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1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0화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는 건 일종의 가수면 상태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가위눌린 상태에서 순간 깨어나는 것에 성공했다가, 쏟아지는 잠에 결국 굴복하고 맨정신으로 잠드는 더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정말 ‘빨려 들어간다’라는 표현이 딱 맞군.’
큰달이 설명했던 것처럼 말이다.
-형! 역시 그만두시는…….
-형? 제….
-…….
큰달이 지금도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지만, 그것뿐이었다.
마치 물속에서 바깥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둔탁하게 웅웅 거리더니, 이내 그것마저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깊은 잠에 빠지듯.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저 먼 심해로 가라앉는 것 같은 감각.
‘……후.’
잠깐 아찔한 압도감이 드는 것 같았으나, 곧 떨쳐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아는 것에 당황할 필요가 없다. 나는 다시 의식을 멈추고, 이 시스템의 구조를 파악하려 애썼다.
잠시 후.
‘…!’
마치 서서히 눈을 뜨듯,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경악했다.
‘맙소사.’
덩어리.
각기 다른 크기의 빛나는 덩어리가 끝도 없이 온 사방에 무작위적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복잡하게 서로서로 연결되어 불규칙하게 번뜩였다.
시스템 내부는 덧대고 덧댄 회로처럼 난잡했다.
‘이게 뭐냐.’
초보가 코딩한 시스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스템이란 명칭을 붙인 것이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동시에 마치 거미줄이나 시냅스처럼 붙은 연결들이 기괴하고 혼란스럽게 잘라 붙인 건축설계 도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 마디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개판이다.
이걸 보기 좋게 상태창으로 처음 구현했다고? 큰달은 자기 대가리를 갈아 넣은 게 분명했다.
‘하나하나 다 살펴봐야 하나.’
나는 일단 가까운 덩어리로 다가가서 의식을 집중했다.
마치 데이터베이스 접속할 수 있었다.
이건….
[회사 등급 측정]그렇군.
‘이렇게 기능마다 나뉘어서 연결된 건가.’
필요한 것들을 그때그때 덧붙였기 때문에 이딴 난잡한 구조가 된 게 아닐까, 나는 짧게 추측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탐색에 나섰다.
‘아직 아침까지는 시간이 넉넉하다.’
적어도 몇 시간은 여기 처박혀 있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체감 시간이 꽤 흐른 후.
나는 온갖 종류의 덩어리들의 명칭을 확인했다.
외곽이라서 그런 건가, 주로 최근 생성된 것 같은 회사 관련 기능들이 많았다.
‘더럽게 많네.’
짜증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이 망할 시스템의 내부를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 흡족해서인지 빡치진 않았다.
어쨌든 끈기 있게 계속 주변을 확인하면서, 찾던 것을 발견한 건 얼마 후였다.
[☆검색☆]다른 덩어리들과 달리 뭔가 튀는 표현이 붙은 이놈.
이건 시스템이 만든 게 아니었다. 바로 큰달이 지난번에 구현해 두고 남긴 흔적이다.
‘건물 붕괴 미션 실패 때 구현한 거야.’
여러 덩어리와 복잡하게 연결된 이건 덩어리라기보단 일종의 단말처럼 보였다.
‘좋아.’
이걸 통해서 원하는 기능에 바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걸 잘 연결해서 응용 기능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하고.
-사실 응용까지는 아니고 그냥 보여주는 방식만 바꾼 거라….
아니, 검색은 진짜 대단한 기능이다.
나는 큰달의 말을 떠올리며, ‘검색’ 단말에 접속했다.
‘이런 식으로 만들면 되는 건가.’
샅샅이 구현 방식을 확인한 후에, 나는 나도 비슷한 방식으로 응용 기능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원래 하려던 대로, 검색 기능을 이용했다.
목적은 이 시스템의 업데이트 작동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검색.
-…업데이트 관련 정보, 전부.
모두 내놔라.
그 순간, 의식이 빠르게 사방의 목적지를 향해 당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
이 망할 새끼의 목적은….
* * *
‘형! 괜찮으세요?’
큰달, 지금 박문대의 몸에 들어간 그는 차마 입 밖으로 큰 소리를 내진 못했으나, 내적으로는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역시 내가 갔어야 했는데!’
본래 류건우였던 테스타 박문대는 교묘한 논리 왜곡과 설득에 굉장히 능했고, 결국 큰달은 얼결에 굴복해 버린 것이다….
‘내가 직접 하는 게 더 속 시원하다’라는 논제는 주관적인 감상의 문제였다. 아직 무른 면모가 있는 큰달은 그 말을 합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큰달은 이미 한번 실패한 전적이 있었다.
-형, 압력이 너무 강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는 게 불가능했어요. 아마 형이 거기 들어가셔도….
-…? 누군가 한번 실패했다면 사람 바꿔서 다시 해보는 게 합리적인 것 같은데.
-예? 예, 그렇긴 하지만….
그래서 결국 애매한 긍정을 뱉는 순간, 홀려서는 정신 차려보니 몸이 바뀌었다는 미친 상황이다.
‘으헙….’
그렇게 큰달은 차마 침대에서 꿀잠을 자는 짓은 저지르지 못하고, 그렇게 거실 소파로 나와서 뜬 눈으로 류건우 형의 소식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시스템을 주무르는 건 말이 쉽지, 사실 어마어마하게 까다롭고 힘든 일이었다.
‘아마 한참은, 못 나오시지 않을….’
[큰달.]쿵.
“허업.”
큰달은 순간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허공에는 지직거리며 흔들리는, 테스타 박문대로부터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 나오셨나?’
[그런 건 아니고.]메시지는 아무렇지 않게 답변했다.
“…??”
그럼 지금 시스템 안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단 말인가?
그 발상을 왜 하신 거지? 아니, 그것보다!
‘형! 얼른 나오세요!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아니, 여긴 순조로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그 괴물 딱지 속에서 왜 이렇게 태연하냐고 큰달은 울부짖었으나, 메시지는 계속 도착했다.
[전달사항이 있다.] [시스템이 이런 방식으로 업데이트를 하는 이유를 찾았어.]“…!!”
큰달은 울부짖는 것도 잊었다.
“뭐, 뭔데요?”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중얼거리기까지 한 질문에, 칼 같이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시스템을 자주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
예?
[생각해 봐.] [지난번에 차유진 기억이 날아간 업데이트 때.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시스템이라도 어떻게든 써보려고 많이 시도했지.]그랬다.
테스타 박문대는 그 어처구니없는 비상 상태에, 업데이트랍시고 운영도 중단된 시스템을 붙잡고 계속 일부 기능이라도 활성화가 가능한지 시도했었다.
물론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형….’
잠시 가슴이 찡해지려던 찰나.
[그걸 학습한 것 같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긴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새끼는 그때처럼 내 멤버 기억을 날려 버리는 게 가장 효율적인 유인 방법이라고 판단한 거야.] [그래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거지. 이러면 내가 시스템을 자주 쓸 거라고 기대해서.]허억.
[저번에 내가 허겁지겁 시스템 쓰겠다고 두드리는 꼴을 봤다 이거지.]“…….”
단어 선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혀, 형.’
그리고 큰달은 왜 굳이 이 형이 비효율적일 자신과의 메시지 기능을 살린 건지 깨달았다.
이 형, 너무 열받아서 누구한테라도 이걸 말해야 했던 것이다…….
[기억나냐, 지난번에는 업데이트할 때 별 추가기능을 다 처넣었던 거.] [좀 써보라는 것처럼.]‘예….’
큰달도 알았다.
업데이트를 마친 후 무슨 설문조사니, 새 기능이니, 팝업으로 번쩍거리던 걸 다 시야 공유로 봤으니까.
하지만.
‘그런데 안 통했잖아요….’
저 형은 칼같이 싹 다 무시했다.
“…….”
[그게 지금 이 사태야.]‘맙소사.’
그러니까, 시스템은 자신이 유용해지는 것보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게 훨씬 효율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섬뜩한 결론이었다.
‘형이 시스템에 종속된 게 아니라, 아예 소유자가 됐으니까 안전한 게… 아니었어.’
방울뱀도 혀를 깨물면 자기 독에 중독되어 죽는다. 독을 가지고 있다고 그 독에 자신이 해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잠시간의 상념 끝에, 그것을 깨달은 큰달은 얼른 외쳤다.
‘형 이제 아셨으니까 나오시는 거죠? 얼른 나오세요!’
당장 형이 나오기만 하면 이 시스템 좀 제발 버려 버리자고 빌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
그새 진정한 건지, 놀랍도록 차분한 메시지가 답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용은 큰달을 못 차분하게 만들었다.
[지금 다른 걸 또 찾았거든.]‘대체 뭘?’
그 잠깐 사이에 뭘 또 찾았다는 말인가.
큰달은 이제 좀 울고 싶었다.
저 시스템 안에서, 대체 지금 형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 * *
시스템의 속.
‘미친 새끼.’
나는 간신히 화를 죽이는 중이다.
탐색 결과, 베타버전이고 나발이고 이 시스템 새끼도 박살 나기 전과 썩 다를 게 없다는 개빡치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래도 일단 결과를 얻은 것 자체가 수확이긴 하다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 괜히 아닌 척하진 않겠다.
일단, 큰달이 만든 ‘응용 기능’인 검색 사용에는 엄청난 심력이 소모되었다. 어마어마한 압력 때문에 대가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망할.’
아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큰달 녀석은 이걸 대체 어떻게 버티면서 작업을 한 거지?
녀석이 지금까지 업데이트에 대한 구체적인 못 알아낸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야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판단해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
-그래도 한다, X발!
…이러면서 말이다.
게다가 이미 큰달이 사정을 다 안 이상, 내가 못 하고 나오면 분명 그놈이 여기 접속해서 이 짓을 다시 해보려고 할 것이다.
‘그럼 비효율적이지.’
시간도 고통도 낭비다.
그래서 일단 한 것이다. 그리고 찾아낸 결론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만.
‘이 X새끼가 진짜.’
나는 짜증을 참으며 내 앞에 뜬 업데이트 정보의 일부를 보았다.
[ 사용 빈도 : 0]-재업데이트 실시
: ‘ 사용 빈도’ 기준 가장 우수한 상황 적용 (기간 : 365)
사용 빈도 늘리는 게 목표다 이거였다.
‘그래서 이 개판이 된 거지.’
다만 이 개판의 기준이 된 첫 업데이트, 즉 스티어 차유진의 경우엔 약간 달랐다.
: ‘회사 ’ 소속 개체의 능력 향상 Command 적용
스티어 차유진의 경우, ‘회사 소속 아티스트 능력 향상’을 촉진하기 위해, 차유진이 잊어버린 스티어 활동 경험을 돌려주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업데이트 도중 원래 기억이 날아가는 과정이 포함됐던 거다.
‘근데 갑자기 업데이트 도중에 사용 빈도가 늘어나니, 뒷걸음질로 목적을 달성했다 이거지.’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꺼져.
내 의지가 허공을 울리며, 정보가 흩어졌다. 나는 의식을 가다듬으며 열받음을 다시 가라앉혔다.
하지만 매듭을 푼 것 같은 묘한 쾌감도 있긴 했다.
어쨌든, 이 새끼의 목적을 안 것만으로도 길이 보이긴 했으니까.
‘일단 알기만 하면, 다루는 건 어렵지 않지.’
아마 지금 내가 류건우의 몸에 들어오기 위해 쓰고 있는 ‘미션 실패 열람’ 기능도 시스템이 그냥 준 건 아닐 것이다.
미션 실패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시스템 의존도가 높을 거란 분석을 했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때의 경험을 상기하게 만들고 싶었나?
미안하지만 실패다.
‘나한테 이 기능을 준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나는 사납게 웃으며 망할 정보를 눈앞에서 치웠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계획이 섰다. 이제 볼일은 끝난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나가볼… 잠깐.’
하지만 그때.
나는 흩어버린 정보의 마지막, 가장 최근에 추가된 항목 하나가 밑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것을 눈치챘다.
바로 이것.
[Ver.2.2 업데이트 (예정)]-데이터 구현 중
‘이건… 다음 차례인가.’
현대문명적인 개념으로 따지자면, ‘예약’이 걸려 있는 컨텐츠처럼 느껴졌다.
‘확인하자.’
이 새끼가 원래 뭘 준비했던 건지 알아가는 게 확실하겠지. 나는 한 번 더 그 정보를 분석하려고 들었다.
의식을 집중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메시지가 울린다.
-누구야?
“…!!”
나는 집중을 잃어버렸다.
‘방금.’
내가 구현한 ‘메시지’라는 응용 기능에, 뭔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뭐지?’
나는 그걸 더 가시화하기 위해 ‘메시지’ 기능을 좀 더 세밀히 구현하려고 애썼다.
‘망할.’
시스템이 거부하는 것 같은, 괴상한 압력에 없는 이가 악물리는 것 같은 것도 잠시.
메시지 앞에, 이름이 붙었다.
-이세진A : 누구야?
“…!”
나는 깨달았다.
이세진A. 당시 배세진이 받았던 이름표. 그러니까… 개명하지 않은 배세진.
그리고 업데이트 예정.
‘경우의 수는 하나다.’
-이세진A : 여긴 어디지?
지금 나는 ‘스티어 배세진’의 기억에 접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