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4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4화
“아, 거래처 분이셨군요.”
“하하. 다행히 이연준 사장님께서 말씀을 해 주셨나 보네요. 기석태라고 합니다.”
“이서준입니다.”
“술은 늘 하던 대로 창고에 넣으면 되겠습니까?”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서준은 기석태를 도우려다 말았다. 능숙하게 술을 옮기는 기석태를 보니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았다.
“역삼아!”
밥을 다 먹은 서우는 그새 역삼이를 괴롭히러(?) 갔고, 박연은 소맥과 찌개의 조합에 감탄하며 연신 술을 들이켰다.
곧 술을 다 옮긴 기석태가 쭈뼛거리며 나타났다. 그의 시선이 찰나지만 찌개에 머무른 걸 본 서준이 말했다.
“밥을 좀 많이 했습니다. 식사 안 하셨으면 드시고 가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한 번쯤은 거절할 법도 한데 단번에 수락하는 기석태.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기를 가져오자마자 기석태는 밥을 크게 퍼서 입에 넣었다.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시선에 기석태가 뻘쭘해했다.
“초면에 죄송합니다…… 이 일이 원체 바쁘고 힘을 쓰는 일이다 보니 끼니 거를 때가 많습니다.”
“괜찮습니다.”
기석태는 찌개를 제외한 반찬들 위주로 밥을 먹었다. 염치없이 밥을 먹는 것도 미안한데, 찌개까지 먹는 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국자에 국물과 건더기를 한 움큼 담아서 그의 앞에 내려놨다.
“드십쇼. 밥만 먹으면 목 매입니다.”
“그래도 될지…….”
“예.”
찌개를 멍하니 바라보던 기석태가 이윽고 찌개 맛을 보더니 감탄했다.
“놀랍네요.”
“그렇습니까?”
“빈말이 아니라 정말요. 너무 맛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뭐라 생각할지 모르시겠지만, 어머니 요리 솜씨가 굉장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해 주신 찌개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들으면 섭섭해하시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정말인 걸 어떡하겠습니까? 하하.”
호쾌한 사람 같았다. 반 한 공기를 더 갖다 주자 기석태는 머뭇거리다가 꾸벅 인사하고 밥을 또 비워 냈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이런 귀한 음식을 공짜로 먹으면 죄 짓는 걸 겁니다.”
기석태가 지갑을 꺼내려 했다. 서준은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대신 다음에 와서 매상이나 올려 주십쇼.”
“……감사합니다. 다음에 지인들이랑 모임 있을 때라도 꼭 와서 매상 올려 드리겠습니다.”
서준은 빙그레 웃었다.
* * *
오늘 서준은 아루트스 알을 이용한 오므라이스를 요리했다.
마계에서 종종 아루트스 알로 계란말이를 해먹던 것에서 착안한 요리였다.
말없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마침내 접시를 싹싹 비워 낸 연준이 말했다.
“형 덕에 요새 진짜 건강해지는 것 같다.”
“그러냐?”
“혼자 서우랑 살 때는 아무래도 홀아비다 보니까 반찬 해먹기도 쉽지 않고 뭐 해먹는 건 더 어려웠거든. 이런 오므라이스는 말할 것도 없었지.”
“자식.”
피식 웃은 서준이 가게를 나섰다. 바깥바람을 쐬기 위함이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귀환한 뒤로 생긴 습관 중 하나였다.
마계와는 다른 맑고 청량한 공기가 그 폐부를 쿡쿡 찌르자 서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때.
달그럭거리며 트럭이 멈춰 섰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며 익숙한 이가 보였다. 기석태였다.
“사장님.”
“배달 가십니까?”
“하하. 예. 먹고 살려면 바쁘게 움직여야지 않겠습니까. 사장님은 왜 나와 계십니까?”
“잠깐 바깥바람 좀 쐬려고 나왔습니다.”
“하긴 12구역이 공기가 좋긴 하죠. 당장 강남 쪽만 내려가 봐도 공기가 탁한 게 딱 느껴지더군요.”
“거긴 안 내려가 봐서 모르겠네요.”
“갈 데는 못 됩니다.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 하하.”
꼬르륵-
미묘한 배꼽시계 소리.
“식사 안 하셨으면 하고 가십쇼.”
“아닙니다. 글피 전에랑 일주일 전에도 얻어먹었는데 오늘 또 얻어먹을 순 없죠. 이만 가 보겠…….”
기석태는 저번 김치찌개 이후로 종종 밥을 얻어먹고 가고는 했었다. 서준은 서두르는 기석태를 붙잡았다.
“힘쓰는 일인데 끼니는 챙겨 드셔야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매번 죄송해서…….”
결국 트럭을 주차한 기석태가 겸연쩍은 모습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이연준과 다른 식구들과도 인사를 나눈 그는 구석진 곳의 테이블에 앉았다.
땀에 절은 작업복 때문인 것 같았다.
“안쪽에 앉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여기가 편합니다.”
서준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메뉴는 아루트스 알로 만든 오므라이스였다.
‘소스는 남은 게 있고.’
야채 먼저 볶아야겠군.
달궈진 팬에는 미리 준비한 양파, 당근, 옥수수, 피망을 넣어 볶다가 밥을 넣었다.
촤아아악-!
볶음밥은 간단하게 완성.
다음은 지단이었다. 오므라이스에 지단이 빠진다는 건, 비빔밥에 고추장이 빠지는 것과 같다.
끄렉세그의 비계로 프라이팬을 달군다. 식용유 대용이지만 그보다 훨씬 낫다.
팬이 달궈질 동안 볼에 아루트스 알을 깨드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히드라의 맹독을 톡-
물론 이대로 끝은 아니다. 체에 거르는 게 중요하다. 달걀물을 체에 거르게 되면 보다 부드럽고 보송한 지단을 만들 수가 있다.
만든 지단에는 볶아 둔 밥을 얹고 잘 말아 주자.
얼핏 노란색 럭비공처럼 보이는 오므라이스 완성이다.
접시에 담아 갖다 주자 기석태가 감탄을 한다.
“오므라이스였습니까?”
“예.”
“오므라이스는 4년 만이군요.”
“그러십니까?”
“계란이 원체 비싸야죠. 후라이는 종종 해먹는데 오므라이스는 해먹기가 좀 부담스럽더군요. 근데 이 비싼 걸…… 괜히 들어와서 폐만 끼치는 것 같습니다.”
“맛있게 드셔 주시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잘 먹겠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함축적인 의미이리라.
서준은 자리를 비켜 줬다.
홀로 테이블에 남은 기석태에게 율동을 추던 서우가 쪼르르 달려왔다.
“아저씨 얼른 드세요!”
“서우구나.”
“우리 큰 아빠가 만든 건데 엄청 맛있어요!”
“그러니?”
“네!”
“잘 먹으마.”
“헤헤헤.”
숟가락을 떠서 밥을 덮고 있는 지단을 쓱 찢어 냈다. 소스가 흘러내리며 고슬고슬하게 잘 익은 볶음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그리고 그 순간.
볶음밥에서 고소한 냄새가 터져 나왔다. 그 냄새에 기석태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꿀꺽!
군침이 돌았다. 얼른 숟가락으로 지단과 밥과 소스를 퍼서 입에 넣었다.
“……!”
눈이 부릅떠지는 맛.
소스의 달달한 맛과 볶음밥의 고소함. 그리고 지단의 담백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이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가 있는 걸까.’
금방 나온 오므라이스였다.
5분 정도 만에 뚝딱 해 온 오므라이스. 근데 맛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요리 저리 가라다.
“서우야. 큰 아빠 좀 도와줄래?”
“네!”
주방에 있던 서준이 서우를 불렀다.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리라.
서우가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기석태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두근두근.
오므라이스를 먹는데 이렇게 긴장되고, 기대된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이성과 첫 데이트를 하는 느낌이랄까.
이번에는 지단과 소스는 빼고 볶음밥만 크게 퍼서 입에 넣어 봤다.
“…….”
문득 어떤 쌀을 쓰는 건지 궁금해졌다. 어떤 쌀을 써야 밥을 볶았을 때 이런 맛이 나는 건지도 궁금했고.
적당한 불맛과 알알이 터지는 밥알의 재미, 그리고 야채에서 올라오는 단내들.
이것들만 해도 가히 최고라 할 만한데 거기에 더해 식감에서 느끼는 재미들까지.
격변 이후 먹는 재미보다는 배를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그에게는 신세계라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지단만 따로 베어 먹어 봤다. 보송보송한 식감이 얼핏 카스테라가 아닌가 착각이 일 정도다.
거기에 소스까지 어우러지면-!
“와.”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기석태는 결국 밥을 싹싹 비워 냈다.
그가 밥을 비우자 서준이 다가와 물을 건넸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맛있게 하다 마다요. 늘 하는 말이지만 사장님 요리는 뭔가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특히 오늘은 먹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줄 알았네요. 너무 맛있어서.”
“살아계셔서 다행이네요.”
“하하하하. 그나저나 매번 얻어먹기만 하고 매상은 결국 못 올려 드리고 있네요. 죄송합니다.”
“죄송은요.”
“한데 사장님.”
“예?”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만 왜 제게 이런 친절을 베푸시는 건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서준은 뺨을 긁적였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다. 친절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친절은 저런 게 친절 아닐까.
살금살금-
끼이익!
냉장고로 조용히 다가가 콜라를 꺼내 먹는 박연을 모른 척해 주는 것.
“글쎄요.”
“각박한 세상이다 보니 이런 친절도 의심부터 하게 되더군요. 아, 오해는 마십시오.”
“걱정 마십쇼. 오해 안 했습니다.”
서준이 방긋 웃자 기석태가 삼만 원을 꺼내 서준의 손에 쥐여주었다.
괜찮다고 말하자 기석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늘 괜찮다고 하시지만 매번 이런 요리를 공짜로 얻어먹고만 가는 것도 죄송스럽습니다. 사장님네도 땅 파서 장사 하시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이런 귀한 요리 먹고 삼만 원만 내면 도둑놈 소리 들어도 할 말 없지만 받아주십쇼.”
기석태는 공짜밥에 꽤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삼만 원에 그 부담을 줄여 주는 것도 괜찮겠지.
“마수걸이가 잘됐네요. 기 사장님 덕에 오늘은 장사가 잘되겠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마음 같아서는 삼만 원이 아니라 삼십만 원을 드려도 모자란데 형편이 형편인지라…… 죄송합니다.”
“그냥 오므라이스였는 걸요. 삼만 원도 충분합니다.”
“맛은 그냥 오므라이스가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오므라이스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는지 참. 아무튼 잘 먹었습니다. 많이 파십쇼!”
서준의 배웅을 뒤로한 채 기석태는 가게를 나왔다.
간판은 분명 낡았다. 하지만 그게 상호와 맞물려 사람을 감상에 젖게 만든다.
저 노래가 나온 게 언제였더라…… 아, 그래. 2009년이었지.
그때는 기석태도 청춘이었다. 갓 대학교에 입학해 새내기 생활을 만끽하던 청춘.
과거의 영광과 청춘은 저 노래 제목과 함께 사라졌지만 이제는 추억과 더불어 가족이란 이름이 남았다.
기석태를 열심히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
배를 든든히 채운 기석태는 열심히 거래처를 돌았다. 오므라이스 덕인지 금방 일을 마치고 초저녁에 집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아빠!”
그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막내가 그를 반긴다.
“누나! 아빠 왔어!”
“오셨어요.”
“밥은 먹었어?”
“아뇨. 이제 먹으려구요.”
“안 먹었다니 다행이다. 딸내미, 오늘은 치킨 어때?”
부모란 그렇다. 혼자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면 괜히 자식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딸 선혜는 치킨이란 말에 반색하다 이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왜? 선혜 너 치킨이면 사족을 못 쓰잖아.”
“그렇긴 한데…… 이번 달에 돈 나갈 곳투성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