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04
903
“뀨! 주인 놈아! 빨리 도망가야 한다! 뀨우우!”
“아, 알겠어!”
지크는 생각 같아서는 햄찌를 골탕 먹이기 위해 놔두고 가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헥! 헥헥!”
뚱뚱해진 몸으로 기를 쓰고 달려오는 햄찌의 모습이 너무나도 불쌍해서, 더는 내버려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야! 빨리 업혀!”
“뀨우!”
“윽! 살이 왜 이렇게 찐 거야?”
지크는 햄찌의 무게가 족히 두 배는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끄럽다! 주인 놈아! 빨리 뛰어라! 뛰어!”
그 순간.
“캬아아아아아악! 둘 다 죽여 버린다!”
모찌가 흉악한 고함을 내지르며 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히, 히익?!”
지크는 그런 모찌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기세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잡히기라도 했다간 햄찌와 함께 뚝배기가 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웅!
그렇게 작동시킨 워프 게이트.
번쩍!
지크와 햄찌는 가까스로 모찌를 피해 워프하는 데 성공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돌아오면 둘 다 죽여 버릴 거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모찌의 분노에 찬 절규가 프로아 왕궁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모찌를 피해 도망치는 데 성공한 지크와 햄찌가 도착한 곳은 대륙 남부에 자리한 해안 도시였다.
“어우야.”
지크는 이동이 끝나자마자 가슴을 졸이며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냐?”
“뀨우. 아주 말도 마라. 휴우. 햄찌 죽을 뻔했다.”
햄찌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모찌가 햄찌 사육했다.”
“그, 그래?”
“하루에 밥을 다섯 번이나 먹였다. 뀨우~.”
“엌ㅋㅋㅋ.”
“그래서 햄찌 살 이만큼 쪘다.”
햄찌가 늘어난 뱃살을 매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근데 밥을 왜 그렇게 많이 먹인 거냐?”
지크가 물었다.
“모찌는 햄찌가 살쪄서 못생겨지길 바란다. 뀨우.”
“으응?”
“햄찌가 못생겨지면 도망 못 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와.”
지크는 햄찌의 말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면 거의 광기 아니냐?”
“햄찌가 괜히 모찌 무서워하겠냐!”
“어우야.”
“모찌 진짜 무서운 여자다. 햄찌 진짜 가축처럼 사육 당할 수도 있다. 뀨~우.”
“너 앞으로 어떡할래?”
지크가 안쓰럽다는 듯 햄찌를 바라보았다.
“앞날이 깜깜하다?”
“이게 다 주인 놈 때문인 거 모르냐! 캬아아악!”
햄찌가 털을 곤두세운 채 지크에게 으르렁거렸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모찌를 햄찌 앞에 데려다 놓은 건 누가 뭐래도 지크였기 때문이다.
“아니~.”
지크가 능청을 떨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게 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거지~ 내가 어? 설마, 너 엿 먹이려고 그랬겠어?”
“캬아아악! 겸사겸사 세상도 구하고 엿도 먹이려던 거 햄찌가 모를 줄 아냐!”
햄찌가 지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악! 야! 머, 머리는 뜯지 마! 으악!”
그렇게 지크는 돼지처럼 살이 찐 햄찌에게 깔려 머리칼을 쥐어뜯기는 등 응징(?)을 당해야만 했다.
***
“뀨! 그런데 여긴 어디냐!”
햄찌가 지크에게 물었다.
“…니가 알아서 뭐하게.”
지크는 햄찌에게 할큄을 당한 것 때문에 얼굴 여기저기에 포션을 바르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으윽! 야! 작작 때려! 얼굴 다 망가졌잖아!”
“많이 봐준 거다! 캬아아악!”
“아오!”
지크는 분통을 터뜨렸지만, 햄찌에게 달려들진 않았다.
지크도 자신이 지은 죄가 있다는 것쯤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이번엔 그냥 맞아주기로 했다.
“왜 오긴.”
지크가 대답했다.
“해양교 교단에 볼일 있어서 왔지.”
“뀨우?”
“여기 해양교 교단의 본부가 있거든.”
지크가 저 멀리 보이는 대도시를 가리켰다.
이른바 라 불리는 저 도시는, 뉘르부르크 대륙 남부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도시였다.
는 어업과 해운업의 중심지로써, 바다의 신 넵튠을 모시는 해양교 교단이 자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저기 가면 넵튠의 피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겠지?’
지크는 그런 생각으로, 햄찌와 함께 로 향했다.
“뀨! 근데 주인 놈 안 쉬러 가냐!”
햄찌가 지크에게 물었다.
“지금 늦은 시각이다! 뀨우! 주인 놈 피곤할 거 같다!”
“그냥 해양교 교단에 살짝 들렀다가 쉬러 가려고. 나도 오늘은 좀 피곤해.”
“뀨! 얼른 갔다가 쉬러 가라!”
“응.”
지크가 고개를 끄덕일 무렵이었다.
“뀨우?”
햄찌가 저 멀리 쪽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 놈아.”
“응?”
“새들은 보통 밤에 자는 거 아니었냐?”
“그렇…지?”
지크가 대답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부엉이와 같은 야행성 조류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새들은 밤에 잠을 자기 마련이었다.
“근데 왜?”
“저기 새들 날아간다! 뀨우!”
햄찌가 밤하늘을 가리켰다.
“야 이.”
지크가 햄찌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밤에 새들이 왜 날아가?”
“뀨우! 저기 날아가! 봐라!”
“말이 되는 소릴 해ㅇ….”
지크는 투덜거리면서 햄찌가 가리킨 반향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
“새떼가 진짜 날아가네.”
지크는 새들이 무리 지어 로 날아가고 있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부엉이들이 단체로 정모라도….”
그 순간.
“……!”
시력을 끌어올린 지크는 저 멀리에서 날고 있는 것들이 부엉이 같은 야행성 조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펄럭, 펄럭!
날개를 펄럭이며 로 날아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타락 천사 무리였다.
“……!”
대번에 상황을 파악한 지크가 눈을 부릅떴다.
명백한 습격.
타락 천사가 해양교 교단을 공격하려는 게 분명했다.
“햄찌야! 뛰어!”
지크가 를 향해 내달리며 소리쳤다.
“뀨! 주인 놈아! 무슨 일이냐!”
“빨리 와! 타락 천사들이 해양교를 습격하려고 해!”
“헥헥! 주인 놈아! 햄찌 못 뛴다! 헥헥! 헥헥헥!”
“야 이.”
지크가 달리다 말고 햄찌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뒤뚱뒤뚱!
모찌에 사육을 당한 햄찌는 살이 너무 올라서, 예전처럼 잽싸게 뛸 수가 없었다.
“아오!”
지크는 어쩔 수 없이 햄찌를 들쳐업고는 를 펼쳐 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어어?”
지크는 로 날아든 타락 천사들의 숫자가 거의 만 단위가 훌쩍 넘어간다는 걸 확인하고는 황급히 방향을 틀었다.
제아무리 지크라 해도 저 많은 숫자의 타락 천사들을 홀로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친! 저거 완전 대규모 공습이잖아?!’
지크는 작전상 후퇴를 한 다음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
거의 3만에 달하는 타락 천사는 대도시인 를 눈 깜짝할 사이에 점령해 버렸다.
펑! 퍼엉!
를 방어하는 수백 문의 대공포들이 불을 뿜었지만, 타락 천사들의 공습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타락 천사들은 일반적인 물리 공격에는 거의 면역이기에, 포탄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방어 병력은 실효성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타락 천사들은 신성력이 추가된 공격에만 타격을 입으므로, 성기사나 성전사들이 아니라면 애초에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때문에, 도시 전체가 장악 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함락이네.”
지크는 저 멀리 불바다가 되어버린 를 바라보며 허탈감을 느꼈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심지어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에서 울려 퍼진 비명이 들려왔다.
불타버린 도시.
죽어가는 사람들.
하지만 지금 지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길드원들을 부른다고 해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병력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미친. 저런 것들이 뭔 천사라고.”
지크는 에서 대학살을 벌이고 있는 타락 천사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
“가자.”
“뀨? 주인 놈아! 어디 가냐!”
“대륙종교진흥위원회.”
“뀨우?!”
“이 사달이 났으니까 알려야지. 저건 누가 봐도 해양교 교단을 향한 습격이야.”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왔던 길을 되돌아가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
는 아닌 밤중에 지크가 가져온 소식을 듣고 발칵 뒤집어졌다.
처음에 각 교단의 종교 지도자들은 지크가 말도 안 되는 소식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와의 통신이 끊기었다는 걸 확인하자 일제히 공황 상태에 빠졌다.
“맙소사!”
“아아! 천계의 분노가 또다시…!”
종교 지도자들은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해양교의 본진이 순식간에 털려버렸단 걸 확인하고 탄식에 탄식을 거듭했다.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아! 넵튠이시여! 바다의 신이시여! 당신을 믿는 어린 양들이 이렇게 죽어 가는데 어찌 침묵하시나이까? 아아!”
특히나, 해양교 교단에서 파견된 사제는 오열하다가 그만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오?”
“큰일이오, 큰일.”
“각 교단에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라고 전파하시오! 지금 당장!”
타락 천사들의 추가적인 공격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각 교단의 종교 지도자들은 우선 방어에 온 힘을 다하기로 했다.
‘저런다고 과연 타락 천사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렇지만 지크는 여러 종교 지도자들의 결정을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타락 천사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타락 천사들이 어디를 통해서 이 세계로 넘어왔는지, 그들의 본거지는 어디인지를 알아내는 게 더욱 중요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하긴.’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타락 천사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없기에, 방어라도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기는 했다.
그러던 중.
‘어?’
지크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모시는 사제를 발견했다.
생명의 화신 테라를 소환하는 데 필요한 제물 중 대지의 여신인 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어….”
지크가 가이아를 모시는 여사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예, 전하. 편히 말씀하세요.”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섬기는 여사제가 대답했다.
“혹시… 가이아의 성배에 대해 아세요?”
“물론이죠.”
여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 교단의 신물이에요.”
“아?”
“어째서 가이아의 성배에 관해 물어보시는지….”
“그게 필요합니다.”
“네?”
“그게 그러니까….”
지크는 가이아를 섬기는 여사제에게 어째서 가 필요한지를 설명해 주었다.
“사실 마린 시티에 갔던 것도 넵튠의 피를 구하러 갔던 거였어요.”
“아.”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가이아의 성배를 어떻게 좀 빌릴 수 없을까요?”
지크는 그게 무리한 부탁이라는 걸 알았다.
성직자 처지에서, 자신이 모시는 신의 신물을 빌려달란 부탁을 받는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건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에요.”
여사제가 난처하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의 하나라면… 교단에 보고하고 허락을 구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부탁드립니다.”
“아마 교단에서도 흔쾌히 허락해주실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 죽음으로 뒤덮이는 걸 막는 일이니까요. 가이아 여신께서도 바라는 바일 테죠.”
“감사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네, 전하. 지금 바로 교단에 보고할게요.”
바로 그때였다.
“마린 시티에 있는 해양교 교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령이 회의장으로 다급히 뛰어 들어와 보고했다.
“……!”
“……!”
“……!”
그러자 지크를 포함해 회의장에 있던 종교 지도자들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해양교 교단이 타락 천사들의 습격으로 인해 완전히 궤멸하여 버린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