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3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31화
김래빈 격려용 산장 작곡 캠프에서는 오로지 칭찬 피드백만 가능했다.
그러니 초보자가 좀 개발새발 해도 다들 웃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지. 그냥 놀려고 간 거니까.
그런데 ‘일’이 되면 말이 달라진다.
여기 배세진이 조심스럽게 꺼낸 의견을 한번 보자.
“…저기, 어쨌든 대상을 받은 건 ‘약속’ 곡이잖아. 그럼 이걸 기본으로 연작처럼 하는 건 어때?”
“상식적인 제안이십니다!”
피드백이 이렇게 훈훈하게 끝날 것 같지만, 아니다.
“네. 성적이 제일 좋은 걸 미는 건 좋죠. 그런데 대상 곡치곤 해외 반응은 별 이변 없이 그냥 그래서요.”
“그, 그래?”
“그러게요. 해외에선 ‘Drill’같이 센 걸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맞아요. 전 반대예요!”
순식간에 이렇게 가차 없이 죽죽 갈리는 것이다.
“…알았어. 취소하면 되잖아!”
“난 좋았는데. 세진아, 아쉽다.”
“크흠. 그래. 뭐, 그럼 너흰 어떻게 생각하는데!”
특별히 비난은 없다. 다만 과반에게 까이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또 신선한 거 없나?”
“독특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미디와 일렉트릭 노이즈로 기계음을 살려서 로봇 컨셉을….”
“우우~ cheesy~~”
아니다, 노골적으로 야유하는 놈도 있군.
“차유진 넌 아까부터 의견도 안 내고 비판만 하고 있으니 아주 부적절한 태도야!”
“Ok! 나 말할게. 저는 변신 히어로 좋아요!”
“ 때 했고, OST를 하게 되면 너무 겹치잖아. 기각.”
“우….”
셀프 야유나 보내라.
어쨌든, 이런 식으로 멤버 대부분은 센스가 있는 발언을 했다. 단지 현 상황에 맞지 않아 암묵적으로 빨리빨리 쳐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브레인스토밍 회전율이 남다르다.
“이야기가 너무 난립하니까 한번 도표로 만져보죠. 가장 해외 반응이 좋았던 컨셉, 그리고 히어로 영화 OST 컨셉의 핵심만 잡아서요.”
“오케이~ 문대가 만들어주는 거지?”
일도 자연스럽게 떠넘기는군.
“미안해. 문대야. 이런 걸 나도 좀 배워놔야겠네.”
“괜찮습니다. 하는 것도 많으시면서 무슨.”
결국 우리가 노려야 할 컨셉 특성을 뽑는 데에 딱 반나절 걸렸다.
-1. 강렬함 (히어로 영화)
-2. 독특함 (테스타)
-3. 친근함 (미국적)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정리했다.
“강렬한 액션 비트를 기반으로 미국 친화적이며, 테스타 특유의 독특함을 가진 컨셉.”
“…….”
“…….”
“와.”
회사에서 이런 요청이 내려왔으면 상사를 때려죽이러 갈 만한 명제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 예체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앞으론 이걸 중심 틀로… 원하는 컨셉과 곡을 이야기해 봅니다.”
“넵…….”
그렇게 미친 듯이 핑퐁되던 살벌한 회의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목이 아파요….”
“유진아, 앞으론 소리를 지르지 말고 속삭이도록 하자. 콘서트에서 쉰 목소리로 공연할 수는 없으니까.”
류청우가 조곤조곤 차유진을 팩트로 때리는 것을 들으며, 나는 다른 놈들을 점검했다.
‘일단 김래빈은 잘하고.’
이쪽은 거의 군계일학 수준이다. 패스.
‘큰세진도 시야가 좋아.’
도리어 무작정 취미용이던 창작 캠프보다 여기서 더 유능한 놈이었다. 좋은 의견 솎아내고 여론 모는 게 수준급이다.
‘차유진은 활력을 넣는다.’
반대를 기분 안 나쁜 수준에서 거침없이 말하니 계속 회의가 돌아가게 해준단 말이지.
‘…괜찮은 그룹이다.’
이젠 그냥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틀로 제한을 두고 몰아가도 기죽지 않고 쓸 만한 이야기를 뱉는 게 기꺼웠다.
그리고 작곡 파트로 접어들자 예상치 않은 한 놈도 크게 선방했다.
바로 배세진이다.
“…미국적이라고 하니까, 메타포를 미국 문학에서 좀 따오는 건 어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접근을 한 것이다.
“미국 문학이요?”
‘느낌이 좋은데.’
나는 곧바로 되물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하신 게 있나요.”
“나는… 고전 소설 중에 에드거 앨런 포 소설들 생각했는데.”
“…!”
에드거 앨런 포.
미국 추리소설과 호러소설의 선구자였다.
“그, 괴기한 거 있잖아. 굉장히 유명하고 특징적이기도 하고….”
“오오오.”
호응 덕인지, 배세진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빠르게 말했다.
“그 작가가 쓴 ‘검은 고양이’ 알지? 오싹하면서 반전도 있고… 테스타가 하려는 독특함이 딱 그런 류 아니야?”
“…!”
“그, 그런 것 같아요…!”
오.
책 많이 읽는 놈답게 상징주의적 발상을 꽤 그럴싸하게 말한다.
‘고전적 호러 문학인가.’
괜찮네.
일단 김래빈이 눈을 번쩍대고 있다.
“컨셉만 맞으면 랩 가사에 인용해도 굉장히 멋진 구성이 나올 것 같습니다. 꼭 적어두겠습니다.”
“…그래.”
배세진 본인이 직접 나서서 프로듀싱 의견을 낸 건 거의 처음이었다.
‘의외로 재능이 있군.’
이렇게 잘 받아들여질 줄 몰랐는지, 배세진의 얼굴에는 얼떨떨한 뿌듯함이 보였다.
류청우가 웃으면서 정리했다.
“그럼 할리우드 영화 같은 느낌에 미국 고전 문학을 베이스로 해서, 거기에 우리 세계관을 잘 믹스해 보는 걸로?”
“일단은 그렇게 프로듀싱 가닥을 잡죠.”
나는 턱을 문질렀다.
솔직히 이대로는 좀… 부족하다만.
‘어딘가 딱 오는 느낌이 없단 말이야.’
일단 가닥을 잡고 착안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핵심은 영화 OST 병행하면서 완성해 가도 되니까.’
사실 이 캠프를 밀어붙인 건 딱히 당장 고퀄리티 결과물을 뽑아내려던 의도는 아니었다.
그보단 멤버 각각의 프로듀싱 능력치 점검과 독려에 더 가까웠다.
‘레이블이 잘 돌아갈까 보려던 거지.’
이젠 정말 그룹이 반쯤 홀로서기를 하게 됐으니까.
‘독립 레이블이 되면 의사결정 권한이 더 커지는데, 거기에 적응 기간이 필요한 놈들이 분명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서는 대다수의 멤버가 선방이었다. 다들 잘 떠들고 협조적이다.
‘류청우야 조율에 재능이 있으니 됐고.’
나는 거의 모두에게 합격점을 줬다.
하지만 그렇게 쭉 둘러보고 나니, 한 명이 남는 것이다.
“…….”
“선아현.”
“으응…!”
거의 오늘 내내 맞장구만 쳤던 놈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나온 시안들 말인데,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으응… 다들, 조, 좋은 의견인 것 같아…!”
“어떤 부분이?”
선아현은 움찔했으나, 천천히 대답했다.
“하, 할리우드 영화는… 굉장히 대중적인, 느낌이니까. 고전 문학같이 깊은 느낌을 더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래.”
그래. 이렇게 대놓고 하나씩 천천히 물어보면 꽤 괜찮은 피드백을 내놓는다.
문제는… 일하는 데에 있어 제일 중요한 실시간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의견을 못 내.’
선아현은 주어진 과제를 잘 표현하는 건 기가 막히게 하는데, 기발한 발상이나 아이디어 부분은 안 그래도 좀 약했다.
그런데 심지어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반대 의견이 생겨도 잘 싸우려 들지 않는다.
배려심 때문에 한발 물러나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려다 보니, 아예 끼어들 타이밍을 못 잡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 일에선 그냥 다수결에 머릿수만 더할 뿐이다.
그걸 본인도 안다.
-형! 의견 없어요?
-나, 나는… 아직은.
-음~ OK.
-…….
차유진과 이 대화 후에 선아현은 고개를 푹 숙였었다.
나는 놈의 옆에 앉았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
“……응.”
선아현은 썩 동의하는 얼굴은 아니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그게 오히려 괜찮았다.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군.’
못하는 것에 묘한 경쟁의식을 느끼긴 하나 보다. 발전의 여지가 있….
“뭐야, 분위기 왜 이래?”
“…!”
큰세진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아~ 아현이 의견 많이 못 냈다고 문대가 뭐라고 했구나!”
“…….”
“아, 아니야…!”
선아현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에이 뭘 그런 걸 신경 써~ 이렇게 프로듀싱 잘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냥 즐기자 아현아!”
물론 선아현에게 이 말은 먹히지 않았다.
“내,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순간도, 올 테니까….”
큰세진이 씩 웃었다.
“그땐 문대가 해주면 되지!”
“…!”
“문대 나중에 아현이 솔로 프로듀싱 안 해줄 거야?”
“내, 내 솔로??”
“그래! 나중엔 우리도 한 번씩은 유닛이나 솔로 할 거 아냐~”
‘다른 멤버들이 군대 갔을 때’란 슬픈 상황 설명은 교묘히 생략했군.
어쨌든, 나는 피식 웃었다.
“원하면 당연히 해줘야지.”
“…!”
“거봐, 마음 편해져도 된다?”
“…응.”
선아현은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한결 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고마워.”
“뭘.”
그래도 눈을 보니 ‘해보려는 심리’는 안 죽은 것 같았다. 그냥 마음은 좀 편해졌다 이거 같군.
“들어가, 볼게.”
“그래.”
“아현이 내일 봐~”
오늘의 캠프가 거의 종료된 분위기라, 몇 놈은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
선아현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놈들을 따라 스위트룸 거실을 떴다.
“…….”
큰세진은 선아현이 사라질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불쑥 말을 꺼냈다.
“아현이 엄청 신경 써주네, 매번.”
“멤버니까.”
“음~ 그래?”
큰세진은 편한 어조로 덧붙였다.
“문대, 아현이 또 막상 프로듀싱 다 나오고 준비하기 시작하면 엄청 잘하는 거 알지?”
안다. 그래도 좀 성장시키고 싶다 이거지.
“동갑 친구 걱정할 시간에 우리나 잘하자, 우리나~”
“그래.”
아니, 사실 너희는 다 나보다 어리다. 나는 큰세진이 킬킬 웃으며 등을 두드리는 것을 감내했다.
‘이놈 아직 멀쩡하군.’
체력이 남아 있는 것 같으니 지금 개소리했다간 뼈도 못 추릴 것이다.
나는 내일도 다시 내 ‘사정’을 털어놓을 타이밍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화장실.”
마침 스마트폰에 별로 예상 못 한 문자가 왔거든.
[콘서트 너무 멋졌어요 최고였어요ㅠㅠ]“…….”
큰달이다.
[투어 따라왔냐] [네! 옆 나라니까 주말에 열심히 시간 내봤는데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이게 바로 힐링이에요…]“…….”
그래, 비행기를 아주 퍼스트클래스만 타도 괜찮을 만큼 돈 있는 놈이지.
나는 이놈이 가진 재산을 추산해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기만 안 당하면 어떻게 쓰던 상관 없다.
그러나 연달아 또 문자가 도착했다.
[저 혹시 화상통화 괜찮으세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음.
이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류청우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잠깐 류건우 형이랑 화상 통화 좀 할게요.”
“음, 그래.”
아예 새 룸 잡아서 통화할 생각도 해봤으나, 그게 더 수상한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관뒀다. 이 스위트룸이 내 방이었거든.
이놈이 있으면 알아서 다른 놈이 기웃거려도 컷 해주겠지.
‘…아는 놈이 있으니 든든하긴 하군.’
“나도 인사해도 될까?”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나는 큰달에게 화상 통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가기 무섭게 수락되었다.
-안녕하세요!
“…형, 자꾸 반대로 말씀하시는데요.”
-아, 그, 미안…. 밖이니?
“예.”
이번엔 저번 같은 돌발 사고는 어림도 없다.
-잘 지냈어?
“그럼요.”
큰달은 바로 말투를 고쳤고, 나는 그제야 놈의 안부를 묻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왜 통화를 하자고….”
그때, 류청우가 등 뒤에서 불렀다.
“문대야?”
인사해도 된다니까 굳이 또 허락을?
“아니, 그게 아니라… 세진이가 자기도 인사하고 싶다는데.”
“…!”
“아, 동생 세진이 말고 배세진이.”
고개를 돌리자, 좀 긴장한 기색의 배세진이 문 너머에 서 있는 게 보인다.
류청우는 좀 당황한 기색이다.
“본인이 따로 아는 사람이라고 주장해서… 맞아?”
미치겠다.
나는 배세진을 보았고, 배세진은 헛기침을 했다.
“그… 이렇게 화상 통화 자주 하나 봐. 나도 인사나 할까 하고….”
“…음, 네.”
여기서 아무 생각 없이 오케이하면 계속 쓸데없는 거짓말을 할 것 같은데. 나는 이 환장스러운 사태를 끊을 방법을 찾아 머리를 굴렸다.
그때였다.
“다들 거기서 뭐하… 음?”
문 앞에 세 놈이 뭉쳐 있는 꼴을 본 큰세진이 다가온 것이다.
나는 곧바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띠링.
“박문대, 너 통화…!”
“아.”
실수인 줄 알았는지, 배세진이 기겁했다. 큰세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통화 중이었어? 화장실 간다면서 어디 갔나 했네.”
“잠깐 아는 사람한테 연락이 와서.”
“그래?”
큰세진은 류청우와 배세진을 돌아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아는 사이예요?”
“아… 어릴 때 문대 도와주셨던 분이야.”
“…아아~ 그래요.”
“박문대가 작년부터 찾았던 사람 있잖아. 그… 아.”
배세진은 분위기를 보고 뒤늦게 입을 다물었다.
‘망할.’
당연히 큰세진이 알 거라 생각하고 말을 꺼내다가 아닌 걸 깨달은 모양인데, 안 하느니만 못한 짓이었다.
“아무튼, 어쩌다 보니 나도 안면이 좀 있어서….”
“아… 네.”
“…….”
큰세진은 입을 다물었다. 이유 모를 어색한 침묵이 방문 사이에 깔린다.
“…일단, 우리도 쉬러 갈까? 여기 원래 문대 방이잖아.”
“그, 그래.”
배세진은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으나, 내가 고개를 젓자 조용히 입을 다물고 류청우를 따라 방을 나갔다.
“세진아, 너도 들어가자.”
“…….”
큰세진은 류청우의 부름에 대꾸하는 대신 자신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을 돌리려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좀… 너무하지 않나?”
“…!”
울컥한 투였다.
“내가 지금 몇 번을…,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데.”
X발.
오해할 만했다.
“아니, 다들 아는 건 아니야. 그런 종류가 아니라 전에 상황이….”
“그럼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왜 다 아는데? 지금 저 형까지….”
큰세진은 순간 다음 말을 참은 것 같았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
‘입 열어.’
나는 가까스로 할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박문대 당황만 했네. 너 지금 나한테 하나도 안 미안하냐?”
“…!”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온다.
“아니야.”
“그래? 근데….”
큰세진은 쏘아붙이려는 것처럼 입을 열었으나… 다시 가라앉는다.
“…아니, 지금 내가 좀… 나중에 이야기하자.”
“잠깐. 너….”
“나중에.”
큰세진은 그렇게 화난 것도 아닌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더니, 순식간에 방을 열고 나갔다.
쾅.
얼마나 빠르게 나간 건지, 바로 현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서 배세진이 중얼거렸다.
“…미안.”
“…….”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