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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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거두다뇨? 뭘요? 브륜힐트 님을요? 제가요?”
“그렇다네! 부디 내 못난 딸을 데려가주게!”
“뜬금없이 뭔 개소리야….”
지크는 너무나도 황당해서 그만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엔그린의 부탁은 정말이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위가 되어달란 부탁을 할 줄이야….
“저어… 로엔그린 전하?”
“말씀하시오.”
“혹시 엘프도 치매에 걸립니까?”
“그럴 리가.”
“그럼 미치신 겁니까?”
“나는 멀쩡하다네.”
“그런데 왜 그런 개소리… 아니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혹시 엘프들한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짜고짜 성혼하는 풍습 같은 게….”
“역시 아닐세. 엘프들은 연애 기간만 해도 최소 2, 30년 정도는 한다네.”
“그럼 왜….”
지크는 로엔그린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딸은 엘프와 결혼하기엔 애초에 글러먹었네.”
“예에…?”
“그런 못생긴… 추악한 외모를 가진 아이가 어떻게 결혼할 수 있겠는가?”
“…….”
“나는 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가 평생을 홀로 사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네. 이곳 엘론델에서 평생을 손가락질받으며 사는 것 또한.”
“설마 머리 색 때문인 겁니까?”
지크가 물었다.
“고작 빨간 머리라는 이유 하나로….”
“고작 빨간 머리라니!!!”
“……!”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 하지만 우리 엘프들에게 있어 머리 색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세! 미적인 관점과 기준이 다르단 말일세!!!”
로엔그린이 버럭 소리쳤다.
“인간인 그대는 모르겠지. 우리 브륜힐트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로엔그린이 슬픔에 젖은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
369년 전.
“응애~ 응애~”
로엔그린은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첫 번째 자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 에구머니나!”
“맙소사!”
“이, 이런 일이!!!”
문 안쪽에서 산파와 시녀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내, 내 딸이… 내 딸이 붉은색 머리칼이라니…!!!”
로엔그린은 자신의 딸이자 엘론델의 공주인 아기가 붉은색 머리칼을 가졌단 사실을 알고 절망하게 되었다.
머리 색은 엘프들의 세계에서 미(美)의 기준점이었다.
왜?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이목구비가 아름답고, 몸매 또한 훌륭하게 태어나기에 단순 외모만으로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정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아름다움을 타고난 엘프들로서는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오직 머리칼밖에 없었다.
그래서 엘프들은 머리 색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문제는 붉은색 머리칼을 매우 혐오했단 점이었다.
붉은색은 불을 상징하는 색인지라, 숲의 종족인 엘프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키게끔 했다.
게다가 다른 것이라면 모르되, 미의 기준점이 되는 머리 색이 붉다는 건 더더욱 거부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브륜힐트는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공주님은 정말 못생겼어요!”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으윽! 저렇게 추한 얼굴이라니!”
브륜힐트는 어려서부터 엘프들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또 따돌림을 당했으며, 공주의 신분임에도 천대를 받았다.
인간들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엘프들의 세계에서 붉은색 머리칼을 지닌 엘프가 겪는 인생이란 정말이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저는… 저는 그냥 검이 좋아요. 아바마마. 저는 비행 기사단의 기사가 될 거예요.”
하지만 착한 브륜힐트는 온갖 멸시와 수모와 천대를 겪으면서도 검을 자신의 유일한 친구 삼아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을 때.
“내 딸이 벌써 280살이 넘었는데… 여태 애인 하나 없다니….”
브륜힐트는 만나주는 남성 엘프가 없어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을 해보지 못한 채 300살이 가깝게 나이를 먹고 말았다.
로엔그린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건 엘프들의 왕으로서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네 내 딸아이와 결혼하겠는가?”
“싫습니다.”
남성 엘프들은 브륜힐트가 오죽 싫었는지, 중매가 들어오자마자 칼같이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럴 바엔 그만 살겠습니다.”
심지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숲의 종족 엘프의 입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소리까지 튀어나올 정도였다.
“딸아. 조금만 참으렴. 이 아빠가 네게 좋은 짝을 구해주마.”
“아바마마, 괜찮아요. 저는 검이 더 좋은걸요.”
“딸아….”
“비록 못생겼지만, 엘프 왕국을 지키는 검이 될 수는 있잖아요.”
브륜힐트는 무려 3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천대와 멸시를 당해왔기에, 엘프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를 어찌할꼬….”
결국, 로엔그린은 사랑하는 브륜힐트가 평생을 외롭게 살다 늙어 죽을 것이란 생각에 가슴 아파했다.
“내가 봐도 정말이지 추악한 외모긴 하지만 그 마음씨만은 더없이 착한 아이인데….”
물론 아버지인 로엔그린의 눈-엘프의 시각에서-으로 보아도 브륜힐트의 외모는 추악하기가 이를 데 없기는 했다.
그러던 중 희소식이 들려왔다.
“뭐, 뭣이?! 내 딸이 프로아 왕국의 국왕과 키스를 해?! 하하하! 요놈 잘 걸렸다! 강제로 브륜힐트와 결혼을 시켜야겠다!!!”
비행 기사단 소속 기사 하나가 은밀히 올린 보고에 로엔그린은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브륜힐트가 귀환하자마자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 그게요… 아바마마… 저는 그분이… 그분이… 왠지 모르게 좋아요… 헤에….”
“오오!”
“자꾸 생각이 나요… 첫눈에 반했다는 게 이런 건가 봐요….”
“좋다! 이 아비가 너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마!”
“아, 아니에요! 그러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조만간 시간을 내서 그분을 찾아갈 생각이거든요!”
“그런 게냐? 알겠다. 일단 가만히 있으마.”
브륜힐트가 부끄러워하자 로엔그린은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하지만
‘으음!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란 자가 어떤 자인지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그 후 로엔그린은 지크와 프로아 왕국의 동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크가 브륜힐트를 믿고 맡길-떠넘길-수 있는 자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왕이시여!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엘론델에 방문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으래? 그가 엘론델에 출입할 수 있게 허락하라!”
지크가 제 발로 엘론델에 오겠단 의사를 밝혀오자, 로엔그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입을 허가해 주었다.
‘후후! 이렇게 제 발로 와주다니! 정말이지 고맙군!’
사실 로엔그린은 지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그대가 내 딸아이를 책임져 주기를 원했다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지.”
“무슨 걱정 말씀이시죠…?”
지크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누구 멋대로 결혼을 시켜!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아 놓고!’
솔직히 말해서, 지크는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로엔그린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완전 짬 처리잖아!!!’
지크가 생각하기에, 로엔그린은 엘프들의 결혼 시장에서 도태당한 브륜힐트를 억지로 떠넘기려 하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그대는 인간. 내 딸아이는 엘프. 만약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그대의 수명이 먼저 다하겠지. 그럼 내 딸아이는 그대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후 수백 년 동안 슬퍼하겠지. 다시 외톨이가 되어서.”
“그런데요…?”
“하지만 그대는 그분의 제자이지 않은가?”
“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대 역시 그분처럼 수백 년 동안 건재하게 살아갈 것 같군.”
“헉?”
“그대가 그분의 제자이며, 그분이 아직 건재하게 살아 계시다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결심했네. 그대와 내 딸아이를 반드시 결혼시키리라고.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일세.”
“지, 지금 저한테 선전 포고하시는 거 아니죠…?”
지크가 살짝 뒷걸음치며 말했다.
“맞네.”
로엔그린이 살짝 한 발자국 다가서며 말했다.
“그대는 엘프가 아니지. 그렇기 때문에, 내 딸아이가 혐오스럽게 느껴지지 않겠지. 인간의 눈에는 우리 브륜힐트가 아름다워 보일 테니까.”
“…….”
“게다가 그대는 그분의 제자이니 수명 역시도 길겠지. 인간들이 말하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수명이 늘어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네. 그러니 자네는 내 딸아이의 배필로 가장 훌륭한 대상인 것이지. 후후.”
“하하… 하하하하하….”
지크는 그제야 어째서 자신이 엘프 왕국 엘론델에 손쉽게 출입할 수 있었는지를 깨닫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완전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온 꼴이잖아?!’
어쩐지 인간에게는 금단의 영역이라던 영원의 숲에 너무 쉽게 들어왔다 싶었다.
“그대의 의사는 상관없네.”
그때, 로엔그린이 다시금 선전 포고했다.
“나 엘프 왕국 엘론델의 군주 로엔그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대와 내 딸아이를 반드시 결혼시킬 것일세. 그러니 저항은 포기하고 순순히 받아들이게.”
“…….”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인간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 엘프 미녀와의 결혼이야! 게다가 그 엘프 미녀는 엘론델의 공주이지.”
“그래도 싫습니다.”
“시, 싫다고?”
“죄송하지만,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지크가 재빨리 자리를 떴다.
***
“…NPC랑 결혼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서둘러 로엔그린을 등진 지크가 혼잣말했다.
그런 지크의 표정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BNW를 플레이하는 게이머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감정적인 문제였다.
게임 BNW 속 NPC들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존재였다.
인간처럼 말하고, 인간처럼 생각하며, 인간처럼 행동한다.
비록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덩어리이긴 했지만, BNW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회사인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덕분에 NPC들의 생동감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그런 NPC와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한다?
이건 결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해서 현실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오직 게임에만 집착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게다가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가 다른 무엇도 아닌 남녀 간의 사랑과 관련된 감정이라면 더더욱 위험했다.
“난 현실에서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데… 게임 속 NPC한테 먼저 빠졌다간….”
솔직히, 지크는 두려웠다.
게이머가 겪는 정신적 장애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였다.
‘과몰입은 안 돼. 난 현실에서 친구도 몇 없는 아싸야. 만약 NPC랑 연애 같은 걸 했다가 빠져들면 절대로 못 벗어날 거다.’
그게 지크가 게임에서 여성 NPC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물론 성인 콘텐츠인 를 즐겼다가 캡슐 안에서 몽정 따위를 하는 불상사를 원하지 않기도 했고.
‘대충 엘프 왕국이나 둘러보다가 테라모그나 찾으러 가야지.’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엘론델을 둘러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번에 공주 마마께서 데려온 인간 봤어? 인간치곤 멋있더라.”
“그러게. 왕이라던데? 왕국 밖에 사는 엘프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는 왕이래.”
“어머! 그럼 인성도 훌륭하단 거잖아?”
엘론델을 둘러보던 지크는 엘프들이 아름다운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걸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인간 왕이랑 공주 마마랑 결혼하는 걸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에이, 설마.”
“으응?”
“인간들도 눈이란 게 있는데, 못생긴 공주 마마랑 결혼을 하려고 할까?”
“그래도 인간들의 미적 관점은 우리랑 많이 다르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주 마마는 너무 혐오스럽게 생기셨잖아.”
“그건 그래. 아무리 인간이라도 왕쯤 되면 굳이 공주 마마가 아니더라도 여자가 많을….”
본의 아니게 엘프들의 수다를 엿듣게 된 지크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고. 작작 좀 해라. 그깟 머리칼이 뭐라고. 한심하다, 한심해. 남 생긴 거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다. 엘프란 것들이… 으응?’
그런 생각을 하던 지크는 문득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브륜힐트 님?!’
수다를 떠는 엘프들의 뒤쪽에 브륜힐트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글썽글썽-
그런 브륜힐트의 눈가는 당장에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다다다!
브륜힐트가 뛰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지크가 브륜힐트의 뒤를 다급히 뒤쫓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