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35
334
‘얘 뭐 하는 거지?’
지크는 헌터리안 킹의 이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다.
‘왜 이래?’
헌터리안 킹은 마치 포복 훈련이라도 하는 군인처럼 땅을 엉금엉금 기었다.
더욱 황당한 건 그런 헌터리안 킹이 매우 진지했다는 거였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마치 자신의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과 같다고나 할까?
“야, 너 뭐 ㅎ….”
지크는 헌터리안 킹에게 뭐 하냐? 라고 물어보려다가 멈칫했다.
‘설마?’
지크는 왠지 헌터리안 킹의 이상한 행동을 알 것만 같았다.
‘얘 지금 은신 걸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지크는 헌터리안 킹을 더 유심히 살폈다.
스윽.
헌터리안 킹이 정말이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몸을 일으켰다.
살금살금.
그리고는 자세를 바짝 낮추고 지크의 주위를 서서히 탐색하듯 돌기 시작했다.
“푸… 읍! 읍읍!”
지크는 풉! 하고 웃으려던 걸 아차! 싶어서 꾹꾹 눌러 담았다.
“크르륵!(두목님!)”
“크륵, 크르륵!(두목님, 두목님!)”
“캬아악! 캬악!(두목님! 은신이 안 됐습니다!)”
그때, 역시 사태를 파악한 헌터리안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소리쳤지만 헛수고였다.
헌터리안 킹은 부하들의 외침을 들을 수 없었다.
에슈카 유적지에 쳐진 고대의 결계가 의사 전달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펼쳐지는 동안에 제3자의 개입을 철저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이유로 헌터리안 킹은 은신이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은신이 걸린 것처럼 행동하며 지크를 기습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으윽! 우, 웃으면 안 되는데! 읍읍!’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깨달은 지크는 웃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해야 했다.
‘아, 안 돼. 참자. 참아. 심호흡! 후우우!’
지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인 웃음을 억누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했다.
“어, 어디 간… 큭! 거지?”
지크는 헌터리안 킹이 상처(?) 받지 않도록 모르는 척을 해주었다.
그런 지크의 배려(?) 덕분에 헌터리안 킹은 은신이 걸리지 않았다는 걸 모른 채 기습 공격을 위한 움직임에 열중했다.
‘이번에는 그 대갈통을 박살 내주마. 흐흐!’
헌터리안 킹은 지크의 주위를 빙빙 돌기도 하고, 때론 멈추어 서 있기도 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러는 사이.
“이, 이 자식! 어디 있는 거냐! 나와라!”
지크는 헌터리안 킹에 장단을 맞추어 당황했다는 듯 연기를 해주었다.
“뀨우? 주인 놈아 지금 뭐 하는 거냐?”
“뭐, 뭐지….”
“흥미롭군요. 흐음.”
햄찌와 승구와 그랭구아르는 그런 지크와 헌터리안 킹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두 사람의 대결은 무척이나 기묘했다.
헌터리안 킹은 은신이 되지 않았는데 마치 은신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지크는 은신이 되지 않은 헌터리안 킹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바보들의 행진이랄까?
“어떻게 된 거냐! 둘 다 머저리 같다!”
“둘 사이에서만 뭔가 마법 같은 게 적용된 게 아닐까?”
“공간 왜곡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햄찌와 승구와 그랭구아르가 자초지종을 알아채기 위해 노력하던 때였다.
“뒈져라! 하찮은 인간!”
헌터리안 킹이 지크를 향해 를 휘둘렀다.
“주, 주인 놈아아!!!”
놀란 햄찌가 절규하다시피 소리치던 순간.
휘리릭!
지크가 몸을 빙글 돌려 를 휘둘러 스킬을 시전했다.
쩌억!
엄청난 위력을 품은 스킬의 위력에 헌터리안 킹의 갑옷과 그 우람한 가슴 근육이 거짓말처럼 갈라지고.
푸화아악!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는 헌터리안 킹.
이 그런 헌터리안 킹의 머리통을 속사포처럼 내리찍었다.
!
디버프 마스터의 다단 히트 스킬이었다.
***
지크가 헌터리안 킹에게 크게 한 방을 먹인 직후.
“뀨, 뀨우?”
그 광경을 본 햄찌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설마? 저거 연기였나?”
“크흠! 어쩐지 좀 어설프더라니! 전하께선 연기를 하고 계셨던 것이로군요!”
햄찌와 승구와 그랭구아르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깨달았다.
“크, 크르륵! 어, 어떻게! 내 은신을… 간파한 것인가!”
헌터리안 킹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은신 능력이 간파 당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럴 만했다.
헌터리안 킹의 은신 능력은 소리뿐 아니라 발자국까지도 감출 수 있는 초고위급 사기 스킬.
헌터리안 킹으로서는 그 절대적인 능력을 간파 당했다고 생각하니 놀라우면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지크가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다 보이던데?”
“거, 거짓말 마라!”
“진짠데.”
“운이다! 나는 네놈이 나를 간파했다고 생각하지 않… 크악!”
헌터리안 킹은 지크를 부정하려다 비명을 내질렀다.
빠악!
에 안면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저 멀리멀리 날아갔기 때문이다.
“크윽!”
헌터리안 킹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운이 좋았던 주제에 감히!”
“운일까? 실력일까?”
“크르륵! 갈기갈기 찢어주마!”
지크를 향해 으르렁거린 헌터리안 킹이 다시금 은신 능력을 시전했다.
우웅!
그에 맞춰 지크가 을 걸어 헌터리안 킹의 은신 능력을 봉쇄했다.
그리고는 능청스럽게 꽤 봐줄 만한 연기를 했다.
“어, 어디냐!”
지크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헌터리안 킹을 찾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정신을 집중해 은신 능력을 간파하려고 노력하는 척 인상을 팍 구겼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듯한 액션도 잊지 않았다.
“캬아아아아아아악!(두목니이임! 은신 안 됐습니다!)”
“캬아악, 캬악!(두목님! 속지 마십쇼!)”
헌터리안들이 자신들의 두목을 향해 재차 소리쳤지만, 역시나 헛수고였다.
‘이번만큼은 간파할 수 없을 것이다.’
헌터리안 킹은 부하들의 소리를 듣지 못했고, 은신이 된 줄로만 알고 기습 공격을 위한 움직임을 취했다.
그로부터 약 30초쯤이 지났을 무렵.
‘지금이다!’
헌터리안 킹이 지크의 빈틈을 포착하고는 몸을 날리던 순간.
“간파했다!”
지크가 몸을 홱! 돌리며 을 휘둘렀다.
빠악!
이 헌터리안 킹의 턱주가리를 아래서부터 위로 쳐올렸다.
“커헉!”
턱뼈가 박살이 난 헌터리안 킹이 땅바닥에 거칠게 처박히던 무렵.
‘이거 딜 진짜 안 박히네.’
지크는 헌터리안 킹의 맷집에 혀를 내둘렀다.
평범한 공격으로는 이 무시무시한 괴물 원숭이를 죽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무언가 큰 것 한 방이 필요했다.
우웅!
지크를 중심으로 가진 모든 디버프 필드들이 일제히 전개되었다.
지지지직!
그러자 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너 이게 뭔 줄 아냐?”
“크륵!”
“죽빵이라는 거다, 죽빵.”
그렇게 말한 지크가 스킬을 머금은 으로 헌터리안 킹의 안면을 후려쳤다.
쾅!
스킬이 작렬하던 순간.
퍽!
헌터리안 킹의 상반신이 마치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에 실린 파괴력이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상반신 전체가 분자 단위로 흩어져버린 것이다.
털썩!
상반신을 잃은 헌터리안 킹의 하체가 허물어지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야만 부족들의 환호성이 에슈카 유적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헌터리안 킹을 쓰러뜨린 직후.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꽤 많은 양의 경험치가 주어졌다.
물론 레벨이 오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헌터리안 킹을 처치해 획득한 경험치는 다음 레벨까지의 필요 경험치의 고작 5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240레벨 정도까지는 꽤 순조롭게 왔지만, 슬슬 ‘마의 구간’에 부딪혔단 얘기였다.
[알림 : 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알림 :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칭호 획득!]새롭게 얻게 된 칭호의 효과는 기존에 헌터리안 킹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30레벨이었다.
물론 남부 대정글에서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효과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지크는 눈앞에 뜬 알림창들에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구했어!’
지크가 땅에 떨어져 있던 를 움켜쥐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알림 : 를 분해해 안에 든 를 획득하십시오!]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브륜힐트의 치료제를 구했다는 것.
그게 지크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뀨! 주인 놈아아! 고생했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전하! 멋지십니다!”
햄찌와 승구와 그랭구아르가 지크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당신은… 정말 강한 분이시군요. 남부 대정글의 새로운 지배자시여.”
아마조네스 부족의 족장 안티오페가 지크에게 예를 표했다.
“새로운 지배자시여!”
“오오! 새로운 지배자시여!”
“새로운 지배자께 경배드립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새로운 지배자시여!”
나머지 5대 야만 부족의 족장들 역시 지크를 향해 절하며 경의를 표했다.
그런 족장들이 지크를 대하는 태도는 헌터리안 킹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헌터리안 킹과 헌터리안들은 30년 전 에슈카 유적지를 기습적으로 무단 점거한 폭력배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헌터리안 킹에게는 정당성이라는 게 없었고, 그에 따라 5대 야만 부족은 그를 결코 존경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여차하면 5대 부족이 연합해 에슈카 유적지를 공격할 것처럼 대립하고 있었던 차였다.
하지만 지크는 달랐다.
지크는 을 통해 5대 부족의 족장들을 차례차례 꺾었고, 나아가서는 에슈카 유적지의 실질적 지배자인 헌터리안 킹까지도 처치했다.
즉, 지크에게는 이곳 의 지배자로서의 확고한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대족장이시여.”
안티오페가 지크를 향해 가지런히 무릎을 꿇었다.
“대, 대족장? 제가?”
“예, 대족장이시여. 당신께서는 저희 5대 부족을 영도하시는 대족장이세요.”
“엥?”
“아마조네스 부족의 족장 안티오페가 대족장께 인사드려요.”
그렇게 말한 안티오페가 지크로서는 기절초풍할 발언을 이어갔다.
“제 지아비시여.”
“지, 지아비이이이?!”
“저희 아마조네스들은 대대로 대족장님의 아이를 배출해온 부족이에요.”
“헉?”
“대족장님과 저희 아마조네스 부족의 족장이 왕과 왕비로 묶이는 건 이곳 남부 대정글의 오랜 문화이자 전통이죠.”
“어… 어어… 그게….”
지크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브륜힐트의 치료제를 구하려다 혹을 붙인 격이랄까?
“대족장이시여. 지아비시여. 제가 모시겠어요.”
안티오페가 그렇게 말하던 순간.
호다다닥!
지크가 뛰기 시작했다.
삼십육계, 줄행랑!
이대로 코가 꿰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일단 도망친 것이다.
“앗! 대족장께서 도망치신다!”
“대족장님께서 도망을 치신다!”
“잡아라!”
“대족장님, 대족장님!”
“저희를 버리지 마소서! 대족장님!”
야만 부족들이 도망치는 지크를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
모 대학 병원의 6인 병실.
“혀엉!”
한 초등학생이 멍하니 누워 있던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형… 아프신데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면 저 사인 좀 부탁드려….”
“커져, 이 색희야하.(꺼져, 이 새끼야.)”
채형석은 안면마비로 말이 어눌한 와중에도 사인을 요청하는 초등학생에게 냉랭히 쏘아붙였다.
“추켜 버리키 저네.(죽여 버리기 전에.)”
그런 채형석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기세에 초등학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하얗게 질린 채 자리를 떠났다.
수군수군-
병실에 있던 이들이 조그맣게 수군거렸다.
채형석은 병실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 간에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태성.’
채형석의 뇌리에는 오직 한 남자뿐이었다.
‘한태성, 한태성, 한태성, 한태성….’
뇌리를 맴돌던 그 이름은 이내 곧 실제로 터져 나왔다.
“한태서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채형석의 악에 받친 외침에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
“추켜… 버린타… 하태서… 추켜… 버리커야… 한태서어….(죽여… 버린다… 한태성… 죽여 버릴거야… 한태성….)”
그때였다.
채형석의 시선에 그의 어머니가 사과를 깎던 과도가 들어왔다.
“킥킥! 크래… 추켜… 버리면 되지… 추켜 버리면….(킥킥! 그래… 죽여… 버리면 되지… 죽여 버리면….)”
채형석이 미친 사람처럼, 아니 미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