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54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54화
* * *
“아, 제가 따라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졸졸졸!
“반주는 원래 자주 하세요?”
“좋은 안줏거리가 있으면 하는 편입니다. 특히 이 굴처럼요. 아, 애선 씨도 한잔하시겠어요?”
“비싼 굴에…… 비싼 술까지 얻어먹게 생겼네요.”
피식 웃은 서준은 잔을 하나 더 가져왔다. 그리고 그녀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워 주었다.
“잘 마실게요.”
이애선이 술을 들이켰다.
이제 서준 자신의 차례였다.
벌컥!
술을 들이켠 서준은 탄성을 터뜨렸다.
석화 구이와 소주의 조합도 압권이었지만 생굴과 소주의 조화도 과연 대단하다.
입안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잔재할 때 들어오는 소주는 흡사 치킨과 무, 피자와 피클처럼 환상의 짝꿍 같았다.
잔에 술을 채운 서준은 다음 목표로 눈을 돌렸다. 다음 목표는 굴전이었다.
꼴깍!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굴전에 침이 꼴딱 넘어간다.
서준은 굴전을 집어 입에 넣었다.
계란옷을 입은 굴전에서는 생굴과는 또 다른 풍미가 느껴졌다.
고소하면서도 뒷끝을 툭 치고 올라오는 바다 내음이 일품이었다.
잔을 한 잔 또 비운 서준은 이번에는 생굴을 초장에 찍었다.
사실 서준은 생굴은 초장에 안 찍어 먹는 편이었다. 레몬즙만 살짝 뿌려 그대로 먹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게에 레몬이 없었기에 초장은 그 대용이었다.
살포시 초장에 찍은 생굴은, 초장이 뚝뚝 떨어지기 전에 입으로 가져갔다.
‘이거지.’
술을 절로 부르는 맛이었다.
생굴을 다 씹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주병에 손이 갔다.
그러다 보니 금세 한 병이 동나 버렸다. 안줏거리가 아직 남은 터라 더 마시고 싶긴 하지만…….
‘참아야지.’
술집 사장이 손님들보다 술을 더 먹어서는 안 되니까.
* * *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 슬금슬금 시장에 나오는 대표적인 수산물들이 있다.
바로 석화와 꼬막이었다.
석화는 어제도 배 터지게 먹었고…… 서준은 이번에 꼬막을 배 터지게 먹어 볼 참으로 꼬막을 한 뭉텅이 사 왔다.
물론 참꼬막으로 말이다.
“형, 어제 애선 씨한테…… 음?”
연준이 가게로 들어오더니 한 뭉텅이의 꼬막을 보고 걸음을 멈춰 세웠다.
“꼬막 맞지?”
“누가 꼬막 귀신 아니랄까 봐 바로 알아맞히는 거 보게.”
어린 시절 서준은 연준에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꼬막을 까 주고는 했었다.
숟가락이나 동전 따위로 힘겹게 깐 꼬막을 어찌나 잘도 받아 먹던지…….
물론 머리가 조금 자란 뒤에는 스스로 까먹었지만 이제는 그 속도가 서준보다 빨라져서, 서준이 한 개 먹을 때 연준은 세 개 먹을 정도였다.
그래서 서준이 붙인 별명이 바로 꼬막 귀신이었다.
“근데 웬 꼬막?”
“너 꼬막이라면 사족을 못 쓰잖아.”
“그렇긴 한데…… 비싸지 않아?”
“황 사장님이 주셨어.”
“황 사장님이? 저번에는 귀한 석화까지 주시더니…….”
석화 두 망의 가격은 220만 원.
팔기 위한 식자재도 아니고 단지 몇 차례 미식을 위해 사 온 것이니 거금임이 분명했다.
이에 대해 추궁할까 봐 서준은 황태수가 줬다고 둘러댔었다.
둘러댈 때 둘러대더라도 대충 해서는 안 된다.
개연성이 필요했다.
“친척이 벌교에서 올려 보냈다나 봐. 좀 많이…… 그래서 좀 나눠 주셨어. 그 대신 꼬막 무침이나 찜 맛있게 해 놓으면 연락 달래. 공술 마시러 오신다고.”
“흐음.”
침음하며 괜히 서준을 곁눈질한 연준이었지만 그는 금방 의심을 접었다.
‘하긴…… 황 사장님이 술을 좋아하긴 하시지. 겨울에는 꼬막에 소주가 생각날 때기도 하고.’
그런 생각과 함께 연준은 꼬막을 살폈다.
“이거 참꼬막 맞지?”
“용케 알아맞혔네.”
“명색이 꼬막 귀신인데 틀리면 안 되지.”
“하긴.”
“이걸로 뭐 하게? 무침? 찜? 아니면…….”
“비빔밥 해 보려고.”
“꼬막 비빔밥?”
“어. 옛날에 할머니가 많이 해 주셨잖아.”
“아, 그랬지 참. 그때 진짜 맛있게 잘 먹었는데…… 막 두 그릇, 세 그릇씩.”
피식 웃은 연준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열한 시 반이네. 애선 씨도 아직 식전일 것 같은데 애선 씨랑 희민이도 부를까? 어제 수고 많이 해 주셨잖아.”
요새 점점 손님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어제만 해도 너무 바빠서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
하필이면 박연도 스페셜한 저녁 예배가 있다며 나가 버린 뒤였고.
이를 대신해 도와준 게 바로 이애선이었다.
“그러자.”
서준은 이애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 끝에 연락이 닿았고 그녀는 흔쾌히 오겠다는 답변을 해 줬다.
“나도 도울까?”
소매를 걷어붙이는 서준을 보고 연준이 다가왔다.
“넌 이따 꼬막 깔 때 도와줘. 너 다른 건 몰라도 꼬막은 엄청 잘 까잖아.”
“오랜만에 해 보는 거라 잘될지 모르겠는데…… 뭐, 알았어.”
서준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꼬막하면 많은 사람들이 꼬막 무침이나 찜을 떠올린다. 하지만 하나씩 빼먹는 무침과 찜은 너무 감질나기 마련이다.
한 숟가락 가득 떠서 먹고 싶을 때는 단연 꼬막 비빔밥이 최고다.
추릅-!
완성된 꼬막 비빔밥을 상상하자 절로 군침이 돌았다.
꼬막을 볼에 옮겨 담은 서준은 싱크대로 향했다.
촤락! 촤라락!
꼬막은 흐르는 물에 박박 문대 씻어 주는 게 중요하다. 물론 씻기만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꼬막 비빔밥은 인내를 요하는 음식이다.
소금물에 담가 최소 한 시간은 넘도록 해감을 해 줘야 하는 탓이었다.
한 시간이란 시간이 붕- 떠 버리는 셈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비빔밥에 들어갈 야채를 다듬으면 되니까.
비빔밥에 들어갈 야채는 어떤 거라도 좋다.
다만 서준이 준비한 건, 양파와 세발나물, 그리고 어린잎 채소였다.
할머니가 늘 이렇게 해 주셨던 기억 때문이었다.
타타타탓!
양파는 최대한 얇게 채 썰어 주자.
먹을 때 불편하지 않도록.
그리고 세발나물과 어린잎 채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찬물에 담가 준다. 아삭한 식감을 위해서다.
찬물에서 건져 낸 뒤에는 물기를 제거한다.
야채에 물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가는 꼬막의 맛을 해칠 수 있으니 최대한 제거해 주자.
자, 이제 대망의 양념장이다.
양념장은 취향껏 만들어 먹으면 된다. 다만 서준은 칼칼한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볼에 고춧가루를 두 수저 넣어 주고, 다진 마늘은 한 수저만 넣는다.
그리고 설탕을 또 한 수저, 진간장을 두 수저 부어 마구마구 섞어 준다.
이대로도 양념장으로는 손색이 없지만, 안에 잘게 썬 부추나 대파, 청양고추 따위를 넣어 주면 금상첨화다.
그렇게 잠시 후.
해감이 다 된 꼬막을 냄비에 옮겨 담았다.
꼬막 비빔밥의 메인은 단연 꼬막이다. 다른 때는 몰라도 삶을 때만큼은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먼저 냄비에 물을 끓인다.
보글보글!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찬물 1컵을 사정없이 때려 붓자.
씩씩 김을 뿜던 끓는 물이 금방 잠잠해질 거다.
이때다.
딱 이때 꼬막을 넣는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냄비 앞에 서서 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여기서 팁은 물이 다시 끓기 시작할 때 수저를 이용해 꼬막을 시계 방향으로 돌려주는 일이다.
이러면 꼬막 살이 한쪽에 달라붙어서 손질할 때 훨씬 편리하다.
쩍!
쩌억-!
꼬막을 너무 오래 삶으면 고무 씹는 식감만 느껴질지도 몰랐다. 꼬막이 입을 수줍게 벌렸을 때, 건져 준다.
자, 이제 남은 일은 비빔밥에 들어갈 꼬막을 까는 일이었다.
“연준아!”
* * *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이애선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음…… 냄새 좋네요.”
“아직 꼬막 삶기밖에 안 했는걸요, 뭘.”
“근데 연준 씨가 안 보이시네요? 어디 나가셨나?”
이애선의 질문에 주방 안에서 머리 하나가 보름달처럼 불쑥 떠올랐다.
“저 여기 있습니다!”
“주방에 계셨구나.”
인사를 나눈 연준은 다시금 꼬막 까는 일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희민이가 서준에게 달려와 안겼다.
“시타로!”
“희민이도 왔어?”
“응!”
“어제 잠은 잘 잤구?”
“시타로가 나쁜 꿈 안 꾸게 해 줘서 잘 잤어!”
“다행이네.”
“서우는?”
어른들처럼 때 묻지 않은 영혼의 어린아이들은 금세 친해지고는 한다.
서우와 희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서먹서먹했던 것도 잠시.
둘은 금방 친해져서 늦은 밤까지 역삼이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었다.
“어쩌지? 서우는 어린이집에 갔는데.”
아쉬운지 희민이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런 희민이의 눈에 역삼이가 들어왔다.
“역삼아!”
캉!
귀찮아!
희민이가 역삼이에게 얼굴을 부비부비 비볐다. 역삼이는 귀찮은 태가 역력했다.
캉캉!
“희민이가 와서 좋다구?”
캉캉! 캉캉캉!
아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나도 좋아! 헤헤.”
마구 얼굴을 부비는 희민이.
그에 이애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역삼이가 귀찮아하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숙소는 어떠셨어요?”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이애선은 어제 모텔에 묵었다.
“형! 다 깠어!”
“앉아 계세요. 금방 내어 올게요.”
이애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의기양양한 표정의 연준이 서 있었다.
“어때?”
“솜씨 안 죽었나 보네. 이걸 벌써 다 까고.”
“처음에는 좀 헤맸는데 하다 보니까 옛날 실력 나오더라고. 폼 안 죽었나 봐.”
“수고했다.”
“따로 도울 일은?”
“바로 먹을 수 있게 수저 세팅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오케이.”
* * *
‘맛있겠군.’
쓱싹쓱싹 잘 비벼진 꼬막 비빔밥에 서준은 군침을 삼켰다.
너무나 먹음직스럽다.
경건한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비빔밥을 펐다.
그리고 입에 가져가 넣자…….
‘맛있다!’
윤기가 좔좔 흐르던 밥알이 매끄럽게 식도를 타고 넘어갔고 홀로 입안에 남은 꼬막은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밥알을 뒤따라 식도로 들어갔다.
알알이 터지는 꼬막의 식감과 즙, 그리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남아 있는 채소들.
전율이 일 만큼 맛있었다.
그건 서준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어머.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팔아도 되겠어요.”
“시타로, 나도! 나도 맛있어!”
“와…… 대박. 형 이거 오히려 할머니가 해 주셨던 것보다 맛있는데?”
호평 일색이었다.
그에 서준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애선의 말처럼 진짜 팔아도 될 것 같았다.
‘단가만 맞으면 팔겠는데…….’
몬스터는 채널과 게이트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격변 초기, 채널과 게이트를 통해 소환된 몬스터들이 그 밖으로 나가 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제각각 무리를 이루고 저희들끼리 새끼를 낳아 가며 빠르게 자연에 동화되어 갔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혼란이 수습되자마자 정부가 대대적인 몬스터 박멸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육지에 제한되는 작업이었다.
바다와 갯벌로 퍼져 나간 몬스터들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박멸 시도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문제는 시도가 늘 실패로 돌아간다는 점이었다.
수백 번의 실패 끝에 정부는 박물관의 케이스처럼 몬스터가 침투한 해안 지역은 포기하고 몬스터 청정 지역인 곳만 집중 보호했다.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세계 각국이 비슷한 정책을 세웠다.
그러다 보니 해산물 가격은 폭등해 버렸다.
꼬막도 마찬가지였다. 석화처럼 비싼 꼬막은 술안주로 팔기에는 단가가 안 맞았다.
‘그것만 있으면 딱일 텐데…….’
서준은 그것을 주로 불꼬막이란 이름으로 자주 불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