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2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21화
무대 아래 사람들이 웅성거림과 장치의 소음, 응원봉의 흔들리는 불빛들이 오감을 살린다.
나는 돌아왔다.
“…….”
누군가 어깨를 잡는다. 고개를 돌리자 큰세진과 주변에 선 얼굴들이 보인다.
이 새끼 웃고는 있는데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까 나를 부른 게 이놈이었나 보다.
‘내가 비틀거리기라도 했나 본데.’
데뷔했을 때 첫 진실 확인을 보고 쓰러질 뻔했던 것이 떠오른다.
비슷한 상황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끼는 체감 시간의 차이가 워낙 크다.
나는 새삼스럽게 뒤에 서 있는 놈들의 면면을 빠르게 훑었다.
‘오랜만이다.’
외곽에 선 류청우부터 배세진까지.
사실 배세진은 며칠 전에도 만나긴 했는데, 그 데뷔 초 놈과는 인상이 달라서 놀라울 지경이다.
‘오래 보긴 했지.’
4년째라니.
학생으로 따지자면, 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서 대학까지 같이 간 것과 다름없다.
또래인 생판 남 여섯과 자의도 아닌 팀을 짜서 여기까지 왔다. 드문 경험이다.
그런데 상태창이 있는 내 안목으로 직접 골랐어도 이보다 괜찮은 팀을 짤 수 없었을 것 같단 비이성적인 생각이 든단 말이지.
희한한 일이었다.
나는 동공을 떠는 김래빈을 보고 내심 웃었다.
‘네 말대로야.’
-비록 친목을 목적으로 하여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연대감이 자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엔 단순히 성적이 잘 나오니 이대로 계속 해 먹고 싶다는 것 이상의 감상이 있다.
그리고 이 앞에서 흔들리는 응원봉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뒤에 선 녀석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앞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테스타를 응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테스타의 박문대로 이 앞에 서 있는 건 나다.
그 모든 상황을 거쳐서 나온 결론은 여전히 그것이다.
“…….”
이거 안 되겠다. 직전에 심상 세계에서 들은 말 때문인지 대가리가 아주 감성 속을 허우적거린다.
‘난감한데.’
그때였다.
갑자기 프롬프터에 글이 뜨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소감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
그래, 소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당장 할 일이 있다는 게 머리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대충 3, 4초는 굳어 있었군. 가뜩이나 시상식마다 질질 늘어지는 소감 시간 자르라고 난리인데 말이다.
‘그래도 정정당당히 성적으로 받는 첫 대상이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너무 뜸을 들였죠? 죄송합니다. 떨려서.”
관객석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웃길 만한 발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 좋게 받아들였다니 넘어가고.
“테스타로 활동한 순간들을 돌아보면 굉장히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바로 어제 데뷔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돌을 지망해 보자고 마음먹었던 그 순간도 그렇습니다.”
얼토당토않은 돌연사 협박 때문에 시작하게 된 여정이다.
“솔직히 문외한인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도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냥… 할 수 있다고 하니 프로그램에 나왔던 거죠.”
돌연사 협박이 없었으면 할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신을 차리기 직전, 내가 큰달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도 내가 아이돌 하고 싶었을 줄은 몰랐지만, 아마도 그랬나 봐.
나는 지금 이 단상 밑에서 시큐리티를 피해 날 찍는 사람의 시각을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많이 해봤으니까.
그리고 그때 내 만족감의 원인을 굳이 추적하지 않았다. 그 시각을 벗어나서 무대에서 직접 내려다보는 광경은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 멤버들을 만나고, 팬분들을 만나서 어느새 테스타가 여기까지 왔네요.”
하지만 관객석에서 보는 무대보다 직접 무대에 서 있던 게 더 진실하고 자극적으로 좋다면.
그건… 내가 데이터팔이 짓을 한 게 정확히 대리만족이 맞았다는 거겠지.
그리고 이런 진짜배기 즐거움을 찾아 잘된 게 사실은 내 ‘잠재력 무한’ 덕이라고 생각하니 뽕맛이 더 커질 것 같다면… 착각이다.
‘무리수지.’
수많은 변수가 맞아들어갔다. 그리고 그 변수를 움직인 건 나만이 아니었다.
아이돌은 그룹이니까.
“이 상과 관계없이, 그때 아이돌 도전하길 참 잘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행복합니다.”
이런 낯부끄러운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지만, 뭐 대상인데 다들 이해해 주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멤버들도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나는 옆에 선 선아현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
‘…얘 기겁한 것 같은데?’
분위가 타서 자연스럽게 받아넘길 줄 알았는데 민망해질 뻔했다.
그래도 싫은 안색은 아니었으니,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할 말은 했다.
“고마워.”
“…….”
그러자 이놈들의 얼굴에 울컥하는 것 같은 묘한 기색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자연스럽게 경기 세리머니 같은 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생했다는 격려와 성취감.
‘맙소사.’
관객석에서 응원봉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환호가 울린다.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는 7명의 직업인 중 하나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을 생각하기도 했다.
‘잘 들어갔냐.’
나는 아마 TV로 보고 있을 놈을 생각하며, 팔 사이에서 마지막 말을 끝마쳤다.
“상 받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총체적인 감사의 인사였다.
* * *
빨리 소감을 끝내고 자리 비워달라는 목적의 팡파르가 터지고, 우리는 트로피를 든 채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수상이 끝나자마자 잠깐의 준비시간을 거쳐 바로 우리 무대가 이어진다.
아마 이걸 노리고 첫 번째 대상 배치를 그렇게 해둔 거겠지.
나는 여전히 트로피를 든 채로 이동하며 묵묵히 생각했다.
‘다음 시상식 대상은 무조건 양보해야겠군.’
이성이 돌아오자 지나치게 설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 나왔을 것 같은데, 다음에는 소감 안 해본 놈들에게 따로 준비하게 만들어서….’
하지만 계속 계산할 수는 없었다. 환복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급한 질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선 큰세진.
“박문대. 너 괜찮아?”
“…?”
“방금 넘어질 뻔했잖아. 혹시 몸 안 좋으면 말해. 진통제라도 놓고 나가자.”
그래서 내 어깨를 잡았던 거군. 나는 놈의 행동을 이해했다.
‘어느 정도였는지 상황 파악부터 한다.’
“내가 넘어질 뻔했다고?”
“쓰, 쓰러지는 줄 알았어….”
선아현이 시퍼렇게 뜨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거창하게 비틀거린 모양이다.
‘이런.’
이 변명이 통하는지 선을 봐야겠다. 나는 우선 한숨을 쉬며 목 뒤를 문질렀다.
“미안. 첫 대상이다 보니까…. 무슨 말을 할지 기억도 안 나고, 긴장해서 그런 것 같다.”
“…긴장해서 그랬다고?”
“네가…?”
이 새끼들 왜 이렇게 의심이 많냐.
나는 최대한 태연히 대답했다.
“그럼요.”
“잠깐 멈춰 봐.”
“매니저님, 체온계 좀 주세요!”
의심이 폭격처럼 쏟아졌다. 그동안 내 인상이 대충 어땠는지 알 것 같군.
나는 양손을 들었다.
“저 멀쩡한 거 맞습니다. 그냥… 진짜 좋아서 그래요.”
“…….”
나는 약간 경악까지 하는 것 같은 놈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첫 대상이니까. 저도 감격은 할 줄 아는데요.”
“박문대….”
경악이 사라지고, 훈훈함이 감돈다. 다들 첫 대상뽕이 있을 테니 이건 먹힐 줄 알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뒤늦은 말이지만 정말 멋진 수상 소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마음 약한 놈들은 다 넘어왔군.
‘…뭐, 사실 거짓말도 아니었고.’
기분이 좋았던 건 사실이니까. 나는 대상 분위기에 취한 놈들에게 트로피를 넘겼다.
“다음 해도 화이팅합시다.”
“으, 으응!”
“Gooood!”
류청우는 팀워크가 흐뭇하다는 얼굴로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더니, 온화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체온을 잴 거야.”
“…….”
마음대로 해라.
나는 의상을 갈아입으며 정상 체온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어처구니없지만 무슨 고비라도 하나 넘긴 것 같다.
“13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짜 문제를 깨달았다.
‘이런 망할.’
나는 머리를 굴리다 결국 선아현을 찔렀다.
“아현아.”
“으, 으응?”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 수정한 안무, 빠르게 한번 확인해 줄 수 있….”
“문대문대 왜, 혹시 갑자기 안무가 기억이 안 나?”
눈치 빠른 새끼.
“……소감 끝나고 긴장이 풀려서, 확인차.”
“아~ 그렇구나.”
거짓말 아니다.
‘며칠 동안 춤은커녕 노래도 안 불러서 그래, 새끼야….’
류건우 몸 들어가기 직전에 딱 일주일 연습한 연말 일회용 수정 안무가 있는데, 그걸 지금 쓸 거란 말이다.
당장 무대에서 제대로 기억이 안 날까 봐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아무튼 확인 좀.”
“으응! 바, 바로 하자…!”
다행히 시간이 없어서 그런지 다른 대화 말고 바로 안무 레슨이 진행되었다.
댄스 라인 둘이 붙으니 순식간에 각이 잡히더라.
“여기서 차고, 돌고… 포인으로 발끝을 치고, 넘어가….”
“문대 반 박자 빨랐다 조심!”
“오케이.”
“저 안무 제일 잘 알아요. 형 알려줄래요!”
“유진아, 가서 음료수 좀 받아올까?”
그렇게 나는 다른 놈들의 도움을 받아서 3분 만에 안무를 완전히 재숙지했다.
사는 게 혼자가 편했지만, 사람 여럿 있는 그 맛이 나쁘지 않았다.
* * *
올 연말 처음으로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이 중계되고 있는 지금 이 저녁.
-박문대 방금 쓰러질 뻔한 것 같은데
-관종ㅋㅋ
-스케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 사고 후유증 있는 것 같아ㅠ 조심해야겠다
-걍 감격한 것 같은데 개떼처럼 달려드는 것 좀 보소
인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는 실시간 댓글들을 보며, 이세진과 박문대의 사진을 찍는 직장인, 트윈 홈마는 혀를 찼다.
하지만 이런 건 으레 있는 일이고, 그녀로서는 다른 점이 더 신경 쓰였다.
‘쟤가 저렇게까지 감성적인 소감을 하다니.’
박문대는 지금까지 모든 일을 칼같이 합리적으로 처리했는데, 유독 이번에만 벅차오르는 걸 못 참는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수상 소감 전에 말문을 못 떼고, 비틀거리고, 멤버들을 돌아보고, 사설이 길고… 평소 안 하는 짓이란 짓은 다 했다.
사연이 있는 건지 대상이 그렇게 의미가 깊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나쁘진 않았어.’
왜 굳이 이세진이 박문대에게 양보해준 줄 알겠다며, 트윈 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문대가 대중들에게 4차원 같을 정도로 침착한 이미지다 보니, 이렇게 한 번 흔들리는 것도 짜증보단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콘서트에서 우는 것과 비슷한 효과의 장면을 대중에게 보여준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실제로 박문대의 소감이 끝날 때 즈음에는 댓글 반응도 제법 바뀌었다.
-좀 뭉클하네
-박문대 진짜 오퍼시티로 강아지 겹쳐보임 무슨 일임
-ㅠㅠㅠㅠㅠ
-테스타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
-감격한 거 맞잖아 개X끼들아
게다가 멤버들의 팀에 대한 애정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은 마지막 행동까지.
그 일련의 흐름이 사람들의 심금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게 잘 먹히긴 해.’
데뷔 이후 최초로 음방 1위를 한 가수의 리액션 모음 같은 것이 괜히 위튜브를 떠도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스타의 추락도 좋아하지만, 또 스타가 감격에 못 이기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런 사람들의 구미에 딱 맞게, 테스타의 감격은 날것으로 다가왔다.
트윈 홈마는 제법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딱히 박문대는 그런 걸 계산한 것도 아니었으며 썩 좋지 않은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본인 예상과 반대로, 테스타의 대상 소감은 감동적인 수상 소감으로서 성공적으로 회자할 예정이었다.
시상식 시즌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테스타의 분량이 아주 많을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