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328
327화. 장마와 호족 (4)
호족들이 그렇게 묻는 건 당연했다.
인벤토리 안은, 정말 평온한 세상이었다.
“나무도 있어? 어? 이건 사과나무인가?”
강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배가 고프시면 따 드셔도 됩니다. 위험한 건 접근이 불가능하게 막아 놨으니 접근 가능한 과일들은 드셔도 됩니다.”
“저, 정말 먹어도 됩니까.”
“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편하게 계십시오.”
강소가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호족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인벤토리 안의 가득한 오러 덕분이었다.
그때 한 젊은 호족이 옆의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땄다.
아무리 강소가 마음껏 먹고 편하게 있으라고 했지만, 그래도 뭔가 조심스러웠기에 하랑은 그 호족을 말리려 했다.
“아직 먹…….”
하지만 그 호족은 이미 갓 딴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어 버렸다.
아삭-!
우물우물.
“헉!”
사과를 씹던 그 호족의 반응에 다른 호족들이 놀라 그에게 다가왔다.
“왜?”
“무슨 일이냐?”
“혹시 그 사과에 독이라도…….”
“마…….”
“……?”
“맛있어!”
그 호족은 사과가 너무 맛있어서 놀란 것!
“향긋하면서도 달콤한 육즙이 씹을 때마다 입안 가득 차오르는 이 맛은 감동 그 자체예요!”
그 말에 다른 호족들도 사과를 따서 먹기 시작했다.
철창에 갇혀 있는 내내 쫄쫄 굶었으니, 잔뜩 허기져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먹을 건 먹어야 했으니까.
하랑 역시 긴장을 풀고 사과를 따 먹었다.
“……!”
사과를 베어 문 순간, 미각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허기진 데다가 사과가 맛있다 보니 호족들은 정신없이 사과를 따 먹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하랑과 호족들은 근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헉! 지, 집이 있습니다!”
“저건 뭐지? 마, 만년설? 왜 인벤토리에 만년설이!”
“……개울물에 붕어까지 사는데요?”
인벤토리가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이런 인벤토리를 소유하고 있는 강소라는 자의 정체가 대체 뭔지, 하랑과 호족들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 호족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 무사하겠죠?”
그 말에 애써 띄우려 했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무사하기를, 빌어야겠지.”
* * *
그 시각.
각성자 협회 역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혹시 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하며 경계 근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박철곤이 이끄는 1특수부대가 동해의 삼척을 향해 출동했다.
그곳에 있는 국제적인 블랙맨 조직 ‘검은 꼬리’의 한국 지부를 일망타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검은 꼬리에 대해서는 박철곤도 알고 있었다.
저번에 한유 과장과 그 일행이 불에 타 죽을 뻔했던 사건을 주도했던 자들이 바로 검은 꼬리였으니까.
이번 일을 통해 그들을 일망타진한다면, 다른 블랙맨들 역시 검거할 수 있을 터였다.
그때 2특수부대 팀장의 무전이 들렸다.
– 여기는 호랑이 머리. 지금 막 P지점에 도착했다.
오늘의 작전은 무척이나 중요하면서도 큰 작전이었기에 두 개의 특수부대가 모두 동원되었다.
– 여기는 솔개 머리. 5분 뒤 도착 예정이다. 먼저 포위망을 부탁한다.
– 여기는 호랑이 머리. 알겠다.
박철곤이 탄 차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장대비가 오는 와중에도 차가 사고 걱정 없이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건 기술의 발전 덕분이었다.
승차감은 솔직히 구렸지만 말이다.
조수석에 앉아 차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줄기를 보던 박철곤은 문득 박준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비가 왔었지.’
헌터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
버스에 올라탄 박준은 그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앉아도 됩니까?”
“아. 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와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고, 비가 내려 난감한 상황에 박준은 우산을 꺼내며 물었다.
“혹시 헌터 훈련소에 가십니까?”
“아, 네.”
“그럼 같이 쓰고 가시죠. 저도 헌터 훈련소에 가던 참이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비 온다는 예보도 없었는데 우산은 어떻게 준비하신 겁니까?”
“……제 가족들이 날씨에 좀 민감해서요.”
그날부터 그들은 단짝이 되어 힘들 땐 서로 격려했고, 기쁠 땐 같이 기뻐했다.
그랬는데…….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나를 의지했으면 안 되었던 거냐? 이 멍청한 새끼야.’
아무리 박준의 사정이 딱했고, 또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각성자 협회를 배신한 행위는 없던 것이 되는 게 아니었다.
지금 그의 형량에 대해서 논의 중이었다.
의도가 악질이 아니라는 것이 인정되어 그리 오랜 시간 형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박철곤은 안타까웠다.
그리고 자신의 절친을 그리 만든 이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검은 꼬리라…… 오늘 아주 아작을 내 주마.’
끼익-!
그때 차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다.”
그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이미 도착해 있는 2특수부대의 팀장에게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오늘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그들은 서로 악수를 했다.
2특수부대의 팀장의 이름은 원진석.
그는 등 뒤에 기다란 봉을 매달고 있었는데, B급 각성자로 봉술의 달인이기도 했다.
그때 그곳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김명희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명희 과장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그들의 물음에 김명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도 전투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거든요.”
이번 일은 어둠의 족속과 관련된 일이니만큼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야 했다.
김명희는 어둠의 족속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 중 하나인 홀리 웨폰의 사용자였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오늘 누군가 지원이 오기로 했음을 전달받았다. 그게 김명희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녀가 저번 더블 S급 게이트 사태 당시 뛰어난 활약을 했다는 것을 듣기는 했었다.
그렇기에 내심 그녀의 활약이 기대되었다.
보통 뛰어나서는 김해철이 칭찬하지는 않으니까.
한편 그녀는 몸매가 도드라지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만을 위한 신형 전투복으로, 서철의 역작이기도 했다.
허리를 감싼, 허리띠에는 단검 두 개가 매여 있었다.
홀리 웨폰인, 우리엘의 단검이었다.
박철곤과 원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활약을 기대합니다.”
1특수부대와 2특수부대를 반씩 나누어 검은 꼬리 지부를 포위하고 나머지가 진입하기로 했다.
“그럼 가도 되나요?”
김명희의 물음에 두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검은 꼬리의 일망타진을 위한 포위섬멸전이 시작되었다.
* * *
레아는 자신의 연구실에 도착한 싱싱한 실험재료들을 보고 기뻐하고 있었다.
동해안의 삼척.
바다의 마수가 두려워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해안가에 검은 꼬리의 한국 지부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그녀의 연구실이 있는 곳이었다.
어둠의 연구실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밝은 공간의 넓고 긴 테이블.
그 위에 작은 철장들 십여 개가 놓여 있었다.
“최대한 손상 없이 배송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검은 옷의 남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절도 있게 말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레아, 그녀가 바로 검은 꼬리라는 조직을 만든 장본인이었으니까.
즉, 그녀가 검은 꼬리의 총수였다.
“수고했어. 일 처리가 마음에 들어.”
“레아 님의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미스터 송.”
그녀가 호족 아이들이 갇혀 있는 철장들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보고 받은 건 열두 마리였는데 왜 열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 거지?”
“그건…….”
미스터 송이라 불린, 남자 송경학은 식은땀을 흘렸다.
자물쇠가 풀려 한 마리가 도망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다급하게 찾았다.
하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사실을 숨겨 봤자 금방 드러날 일이었으니까.
“도망쳤습니다.”
“흐음? 그래?”
순간 레아는 송경학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짜악-!
송경학은 뺨을 맞고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보이는 건 가냘파 보여도 레아는 어둠의 족속이었다.
결코, 보이는 것이 진짜 힘을 말해 주지 않았다.
“큭!”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레아가 신고 있던 하이힐의 뾰족한 굽이 그의 어깨를 짓밟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고통에 송경학은 다급하게 말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도망가? 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그, 그것이, 아랫것들이 멍청하게…….”
“당장 다시 잡아 와! 얼마나 귀중한 재료인데 그걸 놓쳐? 다시 잡아 오지 못하면 그땐, 너 역시 나의 실험 재료다.”
그 말에 송경학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알겠습니다. 잡아 오겠습니다.”
“나가 봐.”
그는 황급하게 그곳에서 달려 나갔고, 레아는 테이블 위의 철장들을 보았다.
그 안에서 각각 한 명씩 총 열한 마리의 호족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레아는 호족 아이들을 보며 방긋 웃었다.
“호호호. 착하지? 너희는 정말 행운이야. 나 같은 천재의 사랑을 듬뿍 받는 실험 재료가 될 수 있어서 말이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말이라고 하는군.”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레아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누, 누구냐!”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하지만 그의 외모가 아니라 그의 기운이 문제였다.
흉포한 기운에 레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인간 맞아?”
“인간이다.”
“하,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강한 기운을!”
“그게 문제가 되나?”
강소는 피식 웃었다.
“어둠의 족속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
레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방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어둠의 족속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어둠의 족속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으아아악-!”
“막아!”
밖이 소란스러웠다.
“뭐, 뭐지?”
“시작되었군.”
강소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곳에 검은 꼬리의 한국 지부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 자는 다름 아닌 강소, 그였다.
자신이 레아를 상대하는 동안, 그곳에 있는 수많은 블랙맨들을 상대할 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여 그 일은 각성자 협회에 넘겼다.
이곳을 소탕하면서 각성자 협회 역시 얻는 것이 제법 많을 터.
“아무튼, 밖의 일은 밖의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의 대화의 이어 나가자고.”
“모, 목적이 뭐냐?”
강소는 레아 뒤의 철장들을 보았다.
“우선 저 아이들을 구하고, 너에게 물어볼 것도 있고.”
“누, 누구 맘대로 내 소중한 실험 재료들을 가져가?”
“너야말로 누구 맘대로 저 아이들을 네 실험 재료로 삼으려는 거지? 누가 너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지?”
강소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 누구도, 생명을 욕되게 할 권리는 없다.”
강소는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호족 아이들을 구하는 것.
그는 손을 휘둘렀다.
서걱-!
그의 손에 그 단단한 쇠창살이 마치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그리고, 호족 아이들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레아와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면, 갇혀 있는 아이들은 위험했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인벤토리 안에는 호족 어른들이 있었으니, 알아서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켜 줄 터.
물론 레아도 강소가 그들을 구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하앗-!”
그녀는 손에 들린 부채를 들었고, 강소를 향해 거대해진 부채를 내리쳤다.
퍽-!
하지만 강소의 손에 막혔다.
“이잇!”
그녀는 분통을 터트리며 연속해서 공격을 감행했지만, 번번이 막혀 버렸다.
그러는 사이 강소는 모든 호족 아이를 구했다.
그는 레아의 공격을 막았던 왼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대화 좀 할까?”
“누구 마음대로!”
그녀는 벽을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콰앙-!
굉음과 함께 부서진 벽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그 바다로부터 수천의 마수들이 육지로 올라오고 있었다.
레아의 권능은 바로 바다의 마수를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고맙군.”
“응?”
뜬금없는 말에 레아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소는 활짝 웃었다.
“마수가 저렇게 많으면, 마정석 역시 많겠지?”
“…….”
마정석 수확을 위한, 마수 탈곡 시간이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32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