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92
391
“오스칼 경에게 큰일이 났다고? 막아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이야?”
지크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카렐에게 되물었다.
“오스칼 경 휴가 갔는데? 나한테 직접 신고하고?”
“여기서 말씀드리기 곤란한 문제입니다.”
카렐이 주변을 가리켰다.
“응?”
“보는 눈이 많고 듣는 귀가 많습니다.”
카렐의 말에 지크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와. 지크 님이다.”
“대박.”
“칭호 진짜 구질구질하시네… 도대체 어디서 뭔 짓을 하고 다니시는 거지?”
“통수의 마왕이래.”
“성인 콘텐츠를 얼마나 즐겨야 저런 칭호를 받을 수 있지?”
주변을 돌아보니 게이머들이 너도나도 지크를 바라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자, 자리 옮기자.”
지크는 민망하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해서 카렐의 말대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뀨우! 주인 놈아아! 그러게 왜 나쁜 짓만 골라서 하고 다녔냐!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뀨우!”
“시끄러.”
지크가 햄찌의 놀림에 인상을 팍 구겼다.
“그러다 부끄러운 아빠 된다! 뀨우! 지금이라도 착하게 살아라! 주인 놈아 새끼가 이담에 크면 얼굴 어떻게 들고 다니냐!”
“그, 그건!”
“뀨우! 새끼 봐서라도 잘 좀 해라! 잘 좀! 뀨우우!”
“크흑….”
지크는 부끄러운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햄찌의 지적에 피눈물을 쏟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크 일행은 그렇게 앞을 지나 어느 한적한 숲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 대화를 시작했다.
“오스칼 경이 왜? 무슨 일 있어?”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카렐이 지크에게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지크는 쓸데없이 알림창이 떠오른다고 생각하며, 프로아 왕국 기사단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개봉해 보았다.
그런데.
“이, 이게 뭐야?”
지크는 편지의 제일 첫 번째 줄을 읽고는 당황해 눈살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 사직서
편지의 제일 첫 번째 줄에는 모든 직장인들이 가슴 속에 하나씩은 다 품고 있다는 사직서였기 때문이다.
“사직서어어어?!”
지크의 눈이 크게 튀어나오던 순간.
지크의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 내가 너무 막 굴렸나?”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지크는 스스로를 먼저 되새겨 보았다.
“악덕 사장이 싫어서 도망간 건가? 쉬지도 못하게 해서? 으으으! 오스칼 경은 매일 조기 출근에 매일 야근이었잖아! 아니면 월급이 적어서? 으윽! 특별 보너스라도 챙겨 드렸어야 하는 건데!”
멀쩡히 잘 근무하던 오스칼이 이렇듯 갑자기 그만둘 리 없었으므로, 지크는 사직서의 이유를 사장(?)인 자신에게서 찾으려 했다.
“주인 놈아아.”
“으응?”
“왜 설레발 치냐?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냐. 뀨우.”
“그, 그런가? 아니 근데 한국말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건 어디서 들었냐?”
“한국 모험가들한테서 들었다. 뀨우~!”
“너 자꾸 모험가들이랑 노닥거리면서 이상한 말 같은 거 배워오지 말랬지? 하여간 나쁜 말만 배워오네. 쯔쯧쯧쯧.”
언제부터 가 나쁜 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크는 햄찌에게 그렇게 쏘아붙인 후 사직서를 마저 읽어보았다.
존엄하신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시자 소신의 단 하나밖에 없는 주군이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
전하.
신(臣) 오스칼이옵니다.
이렇듯 갑작스레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어 그저 죄송스러울 따름이옵니다.
신이 이렇듯 사직서를 제출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옵니다.
이 일은 자칫 프로아 왕국에 큰 누를 끼칠 수 있는 일이옵니다.
하여, 신은 감히 조국에 누를 끼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중략)
전하.
이렇듯 불경을 저지르고 떠나는 신을 부디 용서치 마시옵소서.
만약 다음 생에 전하를 모시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그때는 한평생 백골이 삭아 부스러지도록 못다 한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 불충한 신하 오스칼 드림.
“뭐야 이게?”
지크는 사직서의 내용을 다 읽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프로아 왕국에 누를 끼칠까 봐?”
“예, 전하.”
“아니, 오스칼 경한테 본국에 누를 끼칠 정도로 개인적인 일이 있어? 그렇다고 사직서를 다 쓰고?”
그때였다.
“왕 주제에 사고 치고 다니는 누구보다는 낫다! 뀨우!”
햄찌가 인정사정없이 지크를 두들겨 팼다.
“뭐 인마?”
“뀨! 햄찌가 틀린 소리 했냐! 주인 놈아는 왕 주제에 나라에 온갖 누는 다 끼치고 다니는데!”
“내, 내가 언제!”
“차라리 오스칼 경이 낫다! 오스칼 경은 책임감 있는 기사다! 주인 놈아보다 백배 천배 낫다! 뀨우우우!”
“그, 그만 때려어어어어어!”
지크는 햄찌의 무자비한 구타(?)에 괴로워하며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는 카렐에게 말했다.
“일단 본국으로 귀환하자.”
“예, 전하.”
지크는 사태 파악을 위해, 일단 프로아 왕국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
프로아 왕국에 도착한 직후.
지크는 미켈레와 카렐, 승구를 불러 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음.”
오스칼의 사직서를 읽어본 미켈레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역시 오스칼 경은 어떤 분과는 다르시군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뭐 인마?!”
지크가 버럭! 성질을 냈다.
“왜 그러십니까?”
“너 지금 나 들으라고 그러는 거지? 어?!”
“찔리십니까?”
“아, 아니?”
“그런데 왜 발끈하십니까.”
“어… 그게….”
“카렐 경.”
미켈레는 지크의 구질구질한 변명은 듣기 싫다는 듯 카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 사안에 대해 조금 아시는 게 있으신 걸로 압니다만?”
“그것이….”
카렐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뭐야? 너 뭐 아는 거 있어?”
지크가 카렐에게 물었다.
“있습니다만….”
“뭐야? 무슨 일인데?”
“오스칼 경의 지극히 사적인 얘기라서… 제가 말씀드리기가 상당히 곤란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사안이 워낙 심각한 것 같으니 말을 꺼내 보겠습니다. 부디 제 가벼운 입을 용서하시기를….”
매너남 카렐은 그렇게 양해를 구한 뒤 오스칼이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를 조심스레 입에 담았다.
“아무래도 오스칼 경은….”
“오스칼 경은?”
“첫사랑이었던 기사님을 구하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신 것 같습니다.”
“얘 지금 뭐라는 거야?”
지크가 카렐을 가리키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뭐? 오스칼 경이 첫사랑을 구하기 위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제가 추측하기로는 그렇습니다만….”
“야! 소설을 써라!”
지크가 카렐에게 면박을 주었다.
“오스칼 경이 어떤 사람인데 첫사랑 때문에 사직서를 써?”
“…….”
“소설도 니 말보다는 개연성 있겠다!”
지크의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지금 카렐의 말은 평소 오스칼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소리 취급하고도 남을 정도로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오스칼이 누구던가?
그 유명한 맥캘란 왕국의 기사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 기사였다.
오스칼은 기사로서 스스로가 가진 무력 또한 매우 밸런스 있는 뛰어난 무장이었고, 전략·전술에도 능했다.
또한, 행정적인 면에도 두각을 나타내어 프로아 왕국 내에서 미켈레 다음으로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평소 성격 또한 차분한 데다가 모난 구석을 단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는 인격자이기도 했다.
그런 오스칼이 과거의 첫사랑 때문에 사직서를 쓰고 사라졌다?
프로아 왕국의 지나가던 개도 안 웃을 일이었다.
“저도 말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제가 알기로 오스칼 경이 지극히 사적일 일로 사직서를 쓸 일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에이~.”
그때였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켈레가 카렐의 의견에 동의했다.
“뭐야? 너까지 그렇게 생각한다고?”
“예.”
지크의 물음에 미켈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믿기지 않지만… 오스칼 경의 과거에 대해서는 좀 아는 게 있습니다.”
“그래?”
“예.”
“뭔데? 오스칼 경한테 세기의 로맨스라도 있었던 건가?”
지크가 귀를 쫑긋대며 물었다.
“그 반대입니다.”
미켈레가 고개를 저었다.
“반대라고?”
“오스칼 경께서는….”
“……?”
“겉만 번지르르한 쓰레기에게 낚이셨습니다. 아마 기사 아카데미 시절이었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 카렐 경?”
미켈레가 카렐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런 걸로 압니다.”
그러자 카렐이 미켈레의 말을 받아 오스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기사라면 누구나가 오스칼 경의 불행한 로맨스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서….”
“불행한 로맨스라.”
지크가 그 말을 곱씹으며 물었다.
“뭔데?”
“별건 아닙니다. 오스칼 경이 3학년 무렵에 한 교관이 새로 부임해 왔는데… 굉장한 미남에 인품도 훌륭하고, 무력도 출중한 기사였지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마 비밀 연애를 했던 것으로 압니다. 결국에는 다 들통나 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뒤엔 어떻게 됐는데?”
“그 교관이 오스칼 경을 버리고 어느 명문가의 여식과 결혼해 버렸지요.”
“헉!”
“다분히 출세지향적인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오스칼 경과 같은 훌륭하신 분을 가차 없이 내던진 것을 보면요.”
“쓰레기네.”
“예, 쓰레기 맞습니다. 결혼으로 출세한 뒤에 아카데미의 교관 자리는 내던지고 곧바로 어느 영지의 영주로 부임해 폭정을 일삼았단 얘기가 들려오는 걸 보면, 본성이 형편없던 인물인 건 분명한 사실이겠지요.”
“그래서? 지금 오스칼 경이 그 쓰레기를 구하러 갔다는 거야? 바보처럼?”
“아마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그 쓰레기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그게 말입니다….”
카렐이 자초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사건은 간단했다.
오스칼을 버린 쓰레기가 영주로 있는 영지와 다른 영지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리고 오스칼을 버린 쓰레기는 영지전에서 패배했고, 붙잡혀 교수형에 처해질 예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영지전에서 승리한 영지가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도 강대국으로 통하는 에 속한 영지였다는 것.
말인즉슨, 영지 하나의 규모가 프로아 왕국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하다는 걸 뜻했다.
“지금… 오스칼 경이 거대한 영지를 상대로 나 혼자 구출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는 거지? 그 쓰레기를 구하려고?”
“예.”
카렐이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으윽!”
지크가 뒷목을 움켜잡았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하, 항암제… 항암제 좀….”
“전하!”
지크는 오스칼이 친 대형 사고(?)에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오스칼은 어째서 자신을 버린 쓰레기를 구하기 위해 사직서까지 쓰고 달려간 걸까?
그 위험천만한 곳에?
그것도 자신의 목숨과 기사로서의 명예를 내던지면서까지….
사랑이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어떠한 매혹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미켈레가 입을 열었다.
“버리십시오.”
“버리라?”
“예, 전하.”
미켈레의 조언은 냉혹하기 짝이 없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은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대국.
그런 국가의 영지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면, 앞으로 마저도 적으로 돌리게 될 수도 있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들로서 국익만을 생각한다면… 오스칼을 버리는 게 옳았다.
“오스칼 경 하나 때문에 엠포리오 왕국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버려야겠지?”
“예.”
“그래. 버려야겠네.”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하?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오스칼 경 구하러.”
“이런 ㅆ….”
순간 미켈레의 입에서 쌍욕이 반쯤 튀어나오려다 말았다.
“응? ㅆ… 뭐?”
“아, 아닙니다.”
미켈레가 지크의 물음에 재빨리 고개를 흔든 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휴. 전하. 어떻게 학습 능력이란 게 없으십니까? 지난번 콘스탄틴 내전 때도 한번 호되게 당하셔놓고….”
“이게 나빠서.”
미켈레의 타박에 지크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대꾸했다.
“하오나….”
“프로아 왕국은 국민을 버리지 않는다.”
“……!”
“더욱이 오스칼은 내 사람이야. 난 내 사람 안 버려. 니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난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전하.”
“최대한 방법을 찾아서 노력해볼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으응?”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미켈레가 품속에서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 지크에게 넘겨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