린 세계였다.
“그래. 이안 호프.”
이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용병의 눈매가 조금 더 가늘어졌다. 이안의 검을 눈을 잠시 헤집듯 응시하던 그가, 이윽고 내뱉었다.
“증명해 주실 수 있으시오?”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오려던 루시아가 멈칫했다. 이안이 망토 아래의 왼팔을 슬쩍 옆으로 뻗어 저지한 것이다.
용병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본 채 이안이 물었다.
“글을 읽을 줄 아나?”
“…….”
용병의 미간이 꿈틀댔다. 대답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덧붙였다.
“그럼 그냥 가서 트루드를 블러 와. 그거면 증명이 될 테니까.”
용병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모욕당했다고 느낀 듯, 이안을 싸늘하게 노려볼 뿐이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안이 한숨을 삼키게 하기엔 충분한 반응들이었다.
‘…대체 용병이란 새끼들은 왜 항상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어렵게 가려고 하는 거지.’
결국 처맞아야 말을 듣는 건가.
이안이 망토 아래로 슬며시 주먹을 쥘 찰나.
“맙소사, 카르하여…!”
뜻밖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주방 바로 앞이었다.
“돌아… 돌아오신 거군요…!”
내뱉은 건,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뜬 북부인 여급이었다. 그녀를 슬쩍 돌아본 이안의 입꼬리가 순간 설핏 말려 올라갔다.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처음 만난 아는 얼굴이 여급이라니.
“오랜만이네.”
그녀는 과거 이안이 이 여관에서 머물렀을 때도 일하고 있었다.
이안은 그녀를 도시의 자잘한 의뢰를 물어오는 중개인으로 써먹기도 했었더랬다.
표정이나 반응을 보아하니, 한때 도시에 머물렀던 해결사가 바로 그 용살자라는 걸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가.
“저, 저를 기억하세요…?”
여급이 오히려 놀란 듯 물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도 날 기억하잖아?”
“저야 당연히….”
입술을 달싹이던 여급이, 이내 활짝 웃음 지었다. 곧바로 뒷짐을 진 그녀가 북부식으로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영광입니다. 대전사.”
이내 그녀의 시선이 주위로 돌아갔다. 뒤늦게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 용병들을 차근히 눈에 담은 그녀가, 이윽고 미간을 찌푸렸다.
“다들 뭐 하는 거죠? 용살자께서 귀환하셨는데. 설마, 이분이 누구이신지도 알아보지 못한 건가요?”
“……!”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 것처럼, 눈을 치켜뜬 용병들이 다시 이안을 눈에 담았다.
이번 침묵은 길지 않았다.
“부, 북부의 초인이여…!”
“찬란한 빛에 영광 있으라….”
“단장이 정말 용살자와 아는 사이였군…. 루 솔라 맙소사….”
장내에 삽시에 소란이 휘몰아쳤다.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듯 몸을 숙이는 자부터 벌떡 일어나 북부식으로 고개를 숙이는 자. 반쯤 넋 나간 얼굴로 중얼대는 이들까지. 복장과 인종만큼이나 반응도 통일성 없이 가지각색이었다.
‘…개판이라고 해야 할지. 용병답다고 해야 할지.’
내심 코웃음을 치며, 이안은 앞에 선 용병을 다시 마주 보았다.
석상처럼 굳어져 있던 그가, 이안과 눈이 마주친 순간 화들짝 눈을 깜빡였다. 안색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게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부,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용살자…!”
그가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뭔가 더 주절거리려는 그의 말을 자르며, 이안이 내뱉었다.
“트루드. 당장.”
“네, 넷…!”
용병이 쏜살같이 몸을 돌렸다. 그가 벽면을 따라 이어진 목조 계단을 네 발로 기어 올라가듯 달려 올라가는 사이.
“다들 입 닫아.”
장내를 돌아본 이안이 덧붙였다.
칼로 자른 듯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서로의 눈치를 살핀 용병들이 엉거주춤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였다.
루시아를 돌아보며 고개를 까딱인 이안이 비로소 걸음을 뗐다.
끼이-
뒤편,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린 건 그때였다. 안으로 비죽 고개를 내민 건, 물론 미구엘이었다.
장내를 한차례 돌아본 그가 헛웃음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죄다 두들겨 패고 있는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이오.”
“그럴 뻔은 했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걸음을 뗀 이안이, 여급을 돌아보았다.
“식사 두 개 준비해 줘. 고기로.”
“세 개가 아니라, 두 개요?”
“나는 볼일을 다 보고 먹을 예정이라서. 그 전엔 술이면 될 것 같은데.”
“네. 가장 독한 걸로 준비해 드리면 되겠죠?”
“기억해 주다니 영광이군.”
이안이 입꼬리만 살짝 당기며 말하자, 마주 미소 지은 여급이 재빨리 주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사이, 이안은 정 중앙의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벽면의 계단이 잘 보이는 위치였다.
굳이 자리를 비켜달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
“…….”
그가 다가가자 용병들이 알아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다들 보이지 않는 결계라도 있는 것처럼 멀찍이 선 채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이안을 힐끔댈 뿐이었다.
“거, 시부럴. 더럽게 부담스럽네.”
이안의 맞은편, 루시와 나란히 앉은 미구엘이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이안의 시선이 용병들 쪽으로 돌아갔다.
“다들 앉아주면 좋겠는데.”
“네, 넵…!”
“예. 용살자…!”
용병들이 우르르 저마다 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자리가 부족한 이들은 그냥 구석의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물론 그리고 나서도 술잔에 손을 가져가거나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장내는 여전히 고요했다.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것보단 낫긴 한데….”
헛웃음을 지으며 읊조린 미구엘이, 문득 다시 이안을 바라보았다.
“신분을 밝힐 때마다 늘 이런 식이셨소? 지금까지?”
“이 정도까진 아닐 때가 더 많았지만, 뭐.”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들이 유독 유난스럽게 구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일 터였다.
여긴 북부였고, 저들은 용살자의 전사들이 아닌가.
심지어 단장인 트루드는 이안과 함께 싸운 경험도 있으니, 그의 업적에 대해 온갖 과장을 곁들여 떠들어 댔을 터였다. 그래야 본인들의 권위도 더 높아질 테니까.
“왜 형씨가 굳이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는지 알겠소. 가는 곳마다 이딴 식이면 뭐, 빵도 안 넘어가겠네. 안 그러냐, 루시?”
“사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생각나긴 하네요.”
“아, 그래. 그때도 한 며칠은 이딴 식이었지. 생각해 보니까, 그땐 빵을 잘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냥 자연스럽게 여기는 게 좋을 거야.”
낮게 웃음 지으며 말한 이안이 덧붙였다.
“위로 올라가면 여기보다 더 할 테니까. 익숙해 져야지.”
지금까지와 달리, 당분간은 명성과 권위를 적극적으로 내세워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용살자의 전사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염려 마시오. 형씨는 품위를 유지하시면서 근엄하게 계실 수 있게, 앞으로 나랑 루시가 보조를 잘 맞출 테니까. 응? 그 까무잡잡한 양반에게도 이미 알아야 할 것들을 다 전수 받았다 이 말이오.”
미구엘이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루시아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아의 눈빛도 묘하게 의욕적이었다.
‘왜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나 했더니.’
하여간 나세르, 그 자식은.
이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찰나, 술병과 잔이 담긴 쟁반을 든 여급이 돌아왔다.
“음식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천천히 해. 급한 거 아니니까.”
“네.”
대답과 달리, 여급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멀어졌다.
“거, 다들 숨소리라도 좀 내시오. 죄다 무슨 구울도 아니고- 아, 고맙수.”
주위를 돌아보며 핀잔을 주던 미구엘이 이안이 건넨 술잔을 받았다. 물론, 그의 말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용병들은 다들 고양이 앞의 쥐새끼처럼 얼어붙은 채였다.
이안은 굳이 분위기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방문한 목적을 생각하면, 차라리 용병들이 자신을 두렵고 어려워하는 쪽이 나았다.
‘그래야 튈 엄두도 못 내겠지.’
풀어주면 냉큼 딴생각부터 하는 게, 이 용병이란 놈들의 본능이 아니던가.
…옛날 생각나네.
내심 덧붙이며, 이안은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식도가 뜨겁다 못해 차가워졌다.
빈말로도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술이었지만. 취기를 느낄 수 없게 된 그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자극이었다. 달고 신 술에 질린 입장에서는 더더욱.
“거, 빨리도 오는군.”
위에서 묵직하고 다급한 발소리가 번진 건 첫 잔을 비운 이안이 다시 술병을 들었을 때였다.
미구엘의 읊조림을 한 귀로 흘리며, 이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술잔을 채웠다.
우당탕탕-
거구의 북부인이 계단을 부술 듯 달려 내려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검은 머리와 수염을 지저분하게 기르고, 온 얼굴에 크고 작은 흉터가 가득한 자였다.
용살자의 전사들을 만든 북부인 용병, 트루드.
“미친, 북부의 초인이여…!”
계단 아래에 멈춰선 그가, 술잔을 드는 이안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치켜떴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대장이셨군!”
“그래. 나다.”
대답한 이안이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트루드를 눈에 담은 그가 덧붙였다.
“못 본 사이에 덩치가 커졌군.”
“으하하…! 맞소. 내가 살이 좀 찌긴 했지!”
트루드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안은 웃지 않았다.
그저 그를 잠시 바라보고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을 뿐이었다.
“하, 하하… 여전하시군….”
트루드의 웃음이 곧 잦아들었다. 이제야 놀람이 가신 듯, 이안을 바라보는 눈빛이 묘해지고 있었다.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뇌리를 스친 것이리라.
“…그나저나.”
물론, 그게 겉으로 드러난 건 잠깐뿐이었다. 트루드의 시선이 재빨리 장내로 돌아갔다.
“이 새끼들, 다들 뭘 멀뚱히 앉아만 있어? 네놈들의 진정한 대장이 돌아오셨는데! 눈깔들을 확-”
“됐어.”
이안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잘랐다.
“인사나 받으러 온 거 아니니까.”
“…….”
멈칫한 트루드가 입을 다물 찰나.
“거, 우린 보이지도 않으시오?”
미구엘이 툭 내뱉었다. 트루드의 시선이 비로소 이안의 맞은편에 앉은 둘에게로 돌아왔다.
험상궂은 미소를 지은 미구엘이 강철 의수를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오랜만이오. 거, 정말 못 본 사이에 덩치가 더 커지셨군. 이젠 정말 곰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오랜만이오…. 사제님. 그리고….”
더듬더듬 대답한 트루드가, 옆자리에 앉은 루시아까지 눈에 담고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차기 성녀님.”
정말 반갑다기보다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듯한 힘 빠진 말투였다. 그들이 그저 안부 인사나 전하러 찾아온 건 아니라는 걸 비로소 확실히 깨달은 게 분명했다.
술잔을 채우면서, 이안이 미구엘을 바라보았다.
“아는 사이였냐?”
“아, 왜, 전에 그 일이 있은 후에 형씨를 만나러 트라벨가로 갔댔잖소. 아시다시피 허탕이었고. 하지만 저 양반들이랑 안면은 텄었소. 형씨에 대해선 더럽게 말을 아끼긴 했는데, 어쨌든.”
“아, 그래….”
모르는 사이에 잘들 엮이고 살았군.
피식댄 이안이, 애매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트루드를 돌아보았다.
저 녀석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 해쳐 먹은 걸 들킬 것을 더 걱정하고 있는지, 이안의 방문 목적을 더 걱정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그, 그래서 식사는 하셨소? 날도 추운데, 뜨끈한 거라도 드셔야-”
이안과 눈이 마주친 트루드가 재빨리 내뱉을 찰나, 계단 위에서 다시 소란이 번졌다.
위로 고개를 돌린 트루드가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다.
일련의 사내들이 굴러떨어지듯 계단을 내려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시벌, 이런 미친….”
한쪽 무릎을 꿇거나 주저앉은 그대로 이안을 눈에 담은 그들이, 다시 일어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탄식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대장이시군.”
“이렇게 갑자기 돌아오시다니…!”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오, 대장?”
이안의 한쪽 입술이 절로 말려 올라갔다.
“그 개성 넘치는 면상들을 잊을 수 있을리가.”
이제야 낯익은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안은 주점에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트루드를 비롯한 초기 구성원들은, 일종의 거물 놀이를 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놀이가 아니라 진짜 거물들이 됐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으하하. 여전하시군…!”
“대장은 어떻게 하나도 안 변하셨소? 바로 어제 보고 다시 봤대도 믿겠소!”
용병들의 웃음이 이어졌다.
다시 술잔을 든 이안이 내뱉었다.
“너흰 얼굴에 기름이 줄줄 흐르는군.”
“……!”
덤덤한 목소리에, 용병들의 웃음소리가 삽시에 잦아들었다. 이안이 그들을 차근히 눈에 담았다.
“죄다 옷도 좋은 걸 입었고. 그동안 살림살이가 많이 좋아진 모양이야.”
덧붙인 이안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제야 눈을 끔뻑인 놈들이 트루드 쪽을 힐끔댔다. 트루드가 그랬듯,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이리라.
여급이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나온 건 그때였다. 이마에 슬쩍 식은땀이 맺히던 트루드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먼 길 오셨을 텐데, 식전부터 우리가 너무 말이 많았소. 응? 다들 기억 안 나냐? 대장이 뭘 가장 싫어하시는지?”
“그, 그렇지. 대장께선 귀찮은 걸 가장 싫어하시지. 그래서 기분이 별로 안 좋으셨군.”
“식사부터 하십시오, 대장. 우리는 신경 쓰지 마시고.”
간부들이 엉거주춤 일어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트루드가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며 덧붙였다.
“올라가서 옷이라도 제대로 챙겨입고 나오겠소. 놀라서 달려 내려왔더니 다들 꼴이 엉망인데.”
“동작 그만.”
계단을 올라가려던 트루드와 간부들이 그대로 굳어졌다. 그들의 시선에, 이안이 식탁 쪽을 턱짓했다.
여급은 루시아와 미구엘 앞에만 음식을 놓아주고 있었다.
“난 아직 입맛이 없어서.”
“아… 하하. 하긴. 전에도 번잡한 걸 좋아하진 않으셨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장내를 슬쩍 곁눈질한 트루드가 말을 이었다.
“이래서야 식사할 말도 안 나시겠소. 일단 다들 내 보내겠-”
“에헤이. 그건 안 될 말씀이오.”
미구엘이 끼어든 건 바로 그때였다. 앞에 놓인 음식 접시들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용살자께서 돌아오셨다는 걸 온 도시에 소문낼 일 있소? 게다가 여기 이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도 있어서 말이오. 그러니까 오늘은….”
간부들을 돌아본 미구엘이 얼굴의 상처를 일그러뜨리며 미소 지었다.
“아무도 여기서 나갈 수 없소.”
“…….”
앞만 보고 앉은 용병들이 어깨를 움찔 떠는 가운데, 트루드와 간부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안 쪽으로 돌아왔다.
“뭐, 그렇다는군.”
술을 한 모금 마신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여기 이 두 분은 내 부관들이지. 날 돕기 위해 각자 할 일이 있으시단 얘기야.”
“그… 러시다면야. 당연히 협조해야지. 암.”
“우리도 나눠야 할 이야기들이 있고.”
이안이 태연하게 말을 맺자, 간부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트루드에게로 돌아갔다. 그린 것처럼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던 트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씀을. 이게 얼마 만인데….”
“그러니까, 우린 네 방으로 가자.”
“…….”
트루드의 미소가 결국 딱딱하게 굳어졌다. 정곡을 찔린 듯 숨을 멈췄던 그가, 애써 억누른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 방… 말이오?”
“우리가 없어야 여기도 편하게들 볼 일 보지 않겠어? 왜.”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린 이안이 툭 덧붙였다.
“방에 내가 보면 안 될 거라도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