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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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륜힐트는 지크에게 엘론델을 안내해주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다른 엘프들이 수다를 떠는 걸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주 마마는 너무 혐오스럽게 생기셨잖아.] [그건 그래. 아무리 인간이라도 왕쯤 되면 굳이 공주 마마가 아니더라도 여자가 많을….]엘프들의 수다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브륜힐트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새겼다.
사실 브륜힐트의 마음은 수백 년 동안 상처를 입고, 입고, 또 입어 흉터로 얼룩져 있었다.
때문에, 어지간한 이야기에는 더는 상처받지 않았다.
천대받는 데 익숙해져서 무뎌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상처에 무뎌져버린 브륜힐트의 마음도 이번만큼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지, 지크 님마저 날 받아주지 않으시는 걸까?’
엘프가 아닌 지크마저 그녀를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자 그간 참았던 설움이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
다다다!
그래서 브륜힐트는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혼자서 펑펑 울 수 있는 곳으로….
***
‘젠장! 상처받았잖아!’
지크는 브륜힐트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기에, 그녀를 잡기 위해 황급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기요.”
하지만 그 전에 벤치 앞에 멈춰서 수다를 떨던 엘프들에게 말을 건넸다.
“네, 네에?!”
“어머!”
수다를 떨던 엘프들은 지크의 등장에 당황했다.
“제가 아는 엘프란 종족이… 숲의 종족으로 생명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기본적으로 선량한 종족 맞습니까?”
“그, 그런데요?”
“아닌 거 같은데?”
“네에?”
“뭔 놈의 엘프가 남 외모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니들이 그렇게 잘났냐? 외모 가지고 다른 사람 깔아뭉개고 뒷담화 까도 될 만큼?”
“…….”
“선량 같은 소리 하네. 이 쓰레기 같은 것들.”
지크가 싸늘하게 내뱉었다.
“앞으로 내 앞에서 브륜힐트 님 뒷담화 까다 걸리면, 머리통을 부숴놓을 테니까 그렇게들 알아. 알겠어?”
지크가 을 슥 하고 들어 올려 보였다.
그것은 경고였다.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은, 100퍼센트 진심이 담긴 엄중한 경고 말이다.
“빈말 아니니까 그 입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한 지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금 브륜힐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지크가 사라진 직후.
“뀨우! 내놔라!”
햄찌가 수풀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소.”
그러자 로엔그린이 품속에서 커다란 자루를 꺼내 햄찌에게 넘겨주었다.
“뀨우! 영원의 숲에서 나는 호두는 정말 별미다! 고맙다! 뀨우우우! 좋은 거래였다!!!”
“허허. 별말씀을. 본인 역시 즐거운 거래였소.”
로엔그린이 아주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숲의 대정령께서는 이렇게 될 줄 어찌 아시었소?”
“뀨우! 햄찌는 주인 놈 잘 안다!”
햄찌가 지크를 잘 아는 사람, 속칭 ‘지잘알’을 자처했다.
“주인 놈이 단호해 보이고 냉정해 보여도 사실은 정에 약하다! 협박하거나 압박하면 절대 안 먹힌다! 뀨우! 주인 놈은 정에 호소하면 공략하기 쉽다! 주인 놈이 좀 비열하고 남의 뒤통수 잘 치고 그래도 사실 착하다!”
“숲의 대정령께서는 진정 지크 국왕을 잘 아시는 모양이구려. 이 로엔그린이 한 수 배워가는 바요.”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해라! 뀨우! 하지만 대가는 잊으면 안 된다! 햄찌 쿨거래 좋아한다!”
“후후. 걱정 마시오. 영원의 숲에서 나는 맛 좋은 견과류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다고.”
그러던 때였다.
“왕이시여. 임무를 완수하였나이다.”
“임무를 완수하였사옵니다.”
벤치에 앉아 브륜힐트의 뒷담화를 까던 엘프들이 로엔그린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수고들 하였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을 텐데, 잘해 주었어. 좋은 연기였다.”
로엔그린이 엘프들을 칭찬했다.
“아니옵니다, 왕이시여. 굳이 연기할 필요가… 아차!”
“진심이 담기면… 헉!”
순간 진심을 토해 내버린 엘프들은 로엔그린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얼어붙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랬다.
사실 엘프들의 뒷담화는 명령에 의한 연기가 아닌 그저 일상적인 대화였던 것이다.
“…물러가라.”
로엔그린이 분노를 애써 참으며 엘프들을 물렸다.
총총총!
놀란 엘프들이 다급히 자리를 떴다.
“휴우~ 붉은색 머리칼을 혐오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니 벌을 줄 수도 없고. 나조차도 거부감이 드는 것을….”
로엔그린이 씁쓸히 혼잣말했다.
본능에 각인된 거부감은 선천적으로 선량함을 타고나는 엘프들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
엘프 왕국 엘론델의 왕성에 자리한 어느 작은 숲.
“흑, 흑흑흑~.”
브륜힐트는 숲속에 숨어든 채 흐느껴 울었다.
이 숲은 브륜힐트가 어려서부터 찾던 곳으로, 그녀는 울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곳을 찾아 원 없이 울며 자신의 설움을 풀곤 했다.
햄찌와 로엔그린이 어둠의 거래(?)를 통해 사기극을 꾸몄지만, 브륜힐트는 공범이 아니었기에 진짜로 상처를 받고 말았던 것이다.
“흑흑… 흐에에에엥~ 흐아아아아아아앙!!!”
브륜힐트는 무려 50년 만-만성이 되어 한동안은 울 일이 없었다-에 다시 찾은 이 숲에서 펑펑 울었다.
“왜, 왜 나는… 엘프 친구도 없고. 지크 님마저… 흑흑, 흑흑흑.”
그때였다.
“브륜힐트 님!”
황급히 브륜힐트를 뒤쫓아 온 지크가 소리쳤다.
“여기서 뭐 하세요!”
“지, 지크 님!”
“왜 울어요, 왜. 누가 그랬어요.”
“지크 님도… 제가 혐오스러우신가요? 저와 만나주시지 않으실 건가요? 흑흑.”
“무슨 소립니까.”
지크는 자기도 모르게 브륜힐트를 꼭 안아주고 말았다.
‘어휴. 불쌍해라. 착한 분인데.’
지크의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 잘못도 없이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처 입고 펑펑 우는 여자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건 굳이 사랑이란 감정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흑흑~ 지크 니임.”
“울지 마요. 브륜힐트 님이 왜 울어요. 걔들이 나쁜 건데.”
“저, 정말 저와 안 만나주실 건가요? 그런 건가요? 저, 저는 지크 님을 좋아해요! 흑흑! 첫눈에 반했단 말이에요!”
“그, 그건….”
지크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역시 그렇군요. 지크 님도 저를 원하지 않으시는군요. 흑… 흐에에에에에에엥!!!”
“그게 아니라! 얘기는 들어 보셔야죠!”
“네에?”
“저는 말이죠….”
지크는 브륜힐트를 달래주며 자신이 어째서 여자를 안 만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NPC에게 이 세계가 사실은 허구이며, 가상 현실이란 걸 알려줄 순 없었으므로 적당히 각색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차피 진실을 말해주어 봤자 프로그램이 차단 프로토콜을 돌리기에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그랬군요.”
“브륜힐트 님. 제가 친구가 되어 드릴게요.”
지크가 브륜힐트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브륜힐트 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크 님….”
“저는 브륜힐트 님이 싫지 않습니다. 혐오하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상처 같은 거 받지 마셔요. 알겠죠?”
“네에.”
지크의 자상한 다독임에 브륜힐트는 상처 입었던 마음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지크 님. 정말 다정하세요. 너무 달콤해요. 아아. 사랑이란 이런 건가요? 너무 황홀해서 미칠 것 같아요!’
브륜힐트는 지크의 다독임에 생애 처음으로 이성으로부터 받는 행복을 느꼈고.
꽈악!
지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아 탄탄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토닥토닥!
지크는 숨이 조금 막혔지만, 상처 입은 브륜힐트가 안쓰러워 그녀의 등을 한동안 토닥여 주었다.
그로부터 약 10분 후.
“이, 이제 좀 떨어져 주시면 안 될까요? 크윽~. 숨이 너무 막혀서… 하하하.”
“어머! 죄송해요!”
지크의 얼굴이 푸르게 변한 것을 본 브륜힐트가 황급히 그를 놓아주었다.
“힘이 세시네요. 하하하!”
“죄송해요. 너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웅!!!
갑작스레 엘론델 전체가 진동하더니 곳곳에 설치된 마법의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상, 비상! 병사들과 장병들은 즉시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집결하라!] [다시 한번 전파한다! 병사들과 장병들은 즉시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집결하라! 다크 엘프들이 군대를 일으켰다! 비상, 비상!!!]전쟁.
다크 엘프 왕국인 니플헤임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지크 님! 가 봐야겠어요!”
브륜힐트가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엘프 왕국 엘론델의 정예 중의 정예라는 비행 기사단의 단장이었기에, 이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언제 어느 때고 출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얼른 가 보세요!”
지크 역시 그것을 알았기에, 브륜힐트가 출동할 수 있게끔 그녀를 보내주었다.
***
“난 그럼 테라모그나 찾으러 가볼까.”
다크 엘프들의 침공은 엘론델과 니플헤임 간의 분쟁이었기에, 지크는 테라모그를 찾으러 떠나기로 했다.
“근데 이 빌어먹을 몬스터를 어디서 찾지? 단서가 없는데….”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햄찌, 그랭구아르, 승구, 세스크와 합류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인 테라모그를 찾으러 갈 건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 뭐지?”
놀란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고맙게 테라모그란 놈이 등판해주는 건 아니겠지? 하하. 그럴 리가 없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엘론델의 왕성 외곽이 무너져 내렸다.
[구어어어어어어어어억!!!]그리고 코뿔소와 거북이를 합쳐놓은 것같이 생긴 거대한 괴수가 나타나 포효를 내질렀다.
어지간한 건물 한 채보다도 더 큰 덩치를 가진 그 괴수는, 온몸에서 시뻘건 불길과 시커먼 유황 연기를 내뿜으며 왕성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저, 저언하?”
그랭구아르가 멍한 표정으로 지크에게 말했다.
“굳이 단서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 그러게요…?”
지크 역시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혹시 부르신 건 아니신지….”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하하하….”
뜬금없이 등장한 저 거대한 괴수가 지저 괴수인 테라모그라는 건 굳이 을 비추어 볼 필요도 없을 테니까.
“뭐. 잘됐네. 엘프들끼리의 분쟁은 우리가 끼어들 영역도 아니었으니까. 우린 테라모그나 상대하자. 엘프들이 다크 엘프들이랑 싸우는 데 집중할 수 있게끔.”
안 그래도 다크 엘프들의 침공으로 인해 엘론델의 주요 전력들이 본진을 비운 터, 지크는 동료들을 이끌고 테라모그 사냥에 나섰다.
***
‘강한 적이니까, 디버프부터!’
빠르게 테라모그에게 접근한 지크는 지체하지 않고 와 을 전개했다.
그러자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테라모그와 똑같이 생긴 검은 형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지크를 발견한 테라모그는 디버프 필드가 깔린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쿵쾅, 쿵쾅, 쿵쾅!!!
테라모그는 거대한 몸뚱이를 지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내달려 지크를 들이받으려 했다.
‘어? 그림자의 늪을 저렇게 쉽게 벗어나?!’
테라모그가 가진 힘이란 그림자의 늪으로도 어떻게 묶어둘 수 없을 만큼 강력해서, 슬로우 효과가 거의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사실 슬로우 효과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단지 테라모그의 기본 이동 속도가 워낙에 빨라서, 디버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 증거로, 그림자의 늪을 벗어난 테라모그의 이동 속도는 거의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을 정도로 빨랐다.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어? 어어?”
덕분에 지크는 크게 당황했고.
“망할!!!”
테라모그에게 깔려 죽지 않기 위해 황급히 몸을 날려야만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