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37
이제부터는 호랑이의 아가리로 들어간다
“진정이 되질 않는군.”
우리는 올드 트래퍼드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마법에 걸렸다.
나를 포함한 어린 선수들은 경기장이 내뿜는 기운에 압도되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몸이 무거웠다.
문제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감독까지 마법에 걸렸다는 거다.
“얘들아. 쫄지마! 저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야. 우리도 지난 시즌까지 1부리그에서 뛰었다는 걸 명심해!”
“감독님. 좀 전에 했던 말씀이잖아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더 불안해지잖아요.”
“내가 그랬나?”
앨런 감독은 백발을 휘날리며 원정팀 라커룸을 왔다 갔다 했다.
그와 퍼거슨의 경력을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앨런은 아마추어 선수 출신으로 젊은 시절 택시 운전, 건설 노동자 같은 일을 하며 아마추어 축구팀을 전전했었다.
그러다 기적처럼 기회를 얻어 말년에 프로 선수 생활을 했지만 그래 봐야 삼류 구단에서나 뛰었다.
감독 경력을 시작한 구단도 3부리그 팀이었다.
그러니 영국 축구의 최정점 올드 트래퍼드에 와서 떨 수밖에.
“맨유는 지금 리오가 빠졌기 때문에 중앙 수비에 약점이 있어요. 지난 풀럼전처럼 수비를 두텁게 하고 감독님이 만든 카운터 어택 패턴으로 공격하면 해볼 만해요.”
“그래. 맞아! 저메인! 너 말 잘했다.”
저메인이 오히려 감독과 어린 선수들을 챙겼다.
경기 전 몸을 풀려고 처음으로 피치에 나가 보았다.
터널을 나와서 입장하는데 사방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며 올드 트래퍼드의 피치가 위용을 드러냈다.
“우와아아…”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다가 중계방송 카메라가 있다는 걸 깨달고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바보 녀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기 있군.”
반대쪽에서 몸을 푸는 맨유 선수들이 보였다.
예전에 티비로 보던 바로 그 슈퍼스타들이었다.
네덜란드산 득점기계 판니스텔루이, 웨일즈의 특급 윙어 라이언 긱스, 최고의 미드필더 폴 스콜스, 맨유의 대장 로이 킨까지.
그들은 우리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다들 엄숙한 표정으로 몸을 풀었다.
“무슨 아일랜드 폭력단 같은 분위기네.”
우리 팀 미드필더 스티브가 중얼거렸다.
우리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맨유 선수들이 내뿜는 살기에 압도되었다.
“자꾸 쳐다보지 말아요. 쪽팔리게.”
“누가 봤다고 그래!?”
우리는 꿈꾸는 기분으로 몸을 풀고 라커룸으로 돌아갔다가 경기 시작 전 입장을 위해 통로로 나왔다.
대기하고 있는데 맨유 선수들이 나와서 우리와 나란히 섰다.
몸이 닿을 듯 가까이서 보니 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니가 그 이름도 유명한 히어로냐?”
판니스텔루이가 실실 쪼개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란히 서니까 나와 키가 비슷했는데 몸통이 통나무처럼 두꺼웠다.
“그런데요.”
“그런 이름으로 선수 등록할 생각을 하다니. 너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구나. 히히. 마음에 들어. 오늘 잘 부탁한다. 환상적인 수비.”
“이봐. 네덜란드 친구. 지방 방송 좀 끄지? 우린 토크쇼를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잖아.”
“쳇.”
맨 앞에 있던 맨유 주장 로이 킨이 한 마디로 그를 닥치게 만들었다.
진짜로 폭력단 같은 분위기였다.
[선수들이 피치로 입장합니다. 오늘 경기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두 선수는 웨스트햄의 신성 나영웅과 안톤 퍼디난드입니다. 과연 이 둘이 맨유의 화려한 공격진을 막아낼 수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맨유의 주전 수비수 리오 퍼디난드가 나오지 못해서 형제 대결은 불발됐지만 안톤과 리오의 플레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겠네요.]우리는 경기장이 내뿜는 기운에 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격려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맨유 팬들에게 오늘 나의 축구로 반드시 충격을 안겨주리라.
삐이이이익- !
[전반전이 시작됐습니다. 맨유의 선축입니다.]맨유 선수들은 풀럼처럼 서둘지 않았다.
노련한 호랑이처럼 천천히 볼을 돌리며 사냥감을 살폈다.
판니와 솔샤르가 투톱으로 출전해서 우리 수비라인을 맴돌았다.
슈퍼 루키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후반전에나 나올 분위기였다.
그 포르투갈 녀석의 정강이를 한번 세게 걷어 차주고 싶은데.
“살살 좀 해줘~ 미스터 히어로~”
판니가 살살 약을 올리며 시동을 걸었다.
나는 토마시와 센터백 콤비를 이루었고 안톤이 라이트백에 섰다.
이렇게 포진한 이유는 바로 이 남자 때문이었다.
파바밧- !
[라이언 긱스! 측면에서 드리블 돌파! 안톤! 놓쳤어요!]경기 초반 슬슬 뛰던 긱스가 갑자기 기어를 바꾸어 넣으며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다.
잡다한 기술 없이 드리블 속도 변화만으로 안톤을 벗겨 냈다.
안톤은 우리 팀에서 가장 빠른 수비수인데 따라붙지도 못했다.
“젠장!”
뻐어어어어엉- !!
긱스가 나의 위치를 흘끔 확인하더니 측면에서 슛을 때렸다.
슈팅이 다행히 빗나갔지만 나와 안톤의 완벽한 실수였다.
“너희들 왜 그래? 그냥 매일 하던 축구야. 너무 긴장하지 마. 안 잡아먹으니까~”
판니가 또 약을 올렸다.
이 인간을 마크하느라 긱스를 커버하는 게 늦었다.
그렇다고 이 인간을 프리로 놔두는 건 너무 위험했다.
박스 안에서의 판니는 득점 괴물이니까.
‘수준이 너무 달라…’
덜컥 겁이 났다.
단 일합을 겨루었을 뿐인데 풀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했다.
루이와 루이스 콤비도 위협적이었지만 긱스와 판니 콤비는 세계 축구 역사에 남을 선수들이었다.
클래스가 다르다.
“토마시! 마크! 내가 측면에서 협력 수비 들어가면 판니를 커버해줘.”
“오케이!”
경기 전 작전 회의에서 약속한 내용이었는데 다들 흥분해서 잊고 있었다.
“우선은 이쪽인가?”
공을 좌우로 찔러보던 맨유 공격진은 안톤과 내가 맡은 오른쪽을 노리고 들어왔다.
나와 안톤의 수비 구역이 겹치는 하프 스페이스가 공략 지점이었다.
[긱스가 다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합니다! 안톤 퍼디난드! 이번에는 놓치면 안 돼요!]“안톤! 혼자 나가지 마! 물러나서 같이 막자!”
“알겠어.”
안톤은 크게 당황했다.
긱스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떤 윙어보다도 레벨이 높았다.
풀럼의 루이스가 속도는 더 빠를지 몰라도 긱스에게는 현란한 기술과 특유의 끈끈함이 있었다.
이런 건 중계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직접 뼈와 살을 부딪쳐 봐야 느낄 수 있다.
파바밧- ! 투웅-
“어엇!”
쿠우우웅- !!
긱스가 달려들며 상체 페인팅을 걸자 안톤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뻐어어엉- !!
[긱스! 연속 돌파 성공! 하지만 이번에는 나영웅이 커버 플레이로 클리어해냅니다!]나는 긱스가 안톤을 제치는 순간을 노려서 볼을 멀리 차 냈다.
긱스가 나를 슬쩍 보며 “이 녀석 봐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하하하하! 안톤 저놈 저거 코미디언이네.”
“저 한심한 모습을 형이 봤어야 했는데.”
안톤이 넘어지자 맨유 팬들이 배꼽을 잡고 비웃었다.
그러자 안톤의 소심한 표정이 또 슬며시 나왔다.
툭- 툭-
“이봐. 안톤. 나와 내기한 거 잊지 마.”
“… 당연하지.”
나는 안톤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쳐주었다.
녀석은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먹잇감을 발견한 긱스는 악마처럼 계속 안톤을 노리며 그를 완전히 무너트리려 했다.
[맨유가 또 웨스트햄의 오른쪽을 노립니다! 긱스! 이번에도 드리블 돌파 시도!]긱스가 안톤을 앞에 두고 돌파하려다가 내가 커버 나오는 걸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젠장! 크로스 막아요!”
뻐어어어엉- !
긱스가 날린 크로스가 페널티박스로 침투하는 판니에게 떨어졌다.
파아아아앙- !! 터어어엉!
[판니스텔루이! 헤딩 슈우우웃! 크로스바를 맞춥니다! 완벽한 찬스였는데 상당히 아쉬워하네요.]판니는 토마시와 마크 노블의 이중 수비를 뚫어내고 슈팅까지 성공했다.
둘은 판니의 황소 같은 힘에 충격을 받았다.
마크는 힘에서 판니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토마시는 판니의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런 인간들을 90분 내내 막아낼 수 있을까?’
우리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웨스트햄은 전반 20분 동안 단 한 번의 슈팅도 때리지 못했다.
나는 동료들의 표정을 보고 결심했다.
“내가 분위기를 바꿔야 해.”
나는 골키퍼가 준 볼을 받아 직접 드리블을 치며 올라갔다.
“우우우우우우~~!!”
[오. 웨스트햄에서 재밌는 볼거리가 나오네요. 프리미어리그 최강팀을 상대로 자신의 스타일을 과시하는 나영웅!]내가 볼을 몰며 전진하자 맨유 팬들이 야유를 쏟아냈다.
이번 공격 기회에 분위기를 반드시 우리 쪽으로 가져와야 했다.
“꼬마야. 니가 오늘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솔샤르와 스콜스가 양쪽에서 나를 압박해왔다.
척-
나는 측면으로 패스할 것처럼 발을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파바바밧- !!
“우와아아아아아!!”
해머스 응원단이 있는 동쪽 스탠드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웨스트햄의 오늘 경기 첫 번째 드리블 돌파였다.
맨유 중원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나영웅이 하프라인을 넘어 계속 전진합니다! 과감한 드리블 돌파!]이제부터는 호랑이의 아가리로 들어간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미친 새끼.”
로이 킨이 아일랜드 억양으로 욕을 하며 덤벼들었다.
여기부터는 그의 영역이었기에.
척- 휘릭- !
나는 로이 킨이 덤벼드는 순간 볼을 확 끌어당기며 몸을 회전해서 제쳐버렸다.
“됐어!”
맨유의 주장까지 제치며 분위기를 우리 쪽으로 가져왔다.
고 생각하는 순간.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콰아아아앙- !!
[로이 킨! 바로 따라가서 태클 성공! 나영웅! 쓰러집니다!]나는 로이 킨의 태클에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쓰러졌다.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게리 네빌! 흘러나온 볼을 잡아서 그대로 역습합니다!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 판니스텔루이! 가슴으로 받아서 돌아서며 슈티이이이잉~!!] [고오오오오올~!! 첫 골을 터트립니다!] [맨유 1 대 0 웨스트햄]맨유의 역습은 기계처럼 정확했다.
판니는 토마시를 등지고 있다가 돌아서며 터닝슛을 때려 넣었다.
토마시가 반응했을 때는 이미 골이 골망을 가르고 있었다.
“헤이~ 브루스 리~~ 오늘 왜 그리 힘이 없어? 맨체스터에서 개고기식당을 못 찾은 거야?”
맨유 팬들이 슬슬 시동을 걸었다.
각종 개고기와 중국인, DVD 드립이 들려왔다.
양손으로 눈을 찢는 놈들도 보였다.
[나영웅 선수의 무리한 드리블이 결국 첫 실점의 원인이 됐네요.] [과감함과 무모함은 한 끗 차이입니다. 이런 중요한 경기일수록 신중해야죠.]나는 사이드라인에 서 있는 백발의 앨런 감독을 보았다.
그가 두 손을 흔들며 “괜찮다. 또 드리블 해라.”는 사인을 보냈다.
“감독님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