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5
45화
다른 목격자
다소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말.
허나 렌은 가온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가온에 대한 렌의 신뢰가 높은 것도 한몫했지만, 중개업자로서 들은 것들이 주효했던 것도 있었다.
이미 렌은 중개업자로서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말은 곧,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그를 찾는 마수사냥꾼이 끊이지 않고 문지방을 밟아대는 형국이라는 것이고.
당연히 오염지대의 정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던 거다.
‘요즘 들어 부쩍 마수를 발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지 뭐람. 그래서 이번 사냥은 공쳤어.’
‘요즘 같은 때엔 오염지대 나가는 것도 무서워. 마수 대신 사람을 노리는 놈들이 워낙 많아야지. 셋, 최소 두 파티는 함께 움직여야 그나마 뒤통수 걱정은 덜 수 있으니 원.’
‘통 마수가 안 보여서 위험을 무릅쓰고 좀 더 안으로 진입했지 뭐야.’
‘요즘 3급 부산물 가격 많이 올랐지? 젠장, 이럴 때 한몫 단단히 잡아야 하는데 보여야 말이지.’
이런저런 이야기들.
그리고,
‘이번에 서북 방향으로 나갔다가 죽을 뻔했잖아. 왜냐고? 흑마법사를 봤거든. 멀리서 실루엣에 가깝게 확인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도망쳐서 산 거지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걸?’
이런 제법 중요한 정보까지도 렌은 상점에 앉아 들을 수 있었다.
평소와 같았다면 일시적인 현상쯤으로 치부하고 말았을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뭐 귀담아들어 두었다 사냥을 나서는 파티에게 귀띔을 해주는 말들도 있었지만.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도 가온의 경험담과 예측이 섞여들자 결코 쉽게 흘려버릴 수 없는 단서로 변모해 있었다.
흑마법사들이 오브를 활용해 3급 마수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면…….
오염지대 생태계에서 일시적인 3급 마수의 공백이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3급 마수의 영역이 텅 빈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2급 마수의 이동이 있었을 것이고 덩달아 1급 마수의 영역에도 변화가 일었을 것이다.
마수사냥꾼이 사라진 마수를 찾아 더 깊은 오염지대로 향한 것도, 그러다 흑마법사와 조우하게 된 것도 응당 일어났을 연쇄반응이었고.
렌이 사안을 심각하게 여기고 움직인 건 모두 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건 렌이 생각하기에 가온이 도시로 복귀하며 가지고 온 건 폭탄이었다.
그것도 매우 커다란, 그간의 평화를 펑! 하고 터트려버릴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폭탄.
물론 지독한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평화라 여기고 있던 것이었지만 아무튼.
하지만 폭탄은 쉽사리 터지지 않았다.
아니 폭탄을 터트리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영유해온 평화가 사라진다는 걸 알기에 애써 모른 척 뒤로 미루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폭탄이 터지길 원하지 않았다.
당연히 폭탄에 심지를 꽂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렌은 그 상황이 도무지 탐탁지 않았다.
“어이가 없군.”
그 말을 달고 다녔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야 비로소 도시의 민낯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여의치 않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은 중개업자라는 본인의 직업을 십분 활용해가며, 도시 내부의 세력들과 쉼 없이 만났다.
***
“아니 대체!”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어대던 켄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거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왜 믿질 않는 걸까요?”
일련의 상황은 켄트가 이해하기엔 너무 복잡한 게 분명했다.
이렇듯 역정을 터트리는 걸 보면.
가온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믿고 싶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사실이잖아요. 진실이잖아요. 근데 왜 외면하는 거죠?”
“때론 신뢰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믿기 싫은 진실이란 것도 마찬가지고.”
“신뢰할 수 없는 진실, 믿기 싫은 진실……이요?”
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타적이라는 말 알지?”
“그럼요. 신전에서 늘 듣던 말인걸요.”
그런데 그게 왜?
켄트는 뜬금없이 나온 단어가 이 상황에 나올 법한 것이었는지를 고민했다.
“이타적인 사람. 넌 그런 게 있을 거라 생각해?”
“음, 그렇지 않나요?”
가온은 이를 부정했다.
“아니. 이타적인 사람이란 건 세상에 없어. 본디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고.”
“하지만 남들에게 베푸는 이타적인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네가 생각하는 ‘내 것’과 내가 생각하는 ‘내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가온은 사람마다 기준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타적인 행동은 결국 양보야.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거지.”
가령 3까지만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이 5까지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럼 3까지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은 5까지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서 이타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본인보다 2나 더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5를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은 그걸 이타적인 판단이라 여기지 않는다.
분명 스스로에겐 부담 없는 선에서의 양보였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저들에게 있어 내 말을 인정하는 건 자신의 것을 내놓아야 하는 문제가 되어버린 셈이 된 거야.”
“어떻게 그게 자기 걸 내놓는 문제가 돼요.”
“저들의 기준선이 너무 높아서 정말 조금도 내놓을 수 없는 거지. 그러니 어째,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수밖에.”
“말도 안 돼.”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
“당장 너도 보고 있잖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하지만,”
켄트는 가온의 말을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서두만 꺼냈을 뿐 문장을 이어가진 못했다.
구구절절 가온의 말이 맞게 느껴져서였다.
“너나 난 직접 겪은 이야기니까 생생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지. 당연한 거야, 현장에 직접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게 아니잖아.”
가온이 매섭게 쏘아붙이더니 숨을 고르고는 한마디를 첨언했다.
“눈으로 본 게 없으니 쥐고 있는 이권을 더 중요시 여길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이건 아니에요, 정말.”
머리론 이해하는데 가슴으론 받아들일 수가 없다.
켄트의 상태가 딱 그랬다.
“이건 정말 중차대한 문제라고요. 그걸 가온 님도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맞아, 중차대한 문제지. 우리한테만.”
켄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를 본 가온은 어깨를 으쓱였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어린 켄트가 이해하긴 벅찰 수밖에 없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온 님은 왜 그렇게 평온하세요.”
마치 연관도 없는 다른 사람 이야길 하는 것처럼요.
켄트는 뒷말을 집어삼키며 물었다.
“왜 평온하냐고?”
“네.”
“내가 평온해 보였어?”
“아니에요?”
“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가온은 애매한 답변을 내놓으며 입술을 살짝 움찔 움직였다.
‘그야 애초에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랬다. 가온은 작금의 상황을 벌써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법이거든.”
“예?”
나지막한 가온의 읊조림을 잘 듣지 못한 켄트가 되물었지만, 가온은 곧 고개를 가벼이 흔들 뿐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이곳에서야 사람과의 접촉이 거의 없다시피 했을 뿐이지, 현대에선 매일매일이 사람과의 전쟁이나 다름없는 삶이었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인백색.
하나같이 다른 색깔을 지닌 사람들을 대하면서 는 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지우는 일이다.
조금 더 자신에게 나은 방향으로.
남의 걸 빼앗아서라도 제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가려는 이기적인 속성에 한없이 노출되어 있다 보면 환멸감이 몸을 휘젓곤 했다.
그러니 기대감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실망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야만 부정적인 감정에 먹히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살아온 탓일까.
분통을 터트리는 켄트의 모습이 퍽 생경하게 느껴질 만큼 가온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언제 흑마법사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걱정하지 마. 그런다고 도시가 무너질 일은 없을 테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켄트는 가온의 낙관에 의문을 품었다.
“당연하지. 고작 흑마법사들의 진격에 무너질 도시였으면, 마왕이 사라지고 난 후 마왕군의 침공에 끝났어야 하지 않겠어? 그땐 모든 군단이 포함된 전력이었을 텐데.”
“아, 그렇긴 하네요.”
켄트는 금방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흑마법사들이 빠르게 쳐들어오면 그게 더 좋은 일이야.”
“더 좋은 일이라고요?”
“피해가 발생하긴 하겠지만, 그로 인해 경각심을 가지게 될 테니까. 다음번에 있을 다른 군단의 침공은 조금 더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겠지.”
“아…….”
켄트는 감탄한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야.”
“그러지 않는다는 말은 흑마법사들이 섣부르게 공격해오지 않을 거란 말씀이신 거죠?”
“어. 마법을 익힐 만큼 지성이 뛰어난 녀석들이 나도 떠올린 걸 생각해내지 못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전쟁을 치르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진 않을 테니 완성까지 시간도 있는 셈이고.”
“아.”
켄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어렵네요.”
다각적인 사고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직 제대로 여물지 못한 켄트에겐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가온은 그런 켄트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 지었다.
“그러니 그동안 한 세력이라도 렌의 말에 귀 기울여주길 바라자고.”
“그럼 저흰 렌이 설득이 성공하기만을 바라고 이렇게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
“그럼요?”
“렌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지.”
“돕는다고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나가고 있는데 어떻게요?”
깊은 새벽,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시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렌이 마련해준 곳에 숨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숨어만 있었기에 도시 안에서 그들의 모습을 본 자는 아직 없었지만, 복귀한 사실 자체는 어느 정도 퍼져나갔을 게 분명했다.
렌이 새로운 증거를 가지고 뛰어다니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증거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모으는 거지.”
“오염지대로 다시 나가겠단 말씀이세요?”
“나가야지. 수리를 위해 맡겨둔 장비들도 얼추 약조한 시간이 다 되어 가니까.”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하지만, 저희 둘만으론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자칫 극복할 수 없는 적이라도 만나기라도 한다면…….”
레벨 차이가 극명했던 스마셀의 사태를 겪은 탓인지, 켄트의 언행이 다소 조심스러웠다.
“걱정마. 치히스 방향으론 안 갈 거니까.”
다시 또 조사관을 파견해올지 모르는 곳이다.
가온이라고 사지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인 건 아니었으므로.
실제로도 탈리암이 치히스 방향으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럼 조만간 다시 나갈 채비를 해야겠네요.”
“그렇긴 한데 당장 나갈 건 아니고.”
“그럼요?”
“한 가지만 해결해야 할 게 있어서.”
“한 가지? 그게 뭔데요?”
“흑마법사가 마수를 조종하는 걸 본 다른 목격자를 찾아볼 생각이거든.”
“네? 보안에 그렇게 민감했는데 과연 다른 목격자가 있을까요?”
가온은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켄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 있어.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본 목격자가.”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