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18
챔피언십리그에 온 걸 환영한다.
“장난 아니네…”
경기장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우리는 쫓기듯 원정팀 드레싱룸으로 들어갔다.
이제야 앨런 감독의 말을 이해했다.
“적진 한가운데 떨어진 거 같아.”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에 몸이 덜덜 떨렸다.
전생에서 나는 청소년 대표로 세계 대회도 나가봤고 K리그에서 4시즌이나 뛰었다.
원정 경기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이게…종주국의 축구.”
잉글랜드는 축구 종주국이다.
현대 축구가 탄생한 곳이 바로 여기라는 자부심이 있다.
요즘은 살짝 비아냥대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어쨌든 100년 전 이 동네에서 현재 세계인이 즐기는 축구 경기가 나왔다는 건 사실이다.
오죽하면 잉글랜드 축구협회를, 그냥 Football Association (FA)라고 칭하겠는가.
축구를 자기들이 만들었으니까 앞에 국가 명칭을 붙일 이유가 없다는 거다.
참고로 한국 축구협회는 앞에 KOREA가 붙어 KFA로 표기되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쿵- ! 쿵- ! 쿵- ! 쿵- !
좁고 낡아빠진 드레싱룸이 흔들렸다.
위에서 관중들이 발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들은 바닥 아래 원정팀 라커룸이 있다는 걸 안다.
천장에서 흙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홈팀 팬들이 원정팀 선수들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전통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를 이어가며 전해졌을 거다.
나는 이제 그 역사에 최초의 아시아인 선수로 나의 이름을 새기게 되었다.
그렇게 상황을 받아들이니 떨림이 멈췄다.
“자! 자! 첫 경기가 중요해. 북쪽 촌구석 녀석들에게 런던의 매운맛을 보여주자! 우린 이런 리그에 있을 팀이 아니라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는 거야!”
앨런 감독이 경기 전 선수들을 독려했다.
그는 지금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맨유의 퍼거슨 감독처럼 독하지도 못했고 아스널의 벵거 감독처럼 지적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잉글랜드인 감독 특유의 뚝심이 있었다.
“가자!”
2부리그 첫 경기를 치르러 피치로 나갔다.
심장이 다시 쿵쾅대기 시작했다.
프레스턴 팬들이 그들의 응원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우리는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기병대처럼 비장하게 피치로 나갔다.
그런데.
“유나이티드! 해머스! 우리가 왔다!!”
짝- 짝- 짝-
관중석 구석에 웨스트햄 서포터즈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홈팀 서포터즈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저 녀석들. 여기까지 찾아왔네.”
“할 일 없는 놈들이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 300여 명의 웨스트햄 서포터즈가 힘을 주는 게 분명했다.
프레스턴은 맨체스터보다도 북쪽에 있어 런던에서 찾아오기 정말 힘든 곳이었다.
그런데도 해머스는 이곳까지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왔다.
2부리그로 떨어진 팀이 뭐가 좋다고.
그게 바로 영국 최고라고 불리는 웨스트햄 팬들이었다.
“저기 봐. 저 녀석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안톤이 잔뜩 긴장했다.
상대 진영을 보니 과연 홈팀 프레스턴 선수들의 표정이 야릇했다.
먹잇감을 발견한 이리떼처럼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특히 머리를 빡빡 깎은 덩치 큰 9번 공격수가 나를 빤히 보았다.
[제이콥 영]어제 자료를 보니 키가 196센티 몸무게 100킬로에 육박하는 거인이었다.
12시즌을 치르며 1부리그에서 뛴 경기는 0.
평생 2부~4부 리그를 오가며 하위리그 여포 짓을 하고 있는 공격수였다.
분석 리포트에는 이렇게 평가되었다.
[제이콥 영. 32세. 주력은 느리지만 피지컬을 이용한 더티 플레이에 능함. 헤딩 원툴이지만 위협적임. 거친 몸싸움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압하는 스타일, 공중 경합 시 팔꿈치와 무릎을 교묘하게 사용하니 특히 주의할 것.]제이콥이 자기 진영에서 동료와 시시덕거리다가 나를 딱 찾아냈다.
놈이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실실 쪼갰다.
“흥. 재밌겠군.”
목표물이 정해지자 주변의 모든 것이 조용해지고 오직 저 녀석만 보였다.
오늘 경기에서 나의 목표는 바로 저 제이콥이란 놈이다.
“영웅. 첫 경기니까 신중하게 하자. 함부로 나대지 마.”
“알겠어요.”
오늘 나와 호흡을 맞추는 중앙 수비수는 토마시 르젭카.
체코 국적의 노장 센터백이었다.
안톤은 오늘 오른쪽 풀백으로 뛴다.
나는 안톤과 뛰고 싶었다.
활동량이 좋은 안톤을 풀어놓고 내가 뒤에서 커팅을 하는 수비 시스템이 딱 좋았다.
하지만 앨런 감독은 10대 선수 둘에게 최종 수비수를 맡기는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아 했다.
삐이이이익- !!
오늘은 토마시가 명령을 내리고 내가 사냥개처럼 뛰어다니기로 했다.
전반전이 시작되자 프레스턴이 거침없이 측면으로 공격을 전개했다.
“탐색전이고 뭐고 없구나…”
영국축구를 상징하는 포메이션은 4-4-2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유명한 축구 잡지 이름이 [포포투]겠는가?
영국축구를 상징하는 전술은 [킥 앤 러쉬]다.
포포투 포메이션에서 측면으로 빠르게 공을 운반하고 골대 앞으로 크로스를 올리면 박스 안에 박혀있던 투톱이 어떻게든 골을 우겨넣는다.
영국의 축구는 이런 단순 무식한 전술로 무장한 두 팀이 90분 내내 진흙탕에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로 들어서며 영국축구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외국인 감독들이 대거 팀을 맡으며 [포포투 + 킥 앤 러쉬]에서 벗어난 새로운 전술들을 선보였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영국의 축구는 외국인들의 유입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다.
단 프리미어리그에서만.
뻐어어어어엉- !!
지금이 2003년인데 잉글랜드 2부리그에서는 여전히 킥 앤 러쉬 뻥축구가 대세였다.
“온다! 막아!”
프레스턴의 윙어가 왼쪽을 파고들며 크로스를 날렸다.
쿵- 쿵- 쿵- !
제이콥이 공룡처럼 대지를 울리며 우리 골대로 달려들었다.
“영웅! 막아!”
나는 토마시의 명령에 따라 공중볼을 걷어내려고 뛰어올랐다.
제이콥은 달리는 힘을 이용해 앞으로 부웅 떠오르며 나와 충돌했다.
쿵- !! 퍽!
삐이이이익- !
나는 공중에서 거꾸로 처박히며 떨어졌다.
경기가 중단되고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겨우 눈을 떴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척-
그 손을 잡고 일어났더니 제이콥이 씩 웃고 있었다.
“챔피언십리그에 온 걸 환영한다. 동양 꼬마야~”
제이콥이 듬성듬성 빠진 이빨을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 사람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 같았다.
“환영 인사 고마워요. 문어 아저씨.”
“뭐. 뭐야?”
“하하하! 동양 꼬마가 배짱이 있는걸?”
내가 받아치자 제이콥의 동료들이 좋다고 웃었다.
축구 선수들이 아니라 무슨 깡패 집단 같았다.
제이콥은 삶은 문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충분히 겁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받아치자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첫 경기부터 퇴장당하고 싶어? 다들 주의해. 이봐 신참. 괜찮나?”
“예.”
심판이 나를 신참이라고 불렀다.
걱정해 줄 거면 제이콥에게 카드라도 주던가.
뭔가 재밌는 리그였다.
묘하게 동네 조기축구회 같은 분위기랄까?
나는 혹시 모를 몸의 이상을 체크했다.
방금 떨어지며 팔로 낙법을 치지 않았으면 목이 부러질 수도 있었다.
삐이이익- !
경기가 재개되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공격할 차례다.
“거울을 보는 거 같네.”
프레스턴이 포포투인 것처럼 웨스트햄도 포포투였다.
우리도 측면으로 똑같이 공격을 전개했다.
오늘 투톱은 저메인과 말론이다.
말론은 팀을 떠난 카누테를 대신해서 영입한 빅맨 공격수였다.
하지만.
뻐어어어엉- !!
“젠장!”
“야! 거기서 때리면 어떻게 해? 패스를 했어야지! 내가 프리였잖아! 그따위로 할래?”
웨스트햄의 새 투톱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카누테에 비해 말론은 골 욕심이 강했고 슈퍼스타 저메인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론이 패스하지 않고 계속 무리한 슈팅을 때리자 짜증이 난 저메인은 중원까지 내려와서 공을 받아 직접 해결하려고 했다.
“한마디로 개판이군.”
저메인이 대단한 공격수는 맞지만 호나우두처럼 개인기로 혼자 몇 명씩 제치고 골을 넣는 유형은 아니었다.
저메인은 순간 스피드로 라인을 부수며 공간으로 침투해 골을 만드는 라인브레이커였다.
중원에서 공을 잡아봐야 아무 위협이 되지 않았다.
뻐어어어엉- !
웨스트햄의 공격이 지지부진해지자 프레스턴이 역습을 해왔다.
선수들의 이름값과 연봉을 비교하면 웨스트햄과 프레스턴은 비교도 안 되는 팀이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피치에서 맞부딪치면 그 차이는 진흙탕 속에서 하나로 뭉쳐진다.
그게 영국축구의 묘미였다.
뻐어어어엉- !!
“온다!”
다시 크로스가 우리 골대로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