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0
109
“으슥한 곳이요?”
“네.”
“왜죠…?”
“지크 님과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으니까요. 여긴 눈과 귀가 많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럼 가요.”
고스란이 지크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
순간 지크는 놀랐다.
‘뭐 이렇게 빨라?’
고스란의 손놀림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빨라서, 손목이 잡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피지컬 보소? 이 정도면 소매치기나 타짜를 해도 되겠는데? 아닌가? 내가 방심한 건가? 모르겠다.’
지크는 고스란의 그 엄청난 빠른 손놀림에 대한 비밀을 알 수가 없었다.
***
고스란이 지크를 데려간 곳은 의무실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어느 덤불 숲속이었다.
“여기 좋네요.”
“확실히 조용하긴 하네요.”
지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라면 편히 대화할 수 있겠죠? 인적이 없으니까.”
“확실히.”
“또, 좁고요.”
“예?”
“옆으로 조금만 가 봐요.”
고스란이 지크를 슬쩍 밀어내더니 엉덩이를 땅에 붙였다.
“지크 님도 앉아요.”
“예, 뭐… 근데 꼭 여기여야 해요? 너무 좁은데….”
확실히 지크와 고스란이 자리를 잡은 덤불 숲은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쪼그리고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뭐 어때요. 걱정 마요. 저랑 살 좀 맞닿아도 안 죽으니까.”
“그런 뜻은 아니고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냈어요?”
“저야 뭐… 괜찮게 지냈죠? 돈도 좀 벌었고, 레벨도 많이 올렸고요.”
“많이 버셨어요?”
“엄청요.”
“그럼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시고 좋은 차도 뽑으시고 멋지게 빼입고 클럽도 가셨겠네요?”
“예?”
“방탕하게 처음 만난 여자랑 막 하룻밤도 보내고 그러신 거 아니에요?”
“그, 그럴 리가요!”
지크는 순간 당황했다.
‘그, 그런 일이 있긴 했었지.’
너무 술에 취하는 바람에 모르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사실이 확실히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고, 단순히 취해 잠든 게 전부였지만.
“어? 반응이 왜 그래요? 진짜 그랬어요?”
“아, 아뇨.”
“흐음?”
“비슷한 일이 있긴 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요. 너무 취해 있었거든요. 저는 그 여자분 얼굴도 몰라요.”
“거짓말!”
“…진짠데.”
“남자들은 역시 다 똑같네요.”
“예?”
“문란해.”
“아니, 진짜….”
“장난이에요. 풉!”
고스란이 귀엽게 웃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럴 수 있겠죠. 더군다나 지크 님은 다 큰 어른이잖아요. 젊고요. 인생을 즐길 줄도 알아야겠죠.”
“별로 그렇게 즐기고 싶지는 않은데요?”
“에이.”
“진짜로요. 모르는 여자랑 놀아나면서까지 인생을 즐기고 싶지는 않아요.”
“아하? 그럼 다신 그럴 일 없겠네요?”
“당연하죠. 단지 그날 너무 취해 있었을 뿐이에요.”
“그럼 다행이고요.”
“고스란 님은요?”
“저는 잘 지냈어요.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고요. 한 가지 있다면 지크 님한테 보낸 편지 중에서 답장이 온 게 하나도 없다는 것 정도?”
“그, 그건… 제가 최근에 편지함을 열어볼 시간이….”
“됐어요. 바빴으니까 그러실 수도 있죠. 다음부터는 안부 인사 정도는 주고받고 그래요, 우리.”
“그래요. 미안해요.”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군의관한테 들으니까 저 NPC를 살려만 놓으라고 하셨다면서요?”
“쿤룬산으로 데려갈 겁니다.”
“쿤룬산이요?”
“그곳에 제 사부님이 계시거든요. 사부님이시라면 녀석을 살리실 수 있을 거예요.”
“어? 그럼 저도 지크 님의 사부님을 뵐 수 있겠네요?”
“예? 고스란 님이요? 고스란 님이 왜 제 사부님을 뵙….”
“제가 있어야 그 NPC의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으니까요.”
“……!”
“네 시간에 한 번씩 수속성 에너지를 넣어줘야 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그 NPC의 장기가 썩어 버린다고요. 그래서 지크 님은 저를 쿤룬산으로 데려가셔야 해요. 지크 님은 제가 필요하니까요.”
“그, 그렇군요. 그럼… 실례지만 고스란 님. 저랑 같이 쿤룬산에….”
“당연하죠. 지크 님은 제 친구인걸요.”
“고마워요. 제가 손해 본 경험치랑 골드는 보상….”
“그건 됐고요. 친구 사이에 그런 게 어딨어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하지만….”
“고마우면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줄래요? 저 서울 살아요. 지크 님은요?”
“저도요.”
“그럼 밥으로 때워요. 비싼 거로요.”
“괜찮겠어요?”
“대신 맛있는 거 사주셔야 해요?”
“콜.”
그렇게 지크와 고스란은 쿤룬산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
“조심히 가게나.”
오버로크 중장이 지크의 무운을 빌어주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떠나면 다시 돌아오는 건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하긴. 내 자네가 이곳에 오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오버로크 중장은 못내 지크가 떠나는 게 아쉬웠는지 좀처럼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보내자니 너무나도 아쉽구먼. 미안하네. 자네와 같은 전쟁 영웅에게 성대한 송별회조차 열어주지 못하다니….”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군단장님 탓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구먼. 지크 중령. 부디 바라건대 다시 찾아와 주게나. 그래야 우리 왕국이 자네에게 훈장도 수여하고, 또 위대한 업적도 기릴 수가 있지 않겠나.”
“시간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꼭 다시 만나기를 바라겠네. 내 기다릴 터이니.”
“예, 군단장님.”
“어서 가 보게나!”
그렇게 지크는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를 떠나 쿤룬산으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 위에 오르게 되었다.
“으으. 출장이라니.”
“가요, 지크 님.”
들것에 실린 카렐과 고스란과 군의관 에런 대위와 함께….
***
쿤룬산으로 향하는 여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 도대체 워프 게이트만 몇 번째야.”
지크가 투덜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를 떠난 이후 약 다섯 시간 동안 무려 열두 번이나 워프 게이트를 갈아탔기 때문이다.
“머리가 다 아프네요.”
고스란 역시 워프 게이트를 갈아타는 것에 지친 듯했다.
“우웩, 웨에에에엑!!”
군의관 에런 대위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워프가 일으키는 일종의 부작용인 어지럼증에 고통받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와 쿤룬산은 너무나도 멀었고, 직통으로 연결된 워프 게이트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오버로크 중장이 각국에 요청을 넣어 워프 게이트의 환승을 배려해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쿤룬산으로 가는 여정은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걸릴 게 뻔했다.
그게 BNW라는 게임이 가진 특성이었다.
BNW의 드넓은 월드 맵은 워프 게이트와 같은 마법적-게임적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인 수단을 이용한다고 해도 하루 만에 이동이 불가능할 만큼 넓은 것이다.
“힘내세요, 지크 님. 두 번만 더 타면 돼요.”
“그래야죠.”
그렇게 또다시 워프, 그리고 또 워프.
총 열네 번의 워프 게이트를 갈아탄 지크 일행은 마침내 쿤룬산에서 제일 가까운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저게 쿤룬산인가요? 엄청 높네요.”
저 멀리 보이는 쿤룬산을 본 고스란이 혀를 내둘렀다.
“올라갈 수 있을까요?”
“걸어서는 못 가죠.”
지크가 답했다.
“그럼요?”
“비행선이 준비돼 있다고 하던데… 아, 저기 오네요.”
지크가 하늘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꽤 좋아 보이는 비행선 한 대가 워프 게이트가 설치된 지점을 향해 천천히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쿠웅!
비행선이 착륙하고.
“딱 맞춰 왔군! 자네가 지크라는 모험가인가?”
그런데.
“예, 맞습니다만….”
지크의 동공이 떨렸다.
‘뭐지? 그때 그 영감탱이인가? 완전 닮았는데?’
지크의 동공이 떨린 이유는, 비행선에서 내린 선장(파일럿)이 왠지 모르게 누군가와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었다.
“저… 혹시….”
“음?”
“저 모르십니까?”
“음? 내가 자네를 어떻게 알아?”
“남쪽 바다에서 뵌 것 같은….”
지크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본의 아니게 그를 천하제일생존대회에 강제로 참가시켰던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와 지금 선장의 얼굴이 동일 인물에 가깝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쪽 바다? 남쪽 바다에서 날 만난 것 같다고?”
“예.”
“남쪽 바다라면… 혹시 자네 내 동생 놈과 만난 건가?”
“동생이요?”
“내 동생 녀석이 남쪽 바다에서 작은 비행선 한 척을 운영하고 있다네. 우린 쌍둥이거든. 젊었을 적에는 공군 파일럿으로 함께 복무하기도 했지.”
“아하?”
“녀석은 잘 있나? 여전히 주정뱅이고?”
“예, 뭐… 잘 있겠죠.”
지크는 그렇게 대답하며 생각했다.
‘지옥에서?’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죽었을 확률이 꽤 높았기에 한 생각이었다.
“흥. 아직 안 뒈졌나 보군. 망할 자식 같으니.”
“예?”
“녀석이 아직 살아 있다니, 거 정말 아쉽구먼.”
“동생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동생 맞지. 그런데 말일세. 자네는 자네 동생이 자네 집 집문서를 들고튀면 기분이 어떻겠나? 거 아주 X같겠지?”
“…….”
“생각 같아선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지만, 꼴에 형제라고 참았다네. 하지만 녀석이 얼른 뒈져 버렸으면 좋겠구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아무래도 지크를 엿 먹일 뻔했던 선장은 제 집안에서도 골칫덩어리 같은 존재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반갑네. 나는 자네를 쿤룬산 높은 곳까지 데려다줄 선장 세바스찬이라네. 자네가 전에 만났던 동생 녀석의 이름은 알프레드이고.”
“아, 예.”
“어서 타게나. 쿤룬산 높은 곳까지 가려면 한참이나 걸릴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지크는 빌어먹을 영감탱이의 쌍둥이 형이라는 세바스찬 선장의 비행선에 올라 쿤룬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비행선이 이륙한 직후.
“저어… 지크 님?”
“예?”
“어디 아프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고스란이 염려 섞인 눈초리로 지크를 살피며 물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지크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여서, 마치 겁을 먹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별거 아니에요.”
“피곤하시면 잠깐 로그아웃하셔서 주무시고 와도 돼요. 카렐은 제가 돌볼게요.”
“괜찮아요.”
지크는 그렇게 대답하며 생각했다.
‘형제가 둘 다 노답은 아니겠지?’
세바스찬 선장과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너무나도 닮아서, 영 미덥지가 못했기 때문이었다.
***
이틀 후 저녁.
지크 일행은 꽤 험난한 여정을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쿤룬산은 너무나도 높아서 비행선을 타고도 단번에 정상 어귀까지 올라가는 게 불가능한 필드였기 때문이다.
“저 집인가요?”
고스란이 저 멀리 보이는 오두막을 가리키며 지크에게 물었다.
“예, 저깁니다.”
지크가 희게 웃으며 대답했다.
작은 오두막.
사부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장소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사부님, 제자가 왔습니다.’
지크는 사부를 만날 생각에 설레며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오두막으로 향했다.
“저분이 지크 님의 사부님이신가요?”
고스란이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거한을 가리키며 지크에게 물었다.
“아닌데요?”
“아니에요?”
“제 사부님은 저렇게 덩치가 크지 않으시거든요.”
“그럼 누구죠?”
“저도 모르죠.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때였다.
“음? 누가 이런 곳에….”
장작을 패던 거한이 인기척을 느끼고는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곧 지크와 눈을 딱 마주쳤다.
“앗! 너는!”
장작을 패던 거한이 한눈에 지크를 알아보고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거한 역시 고스란과 마찬가지로 메타모포시스 마스크를 뚫고 지크의 정체를 알아볼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 영감님이 왜 거기서 나와…?”
지크 역시 거한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당황했다.
2미터에 가까운 키에 120킬로그램은 거뜬히 나갈 것 같은 근육질의 몸을 가진 그 거한은, 누가 봐도 도제 베텔규스였다.
지크가 비어만 영지에서 활동하던 당시 그에게 제자가 되어 달라고 구걸하다시피 했던 바로 그 베텔규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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