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7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75화
큰달이 사라졌다.
류건우가, 실종됐다고… 전화가,
-선생님! 침착하세요. 침착하셔야 저희 대화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침착하라고 말한다.
나쁜 소식이 매번 그랬듯이.
“예.”
-결근 사실 모르셨고요.
“예.”
-동생분과 마지막으로 연락하신 게 언제죠?
나는 반사적으로 회상했다.
큰달과 마지막 연락.
테스타가 나온 싱가폴 합동 콘서트가 방영된 이후, 녀석에게 잘 봤다면서 연락이 왔었다.
-엔딩이 정말 멋지더라구요.
내가 엔딩에 나오는 것을 잘 봤으며, 자신도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 인사였다.
그건…….
“사흘 전입니다.”
스마트폰 너머의 목소리에 약간 다급함이 깃든다.
-동생 분이 그때 평소와 다르게 특정한 장소, 뭐 어디를 가고 싶다, 해가 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언급한 건 없었나요?
“…….”
없었다.
그냥… 테스타 박문대의 근황 이야기를 물었고, 자신은 잘 지낸다고 답했을 뿐이다.
-저야 당연히 잘 지내고요.
그게 다였다.
녀석은 자신에 대해서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 하나도.
X 같게도.
“…아뇨.”
짧은 침묵은 짙게 눌러앉았다.
상대를 달래는 듯하면서도 초조한 짜증을 눌러 참는 것 같은 목소리가 다시 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선생님, 동생분 무단결근이 벌써 닷새째입니다.
닷새.
-저희 오늘 휴대폰 위치 추적해서 스마트폰 발견한 거예요. 그리고 어제 산으로 가셨다는 목격담이 들어와서 수색 중인데.
-다 큰 남자한테 뭐 별일 있겠냐, 그렇게 생각할 단계는 조금 지났어요 지금.
“…….”
-선생님 사흘 전에 동생분과 연락하셨다고 했죠? 그게 무단결근 중에 연락한 겁니다.
그때 이미 결근 중이었다고.
이 겨울에… 혼자 산에 들어갔다고.
대체 왜.
-선생님, 지금 유일하게 그때 연락 기록이 남아계신 분이세요.
“…….”
-지금 침착하게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밤 될수록 기온도 내려가고 수색 어려워요. 마지막 목격담도 하루가 지나서 빨리 찾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지금.
녀석이 대체 무엇 때문에 어디로 향했는지 알아내야 했다.
‘……지금.’
나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바탕에 빨간 LED등으로 표기되는, 거대한 전자 벽시계가 보였다.
[17:04]오후 5시 4분.
2월 초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 해가 지기 직전의 시간이다.
그리고…….
테스타 콘서트 시작 56분 전.
째깍.
점점 줄어든다.
-지금 이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이 선생님뿐입니다.
-산이 특정되지를 않았어요. 류건우 씨가 당시에 어디로 가려고 했을지, 그 범위를 좁혀야 수색이 빨라요.
째깍.
그러니까… 콘서트까지 남은 시간 56분, 아니, 이제 55분 안에 뭐라도 말해야 한다.
-아니면 가족처럼 지내는 다른 분 혹시 계십니까? 최근에 만난 분은요?
째깍.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만.”
큰달에게 생물학적인 직계 가족은 없다. 박문대로서도, 류건우로서도,
게다가 시스템으로 오래 지낸 탓에 다른 사람과 친분을 쌓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가까운 사이다.
그래, 녀석이 했던 말에서 힌트를 찾거나 사고방식을 추측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면, 그건 나뿐이다.
힌트를 찾아야 했다.
-그럼… 선생님, 우선은 그냥 그날 대화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라도 한번 말씀해 보세요.
하지만.
째깍.
“전보다 차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요?
없다.
이게… 끝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산에 관련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
‘왜 아는 게 없지?’
왜?
이번에는 늦지 않았잖아.
몇 시간 후에야 다 끝난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게 아니었다. 제때 전화를 받은 것 같은데, 받아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안 돼.’
스마트폰이 턱을 쳤다.
나는 내가 손을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X발.’
도저히 뇌가 돌아가지 않았다.
큰달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어디로 향했을지 단서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려고 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잘 굴러가야 할 순간에 말을 안 듣는다.
너 X발 이런 거 잘하잖아.
‘야.’
시간 없다고 X발 새끼야.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울리는 소리가 머리까지 치고 올라온다.
뇌의 효율이 바닥을 쳤다. 움직이지 않았다.
째깍.
그러나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또 내가 늦는다면?
혹시 콘서트가 이미 시작된 이후에야, 내 대가리가 생각이라는 걸 시작한다면?
째깍.
공연 중에 연락할 시간을 낼 수 있나? 아니, 그럴 틈은 없다. 의상을 갈아입고 수분을 보충하고 산소마스크를 쓰는 시간 5분 동안 정상적으로 통화가 이루어질 리가 없다. 이렇게 빠듯한 시간 중에 전화기를 붙잡을 찰나도 없다.
그럼… 나는,
째깍.
내가,
-선생님? 진정하세요.
“후읍.”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 숨 내쉬시고요. 들어보세요. 저희 야간에도 수색 진행할 수 있으니까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시진 마시고….
-여기 인천강화소방서 119산악구조대인데. 주소 검색하시면 바로 나오니까 오시면서 대화 계속하시면 됩니다. 침착하게, 차분하게요.
“…….”
구조대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오는 길을 설명한다.
전제된 건, 내가 지금 경황이 없어서 주소를 물어보는 것도 깜박했을 거라는 확신.
듣는 순간, 당장 뛰쳐나와 택시를 잡고 수색 작업을 한다는 그곳으로 갈 거라는… 당연한 예상.
하지만.
‘나는….’
콘서트를 해야 하는데.
테스타는 이 투어에 정규 앨범 급으로 아이디어와 투자를 쏟았다. 어쩌면 팀의 하락세와 상승세를 가를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시기이기에.
그리고 이건 전체 투어의 인상을 결정할, 첫 번째 공연이었다.
당장 이 대기실 밖으로 나가면 관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연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준비한 사람들이 저 밖에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이번 콘서트는 멤버 개인별로 캐릭터가 강조되어, 각자의 무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스토리를 채택했다.
그런데 내가 빠지면.
내 솔로곡 무대는? 대형은? 내 파트는 대체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그 공백을 누가 채우냔 말이다. 아무런 상의도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공연의 완성도가 박살 날 것이다.
투어의 평가가 망가진다.
그리고 테스타에 대한 팬들의 평판도.
-와 뼈 나가도 콘서트하던 곰머가..
-초심 박살 맞잖아
-너무 실망이다 진짜 아무리 그래도 콘서트를… 팀 분위기 어떻길래 이게 가능해?
그러니까 최소한 사흘만, 아니, 하루라도 시간이 있었으면….
나는 고개를 내려서 손을 보았다.
꽉 쥔 손마디가 허옇게 질려 있었다.
식은땀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
-예?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을 확신하는 투.
그렇겠지. 가족이 실종됐다는데 누가 일하는 중이라 대화하기 힘들다는 개소리를 한단 말인가.
누구는… 그 전화를 못 받아서, 매년 그날이 되면 X 같은 기분을 느끼고, 매일 꿈에 나왔을 텐데.
내가.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
문득, 현실감이 돌아왔다.
나는 지금… 가족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내 목표치 달성량이나 고민하고 있는 건가.
이게 지금… 뭐지?
“문대야…!”
나는…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박문대!”
“…!”
양어깨를 잡는 손에 고개를 들었다.
선아현이었다.
이상하게도 녀석이 잡은 곳이 뜨겁다고 반사적으로 느꼈다가, 그게 아니라 내가 피가 빠진 듯 시퍼렇게 질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딴 상태라면 머리가 안 돌아갈 만도 했다.
“…….”
선아현은 내 안색을 샅샅이 살피는 것 같더니, 곧 손을 놓았다.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대, 아픈 것 같아요.”
“뭐?”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제야 스마트폰에 집중된 온 신경을 간신히 주변으로 돌렸다.
이제 대기하기 위해 나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 박혀서 통화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우르르 온 모양새였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으로 시선이 모인다.
“전화, 누구야?”
선아현의 질문에 내가 대답할 것도 없었다.
스마트폰에서 이미 떨떠름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그럼 일단 가족분 바쁘신 걸로 알고, 저희는 계속 수색 진행하겠습니다.
“…수색?”
심상치 않은 단어에 분위기가 한 번 더 변했다.
“저기 죄송한데 지금 누구 수색하시는 건가요?”
-예?
나는 내 스마트폰을 잡아가더니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한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이 그룹의 멤버들.
콘서트를 앞둔 그 얼굴들을 보니 호흡과 머리가 드디어 가라앉기 시작했다.
“…….”
공황을 뚫고 나오자, 명백한 정답이 머릿속에 도출됐다.
뻔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트라우만지 뭔지 뇌도 제대로 안 움직였다. 내가 이 상태로 수색을 돕는다고 큰달을, 류건우를 찾는 것에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콘서트는 하지 않으면 확실히 X 된다.
그러니까, 답은 이미 나왔지 않은가.
“…예. 감사합니다.”
마침 알아서 이야기를 마친 멤버들이 내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뗐다. 굳은 얼굴을 보아하니 설명을 다 들은 모양이다.
“…….”
나는 고개를 들었다.
콘서트 38분… 아니, 이제 37분 전이다.
이제 정말로 전화를 끊고 준비하지 않으면 오프닝에 차질이 생길 시간.
‘전화 끊고 준비하죠.’
그렇게 말해야 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해라.’
내가 안 하면 이놈들이 그 소리를 해야 하지 않는가. 그걸 애들한테 떠넘길 순 없다.
나는 혀를 씹으며 다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을 완성하기도 전이었다.
류청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문대야, 가.”
“…!”
“콜택시 타면 2시간이면 도착할 거야. 가면서 조용히 방해받지 말고 이야기해.”
콘서트를 할 시간 절반을 이동에 처박으라는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입에서 나왔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반박하려고 했으나.
“아니, 네 판단은 안 들을 테니까 내가 말하는 대로 해.”
“…….”
“알았지?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와.”
나는 멍청한 새끼처럼 되물었다.
“콘서트는.”
“우리가 할 거야.”
“아니….”
류청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직도 통화가 연결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묻지 마. 널 설득할 생각이 없으니까.”
“…….”
“시간 버리지 말고, 지금 가.”
나는 녀석이 내미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반박이 나오지 않았다.
‘안 돼.’
다른 멤버들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큰세진이나, 차유진 같은 녀석이면 분명 이성적으로 반박을 해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못해도 얼굴에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내가 아가리를 벌리는 것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조용한 협조 속에서, 나는 이동했다.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순식간에 콜택시 내부에 탑승했다.
“다른 걱정은, 하지 마.”
선아현의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탁.
그렇게 나는 낯선 승용차의 뒷자리에 앉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
콘서트 30분 전에, 가수가 공연장을 이탈한 것이다.
현실감이 들지 않을 만큼 미친 짓이었다.
그러니 더 불안해야 맞았다. 내가 내 손으로… 그룹 앞날이 걸린 콘서트 첫날을 조진 것이 확실하니까.
관객들이… 실망할 게 분명하니까.
“…….”
손이 떨렸다.
그러나 웃긴 것이 뭔지 아는가? 내가 더는 개 같은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짓말처럼 뇌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X발.’
왜냐하면, 이미 콘서트로 돌아가긴 늦었으니까.
더는 고민할 여지가 남지 않았다. 얼마든지 큰달의 안위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늦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웃기게도 이 극한의 초조함 속에서도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
이렇게 상황이 X 같은 데도 약간의 평온이 돌아온 것을 달게 받아먹는 내 뇌가 어처구니없었다. 나는 내 뇌를 비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까 전화를 준 구조대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다시 생각해 보자.
큰달이 갈 만한 곳.
녀석의 지난 며칠 간의 행방에 대해서.
녀석은 닷새간 무단결근을 했다.
결국 오늘 오전에 직장에서 신고가 들어간 모양이다. 성인 남성의 실종은 잘 안 받아주지만, 공무원이니 그나마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의 스마트폰을 추적한 결과. 강화도의 한 슈퍼에서 발견되었다.
류건우는 어제 강화도의 한 슈퍼에서 ‘산으로 가는 중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흔적이 끊겼다는 것이다.
‘그게 어느 산인지 알 수 없기에, 수색이 더디다…는 거지.’
강화도에는 등산할 만한 산이 다수였다.
겨울에 이틀이나 산속에 있다면 빨리 찾아야 했다. 자칫하면 동사도 나올 수 있었다.
…다만, 구조대원은 다른 뉘앙스의 걱정도 했다는 것을 안다.
이 날씨에 겨울 산을 갑자기, 무단결근을 한 채 스마트폰까지 두고 올랐다면….
애초에 하산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류의.
‘아니.’
나는 양손으로 스마트폰을 움켜쥐었다.
…그러진 않았을 거다.
녀석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아보겠다며 속초로 여행까지 갔다 왔던 녀석인데….
하지만 그 순간, 녀석의 최근 연락들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그럼요, 잘할 거예요.
“…….”
녀석의 그 차분함은, 설마 우울함에서 비롯된 건가.
알 수 없었다. 최근에는 그만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논리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끝이다.’
녀석의 생존을 원하는 추리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발상이다.
나를 이를 악물어서 해당 생각을 잘라냈다.
그리고 다시 키워드로 돌아갔다.
녀석의 목적.
‘왜 하필 강화도의 산이지?’
그런 산이라면 서울에도 비슷한 곳이 많이 있었다. 굳이 인천까지 갈 이유가…….
“…….”
이 몸.
박문대가, 인천 출신이군.
어딘가 연결고리를 발견한 기분에 나는 더 바짝 뇌를 썼다.
다른 연결고리는 없나? 강화도, 강화도….
그리고 문득 떠올렸다.
-아, 음. 강화도긴 한데요….
“……!”
나는, 녀석과 강화도에 간 적이 있었다.
이유도 선명히 기억했다. 그건.
-바다에 계세요. 전부터 그러고 싶다고 하셨다고…….
“…….”
나는 즉시 지도 앱을 켜서, 강화도의 지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구조대원에게 통화를 걸었다.
“먼저 수색해 보실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예?
“마니산.”
나는 산 하나를 짚었다.
“그 산 남쪽에… 바다가 잘 보이고 가까운 방향이요.”
이 산 위에서 바다를 보면, 녀석이 부모님 유골을 뿌렸다던 강화도 앞바다가 그대로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