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123
나쁜 날이 가면 좋은 날이 올 거야~
“경기도 지고 기분도 더러운데 지금 노래 부를 생각이 나냐? 이 미친놈아!”
“당장 꺼!”
“시끄러워 죽겠네.”
“잠깐. 다들 조용히 해봐. 테베스가 팀을 위해서 뭔가 한다잖아. 일단 들어는 보자. 불러봐. 테베스.”
캐릭이 흥분한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테베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크를 잡고 본인이 직접 만든 허접한 반주를 틀어놓고 랩을 시작했다.
“우리는 동런던의 영웅들~ 전 유럽을 누비며 오늘도 적들과 싸우지~ 쉽지 않은 길이지만 나는 이겨낼 수 있어~ 그건 나의 전우들이 있기 때문이지~ 이길 때가 있으면 지는 때도 있는 거야~ 이것만 기억해~ 마지막 승리는 언제나 우리들의 것이라는 걸! 헤이~ 브라더~ 우린 결코 쓰러지지 않아~ 나쁜 날이 가면 좋은 날이 올 거야~”
테베스가 떠듬거리며 문법에도 안 맞는 영어로 랩을 하자 처음에는 비웃던 선수들이 점점 진지하게 들었다.
우리는 한배를 탄 사이였기 때문이다.
노래를 결코 잘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팀을 향한 테베스의 진심이 동료들에게 전해졌다.
“나쁜 날이 가면 좋은 날이 올 거야~”
나는 후렴구가 마음에 들었다.
선수들이 하나둘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관 속처럼 답답했던 버스가 밝아지며 따뜻한 공기가 피어올랐다.
우리는 그렇게 잉글랜드의 북동부로 향했다.
“나쁜 날이 가면 좋은 날이 올 거야~”
***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UEFA컵 준결승 2차전이 펼쳐지는 미들즈브러 홈구장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입니다! 오늘 3만 4천 석이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당연하죠. 미들즈브러 팬들에게는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경기거든요. 팀 역사상 최초의 유럽대항전 우승컵까지 딱 한 경기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 미들즈브러가 과연 기적을 일으킬지 기대가 됩니다.] [전문가들과 도박사들은 모두 웨스트햄의 우세를 예상하는데요. 미들즈브러가 뒤집을 카드가 있을까요?] [웨스트햄은 리버풀전을 치르고 이틀 만에 하는 경기라 선수들의 피로가 심각할 겁니다.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여 체력전을 펼치는 게 유리합니다.]삐이이이익- !
미들즈브러의 선공으로 전반전이 시작되었다.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에는 붉은 저지를 입은 미들즈브러 팬들이 모여 있었다.
같은 붉은색이지만 안필드에 모여 있던 사람들과는 표정이 달랐다.
다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초조한 표정.
몇 년 전 웨스트햄 팬들의 표정과 비슷했다.
콰아아아앙- !!
[나영웅이 돌아서는 보아텡에게 태클을 겁니다! 볼 빼앗았어요! 언제 저기까지 올라왔죠!?]“와아아아아아!”
미들즈브러는 우리의 피로를 이용하려고 시작부터 피치를 올렸다.
그걸 예상한 우리는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부딪쳤다.
내가 하프라인을 넘어가서 상대 미드필더를 공격하자 웨스트햄 팬들이 원정석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나영웅! 측면으로 패스! 그리고 계속 전진합니다! 빨라요! 피로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몸놀림!]우리는 어제 교외에 차린 캠프에서 회복훈련을 하고 마음 편하게 쉬었다.
런던에서 부른 마사지사들이 하루 종일 선수들의 몸을 풀어주었고 일류 영양사들이 만든 요리를 먹으며 소모된 영양분을 보충했다.
웨스트햄 캠프는 야전병원처럼 척척 돌아갔다.
이런 노하우가 생긴 것도 팀에 경험이 쌓인 덕분이다.
옛날처럼 아무 생각 없이 시내 호텔을 썼다면 상대 팀 팬들의 방해 공작에 밤새 시달리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여러 위험에 노출됐을 거다.
웨스트햄 선수들이 유럽 강팀들과 격전을 치르며 레벨업하고 있을 때 스텝들도 함께 레벨업 했던 거다.
[시작부터 맹공을 퍼붓는 웨스트햄! 리버풀전의 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들 움직임이 좋아요!] [지금은 그렇지만 후반전으로 가면 버티기 힘들 겁니다. 졸라 감독도 신중해야 합니다. 막판에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습니다.]졸라 감독은 우리의 피로도를 체크하고 경기 전 이렇게 말했다.
“후반전에 분명히 다리가 무거워지는 때가 올 거다. 우리는 그 전에 승부를 낸다. 알겠냐?”
“예!”
우리는 미들즈브러가 홈에서 총공세를 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맞불 작전으로 맞섰다.
초반에 기세를 꺾어놓으면 상대는 스스로 무너질 거다.
이 정도의 압박감을 받으며 싸워본 경험이 팀에 없으니까.
[멘디에타! 측면에서 크로스~~! 하셀바잉크가 받았습니다! 돌아서며 슈티이이이잉!]노련한 멘디에타가 내가 비운 뒷공간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넣었다.
하셀바잉크가 받아서 슈팅을 때리는데.
콰아아아앙- !
[안톤 퍼디난드! 슬라이딩 태클로 볼을 걷어냅니다! 나이스 플레이! 비두카를 마크하다가 순식간에 반대편 공간까지 커버합니다!]“으아아아!”
안톤이 하늘을 보며 기세 좋게 소리쳤다.
이제 하셀바잉크의 움직임에 완벽 적응했다는 자신감이다.
미들즈브러 선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름 허를 찌르려고 했는데 오늘도 질 거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리버풀에서의 참패는 이제 더 이상 웨스트햄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바로 이 복덩이 녀석 때문에.
[카를로스 테베스! 이번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드리블이 길어요! 아! 균형을 잃습니다!]파앗- ! 투우웅! 투웅!
테베스가 마라도나에 빙의된 듯 혼자 드리블을 치며 수비진으로 돌진했다.
수비수들이 어깨로 밀치고 발로 차는데도 비틀비틀 오뚜기처럼 끝내 넘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네 명을 제친 테베스가 쓰러지며 오른발을 쭉 내밀었다.
[테베스가 발끝으로 밀어낸 볼이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고오오오올~! 환상적인 단독 드리블로 골을 성공하는 아르헨티나 특급 카를로스 테베스!] [미들즈브러 0 대 1 웨스트햄]테베스는 넘어지며 마지막 순간 엄지발가락으로 볼을 툭 밀었다.
그 짧은 순간.
당황한 골키퍼의 가랑이가 벌어졌다는 걸 본 거다.
테베스가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원정 응원석으로 달려갔다.
“테베스! 테베스! 테베스!”
웨스트햄 팬들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이번 시즌 테베스가 터트린 골 중에서 단연 최고의 골이었다.
미들즈브러 선수들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삑! 삑! 삐이이익- !
[경기 끝났습니다! 웨스트햄이 2차전에서도 미들즈브러를 3대0으로 꺾고 마침내 팀 역사상 처음으로 UEFA컵 결승전에 진출합니다!]테베스의 원더골에 충격을 받은 미들즈브러는 전의를 상실했다.
비두카와 교체로 들어온 야쿠부는 안톤과 나에게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하셀바잉크가 혼자 분전했지만 제임스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후반전 막판에 체력 저하가 왔는데 그때쯤 미들즈브러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제 노래를 좋아해 준 팀원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요즘 컨디션 정말 좋아요. 이제야 프리미어리그가 어떤 곳인지 알 거 같아요.”
테베스는 혼자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MOM에 선정되었다.
그가 웨스트햄에 입단해서 뛴 경기 중 단연 최고의 경기력이었다.
미들즈브러의 탈락이 확정되자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펑펑 우는 아이들부터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들까지.
우리는 그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선사하고 동런던으로 돌아왔다.
[웨스트햄! UEFA컵 결승전 진출. 세비야와 네덜란드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단판 승부.]세비야 FC는 라리가의 명문 팀으로 특히 UEFA컵에서 강하기로 유명한 팀이다.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 이끄는 세비야는 현재 라리가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위협할 정도로 기세가 좋았다.
유럽 축구 도박사들은 세비야의 우승(1.92배)을 예상했고 우리는 언더독(3.84배)이 되었다.
***
미들즈브러에서 런던으로 돌아와서 간만에 휴일을 보냈다.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꼼짝도 하기 싫었는데 겨우 일어나서 집을 나섰다.
내가 방문한 곳은 웨스트햄 구단 지정 병원.
병실을 찾아 들어가니 골키퍼 알렉산데르가 어깨 깁스를 하고 침대에 있었다.
티비에서는 한창 웨스트햄의 UEFA컵 결승전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그간 UEFA컵과 인연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야말로 영국으로 우승컵을 가져와야 한다며 열을 올렸다.
“어이~ 유럽 챔피언~ 왔니~”
“몸 좀 괜찮아요? 이거 받아요.”
“뭐야?”
“한국식 족발이에요. 전에 맛있다고 해서 사 왔어요.”
“고마워. 영웅. 잘 먹을게.”
알렉산데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에 한국식당에 데려갔을 때 유독 족발을 좋아하길래 식당에 특별 포장 주문해서 받아왔다.
체코에도 족발과 비슷한 요리가 있다고 한다.
“제임스 그 친구. 어제 경기 보니까 다행히 감각을 찾았더라. 이젠 걱정 없을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얄궂게도 제임스의 부상이 그를 주전으로 만들었고 그의 부상이 제임스를 복귀하게 만들었다.
어색할 수도 있는 사이인데 그와 제임스는 사이가 정말 좋았다.
골키퍼들은 진짜 별종이다.
“복귀는 언제쯤이에요?”
“복귀라…”
알렉산데르가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그는 미들즈브러와의 1차전에서 어깨 부상을 당했고 시즌 아웃 통보를 받았다.
“이젠 유니폼을 벗을 때가 온 거 같아.”
“은퇴를 한다구요? 그동안 후보만 하다가 이제야 겨우 빛을 봤잖아요. 근데 여기서 그만두겠다니. 말이 돼요?”
“우습지. 나의 인생이라는 게. 의사가 그러는데 퇴원하고도 1년은 재활을 해야 한대. 그동안 어깨에 누적된 충격이 많아서 손상된 부위가 큰가 봐. 사실 그동안 아파도 숨기고 뛰었거든. 맨날 다이빙 훈련을 열심히 한 효과지. 히히히.”
“…”
축구팀에서 가장 많은 훈련을 소화하는 포지션은 놀랍게도 골키퍼다.
매일 이리저리 몸을 던지는 훈련을 하는데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솔직히 지쳤어. 그만하고 싶어. 그런 표정 짓지 마. 영웅아. 그냥 이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을 뿐이야. 나에게는 펍도 축구만큼 중요한 일이거든. 이 맥주 맛도 모르는 불쌍한 영국인들에게 나 같은 체코인이 진짜 맥주 맛을 알려줘야지. 헤헤.”
“맥주는 체코죠.”
“역시~ 영웅이랑 나는 통한다니까~”
척-
우리는 주먹을 부딪치며 웃었다.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다음 경기에만 집중해. 영웅아. 내가 선배로서 감히 한마디 하자면 축구는 짧고 인생은 길어~ 나의 인생도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뿐이야. 슬퍼할 이유가 없어.”
“훗.”
나는 병실을 나서다가 고개를 돌려 이렇게 말했다.
“2주 후에 UEFA컵 우승 퍼레이드 버스 타야 하니까. 그때까지 회복해 놔요.”
이렇게 체코의 노장 골키퍼 알렉산데르 스탄코비치의 시즌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