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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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저 아귀다툼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캐삭빵일지도 몰랐다.
강남 빌딩 한 채 값어치의 아이템을 차지하기 위해 각자의 계정을 걸고 싸우는 캐삭빵 말이다.
그러던 중.
서걱, 서걱!
홀연히 등장한 모험가가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험가들을 차례차례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단 한칼에.
어떠한 스킬도 쓰지 않은 채….
그 압도적인 강함 앞에 모험가들은 어떠한 반격이나 저항도 해보지 못했다.
“으악!”
“컥!”
“악!”
그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을 뿐.
툭, 툭, 툭!
죽은 모험가들이 드랍한 아이템들이 풀밭을 나뒹굴었다.
스윽-
전장을 정리한 모험가가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죽은 모험가들이 드랍한 아이템들이 저절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그의 인벤토리로 귀속되었다.
그 비싸다는 영혼분리장치 역시 물론이었다.
‘누구지?’
그 광경을 본 지크가 슬그머니 왼손을 들어 을 발동시켰다.
[BJ 랩터]•존재 구분 : 모험가
•레벨 : 261
•클래스 : 아수라
•칭호 : 천인 학살자, 피의 길을 걷는 자, 근면성실한 살육자
놀랍게도, 모험가들을 정리한 강자의 정체는 한국인 게이머 이광진이었다.
ID는 랩터.
BNW를 메인 콘텐츠로 하는 게임 전문 방송의 스트리머인 그의 랭킹은 무려 99위였다.
물론 BNW의 랭킹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합산되어 산출되는 것이기에, 랭킹이 절대적인 강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3억 명이 즐기는 게임에서 두 자릿수 랭킹을 기록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단언컨대, 랩터는 강자가 맞았다.
어쩌면 이 천하제일생존대회의 유력한 우승 후보일지도 모르는….
***
“크으.”
영혼분리장치를 획득한 랩터가 신음에 가까운 감탄을 흘렸다.
“영분 먹은 거 실화냐?”
그 순간 랩터의 개인 방송 채팅창은 대폭발을 일으키고 말았다.
– ★브레드★ : 영혼분리장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율재 : 쩐다;;;;;;;;;;;;;;;;;;;;
– Pimei999 : 저걸 먹네 ㅁㅊ;;;
– 쩌뤼Park : ㅁㅊㄷㅁㅊㅇ
– 한강굴다리3초컷 : 템운 무엇?
– 통빡이 : 랩터 이제 듀얼 클래스 되는 거? ㅡㅡ;;; 이러다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거 아니냐?;;;
채팅창이 폭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랭커인 랩터가 천하제일생존대회에 참가한단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개인 방송국은 본방 시청 인원 100만 명을 꽉 채우고도 수십 개의 중계방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 와중에 랩터가 듀얼 클래스를 실현시켜 주는 ‘영분’, 그러니까 영혼분리장치를 날름 주워 먹었으니 채팅창이 폭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림 : 후원금 10,000원이 도착했습니다!] [알림 : 후원금 1,000원이 도착했습니다!] [알림 : 후원금 5,000,000원이 도착했습니다!]수만 명의 시청자들이 랩터에게 후원금을 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랩터란 게이머가 가진 특유의 건방짐과 시크함에 반한 열성 팬이 무려 1,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후원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랩터는 불과 5분 만에 후원금으로 11억 원이란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래 봤자 영혼분리장치를 먹은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땡큐.”
시청자들로부터 11억 원의 거금을 후원받은 랩터의 소감이란 고작 ‘땡큐’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게 현재 가상 현실 게임 BNW 랭커가 갖는 포지션이었다.
랩터의 성격이 건방지고 시크한 탓도 있었지만, 랭커쯤 되면 몇 억쯤은 돈으로 보지 않기 마련이었다.
워낙에 돈을 많이 벌다 보니 금전 감각 자체가 무뎌지는 것이다.
“얘들아.”
랩터가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추가할 클래스 추천 좀 해봐라. 뭐로 전직할까? 법사 계열? 아니면 탱커 쪽? 좋은 거 있으면 추천 좀 해봐 봐. 아, 근데 템은 또 언제 맞춰? 얘들아, 나 등골 휘겠다. 어떡해?”
그러자 다시금 후원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랩터의 그 말은, 자신의 우승을 100퍼센트 확신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아니, 뭔 랭커가 여길 와.’
지크는 어이가 없었다.
랭커씩이나 되는 유저가 천하제일생존대회에 참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랭커들이 천하제일생존대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랭커들을 포함한 고레벨 유저들은 잃을 게 많은 이들이었다.
레벨이면 레벨.
아이템이면 아이템.
세력이면 세력.
랭커들은 이미 황금 알을 넣는 거위, 즉 인생의 기반을 다져놓고 꿀을 빠는 입장이었다.
마치 현실의 강남 건물주들처럼 말이다.
가뿐하게 레이드나 두어 판 뛰다 보면 드랍되는 재료템과 개인 방송 후원금으로 몇 억의 수익을 올릴 텐데, 계정을 걸 이유가 있을까?
가진 자들에게 있어 천하제일생존대회란 득보다는 실이 훨씬 컸다.
그래서 천하제일생존대회의 참가자들은 적으면 10레벨부터 많아 봐야 150레벨의, 상대적으로 저레벨 모험가들이 절대다수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랩터는 달랐다.
‘내 위에 있는 놈들은 보나 마나 몸 사릴 거고. 내가 참가하면 1등 먹겠는데, 이거?’
랩터는 자신보다 상위의 랭커들이 몸을 사릴 걸 알고,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아, 내가 겜 6개월만 일찍 시작했어도 랭킹 10위권 안에는 들었는데. 흐음. 나보다 높은 랭커 만났으면 좋겠다. 그 새끼 뚝배기 터뜨리고 템 주워 먹고 1등 하게. 하여간 겁들은 많아요. 세력빨 템빨로 랭킹 올리면 좋나?”
랩터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주제에 시청자들에게는 센 척을 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비록 99위긴 하지만, 두 자릿수 랭킹을 기록하고 있는 랭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려야 해. 삐끗하면 인생 조지는 거다.’
지크는 영혼분리장치를 주워들고 유유히 사라지는 랩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각심을 바로 세웠다.
‘지금 난 먹이사슬 최하위다. 템 주울 생각 말고, 생존에만 집중하자.’
랭커인 랩터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지크는 더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
세 시간 후.
석양이 지고, 어둠이 아스라이 내려앉아 세상을 새카맣게 물들인 때.
스윽.
세 시간 내내 주변을 경계하던 지크가 조심스레 바위 틈바구니를 나섰다.
띠링!
그때, 알림창이 떠올랐다.
[규칙 2]– 휴식이 필요한 참가자는 현재 자신의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단, 휴식을 취하던 중 마을이 파괴되면 참가자 역시 사망한다.
– 마을에서는 서로 죽일 수 없다.
– 마을을 벗어나는 참가자에게는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30분 동안 지속되는 버프를 제공한다.
– 가장 안전한 방법은 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은 약 세 시간 동안 계속된다.
지독한 강행군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이란 로그아웃이 가능한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았으므로, 하루 24시간 중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고작 세 시간에 불과한 셈이었다.
‘하루에 세 시간 자면서 게임을 하라고? 그것도 하드코어 모드를? 이런 미친.’
지크는 천하제일생존대회의 혹독한 일정에 이를 갈았다.
아무리 게임에 미친 겜돌이들이라 할지라도, 하루 세 시간을 자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기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마을 근처로 가자.’
지크는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브레이크 타임에 대비해 마을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철마는 놓고 가기로 했다.
‘위치가 들켜.’
이 야심한 밤에 철마를 타고 달렸다간 말발굽 소리로 인해 ‘나 여기 있소!’ 하는 꼴밖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슥, 스윽.
지크는 발소리에 최대한 주의하며, 풀숲에 숨어 마을로 향했다.
길을 찾기는 편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기에 밝혀진 미니맵이 길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부스럭, 부스럭!
풀숲을 헤치며 나아가던 지크는 자신과 정반대 방향에서 오던 어느 모험가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헉!”
지크와 마주친 모험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지크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뻔했다.
이건 뭐 공포 게임이 따로 없을 정도….
그리고 셋, 둘, 하나!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지크였다.
빠악!
지크가 휘두른 철퇴가 적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털썩.
고작 27레벨밖에 되지 않았던 그 적은, 그렇게 지크의 철퇴에 머리가 깨져 대회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데구르르….
줘도 안 가질 잡템만을 드랍한 채….
‘아, 간 떨어질 뻔했네.’
지크는 쿵쾅대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며, 다시 마을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던 것이….
“잡아!”
“저기다, 잡아!”
“저기 엎드려 있네! 뭐 해! 빨리 가서 안 죽이고!”
약 10여 명에 달하는 모험가들이 지크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나 말하는 건가?’
지크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개인전 하드코어 모드에서 단체 행동이라니?
하지만 지크를 쫓아오는 모험가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에게서는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레벨이 낮다.
2. 머리에 하나같이 붉은 두건을 쓰고 있다.
아무래도 저레벨 참가자들끼리 작정하고 팀플레이를 펼치는 모양이었다.
그래 봐야 결국에는 서로 죽고 죽일 시한부 협력에 불과하긴 했지만.
‘싸워야 해.’
순식간에 적들에 둘러싸인 지크는 철퇴를 움켜쥐고 전투에 임할 준비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팀을 이룬 모험가들의 레벨이 20~40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콰앙!
강력한 명속성 에너지를 머금은 강타, 그러니까 스킬이 앞선 적을 때렸다.
파지지직!
그러자 세 줄기의 전류가 뻗어나가 뒤따라오던 다른 적들까지 감전시켰다.
명속성 에너지가 일으키는 상태 이상인 은 데미지 증폭을 불러일으키기 마련.
휘리릭!
지크가 감전된 적들을 향해 플라잉 스퍼 스킬을 시전했다.
빡, 빠악, 빡!
철퇴가 감전된 적들을 차례차례 타격했다.
– 트리플 킬!
그렇게 지크가 눈 깜짝할 사이에 3킬을 기록했을 때.
[알림 : 현 시간부로 전장의 환경을 조정합니다!]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환경 조정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일정 기간을 두고 계속될 것이며, 어떠한 환경이 조성될지는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방송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각 전장의 기후와 환경이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알림 : 제9구역에 폭격!]현재 지크가 있는 제9구역에는 단순한 기후 변화가 아닌 ‘폭격’이 이루어질 것이란 점이었다.
‘포, 폭격이라고?!’
지크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화들짝 놀라던 순간이었다.
슈우우우우웅!
하늘에서 떨어진 포탄이.
퍼어어엉!!
폭발을 일으켰다.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필드 전체가 불바다가 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지크는 전투를 포기한 채 제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그 행동은 군복무 시절 배웠던 포탄 투하 상황 시 대처 요령에 따른 것이었다.
포탄은 낙하 후 V자 모양의 부채꼴 형태로 파편이 튀기 마련이라, 포탄 투하 상황을 마주한다면 어설프게 뛸 것이 아니라 목숨을 하늘에 맡긴 채 엎드리는 게 최고의 생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으악!”
“악!”
“비, 빌어먹으으으으을!!”
그 증거로, 생각 없이 뛰던 지크의 적들은 포탄보다는 튀어 오르는 파편에 더 많이 죽었다.
개중에는 정말 재수 없게 떨어진 포탄에 맞아 죽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제발.’
지크는 부디 포탄에 맞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운에 목숨을 맡긴 만큼, 자신이 아는 모든 전지전능한 존재들에게 생존을 기원했다.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 님, 엄마, 사부님! 저, 제발 이번 한 번만….’
그러나 지크의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도.
쉬이이이이익!
냉혹한 포탄 한 개가 매서운 파공성을 흘리며 지크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퍼어엉!!
포탄이 일으킨 폭발이 지크를 집어삼켰다.
[지크프리트]•생명력 □□□□□□□□□□
지크의 생명력이 0이 되었다.
그리도 빌었건만.
야속한 하늘은 기어코 지크를 저버리고 만 모양이었다.
[알림 : 사망으로 인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알림 : 사망으로 인해 3레벨이 하락합니다! (53레벨 ▶ 50레벨)] [알림 : 현 시간부로 49시간 동안 접속이 불가능합니다!]시스템 알림창들이 지크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알림 : 로그아웃!] [알림 : 접속이 종료됩니다!]그렇게 뉘르부르크 대륙에 현신했던 모험가 지크프리트는 본래의 세계, 즉 현실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아.”
캡슐 안에 있던 태성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