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카가가각-!
화신체의 몸통을 사선으로 가르던 광검의 속도가 느려졌다.
진언 회로에 담긴 마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벌써 절반이 넘게 소진된 상태였지만, 검날을 타고 뿜어져 나오는 용의 마력은 여전히 찬란했다.
‘…갈수록 질겨지네.’
달라지고 있는 건 화신체였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작아지는 덩치만큼, 반대로 밀도는 높아지고 있었다. 식어 가는 용암처럼 굳어진 표면도 아주 단단했다.
전처럼 형태를 계속해서 바꾸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상대하기는 훨씬 더 까다로워진 셈이었다.
한순간 잿빛으로 물들었던 이안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콰직-!
검날 한복판에서 소리 없는 폭발이 일었다. 하지만 화신체의 자줏빛 육체에는 균열 한 줄이 더해지고, 검날을 움켜쥔 힘이 조금 느슨해졌을 뿐이었다.
화신체가 늘어뜨리고 있던 주먹을 올려치듯 내뻗은 건 그때였다.
이안이 반사적으로 백금 방벽을 치켜들었다.
쩌엉- 콰과광-!
주먹이 방패에 닿은 순간 자주색 폭발이 터져 나왔다. 근력이 초인적인 수준이 되지 않았다면, 어깨가 통째로 떨어져 나갔을지도 몰랐다.
‘가뜩이나 아파 죽겠는데….’
대포알처럼 튕겨 날아가며, 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이 와중에도 파편의 울림과 목을 조이는 듯한 갈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
화신체의 포효가 대기를 울린 건 그때였다.
저놈은 퀘스트의 이름처럼 불완전했다.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육체는 막대한 혼돈을 품고 완성되었지만, 그 안에 담겨야 할 초월적인 자아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신 아주 탐욕스럽고 악한, 어린아이 같은 본능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아주 빠른 속도로 환경에 적응하고, 학습해 가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혼돈의 힘과 권능도 자연스럽게 다뤘다. 그것도 아주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저렇게 용암 거인 같은 모습으로 주먹을 휘둘러 대기 시작한 것도 그저 본능적인 행동일 터였다.
‘백금 방벽을 마력을 이렇게 많이 쓴 건 처음….’
이안의 생각이 멈췄다.
발아래로 군단병들의 모습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멀지 않았다 여기긴 했지만, 정말 전장까지 튕겨져 나온 것이다.
“급소는 의미 없어! 토막 내!”
“잡히지 않게 조심해! 빨려 들어간다고!”
군단은 뒤틀린 망자 변이체와, 내장과 살점이 뭉쳐진 듯한 변이체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쉽게 죽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게 가장 피곤한 법이지만.
뒤로 물러날 수는 없을 터였다.
저 멀리, 부상자들이 죽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대부분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어디 한 군데가 으스러진 몰골이었다.
초인적인 회복력이라도 생기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회복되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널브러진 새하얀 말이 이안의 시선 한구석에 박혔다.
‘닐라…!’
녀석은 본래 마갑에 가려져 있어야 할 옆구리에, 깊고 커다란 상처를 훤히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간신히 숨만 붙은 상태였다. 마갑이 부서지면서 몸을 찌른 모양이었다. 대전사의 말이니, 군단병들이 옮겨 둔 것이리라.
하지만 어쨌든, 곧 숨이 끊어지리란 건 분명해 보였다. 회복을 기대하기엔 깊은 상처였다.
‘…고마웠다.’
읊조리는 이안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거대한 내장 변이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걱-
변이체 한복판이 깨끗하게 잘려나가고, 이안이 바닥을 구르며 착지했다.
와르르, 내장과 살점이 비린내를 흩뿌리며 무너져 내렸다.
“대전사…!”
벌떡 일어서는 이안을 바라보며 군단병이 탄성을 흘렸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붉은 바위 출신의 백인장, 올데르.
끔찍한 몰골로 변이된 대전사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낄 법도 하건만.
“어디서 날아오신 겁니까? 이제, 날 수도 있으신 겁니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묻는 녀석과 근처의 군단병들의 얼굴에는, 조금도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이안이 불쑥 튀어나온 것에 놀라고 반가워할 뿐.
“무슨 내가 새도 아니….”
대답하다 멈칫한 이안의 눈에, 다급하게 잿빛 마력이 휘몰아쳤다.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는 기척.
푸화악-!
완성과 동시에, 이안의 주위로 거센 돌개바람이 터져 나왔다. 휘몰아치는 방벽.
콰과과-
포탄처럼 떨어져 내리는 화신체를 날려 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이안도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가 날려 버리려던 건, 처음부터 화신체가 아니라 주위의 군단병들이었으니까.
의도대로 군단병들은 사방으로 밀려나 나뒹굴고 있었다.
이안이 마저 몸을 휘돌림과 동시에, 주먹을 내뻗은 화신체가 떨어져 내렸다.
쩌적-! 쿠화아아-
백금 방벽을 치켜든 이안의 주위로 눈부신 균열과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혼돈의 파편이 토해내는 울림이 더 크게 귓가를 울렸다.
동시에 방패 너머, 주먹을 내지른 화신체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전신에 혈관처럼 일렁이는 자줏빛. 주위로 시선을 돌리는 눈동자.
‘또 한눈을 파네.’
군단 근처로만 오면 항상 저딴 식이었다. 식탐이 일렁이는 눈으로 군단병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열 받지만 고마운 반응이었다.
이안은 구부렸던 다리를 박차며, 왼팔을 힘껏 떨쳤다.
쩌엉-!
마음만큼 뛰어오르지는 못했지만, 화신체를 떨쳐 버리기엔 충분했다.
튕겨 오르듯 일어서며 이안이 소리쳤다.
“다들 거리 유지해! 다가오지 마라!”
그르렁대는 듯한 포효.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군단에 그의 명령은 여전히 절대적이었다.
그대로 땅을 박찬 이안이, 착지하는 화신체를 향해 내달렸다.
백금 방벽을 앞세운 채였다.
콰과과과곽-
팔을 나란히 치켜들어 막은 화신체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놈은 작아지고 이안은 커졌는데도, 여전히 화신체가 조금 더 컸다.
하지만 힘은 비등비등했고, 가진 힘을 응용하는 방식은 이안 쪽이 훨씬 앞섰다.
푸확-!
활짝 펼친 왼손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돌풍을 추진력 삼아, 이안이 왼팔을 힘껏 떨쳤다.
화신체의 커다란 팔이 튕겨 나갔다. 그대로 오른팔을 치켜든 이안이 광검을 내리쳤다.
카드드드득-
광검이 만들어 낸 샛노란 궤적이 놈의 몸통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물론 이번에도 몸을 완전히 갈라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안은 이미 자루를 쥔 손을 중심으로 하체를 웅크리고 있었으니까.
과거, 거인들을 상대할 때 확실히 몸에 익혀 둔 움직임.
다른 점이라면 지금 화신체의 몸을 밟는 이안의 두 다리는, 그때보다 두 배 이상 강한 근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쩌엉-!
이안이 힘껏 두 다리를 박차자, 화신체의 몸이 포탄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검날이 쑥 빠지면서,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온 이안도 바닥을 굴렀다.
“대전사께서 공허의 악마를 압도하셨다!”
“혼돈마저 굴복시킨, 천둥의 대전사를 위하여-!”
뒤편에서 뜬금없는 함성이 이어졌다. 휘몰아치는 방벽에 휩쓸려 나뒹굴던 군단병들이 어느새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안의 전신에 넘실대던 열기가 절로 넘쳐흘렀다.
“—-!”
이안이 포효했다. 대전사보다는 마족의 일갈에 가깝게 느껴지겠지만, 카르하의 신성을 토해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고통스럽다는 사실도, 물론.
‘마음은 알겠는데… 적당히 해라.’
카르하에게 읊조리며, 이안이 간신히 자세를 다잡았다.
생살을 뜯어내는 듯한 느낌.
쩍, 쩌저적…
오른팔과 하반신을 비롯해, 혼돈과 융합된 부분들의 표면이 갈라지고 있었다.
동시에 혼돈의 파편도 발작적으로 남은 혼돈력을 뿜어 댔다.
가뭄이 든 논바닥 같던 부분들이 빠르게 재생됐다. 그 와중에도 이안은, 또다시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어느새 파편에 담긴 혼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쿠확-!
물론, 그렇다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저 멀리 바닥을 나뒹구는 화신체를 눈에 담은 이안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콰과과곽-
흙먼지를 날리며 미끄러지듯 착지한 화신체가, 이안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전신의 자줏빛이 용암처럼 이글대는 채였다.
한순간 전장이 조금 밝아진 듯한 느낌이 든 건, 이안이 힘껏 땅을 박찬 순간이었다.
“……!”
착각이 아니었다. 이제는 낯익은 불빛이 온기를 머금고 번지고 있었다.
누가 이런 기적을 발휘하고 있는 건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화로도 없는데, 이렇게 넓은 범위에?’
답을 알 수 없는 의문과 동시에, 이안은 자신의 내면에 불씨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완전히 식어버려서 사라진 줄 알았던 불씨였다.
‘…다시 축복을 내려 주다니.’
그건 곧 카르하가 그렇듯, 루 엔테르 역시 그를 타락자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달아오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
불씨의 열기가 오른팔을 타고 번진 것이다. 혼돈과 융합된 오른팔에 고통이 이어졌다.
화르르르-
용의 마력이 가득 맺힌 검날에 성화가 더해졌다. 성화는 용의 마력과 뒤엉켜 불길처럼 넘실댔다.
그 와중에도 가까워지는 화신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이안이, 치켜들었던 광검을 내리쳤다.
콰과과과-
불길이 넘실대는 궤적이, 화신체의 주먹보다 먼저 놈의 목덜미로 틀어박혔다. 놈이 멈칫할 찰나, 그 너머의 칼날이 몸통을 찢어발기듯 파고들었다.
“—-!”
화신체가 찢어지는 비명을 토했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역시, 놈에게는 용의 마력보다 신성력이 더 효과적이었다.
쩍, 쩌적….
검 자루를 움켜쥔 이안의 오른팔에 다시 균열이 번진 건 그때였다.
루 엔테르의 신성력이 더해지자, 혼돈과 융합된 부분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내부에 온전한 신체가 재생된 것 같긴 했지만. 이대로 정화된다면, 혼돈과 융합되면서 얻게 된 추가적인 능력치는 전부 사라지게 될 터였다.
두근- 두근-
혼돈의 파편이 토해낸 울림이, 화신체의 비명보다 크게 이안의 전신을 울렸다.
‘눈 뜬 장님이었구만….’
이안은 비로소 아까부터 이어진 파편의 울림과 식욕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타들어 가는 이안의 오른팔에 균열이 번졌다. 혼돈의 파편이 토해내는 울음이 화신체의 비명보다도 더 크게 이안의 전신을 훑었다.
지독한 고통과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오히려 간단한 해답을 도출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혼돈력 덩어리를 눈앞에 두고도 몰랐다니.’
그리고 이안은 자신의 본능이 속삭이는 대로 움직였다.
쩍, 쩌저적-
그가 혼돈과 융합된 턱을 쩍 벌렸다. 가뜩이나 뾰족하던 이빨들이 더 크고 날카롭게 돋아났다.
화신체의 멀쩡한 목덜미를 깊숙이 물어뜯은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콰지지직-
더 날카롭고 길어진 이빨이, 화신의 용암 같은 갑피를 뚫고 깊숙이 박혔다.
두근-
동시에 울림을 토해낸 혼돈의 파편이, 기다렸다는 듯 화신체의 몸속에 담긴 혼돈의 정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화신체의 비명이 칼로 자른 듯이 잦아들었다.
이안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몸통 한복판에 박힌 놈의 눈알이 휘청대며 흔들리고 있었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당황을 머금고.
두근- 두근-
갈증이 해소되는 듯한. 그러나 묘한 불쾌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이안은 이게 게임에도 존재하던 공략법이리라 생각했다. 아마도 타락자만이 가능한 방식이었으리라.
물론 심연의 사도가 되어 평화롭게 해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혼돈의 융합체가 되어 불완전한 화신체와 싸우게 되었을 터였다. 소모된 혼돈력은, 반대로 저 녀석에게서 공급하면서.
콰- 아아아아-
반쪽짜리 융합체인 지금은, 어떤 의미로는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성이 계속해서 그의 전신을 태워버리고 있었으니까. 혼돈의 파편이 가득 차지 않는 것이다. 루 엔테르의 축복까지 더해진 지금은, 더더욱 빠르게 혼돈력을 소모했다.
‘그만큼 더 아프지만….’
저놈을 죽일 수 있다면 더한 고통이라도 기꺼이 감내하리라 생각하며, 이안은 턱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전신이 산채로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만 견딜 수 있다면, 이제 시간은 그의 편이었다.
쒸에에엑-!
화신체가 발작적으로 주먹을 내뻗은 건 그때였다. 거의 동시에, 이안도 왼팔을 치켜들었다.
쩌어엉-!
충격파와 함께 이안의 몸이 튕겨 나갔다. 어느새 오른팔이 육중한 모습을 되찾은 덕분에, 검도 놓치지 않은 채였다.
파스슥-
성화에 타들어 간 화신체의 가슴은 새카맣게 벌어진 채 바스러지고 있었다.
이안에게 씹힌 목덜미는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움푹 박살 난 채였다.
“—-!”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화신체의 포효가 번지는 가운데.
‘나한테만 다시 축복이 깃든 게 아니었군.’
이안은 공중제비를 돌며, 스쳐 지나가는 전장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인식했다.
군단병들의 병장기에도 주황색 불길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다들 이안과 마찬가지로 루 엔테르의 신성을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할 테니, 이건 여신이 내린 은총일 터였다.
“타오르는 여신께 영광을-!”
군단병들의 고양된 함성이 귓가를 스쳤다. 아마 전투에 합류하지 못한 부상자들에게도 축복이 내렸으리라. 그들에게는 그저, 불씨의 축복으로.
‘…무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좌측 저 멀리, 인간 횃불처럼 우두커니 선 루시아를 일별한 이안이 착지할 찰나.
“—-!”
화신체의 포효에 혼돈의 파장이 가득 실렸다.
어느새 수복을 끝낸 놈의 전신에서 자줏빛이 눈부시게 번지고 있었다.
콰릉! 콰르릉-!
동시에 사방에 검붉은 낙뢰가 떨어져 내렸다.
소용돌이가 사라진 뒤로도 폭풍 치듯 넘실대던 검붉은 먹구름이, 번개를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맞으면 따끔한 정도로는 안 끝나겠는데.’
생각하며 자세를 다잡은 이안이, 입에 머금고 있던 화신체의 잔해를 탁 뱉어냈다.
포효를 끝낸 화신체가, 치켜든 양 주먹을 망치처럼 내리친 건 거의 동시였다.
콰과과과과-
땅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지면서, 자줏빛 폭발이 연달아 치솟으며 밀려들었다.
이안만을 노리는 게 아니라 주위 일대 전부를 초토화 시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맛 대가리도 없는 새끼가….’
성질도 더럽군.
속으로 덧붙인 이안이, 밀려드는 폭발의 물결을 향해 마주 달려나갔다.
쿠확-!
백금 방벽을 바싹 치켜든 채. 더 거대해진 이빨 사이로 굵고 긴 혀를 날름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