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75
174
“퇴역 군인? 누가요?”
지크가 고개를 갸웃댔다.
“퇴역 군인이 나를 찾아올 일이 있나….”
“아둔야뎃 왕국에서 복무하던 해군 장교라고 하옵니다.”
“뭐지. 복수하려고 그러나.”
지크의 입장에선 딱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는 아둔야뎃 왕국 멸망의 주범이었으니까.
장교쯤 되면 애국심 때문이라도 눈에 불을 켜고 복수하려고 드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전하. 그냥 돌려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켈레가 지크에게 조언했다.
“자칫 화를 입으실까 두렵습니다.”
“아니.”
하지만 지크는 미켈레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수하려고 하면 제압해서 패주면 되지.”
“하지만….”
“설마 복수하려고 마음먹어 놓고 이렇게 대놓고 찾아오겠어? 뭔가 할 말이 있는 거겠지.”
“으음….”
“죽이면 죽으면 되는 거고. 나 모험가야.”
죽으면 49시간 후에 부활하면 그만이었으므로, 지크는 아둔야뎃 왕국 출신이라는 그 퇴역 군인을 만나보기로 했다.
10분 후.
“안녕하십니까, 전하.”
아둔야뎃 왕국 출신의 퇴역 군인이라는 자가 지크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한때 아둔야뎃 왕국에 몸담았던 마히돈이라고 합니다. 최종 계급은 해군 중장. 보직은 해병대 사령관이었습니다.”
“아 ‘그’ 마히돈 사령관님이셨군요.”
“저를 아십니까?”
“들어서 압니다. 상륙전을 열두 번 지휘하셔서 열두 번 실패하셨다던….”
“…….”
“그런데 어쩐 일로 절 찾아오셨죠?”
지크가 물었다.
“그, 그것이… 큰 전투에서 열두 번이나 패했던 자가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만… 면접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면접이요? 일자리를 구하러 오셨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마히돈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크가 언급한 열두 번 싸워 열두 번 패했단 얘기에 다소 위축이 된 모양이었다.
“저는 아둔야뎃 왕국이 멸망하기 직전 사형에 처해질 뻔했습니다만, 다행히도 전쟁이 패전하는 바람에 운 좋게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아둔야뎃이 스톤 아일랜드에 흡수 합병당한 이후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복무하시긴 힘들던가요?”
“제가 비록 열두 번이나 패한 패장 중의 패장이지만 제 손에 죽은 스톤 아일랜드의 장병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아무래도 감정적인 앙금 때문이라도 저를 채용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하필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앙겔레르 통령님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프로아는 비록 약소국 중의 약소국이지만 전도가 유망한 우량 국가이며, 향후 강대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셨습니다.”
“으음….”
“혹시나 싶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아둔야뎃 왕국의 해군 장성 출신이지만 애국심은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제 이력서입니다. 부디 한 번만이라도 읽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히돈이 자신의 이력이 적힌 서류를 지크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지크는 그 서류를 읽지 않고 마히돈이 보란 듯 책상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
그 모습을 본 마히돈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이런…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건가… 하지만 나 같은 패장을 써줄 국가는 없을 텐데….’
앙겔레르의 추천도 추천이었지만, 마히돈이 굳이 프로아까지 찾아온 이유는 그의 화려한 전적(?) 덕분에 커리어에 큰 흠집이 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12전 12패.
큰 상륙 작전을 모조리 실패한 그의 커리어로는 대륙 어딜 가더라도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휴. 프로아에서도 취업이 안 되면 해양 상단의 선장 자리나 알아봐야겠군.’
그때.
“언제부터 일하실래요?”
뜻밖에도, 지크가 마히돈의 예상을 뒤엎는 질문을 던졌다.
“예? 언제부터라니… 설마 저를 채용해 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예.”
“이력서도 읽어보시지 않으시고….”
“열두 번 싸워서 열두 번 졌지만, 병력 손실 자체는 안 컸잖아요?”
지크는 마히돈에 대해서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굳이 이력서를 볼 이유가 없었다.
“마히돈 중장님에 대한 얘기는 앙겔레르 통령님께 얼핏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아주 유능하신 분이라고요?”
“그저 패장일 뿐입니다….”
“그건 아둔야뎃 왕국 수뇌부가 막장이라서 그런 거지 마히돈 중장님이 무능했던 건 아니죠. 반쯤 썩은 가죽 갑옷에 녹슨 철제 무기나 달랑 쥐어 줘놓고 이기라는 놈들이 이상한 거 아니에요?”
“…….”
“보나 마나 정신력 드립이나 쳤겠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히돈이 화들짝 놀랐다.
“제가 사는 세계에도 그런 거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허허….”
“안 그래도 본국에 해병대가 없거든요. 이참에 마히돈 중장님께서 사령관하시죠.”
“그게 정말이십니까?”
“전 허언 같은 거 안 합니다. 임명장은 국무대신한테 말해서 따로 전달할 테니 이직 준비나 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전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제 능력과는 상관없이 비운의 패장이 되어야만 했던 마히돈은, 프로아의 해병대 사령관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내 언젠가 크게 활약해 패장이라는 오명은 반드시 씻고 말 것이다.’
마히돈은 다짐의 다짐을 거듭했다.
***
그로부터 이틀 후.
“다 됐소. 자, 보시오.”
죽음의 고향을 다시 찾은 지크는 퀘스트의 보상인 네 가지 아티팩트를 획득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지크는 입고 있던 반쯤 부서진 장비들을 벗고, 새로운 아티팩트들을 착용해 보았다.
“오!”
크반트가 그런 지크를 보고 감탄했다.
“아주 멋지구려! 잘 어울리오!”
“그래요?”
“이거 초상화라도 한 장 남겨 둬야겠군!”
“에이. 설마 그 정도이려고요.”
“보시오.”
크반트가 거울을 내밀었다.
“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지크가 살짝 놀랐다.
‘오. 좀 있어 보이는데?’
쿼드터보 세트에 비머리언 공방의 수제 아티팩트 3파츠, 그리고 붉은색인 피나비의 날개 망토를 두른 모습이 꽤 멋있었기 때문이다.
“투구는 온오프 기능이 있으니 평소에는 감추고 다니시오. 여기 이 부분을 누르면 귀걸이가 된다오.”
“그런 기능도 있었습니까?”
“허허! 우리 비머리언 공방을 뭐로 보고! 이런 편의 사항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거 아니겠소? 껄껄껄!”
“역시 비머리언이네요. 고마워요, 크반트 님.”
“실전에서 한번 써보시오. 멋도 멋이지만 실전에서의 성능이 아주 기가 막힐 것이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매번 감사드립니다, 크반트 님.”
“껄껄! 감사랄 것까지야! 그저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을 완성하는 데 신경 좀 써주시오!”
“노력해 보겠습니다.”
지크는 헤르베르트의 유작을 만드는 데 힘쓸 것을 약속하고 비머리언 공방을 나섰다.
‘이제 어디로 가지?’
비머리언 공방을 나선 지크는 월드맵을 켜놓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200레벨이 코앞이라 사냥을 하긴 해야겠지… 그간 너무 뺑뺑이만 돌았으니까….’
스톤 아일랜드부터 화이트 타운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 덕분에 거의 2주일 동안 제대로 된 사냥터를 찾지 못한 것 같았기에 든 생각이었다.
‘대중적인 사냥터를 찾아가자니 슬슬 제네시스 놈들이 걸리는데….’
지크의 주적인 제네시스 길드의 길드원들은 절대다수가 180레벨에서 220레벨 사이에 분포하고 있었기에, 지금 대중적인 사냥터를 찾는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마주칠 게 뻔했다.
‘나한테 맞는 사냥터 어디 없나… 사람 별로 없고… 경험치 많이 주고….’
월드맵을 훑어보던 중.
‘어?’
지크는 때마침 자신에게 딱 맞는 사냥터가 있는 지역을 발견했다.
‘여긴 진짜 나한테 안성맞춤이겠는데?’
지크는 게이머들이 어지간하면 기피하는 사냥터를 떠올리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
지크는 일단 프로아로 귀환한 후 햄찌를 데리고 여정에 나섰다.
번쩍!
워프 게이트가 반짝이고, 지크와 햄찌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크의 눈앞에 현재 위치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지크가 여기 에 온 이유는, 이곳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경험치를 많이 주는 대신에 방어력이 매우 높아 게이머들이 기피하는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크의 경우 디버프 필드를 통해 몬스터들의 그 높은 방어력을 무력화시키는 게 가능했으므로, 이곳 광기의 유적을 기피할 이유가 없었다.
“뀨? 여긴 어디냐?”
햄찌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그냥 뭐… 거대한 무덤이랄까?”
“뀨우?”
“한 2,500년 전쯤이었나….”
지크가 자신이 아는 정보를 햄찌에게 말해주었다.
“전 대륙을 통일했던 어떤 황제가 있었는데, 죽으면서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돌로 만든 병사들을 100만 개나 채워 넣었다나?”
“아! 그랑카브리오! 그 미친 황제 놈 말이냐?”
“어? 어떻게 알았어?”
“그 자식 유명하다! 설마 여기가 그 자식의 무덤인 거냐?”
“응.”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30년 전쯤인가? 그때부터 무덤 안에 병사들이 살아나서 날뛰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그럼 이제 거기 가서 싸우는 거냐?”
“응.”
“세상 말세다! 오래전에 죽은 놈들이 자꾸 되살아나서 세상 어지럽힌다! 도대체 누가 자꾸 오래전에 사라진 사악한 놈들을 되살리는지 모르겠다!”
그때였다.
“아무래도 배후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깜짝이야!”
“뀨우?!”
지크와 햄찌가 화들짝 놀랐다.
“으음? 왜들 그리 놀라십니까?”
그랭구아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야, 이 인간. 도대체 언제 따라온 거야?’
지크는 있는 줄도 몰랐던 그랭구아르의 등장에 정말로 깜짝 놀랐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건만….
“그랭구아르 사관님?”
“예?”
“도대체 언제 따라오신 거죠…?”
“전하께서 워프 게이트 위에 오르실 때 은근슬쩍 따라붙었습니다.”
“…….”
“후후. 저를 빼놓고 가시려 하다니.”
그랭구아르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소신은 전하의 종신 사관입니다. 전하께서 서거하실 때까지 영원히 따라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게 저의 일생일대의 사명이랄까요? 후후후.”
“…무서워.”
“예? 제가 무서우십니까?”
“무서운데요.”
“어, 어째서….”
“스토커 같아서요.”
“스토커라니….”
그랭구아르가 상처받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그저 전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싶을 뿐입니다만….”
“그래서 스토커 같다는 말씀입니다만?”
“…….”
“어디로 유배를 보내 버리든지 해야지.”
지크는 자신의 흑역사를 박제하는 그랭구아르가 얄미웠다.
물론 그가 전투력이 허접하는 것만 빼면 매우 다재다능한 NPC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유, 유배라니….”
“조심하시죠.”
지크가 뱀눈을 뜨고 그랭구아르를 노려보던 때였다.
“잡아!”
“저 새끼 잡아야 돼!”
“일단 죽여 버려! 성궤만 뺏으면 되니까!”
저 멀리 거의 수백 명에 달하는 게이머들이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뭐, 뭐야?”
“뀨우?”
“여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놀란 지크 일행.
“야 이 지독한 새끼들아! 나 좀 먹자! 나도 인생 역전 한번 해보자! 좀!”
웬 게이머가 그렇게 소리치며 지크 일행을 매우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게이머의 등 뒤에는 웬 커다란 궤짝 같은 게 매달려 있었다.
“무슨 일….”
지크는 ‘무슨 일이야?’라고 혼잣말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지크 일행을 스쳐 지나간 게이머.
그 뒤를 쫓는 게이머들이 하나같이 V자로 휘어진 날개 모양 배지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지크의 주적들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