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70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70화
* * *
냉면에는 계란이 빠질 수가 없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계란을 넣는다.
소금도 한 꼬집 넣어 주면 껍질을 벗기기 훨씬 쉬워지니 한 꼬집 정도 넣어 주자.
아니, 두 꼬집 넣어 주자.
보글보글-!
서준은 다른 화구의 불을 켰다. 냉면 사리를 삶을 차례였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냉면 사리를 넣었다.
냉면 사리는 특히 오래 삶으면 삶을수록 면이 질겨지기 때문에 최대한 단시간 내에 삶아 주는 게 좋다.
베스트는 면이 물속에서 약간 풀어졌다 싶을 무렵, 이렇게 빨리 건져도 되나 싶을 그때다.
그때 꺼내서 바로 찬물에 식혀 준다. 기성품이라도 이런 식으로 면을 삶아 준다면 탱탱한 식감을 즐길 수가 있다.
서준은 면을 채반에 담아 물기를 털어 냈다. 그리고 대접에 면을 돌돌 말아 담았다.
타타타탓!
고명으로는 역시 채 썬 오이가 좋겠지.
이제 계란도 건지자.
계란을 반으로 잘라 면 위에 오이와 함께 살포시 올려 준다. 양념장도 빠지면 안 된다.
빨간 양념장까지 올라가자 비주얼은 제법 그럴싸했다. 여기에 얼음까지 동동 띄워 준다면…….
쓰릅!
침이 절로 고이는 비빔냉면 완성이다.
“맛 좀 볼까.”
젓가락으로 면을 마구 비벼 주던 그때.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고형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식사 중이셨습니까?”
“네. 막 들려던 참이었습니다.”
“이거, 제가 괜히 식사 시간을 방해했지 말입니다.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서준은 왠지 고형건의 딱딱한 말투가 그의 인상과 제법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저런 딱딱한 말투를 쓴다면 오히려 어색하기만 할 텐데 고형건에게는 딱 어울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준이 말했다.
“아닙니다. 식사하러 오신 건가요?”
“생각할 게 있어서 술 좀 마시러 온 거였습니다.”
생각할 게 있으면 보통 커피를 마시지 않나?
뭐,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럼 앉으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후딱 먹고 바로 해 드릴게요. 뭘로 드릴까요?”
“흐음…….”
형건이 문득 냉면을 바라봤다.
꿀꺽!
그러고 보니 올 여름은 냉면을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여름에는 시원한 냉면이 딱인데.
왜, 노래도 있잖나.
냉면, 냉면, 냉면.
가슴이 너무 시려.
냉면, 냉면, 냉면.
“널 보면 너무나…….”
저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형건에게 서준이 말했다.
“드려요?”
“예?”
“아직 비비기만 하고 입도 안 댔습니다.”
“아하하…… 하지만 사장님 걸 뺏어 먹을 순 없지 말입니다.”
“세 봉지 더 남아서 괜찮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술은 뭘로 드릴까요?”
“소주로 부탁드립니다.”
서준은 입맛을 다시며 냉면과 함께 소주를 형건에게 갖다줬다.
“인스턴트 냉면입니까?”
“네. 마트에서 사 온 겁니다.”
“면이 굉장히 찰져 보이지 말입니다.”
“비빔냉면 좋아하시나 봐요.”
“예? 아…… 예. 물냉면은 밍밍해서 안 먹습니다.”
“입맛이 같으시네요.”
“사장님도 그러십니까?”
“네.”
서준은 생긋 웃었다.
같은 비냉파를 만났다.
“그럼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주세요.”
서준은 다시 본인의 냉면을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고, 형건은 멀뚱멀뚱 냉면을 바라보다가 소주 뚜껑부터 땄다.
아니, 따려고 할 때였다.
“미세한 최첨단 센서 아니시오?”
마침 드라마가 끝났는지 박연이 마주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이리 주시오. 내 따라 드리겠소.”
“아?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소. 드라마를 보니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다더군.”
어떤……?”
“자작을 하게 되면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은 몇 년 동안 연인이 안 생긴다는 말.”
“아…… 그거 말입니까.”
자작을 금기시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도시 전설이었다.
아무래도 드라마 덕후께서 드라마에서 보고 배운 것 같았다.
형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술병을 건넸다. 그러고는 윗사람에게 술을 받는 것처럼 조심히 술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고개를 돌려 한입에 털어 넣었다.
“크!”
소주의 씁쓰레한 맛이 입안 전체로 퍼져 나가자 형건은 서둘러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일단 계란부터 입에 넣었다.
다대기가 살짝 묻은 계란은 매콤하면서도 담백했다. 그다음은 잘 비빈 면이다.
후루룩-!
면을 흡입하자 강한 양념 맛 덕에 소주의 씁쓰레한 맛이 완전히 가셨다.
“맛있소?”
“예. 맛있네요.”
“흠. 한 잔 더 받으시오.”
“감사함다.”
그사이 서준은 냉면을 채반에 건지고 있었다.
‘고명으로는 무 초절임 대신 쌈무도 좀 넣어 줄까.’
그러고 보니 쌈무가 있었다.
오이와 쌈무도 채 썰어서 넣어 줬다. 형건에게 준 것보다 훨씬 먹음직스러운 냉면이 완성된 그때.
딸랑!
오늘 무슨 날인가?
서준은 생각했다.
이번에는 박 경위가 들어온 것이다.
웬일로 오늘 박 경위는 혼자였다.
“사장님, 혹시 식사됩니까?”
“네. 뭘로 드릴까요?”
“저번에 먹었던 볶음밥…….”
박 경위가 문득 서준의 냉면을 쳐다봤다.
꿀꺽.
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려요?”
“아무래도 사장님이 드시려고 만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하하,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테이블로 가서 앉으려던 박진후가 멈칫했다. 뜻밖의 손님도 와 있었던 탓이다.
“안녕하십니까?”
“어, 형건 동생도 와 있었네.”
“예. 반주 좀 할까 해서.”
“그때는 집에 잘 들어갔고?”
형건이 피식 하고 웃었다.
“당연하지 말입니다. 박 경위님은 잘 들어가셨습니까? 눈이 좀 많이 풀려 계시던데.”
“눈이 풀리긴 무슨…… 집까지 멀쩡히 걸어 들어갔지.”
사실은 집 앞에서 정신줄을 놔 버린 박 경위는 멀쩡한 집을 놔두고 엘리베이터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덕순이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은 건 덤이었다.
“크흠. 시현 동생은 안 보이네?”
“아, 시현이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저는 잠깐 바깥일 보다가 들른 거고 말입니다.”
“너나 시현 동생이나 어디서 사고 치고 다니는 건 아니지?”
“당연하지 말입니다.”
박진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12구역에서 근무하며 황태수파가 사고 친 걸 본 적은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친 사고라면 12구역을 통일해 버렸던 일인데, 그건 사고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47파와 이태원파가 지리멸렬하며 어부지리로 접수하게 된 케이스니 말이다.
세력이 크게 확장됐음에도 황태수파는 장학 사업을 벌이는 등, 이미지 쇄신에 몰두하고 있었다.
“같이 먹지.”
박진후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박연은 이미 또 다른 드라마를 시청하러 간 지 오래였다.
“맛있게 드세요.”
서준이 입맛을 다시며 냉면 그릇을 내려놓자 박진후가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맛있게 드셔 주세요.”
서준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남은 냉면은 한 봉지.
이번에는 부디 불청객이 오지 않기를…….
* * *
“그래서 뭐 들은 건 없어?”
박진후의 말에 형건은 뜨끔했다.
“예? 들은 거요?”
“어. 13구역 묻지 마 총격 건.”
“그게…….”
말을 얼버무리자 박진후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됐어. 13구역에서 일어난 일인 데다 형건 동생이 알고 있더래도 말해 주기 난처하겠지.”
“…….”
“아, 내가 먹는 거 방해했지? 마저 먹어.”
형건은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놨다.
“박 경위님은 어쩌다 경찰이 되셨습니까?”
“나?”
“예. 궁금해서요.”
“그러는 형건 동생은 어쩌다 그쪽 세계에 발 담갔는데?”
“저는…….”
“말하기 껄끄러우면 안 해도 되고.”
쓰게 웃은 형건은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벌컥 들이켜며 말했다.
“껄끄럽다기보다는 쪽팔려서요.”
“쪽팔려?”
“제 밑으로 동생이 둘입니다. 두 녀석 모두 저랑 다르게 똑똑한 녀석들이죠. 그리고 둘째 놈이 서울대에 떡하니 붙었지 뭡니까.”
“흐음.”
“따로 도와줄 사람은 없고…… 배운 것도 없는데 가진 거라곤 힘쓰는 것 하나니 선수 생활 접고 뛰어든 거죠. 자, 이제 박 경위님 차례.”
박진후는 주방에 있는 서준을 힐끔거렸다. 일전에 서준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놈을 내 손으로 잡고 싶었지. 경찰은 그래서 됐어. 별다른 건 없고.”
“그 범인 새끼는 잡으셨습니까?”
이번에는 박진후가 쓰게 웃었다.
“아니, 못 잡았어. 근데 이번에도 못 잡게 생겼네. 젠장.”
“…….”
“아, 미안. 술맛 떨어졌겠다.”
“사실, 들은 게 있긴 합니다.”
“뭐? 정말?”
“예. 다만…….”
형건이 말꼬리를 흐리자 박진후는 뜻을 알아챈 건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디 가서 누가 제보한 건지 절대 안 흘릴게.”
그에 형건은 오락실 동생에게 들었던 주유소파 일을 말해 줬다. 그리고 설명을 들은 박진후는 깊게 한숨을 토해 내며 이를 갈았다.
“그 새끼들이었구먼. 개새끼들.”
“어떻게, 방법이 있겠습니까? 제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나는 게 없더라고요. 어디 있는지는 대강 알 것도 같긴 하지만…….”
“그게 어딘데?”
“아마 박재석이 집 금고일 겁니다.”
“금고? 그건 너무 허술하지 않나? 증거물이 될지도 모르는 걸 누가 자기 집 금고에 숨겨 둬?”
“본인 부하들도 못 믿어서 신입들 받을 때는 녹화 동영상을 찍어 두는 놈입니다. 사무실에 둘 리는 없고 어디 마늘밭에 묻어 둘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남은 건 집밖에 없죠.”
“그렇긴 하겠네. 문제는 녹화된 동영상을 어떻게 찾느냐가 관건인데…….”
고민하던 그때.
박진후의 머릿속을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주유소파 애들, 최근에 뭐 구린 일 한 거 있나?”
“그 자식들 구린 일 한 게 어디 한두 번이겠습니까? 일단 마약은 기본으로 깔고 가죠.”
“마약. 마약이라…….”
“47파가 사라진 뒤로는 규모도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거면 되겠네.”
“어떻게 하시게요?”
“형건 동생아. 너 그거 아냐?”
“예?”
“압수수색 중 얻은 별건에 대한 범죄 혐의 증거물도 증거물로 인정되는 거.”
물론 거기에는 사후 영장을 추가로 받아야 된다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잡는다. 무조건!’
새삼 각오를 다지는 박진후를 서준이 응원했다.
부디 이번에는 보란 듯 잡기를.
* * *
“한국 측의 움직임은 어때?”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버티고 있다는 건가…….”
“고문까지는 가하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고문을 해 봤자 자백하지 않는다는 걸 놈들도 아는 거지.”
“예. 하지만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다면…….”
그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제기랄. 담배 있나?”
욕지거리와 함께 류창이 물었다. 그러자 부하 직원이 얼른 담배를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바이샤(白沙)로군…… 향이 담백한 놈이지.”
달칵-
직원이 불을 붙여 줬다.
후우-!
연기가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떡…… 할까요?”
류창은 침음했다.
설마 구이쉬안과 그의 팀원들이 전멸할 줄은 몰랐다. 한 명만 당했다면 이해라도 하겠건만 전멸이었다.
그리고 작전 과정에서 둘은 생포까지 됐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나마 한국 측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일 뿐.
고심에 잠겨 있던 류창이 입을 연 것은 담배가 모두 타들어 갔을 때였다.
“김철준에 대한 데이터를 뽑은 분석관이 누구였지?”
“이셴(怡賢)이었습니다.”
“노동교화소로 보내 버리도록.”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셴은 제법 유능한 분석관입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충분히 기대에 부응할…….”
“오성홍기 아래 유능한 분석관은 필요 없네.”
“…….”
“완벽한 분석관이 필요하지.”
“……알겠습니다.”
직원이 나가자 류창은 생각에 잠겼다.
‘김철준이라…….’
구이쉬안 팀을 전멸시킨 김철준.
이대로 둘 수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