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5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52화
축제가 끝났다.
인터넷에는 테스타의 다양한 후기 글과 인증 사진이 범람했다.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반응이 쏟아진다.
-감히 거기서 응원가를 불러서 떼창을 유도해? 박문대 명예 연희인 시켜주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킹스타 앵콜 3곡 조지고 감 밑에서 매니저가 울려고 했다는 증언 있음
-몸값 제대로 뽑고 가네 그들의 상도덕 마음에 들었습니다
호평. 호평. 호평.
직캠이 뜨고 댓글이 달린다.
-라이브 미쳤다 와 이게 되네
-워터밤도 하자… 이건 절대 사심이 아닙니다.
-이번 활동곡 직캠 많이 남겼으면 좋겠어요 현장감 있으니까 막 벅차ㅠㅠ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고.
지금 내일 스케줄이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장담해 줄 수 없는 내용이다.
화면을 더 내리면 내가 핸드 마이크 주워서 굳이 응원가를 부르는 애드리브 영상도 있다.
-이게 바로 아이돌이라고 외치는 영상
-순발력 진짜 미쳤네
순발력?
아는 걸 하는 게 순발력이라면 개새끼도 호랑이로 불러야 할 것이다.
박문대는 정보 차이로 이득 보고 입 닦는 부류지. 위기 상황에 대가리가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정말 순발력 있는 새끼라면 거기서 다른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선아현의 말에.
-…….
-미, 미안해…….
-아니. 아니야.
모국어도 모르는 새끼처럼 단어만 반복하는 대신 말이다.
그래서 결국 다시 찾아온 놈들이 선아현과 나를 화장실에서 끌어낼 때까지 멍청히 서 있는 대신 말이다.
그때 차라리 내가….
‘그만.’
비생산적인 가정은 그만둔다.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서, 다시 생각을 진행한다.
그리고 나는… 내 방에 들어온 것 같은데, 선아현은 자기 방으로 간… 건가.
‘아마도.’
밖으로 데려가진 않았다. 그럼 아직 숙소에 있을 수 있다는 뜻이고, 상태가 진정됐다는 뜻일 것이다.
“…….”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눌렀다. 뇌가 굳은 것 같았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대가리 굴려라.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인데 직무 유기하지 말고.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이 X 같은 상황을 왜 만들었냐고, 이 새끼야.’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디서부터 내가 X신 짓거리를 했는지 물어본다면….
당연히 처음부터다.
‘애초에 말할 생각을 말았어야지.’
이게 제정신인가?
그렇게 ‘알리면 정신병원행’이라고 예측해 놨으면 입 다물고 있어야지, 무슨 정신머리로 그런 비현실적인 말을 다짜고짜 입 밖에 꺼냈느냔 말이다.
다른 놈이 믿어줘서?
‘사례 하나로 일반화하네 X신 새끼가.’
꼬리 잡혀서 해명한 판에 그게 먹히면 안도하고 넘어갔어야지. 왜 아무것도 모르는 놈한테 또 떠들었냔 말이다.
객관적으로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납득해야 할 무슨 이유라도 있나? 이게 ‘그러고 싶어서’ 떠들 말이었나?
“쓸데없는….”
개짓거리를 해서 상황이 이 꼴이 됐지 않은가.
‘선아현 상태이상이….’
다시 활성화된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할 거냐고.
“…….”
원인만 알면 다냐? 네가 X발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걸 알았으니 근본적 해결책이라도 찾아낼 줄 알고 지금….
‘닥쳐.’
나는 입을 막았다. 이빨이 손아귀를 짓누른다.
쓸모없는 짓 그만두고 이성적으로 다시 현실을 보자.
‘해야 할 일.’
…어떻게든. 선아현의 상태이상을 다시 비활성화해야 한다.
선아현이 지금까지 상태이상을 비활성화시킬 수 있던 건 특성 덕이다.
‘근성.’
[근성(A) : 자신의 마음가짐은 스스로 만드는 것. 집중력을 불태워 부정적인 상태를 누른다.]-활성화 시 상태이상 한 가지(최우선순위) 상쇄.
그런데, 이 특성이… 내가 떠든 개소리 때문에 비활성화되며 다시 상태이상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전에는….’
전에는, 내가 가진 특성으로 선아현을 설득했다.
-그냥 ‘이걸 해내겠다’ 정도만 생각해.
선아현은 내 말에 납득하고 지금 당장 앞에 놓인 일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지금 내 말이 설득력이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바로 그놈이 일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혼란스럽게 만든 당사자니까.
이미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텐데 통할 리가….
“…….”
뇌가 멍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설득할 방법.
전처럼….
나는 반사적으로 내 상태창을 불러왔다. 그러자 기다렸던 것처럼 팝업이 뜬다.
큰달.
다른 말은 없다. 팝업이 흔들리는 것 같은데… 내가 맛이 가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아무렴 어떤가.
나는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특성… 혹시 다시 뽑을 수 있냐.”
누구든 설득할 수 있는 그 특성 말이다.
“…….”
상태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작은 글씨가 올라온다.
[아뇨.]아.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죄송해요….]“죄송할 거 없어.”
왜 내가 개소리를 하면 다 사과를 하는 거지? 뭐 매뉴얼이라도 있나?
왜 나는 X발 이런 일까지….
[형 잘못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맞는데.”
누가 나한테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내 정신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 일이다.
‘판단력이 없어졌다.’
그거 외에는 다른 결론이…….
똑똑.
“문대야.”
누가 부른다.
고개를 돌리자,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오는 류청우의 얼굴이 보였다.
“아현이 진정했고, 괜찮아.”
“…….”
“네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지만… 미안해. 내가 들어오고 싶어서.”
류청우는 멋쩍은 것 같은 얼굴로 걸어오더니, 부드럽게 자신의 침대에 앉았다.
사과 좀 그만 듣고 싶다.
“형 방인데 형 마음이죠.”
“…음, 알았어.”
그리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류청우는 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문대야. 네 사정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야.”
그래. 그리고 멍청하게 진짜 떠든 건 다른 문제고.
“지금은 타이밍의 문제였을 뿐이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알았지.”
“…….”
그 타이밍을 고른 게 난데 말이다.
그러나 대답할 것도 없었다.
똑똑.
방에 또 누가 들어왔다.
‘큰세진.’
놈은 들어온 방문을 다시 닫더니,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즉시 굳은 얼굴로 말한다.
“박문대. 이건 내 탓이야. 미안해.”
“…….”
토할 것 같다.
“이게 어떻게 하면 네 탓이 되는데.”
“내가 부추겼으니까.”
저놈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내가 아현이가 당연히 믿을 거라고 생각해서 실수한 거야.”
“…….”
“네가 나한테 말할 때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선 넘은 거야. 넌 그냥 할 일 한 거고.”
“아니.”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말한 건 나야. 그만해라.”
“그러니까 그걸…….”
큰세진은 뭐라고 더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열었으나, 곧 닫았다.
그건 고마웠다. 안 그래도 대가리가 깨질 것 같았으니까.
“누구 잘못도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거니 둘 다 그만해.”
류청우가 끼어들어서 정리해 버린다. 동의할 순 없지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다음 말은 그러려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대야. 우리 잠깐 쉬는 건 어떨까.”
“…….”
뭐라고.
“2주 넘게 활동했으니 이제 며칠 쉬어도 괜찮을 거야. 소속사 편으로는 다 같이 독감이나 몸살에 걸려서 쉰다고 해도 괜찮고.”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진다.
“우리 조금 쉬면서 재정비할까?”
재정비.
활동을 멈춘다는 선택.
“…….”
내가 양심이 있어서 선아현의 상태를 생각한다면 찬성해야 한다.
지금 타이틀의 정신 나간 라이브 난이도를 고려하면, 선아현의 능력치 하락은 바로 눈에 띌 것이다.
그럼 무슨 소리를 들을지 뻔하지 않은가. 온갖 욕과 논란감이 된다.
‘쉬는 게 맞아.’
내가 제정신이라면 여기서 활동하자고 지랄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서, 아직도 끄지 않은 상태창의 팝업을 쳐다보았다.
“…….”
쉬면… 이 녀석이.
[형, 쉬면서 좀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세요…. 제발요.]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활동으로 레코드를 못 만들면 이게 죽는단 말이다. 상태창으로 돌아간다고.
그런데 이 새끼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쉬라고 말하는….
“……이.”
뇌가 터질 것 같다.
X발, 뭐 이렇게 생각할 게 많고, 처리할 게 많고… 이게 대체 무슨….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나중에.”
그만.
되지도 않는 소리 마라, 나중은 없다.
당장 새벽에도 스케줄이 있다. 4시간도 안 남았다. 이제라도 빠르게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효율적으로….
“문대야.”
누군가 어깨를 잡았다.
류청우.
“그럼 일단 사흘이라도 스케줄 빼두자. 사흘 가지고 문제 안 생겨. 이미 찍어둔 것도 많잖아. 알았지, 박문대?”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던가.
* * *
같은 시각 거실.
김래빈은 선아현이 자주 마시는 뜨거운 차를 손에 들고 고뇌 중이었다.
“아무래도… 두 분 사이에 사건이 생겼다고 봐야 해.”
차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친애하는 친구는 예술가로서 참 출중한 재능을 가졌으나, 이런 문제는 젬병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다들 알아. 김래빈.”
“…….”
김래빈은 발끈하는 대신 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긴 했다.
‘정말 난리잖아.’
선아현 형은 거의 자기파괴적 몽유병자 같은 모습에, 박문대 형은 충격으로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침대까지 반쯤 부축해야 했으니까.
차유진은 솔직히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로 미안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럼 서로 나쁜 감정은 없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상황을 합리적으로 납득하긴 했다.
‘뭐, 다들 친구가 별로 없던 것 같았어.’
그도 이렇게 서로를 무겁도록 중요히 생각하다가 결국 문제까지 무거워지는 관계를 종종 봤었다.
참 서툰 사람들이었다. 그 진실함이 이 팀원들의 매력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흠… 저 형도 그렇지.’
그는 배세진이 패배자의 얼굴로 비틀거리며 거실에 앉는 것을 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못 하는 거야.”
아무래도 선아현에게 다정히 말을 붙이려다 실패한 것 같았다.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 잘해요. 저 말하고 올게요.”
“자, 잠깐.”
원래는 문대 형이 기운을 차리도록 먼저 가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위로에 더해 조언까지 필요한 상황이 더 어렵지 않은가!
‘그런 곳을 내가 가야지.’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하고 당당히 김래빈의 방, 그러니까 선아현의 방에 노크 후 들어갔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 것을 보니, 그의 선택이 맞은 것 같았다!
“형, 저 들어가요.”
“…….”
삐걱.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달빛 드는 창가 앞 침대에 선아현이 걸터앉아 있었다.
영혼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자세와 창백한 안색이었다. 사람이라기보단 폐허처럼 보였다.
그것이 그나마 진정제 덕에 가능한 모습이었지만.
“형, 몸 괜찮아요?”
“…….”
선아현은 고개를 아주 느릿하게 끄덕였다. 약 기운 탓인지 눈에 초점이 없어 보였다.
“마음은 괜찮아요?”
침묵.
차유진은 옆에 걸터앉으며 바로 핵심을 찔렀다.
“저한테 아무 말 못 해요? 문대 형 비밀이라?”
“……!”
선아현이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좀 사람 같아 보였다.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두 비밀 있어요. 저 안 들어도 알아요!”
뭐, 살면서 비밀이 없는 사람이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비밀을 공유하느냐 마느냐는 단지 옵션일 뿐이었다.
비밀을 많이 공유한다고 더 친밀하고 좋은 사이인가? 그 사람을 더 제대로 아는 것인가?
차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냥 무게가 되는 거야.’
어쩌면, 지금이 그런 상황일지도 몰랐다.
[뭐든 간에, 형은 그 비밀을 들었는데 거기서 모종의 문제가 생긴 거죠.]선아현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으나, 낮게 읊조렸다.
“내, 내가… 망쳤어.”
“그럼 고쳐요.”
“……!”
[제가 쉽게 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음, 형이 문대 형에게 마음이 상한 건 아닌 것 같아서요.]차유진은 선아현을 빤히 보았다.
긴장을 늦추고, 패닉을 벗어나라는 조언이었다.
그리고 답변이 돌아온다.
“…아, 알아.”
선아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그, 그래서, 내가… 안 되는 거야.”
“…!”
“매, 매번. 알면서, 알면서 아무것도 안 하니까…!”
그 말을 하는 선아현의 눈에서, 차유진은 지독히 확실한 감정을 확인했다.
‘저건….’
자기혐오, 분노였다.
선아현도 알았다. 왜 모르겠는가?
지금 이 꼴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잠이나 자는 게 그나마 상황을 돕는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러고 있지 못한다. 불안하니까, 모든 걸 다 망쳤다는 공포가 정신을 지배하니까.
마찬가지로, 박문대의 ‘비밀’을 듣는 그 순간에도 깨달았다.
‘안 돼…….’
문대의 지난 행적들.
기억상실과 악몽,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하면…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박문대가 아니야.
마음의 상처가 정체성 문제로 번지고 있는 징조로 보였다.
그리고 문대에게 그 이야기를 꺼낼 가장 적임자는 자신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가 해야 해.’
류청우와 이세진은 자체적으로 자신의 정신적 고난을 극복해낸 사람들이다. 의학의 도움은 거의 받지 않았다.
그래서 건강한 그들이 박문대를 완전히 믿고 있다면.
‘나뿐이었는데…!’
그 위험성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는데, 그게 그나마 자신이 박문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었는데.
제 역할을 다하는, 도움이 되는 친구와 동료가 되겠다고 그간 수없이 많은 고민과 결심을 했지만….
‘그렇게 못 했어.’
…아니, 안 한 것이다.
신뢰와 친밀함으로 쌓은 소중한 관계가 그 말 한마디로 끝날 수도 있으니까.
그 가능성만으로도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나만… 나만 안 믿어줘서 싫어하면 어떡하지.’
‘결국, 문대가 이상하다는 뜻이잖아. 그, 그러면… 안 되는데.’
‘기분, 기분 나빠할 텐데…….’
하지만 입만 다물고 있으면, 그러면 계속 잘 지낼 수 있으니까.
선아현은 손아귀가 새하얗게 변하도록 손을 꽉 쥐었다.
‘나는 문대가 어떻게 되든, 그냥 친하게 지내는 게 더 중요했던 거야…….’
그런 자신의 외면 때문에 문대의 증상은 더 심해졌다.
나중에는 정말로 문대가 활동을 하다가 큰 고초를 당하기라도 하면,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내 탓이야.’
잠 못 이루고, 어떻게든 의심한다는 티가 나지 않게 정보를 모으려 애쓰면서 철저히 알았다.
-그냥 믿어버리면 안 될까?
정말 믿는 것도 아니면서, 그 자기합리화를 어떻게든 정당화하고 싶은 자신의 상태를.
다 알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일을 망친 이유는 하나다.
‘내가… 내가 도움이 안 되는 부류의 사람이어서야.’
변명할 여지가 없다.
자신은 좋은 일, 옳은 일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결국 정말 소중하고 두려운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약한 정신을 어쩌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에, 최악의 방법으로 상대에게 쏟아냈다.
‘도운 것도 아니야, 그건….’
그건 그냥 상처일 뿐이다. 문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 것이다….
목이 조였다.
‘고통스러워하지 마.’
자기연민도 사치였다. 선아현은 비명을 눌렀다. 울면서 사과하는 게 면죄부는 아니니까.
“…….”
보던 차유진은 그답지 않게 혀를 찰뻔했다.
‘무슨 고행하는 중세 수도사같이 보이잖아.’
구체적인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이 분위기만 봐도 보였다. 선아현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차유진은 할 말은 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어떤 사람이든 자기 발로 고통에서 나와야 하니까.
그래도 그 사람에게 디딤돌은 건네 수 있지 않은가!
[음. 알겠어요. 하지만 이건 상황이 좀 다르잖아요.]차유진은 손을 들었다.
[이번엔, 형이 하지 않으면 문대 형이 해요.]“…!”
선아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런 형이잖아요. 형도 알죠?]당연히 알았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형 혼자 하냐 안 하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형이 행동하든가, 아니면 문대 형이 먼저 하든가. 둘 중 하나예요.]선아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 * *
새벽.
“가자, 콩아.”
청려는 어젯밤에 드디어 돌아온 그의 개와 함께 길을 걷는 중이었다.
단지 내 산책로. 아직도 별다른 목격담 문제없이 이용하는 코스였다.
본래 나오던 시간에 산책을 나오니 모든 게 원래대로 알맞게 돌아가는 느낌이 기꺼웠다.
고작 몇 년 안 된 루틴을 그렇게 불러준다는 게 우습지만 말이다.
“음.”
그는 곧바로 희미한 미소와 함께 문자 하나를 작성했다.
[퇴원했어요]사진은 지금 찍은 것을 보내면 될 것이다.
“콩아. 여기.”
“왕!”
그리고 그가 활짝 웃는 개의 얼굴을 찍으려던 참이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인영이 보였다.
“…음.”
시간대 덕에 거의 없는 일이었으나, 그것 때문에 동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는 인영이었기 때문이다.
“후배님.”
“…….”
어두운 벤치. 검은 후드가 살짝 움직여 그 아래 내용물이 보인다.
아는 얼굴.
청려는 마스크 아래로도 보이는 창백한 혈색을 확인했다.
그 와중에 들리는 목소리는 담담하다.
“…물어볼 게 있는데.”
“…….”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이 드문 짓을 본인도 저지른 적이 있기에, 그는 마찬가지로 드문 결정을 내려줬다.
“그래요? 그럼 일단 들어갈까요.”
박문대는 그렇게 VTIC 숙소로 초대받게 되었다.
어제만 해도 예상치 못했을, 즉흥적인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