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84
583
[알림 : 편지가 도착했습니다!]지크는 뜬금없이 편지가 도착하자 당황했다.
“뭐지?”
그도 그럴 것이, 게임 BNW의 편지함은 도대체 왜 있나 싶을 정도로 하는 게 없는 기능이었기 때문이다.
게임 BNW는 리얼리티를 위해 게이머들끼리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귓속말 기능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편지함은 언제나 텅텅 비어 있기 일쑤였다.
게다가 게임 BNW의 개발사이자 운영사인 은 게임 내에서 그 어떤 공지 사항을 전파하지도, 업데이트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편지가 도착한 걸까?
“보면 알겠지.”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편지함을 열어보았다.
도착한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공지] 온라인 예선 참가자들은 반드시 참고하세요! (중요!)안녕하세요.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의 조별 리그를 시작하기에 앞서,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략)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의 생존입니다.
곧 조별 리그의 방송 경기가 열리는 만큼, 캐릭터의 생존에 각별히 주의해 주세요.
본사의 운영 방침에 따라, 대회에 참가하기 전 게이머의 캐릭터가 사망할 시 절대로 부활시켜 주지 않습니다.
이는 게임 BNW가 단순히 게임이 아닌 하나의 이세계임을 강조하기 위한 본사의 운영 방침이며, 약관에도 명시되어 있는 사항입니다.
그러니 캐릭터의 사망으로 인해 대회에 불참,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무신의 전당에서 당신의 승리를 기원하며.
주의 사항 : 조별 리그 지각 시 3개월, 불참 시 6개월 동안의 게임 이용 정지의 제재가 가해질 예정이오니 게이머 여러분들의 협조 부탁드립니다.
“몸 사리란 거네.”
지크는 딱히 메시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는가?
게임을 운영함에 있어 철저히 으로 일관하는 회사가 바로 이다.
그런 만큼 게이머가 대회 직전에 캐릭터의 사망으로 인해 불참을 하더라도 부활은커녕 위로의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이렇듯, 공지 사항을 통해 경고라도 해준 걸 감지덕지해야 할 판국인 것이다.
“그럼 몸 사리지 뭐.”
지크는 당분간 에 집중할 생각이었으므로,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목숨이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부르스, 하던 거 계속하자.”
[My name is Bruce! Bruce Wood!]지크는 편지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부르스와의 대련을 이어나갔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에 집중하란 뜻일까?
지크는 조별 리그가 이틀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오즈릭 교단의 음모, 혹은 에 대한 그 어떤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오늘도 별 소식 없냐?”
– 없어.
“잠잠하네.”
– 그러게.
마법의 수정구 너머 천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 이거 불안하게 너무 잠잠하다. 오즈릭 교단 놈들이나 아포칼리우스의 파편이나 둘 다 너무 조용해.
“흐음.”
–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불안해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
“그래.”
– 곧 정보는 공유해줄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고.
“알겠다.”
지크는 천우진과의 통신을 마친 후 통신실을 나서 왕성에 자리한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뀨! 주인 놈아! 어디 가냐!”
“어? 햄찌네. 어디서 뭐 하고 있었냐.”
“뀨우! 베르단디랑 놀아주고 왔다!”
“그래?”
“근데 주인 놈 어디 가냐! 뀨우! 슬슬 근지러워서 싸돌아다니러 가는 거냐!”
“아니거든?”
지크가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비머리언 공방 간다.”
“뀨우?”
“그때 사건 해명도 해야 되고, 제작 의뢰해놓은 아이템도 찾아야 해서.”
“뀨우! 그러냐!”
“너도 갈래?”
“햄찌 귀찮다! 뀨우! 낮잠 잘 거다!”
“그러던지.”
지크는 굳이 햄찌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어차피 비머리언 공방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주문 제작을 의뢰해놓은 아이템 세트를 찾아오기만 할 생각이었기에, 딱히 햄찌와 같이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따 보자~.”
“알겠다! 주인 놈아! 뀨우!”
그렇게 도착한 비머리언 공방은 이전과는 다르게 경비가 엄청나게 삼엄해져 있어서, 가까이 가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일이 터지니까 이렇게 살벌해지는구나.’
지크는 비머리언 공방을 지키는 경비병들과 기사들의 레벨이 어지간한 강대국의 근위 기사단과 맞먹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한 번의 습격에는 당했지만, 두 번 당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비머리언 공방의 의지가 엿보이는 광경이었다.
“오시었소이까.”
크반트는 언제나처럼 지크를 반겨주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물론이오. 껄껄!”
“다행입니다.”
“어떻게 좀 성과는 있소?”
크반트가 지크에게 에 대해 물었다.
“있었죠.”
“그게 정말이오?!”
“근데 이게 간단치가 않더라고요.”
“음? 그게 무슨 말이오.”
“그게 그러니까….”
지크가 크반트에게 와 프로아 왕국 한복판에서 만나 싸웠단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그게 정말이오?!”
크반트는 지크의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예, 뭐. 믿기지는 않지만, 그런 것 같네요.”
“허. 오즈릭 교단. 정말이지 무서운 집단이구려. 죽은 샤키로를 되살려 내다니.”
“그렇죠.”
“그럼 본 공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오?”
“당연히 오즈릭 교단이 주적이죠.”
지크는 은근슬쩍 비머리언 공방의 분노를 오즈릭 교단에게로 돌렸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샤키로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으음!”
“일단은 두고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샤키로 님이 자신의 의지로 비머리언 공방을 공격했을 리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소만….”
“오즈릭 교단은 제 주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기다려 주시면 복수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대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본 공방으로서도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는 무슨.”
크반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스스로의 기억도, 자유 의지도 없는 존재에게 복수해 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겠소.”
“옳은 말씀이십니다.”
“아, 그대가 주문 제작을 의뢰했던 방어구 세트는 이미 준비를 해놓았소.”
“오? 그래요?”
“자, 받으시오.”
크반트가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로 도색된 가죽 방어구 세트를 지크에게 건네주었다.
“어? 금속이 아니라 가죽이네요? 이러면 방어력이 좀 떨어지지 않아요?”
“지난번에 그대가 사냥한 크로매틱 드래곤의 가죽을 다크 임페리얼 잉크로 염색해서 만든 방어구 세트요. 가죽이지만 그 방어력은 어지간한 풀 플레이트 메일보다 뛰어나오.”
“오오! 역시 크반트 님!”
지크는 비머리언 공방의 기술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으로 PVP 전용 방어구 세트에 대해 알아보았다.
[딥다크 솔 세트]크로매틱 드래곤의 가죽에 를 먹여 검은색으로 도색한 방어구 세트. 일대일 대결에 특화되어 있다.
[세트 효과]– 공격 속도 +80%
– 이동 속도 +25%
– 캐스팅 속도 +45%
– 초당 생명력 재생 +20%
– 초당 스태미나 재생 +20%
– 초당 마나 재생 +20%
– 힛리커버리 +150
– 타격기 사용 시 데미지 +15%
– 관절기 사용 시 데미지 +15%
– 광역 데미지로부터 입는 피해 –25%
– 1.5%의 확률로 적의 공격이 빗나감
는 과연 PVP에 특화된 세트 방어구답게, 그 옵션이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었다.
게다가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어 무게 또한 엄청나게 가벼워서, 지크의 움직임을 더 자유롭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어떻소? 마음에 드시오?”
“최고인데요? 얼마죠?”
“그 방어구 세트를 입고 우승해 주시오. 그게 본 공방이 그대에게 바라는 대가요.”
비머리언 공방이 원하는 건 그들이 만들어낸 방어구를 입은 자가 널리 명성을 떨치는 것.
푼돈 몇 푼을 받는 것보다 공방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게 더더욱 이득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유명 스포츠 브랜드, 혹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샐럽들에게 각종 제품들을 협찬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예, 꼭 우승하겠습니다.”
“껄껄!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오!”
“오즈릭 교단에 대한 건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공유해 드릴게요.”
“그래주면 고맙겠소.”
“샤키로 님에 대한 일은 저에게 맡겨주시면 더 고맙고요.”
“그래야지, 별수 있겠소이까? 허허허….”
“매번 감사드려요.”
“우리끼리 그런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하는 게 좋겠소.”
“크반트 님….”
“지크 국왕….”
순간 지크와 크반트 사이에 뭔가 뜨거운 기류가 흘렀다.
그것은 우정이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파트너들끼리의 교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윽! 내가 뭐 하는 거지!’
지크는 자신이 중년의 드워프 사내와 이상야릇한 눈길을 주고받았단 걸 깨닫고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흠흠. 그럼 전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어서 가 보시오.”
“또 뵙죠.”
지크는 비머리언 공방을 나서 프로아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
비머리언 공방을 나선 후.
‘하. 내가 방송 경기라니. 후우.’
지크는 워프 게이트로 향하며 카메라 앞에 설 자신을 떠올리며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제 방송 경기에 나가게 되었으니, 곧 어머니와 여동생이 TV로 태성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으! 민망해!’
지크는 가족들이 방송 경기를 보게 되리라는 걸 떠올리니 매우 오그라들어서, 길을 가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던 중.
‘뭐야.’
지크는 문득 불길한 느낌이 엄습하는 걸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스으으!
그러자 지크의 시야가 아주 희미하게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살기(殺氣)!’
지크는 지금 이 현상이 캐릭터가 자신을 향한 살기를 감지한 것임을 깨닫고 눈을 빛냈다.
게임 BNW의 시스템은 캐릭터의 감각이 예민하면 예민할수록 더욱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작은 소리는 더 크게.
멀리 작게 보이는 사물은 더 크게.
어두운 곳에서는 더 밝게.
지크의 시선과 평범한 게이머의 시선은 저화질·저음질의 동영상을 보느냐, 고화질·고음질의 동영상을 보느냐 하는 것만큼이나 차이가 났던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게이머 한태성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인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의 감각은 매우 예민해서, 주변에 살기를 품은 자가 있으면 화면이 붉게 물들곤 했다.
‘이렇게 노골적이라고?’
지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발걸음을 옮기며 곁눈질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대도시답게, 거리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가판에서 물건을 파는 잡상인.
우산을 옆구리에 끼고 스쳐 지나가는 신사.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는 노인.
오가는 행인들.
기타, 등등….
‘도대체 뭐지….’
지크는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곤두세워서, 자신에게 살기를 품은 자를 찾아내려 애썼다.
그러던 중 지크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이 마른하늘에 우산이라고?’
지크는 조금 전 자신을 스쳐 지나간 신사가 기다란 장우산을 옆구리에 끼고 지나갔다는 걸 떠올리고는, 본능적으로 몸을 홱! 하고 돌렸다.
장마철도 아니고, 오늘같이 화창하기 짝이 없는 날씨에 우산을 들고 다니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
지크는 스쳐 지나갔던 신사가 우산을 마치 총처럼 들고 자신을 겨누고 있는 걸 보았다.
다음 순간.
타앙!
총성과 함께 우산의 끄트머리에서 시뻘건 화염이 터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