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7화
우선 마이너스 투표 1위는… 뻔했다.
[1위 최원길]‘끝났군.’
9화 편집을 보니 저놈은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다음 순위 발표식에서 보는 게 마지막일 것이다.
문제는 2위부터였다.
[2위 선아현]이쪽도 사실 예상 가능한 순위긴 했다. 지난 투표 시작 기간과 선아현을 향한 비난 여론이 절정이었던 시기가 딱 맞아 떨어졌으니까.
그러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최원길과는 달리, 선아현은 갑자기 과하게 공격받은 탓에 안 그래도 슬슬 동정여론이 부상 중이다.
‘선아현이 마이너스 2위 할 정도는 아닌데?’ 같은 소리가 전반적으로 조성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힐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이번 팀전도 잘했으니 안정적이다.
‘막판에 흐름을 잘 타겠군.’
그러나 당장 면상에 2위를 맞은 당사자한테 이 분석을 들이대 봤자 통할 리 없었다. 덕분에 거실에 TV 소리만 몇십 초째 울리고 있다.
“…….”
‘본방 단체 시청하자는 놈 또 나오면 연을 끊는다, X발.’
분위기가 죽여줬다.
게다가 2위에서 시선을 조금만 내리면 4위가 이세진B. 그러니까 큰세진이다.
이놈은 논란 터진 밤에 배신감으로 남은 표수를 다 털어버린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은데.
‘금방 수습됐으니 오히려 걱정돼서 표 주는 사람이 속출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큰세진이 제일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우리 팀전 방영만 되면 딱 뒤집히는 건데, 그쵸?”
“그러게 말이다.”
“뒤집히긴 힘들 것 같습니다.”
“…?”
갑자기 입을 연 김래빈이 진지하게 개소리를 중얼거렸다.
‘미쳤냐?’
큰세진이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김래빈은 꿋꿋이 말을 이었다.
“이번 팀전도 잘 완수했으니, 아마 득표율에 크게 하락세가 나타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
“…야, 너……. 음, 래빈아. 마이너스 투표인 건 알지?”
“예. …아!”
김래빈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골드 1에게 대답하다가, 곧 뭔가 깨달은 것처럼 감탄사를 뱉고 설명을 덧붙였다.
“마이너스 투표도 일반 득표율과 비례해서 증가하는 경향성을 보이니까요.”
최원길 같은 특수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통계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해당 참가자의 투표 규모의 문제가 되니까.
“…어어?”
“그렇긴 하지.”
순간 분위기가 풀렸다. 지난 순위발표식을 떠올린 참가자들이, 김래빈의 발언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발상 괜찮네.’
소통 능력이 좀 떨어지긴 해도 확실히 쓸 만한 놈이었다.
선아현도 어느새 긴장을 낮추고, 골드 1의 너스레에 적당히 리액션을 보내고 있었다.
“허, 그럼 나 탈락인 거 아냐? 나 21위인데!”
“형님! 형님은 안티가 없어서 그런 거죠!”
“마, 맞아요.”
나는 이미 광고로 돌아간 TV 화면을 보는 대신, 인터넷으로 순위를 다시 확인했다.
[8위 박문대 ▼3]앞으로 차유진, 뒤로 류청우가 있는 등수였다.
그리고 지난번 순위 발표식의 마이너스 표 수치와 비교했을 때는 3계단 등수가 내려간 모양이다.
‘좋아해야 하나.’
분석이 힘들었다.
사실 논란이 된 적 없는 차유진이나 류청우에 비해, 방송의 ‘박문대’는 구설수가 좀 있었다.
그래서 애매했다. 이것이 ‘박문대’의 부정적 여론이 이제야 잦아든 증거인지, 아니면 전체적으로 ‘박문대’의 투표 규모가 줄어든 것인지.
‘하락세는 아니면 좋겠는데 말이지.’
무대는 매번 괜찮게 뽑았다고 생각한다. 직캠 조회수나 언급량은 지속적으로 늘었다. 내 주변에 앉은 놈들도 대부분 지표가 좋았다는 게 문제지.
‘…한 열세 명쯤 뽑았으면 무조건 안정권인데.’
이미 몇 명 뽑는지 알고 있으니 그런 행복 회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나는 쓴 입맛을 다시고 이번 화 반응이나 살펴봤다. 박문대의 분량이 별로 없어서 큰 반향은 없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문대.. 트로트도 잘해? 대체 못 하는 게 뭐임?
-(대충 존나 귀엽다는 비명)
-김치냉장고 타고 눈 크기 두 배 된 댕댕이 [짧은 동영상]
-여러분 문댕댕이 트롯 서바이벌에 나가지 않은 걸 감사하게 생각합시다 흐미 잘못하면 뺏길 뻔했자나
헛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 좀… 귀여웠다.
‘아이돌 안 되면 돌연사인데 트로트는 무슨.’
그러나 피식거리며 다음 인기글을 읽는 순간,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박문대 사실 인생 2회차가 아닐까? 합리적 의심임 암튼 그럼
“…….”
이걸 맞추네.
어쨌든 그 외에는 소소하게 토끼 반이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물 밑을 좀 더 찾아보니, 차유진의 팀인 강아지 반에 안 들어가서 다행이다는 반응도 제법 보였다.
-기왕 댕댕인 거 별명 따라갔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워한 20분 전 내 글을 삭제하는 중임
-솔직히 그놈의 빅데이터 알고리즘 들먹일 때 개수작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애 머리채는 무사해서 다행일 뿐…
-ㅋㅋㅋ홈페이지에 그 빅데이터 어쩌구 올린 거 보고 왔는데 존나 치밀하게 잘랐더라 제작진 그 반에 죽이고 싶은 참가자 있나?
전체적으로 ‘박문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 분위기가 다 이런 식이었다.
이번 무대도 괜찮겠다는 안도감과 기대감.
어지간하면 데뷔하겠구나, 하는 약간의 여유.
사람들이 즐거워 보이는 건 좋다만, 나는 오히려 1차 팀전 때보다도 확신이 없었다. 아마 결승이 목전이라 더 그런 것 같았다.
‘이번 팀전에서 분량이 없을 것 같은데.’
무대는 잘 뽑은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팀에 나보다 스토리라인 빼기 좋은 참가자가 과반수였다.
‘유지보수는 했다는 데 만족해야 하나.’
어차피 방송 중반부터는 분량을 너무 많이 받아도 욕을 먹었다.
팀에서 한 놈만 주인공처럼 나온다? 팬도 늘지만, 반감도 사기 쉬웠다.
방송 분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저놈이 나오면 내가 좋아하는 놈이 못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문대’는 분량을 아예 못 챙긴 적은 없지만, 혼자 다 처먹어본 적도 없었다.
꼬투리 잡을 여지를 주지 않은 것에 만족해야겠지. 나는 다소 아쉬운 마음으로 인터넷 창을 껐다.
그리고 일주일 뒤.
이 아쉬움은 쓸데없는 김칫국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
왜 분량이 있냐.
* * *
박문대의 가장 규모가 큰 익명 팬 커뮤니티는 10화가 방영되기 전부터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예고편에서 짧게 지나간 팀 무대 장면에 박문대의 상반신 컷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흘 만에 나온 고화질 떡밥에 다들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예고편 문댕 얼굴 돌았다
-아ㅋㅋ 얼굴만 봐도 각 나오네 오늘 방송 끝나자마자 직캠 스트리밍 간다 1000만 가자
-한복? 토끼 탈? 미쳤나 봐 어떻게 매번 팀전마다 컨셉을 이렇게 잘 뽑음? 이번에도 문댕 아이디어 같지.
└맞을 듯 무대 뽑는 거 보면 소나무가 따로 없음 덕후 마음 조지는 컨셉만 잡네ㅋㅋㅋ
└역시 아이돌의 별 아래에서 태어난 게 분명하다
└이거 맞다
신나서 떠들던 그들은 10화가 시작하고 나서도 비슷하게 박문대의 이야기만을 떠들었다.
관련 없는 다른 참가자의 팀들이 나오는 것은 간간이 큼직한 소식만 띄엄띄엄 올라오기를 40분째.
겨우 팀의 분량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작진 놈들 진짜 끝에 욱여넣었네
-방청 스포 보니까 오프닝이었다며!! 오프닝이! 왜! 여기에!
-인질 노릇도 한두 번이지 아 열 받아ㅋㅋ
-문댕 나온다 드디어ㅜㅜ
사람들의 화제가 드디어 실시간 방송으로 집중되었다.
달토끼팀의 선곡 과정은 별다른 손질 없이 조별과제 희망편 같은 분위기 그대로 방송을 탔다.
-문댕 : 허허 네 의견도 좋고 쟤 의견도 좋구나 다 쓰자
-문댕 여전히 현명한데?ㅋㅋㅋㅋ
-큰세진 섹시 돌림노래 할 때 문댕 얼굴 봤냐고ㅋㅋㅋ 왜 티벳여우 이야기 했는지 알겠다 귀여웤ㅋㅋㅋㅋ
-다들 쌉소리 안하고 조근조근 이야기하니까 항암제가 따로 없다
사실 팀의 방송 분량은 훈훈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뽑아낼 갈등 소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별 유감이 없고 여러 이유로 몸을 사릴 줄 아는 참가자들만 모인 덕이었다.
하다못해 큰세진의 학폭 논란 당일 밤의 숙소 촬영분이라도 있었다면 좀 달라졌겠지만, 하필 그날 기기 문제로 숙소 카메라들을 다 뺀 탓에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제작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승승장구하는 팀의 모습을 송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나마 조별과제 절망편의 팀과 대조되어 보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팀 참가자의 팬들은 쾌적한 시청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제작과정에서 차근차근 모든 요소를 다 정상적으로 만들어 챙긴 것은 팀뿐이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면이 따스해지는 만큼 독기가 빠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모호한 화기애애함이 다시 채웠다.
-문댕 저렇게 널부러진 거 처음 봄
-다 안면 있는 애들이라 편한가 벼
-훈훈하네
가령 강행군으로 뻗은 팀의 모습은 마치 친해서 허물없는 것처럼 나왔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채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좀비처럼 지내던 모습은 아예 방송에 나오지 못했다.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대는 완성도 높은 그대로 방송을 탔다.
-찢 었 다
-섹시전통토끼 잘 봤습니다 이 조합이 어울리다니 문댕 네 안목은 도대체…
-이어폰으로 들었는데 문댕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후렴에 더블링 넣음
└와 돌았다
└이게 가능한 일임?
└심지어 마지막에 허밍은 옥타브가 하나 높은데?ㅋㅋㅋ 이제 실력으로 까면 병신 인증이다
팀 스토리가 아닌 제작 과정이 분량을 받은 덕분에, 무대의 다양한 요소들을 시청자들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했다.
-야 문댕 뒤돌면서 지구 나올 때 진짜 소름 끼쳤음
-한복 -> 양장 -> 한복 흐름 좋았다 달토끼가 현대인하고 사랑에 빠져서 중간에 상상하는 느낌…
-계수나무가 그루터기로 나오고 거기서 무대 끝나는 것도 좋더라 약간 쓸쓸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이라 스토리 혼자 상상하게 됨ㅎ
└전 2D 덕후가 이 무대를 좋아합니다
└이런 오글거리는 글에 내가 욕을 박지 않는다? 무대뽕이 차오른다는 뜻임
-문댕아 무대마다 레전드 뽑아줘서 고맙다 덕분에 편하게 덕질함
현장에서도 반응이 어마어마했던 무대답게, 시청하는 팬들은 굳이 억지로 여론을 잡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댓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만 누구 하나 서사를 받지 못하고 모범생들의 무대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이 은은한 아쉬움을 남겼을 뿐이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박문대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오열했던 것 역시 삭제되었다.
분량을 받지 못할 것이란 박문대의 생각은 맞았다.
단지 다른 팀원이 서사를 가져갈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사이좋게 아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을 뿐이다.
덕분에 직후 마지막 팀이 방송을 타자, 박문대 팬들의 댓글 폭주도 소강상태로 빠르게 접어들었다.
-아 좋았다
-이대로 데뷔 가자
-문대 얼굴 더 보고 싶어ㅠㅠ 이제 분량 끝인가
-애들 노는 것 좀 더 보여주지 다큐 편집이라 꿀노잼이었음 제작진 감 없네ㅉㅉ
박문대가 뜬금없이 화면에 다시 등장한 것은 그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