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7)
17화 낙산원 (2)
“낙산원을 내어 달라는 말인가?”
백호대주 조자건의 목소리는 말라 있었다.
“내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서숙에서 매입하고자 합니다.”
조자건이 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게 그 소리 아닌가?”
“대주님, 서숙에서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자 합니다.”
“합당한 대가?”
강하원은 최대한 돈을 아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작은 금액을 제시하면 거래가 틀어질 수 있었다.
‘천 냥 아래로 매입하면 좋겠지만, 여기서는 다 쓰는 것이 옳다.’
그는 처음부터 크게 금액을 불렀다.
“은자 일천 냥이면 어떻겠습니까?”
조자건은 강하원의 제안을 듣곤 콧방귀를 뀌었다.
“강 총관, 은자로 백호대의 장원을 사려 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쉽게 보였나?”
“대주님.”
조자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하네.”
강하원은 금액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뒤에서 손을 쓴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낙산원을 내어 줄 생각이 없었던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일이 쉽지 않겠구나.’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대주님, 공자님께서는 낙산원을 간곡히 원하고 계십니다. 부디 명가의 피를 이은 그분의 뜻을 들어주시옵소서.”
조자건은 명운이 교주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간곡히 원한다고? 그렇다면 어째서 공자가 직접 오지 않은 것인가?”
강하원은 그의 물음에 바로 답을 했다.
“공자께서는 아직 어리시고, 이런 큰 거래를 해 본 적이 없어 제가 대신 오게 되었습니다.”
“강 총관.”
“예, 대주님.”
“돌아가게.”
강하원은 고개를 숙인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대주님, 낙산원을 넘겨주시지 못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이유?”
“그렇습니다.”
조자건이 팔걸이에 오른손을 올리며 말했다.
“낙산원은 우리 백호대가 운영하는 제련소에 철광석을 공급하는 곳이다. 그런 곳을 어찌 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
강하원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서숙에서 낙산원을 매입한다고 해도 철광석은 전과 같이 공급될 것입니다. 무엇이 걱정이란 말씀입니까?”
“전과 같이? 돈도 안 받고 말인가?”
조자건의 한마디는 강하원의 약점을 찔렀다.
‘돈을 안 받고 철광석을 공급한다면, 낙산원을 매입할 이유가 사라진다.’
농지가 없는 낙산원에서 그나마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그것은 철광석을 채굴할 수 있는 광산이었다.
평소라면 여기서 물러났을 그였다.
하지만 그는 한 번 더 제안을 해 보기로 했다.
“시가의 절반에 드리겠습니다.”
강하원은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조자건은 그의 마지막 제안마저도 거부했다.
“불가하네.”
강하원은 생각했다.
거래는 여기서 끝이라고.
‘낙산원에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상은 우리도 불가하다.’
그는 힘없는 얼굴로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
강하원이 길게 한숨을 내쉬자 뒤를 따르던 시종이 물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신 겁니까?”
그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공자님을 뵐 낯이 없구나.”
강하원은 서숙으로 돌아가 명운에게 낙산원 확보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명운은 놀라거나 꾸짖는 대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조 대주가 직접 거부했다. 이 말인가?”
“그러합니다.”
명운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작은 장원 하나에 천 냥이면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거절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철광석 공급이었습니다.”
“백호대가 쓸 철광석 말인가?”
“매입 이후 반값에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명운이 턱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반값도 거절했다. 흠, 이번에도 내가 갈 수밖에 없을 것 같군.”
그가 직접 나서겠다고 했지만, 강하원은 부정적이었다.
“공자님께서 직접 가신다고 해도 그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명운이 말했다.
“강 총관,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나? 아쉬운 쪽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그 정도로 중요한 곳입니까?”
명운은 생각했다.
‘물론 중요한 곳이지.’
그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낙산원이 반드시 필요했다.
명운은 백호대로 가기 전 다섯 호위를 불렀다.
“오늘은 백호대로 갈 것이다. 다들 준비를 하라.”
이것은 조광을 비롯한 다섯 호위에게 내려진 첫 번째 임무였다.
다섯 호위는 허리를 굽히며 두 손을 모았다.
“지금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알지 못했다.
* * *
백호대주 조자건은 명운이 왔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본인이 왔다고?”
“그렇습니다.”
“그 작은 장원을 어지간히 가지고 싶은 모양이군.”
“돌려보낼까요?”
조자건이 대답을 망설였을 때였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청년이 입을 열었다.
“운이 뵙기를 청하니, 그렇게 하시죠.”
청년은 이마가 넓고 서글서글했다.
“공자님, 그래도 되겠습니까?”
조자건이 되묻고 있는 청년의 이름은 명원.
그는 천마신교 교주 명증의 셋째 아들이었다.
“전 뒤에서 듣기로 하죠.”
명운과 마주치는 대신 대전 뒤에서 대화를 듣겠다는 말이었다.
“공자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어쩔 수가 없군요.”
조자건이 수하에게 말했다.
“칠공자를 안으로 들여라.”
수하가 나가자 삼공자 명원은 대전 뒤쪽의 별실로 자리를 옮겼다.
“괜찮으신 겁니까?”
명원에게 묻는 이는 그의 심복인 채주라는 자였다.
“괜찮지 않으면?”
“요즘 칠공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명원이 웃었다.
“다섯 호위 말인가?”
“공자님께서도 들으셨습니까?”
“들었지. 각 대의 문제아들을 영입했다고 말일세. 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
채주가 덧붙이듯 말했다.
“그뿐이 아닙니다.”
“현무대와 접촉했다는 것 말인가?”
“현무대를 넘어 귀주석가와 닿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명운이 편히 앉으며 말을 받았다.
“귀주석가라. 자네는 준을 너무 쉽게 보는군.”
그는 시기심이 많은 명준이 귀주석가와 명운을 연결해 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준은 운에게 뭔가를 나눠 줄 만한 녀석이 아니다.’
물론 그도 명운에게 뭔가를 내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은 앞의 두 사람을 쫓아가기도 벅차다.’
그의 두 형 명천과 명각은 소교주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칠공자가 들어옵니다.”
별실 밖에 서 있던 백호대원은 말을 마친 뒤 발을 내렸다.
드르륵.
이로써 별실 밖의 사람은 별실 안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운이 어떤 생각으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한번 들어 보도록 할까?’
명원은 막냇동생에게 호감은 없었지만, 호기심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백호대주 조자건이었다.
“대주님을 뵙습니다.”
인사하는 쪽은 당연히 명운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조자건은 명운에게 예를 차리며 그를 오른쪽에 앉게 했다.
“아침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자건이 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낙산원 말씀이시군요.”
“강 총관이 빈손으로 돌아왔더군요.”
“하하하, 그것은 오해가 좀 있었습니다.”
조자건은 겉으로만 웃고 있었다. 그는 명운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오해라니요?”
조자건이 대답했다.
“낙산원은 우리 백호대의 중요한 거점입니다. 그곳을 잃게 되면 백호대는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이는 과장된 이야기였다.
‘작은 장원 하나가 백호대의 팔이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취급이군.’
명운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로 그렇게 중요한 곳입니까?”
조자건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백호대는 낙산원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으로 만든 무기를 사용합니다. 다른 이가 낙산원을 소유하게 되면 백호대는 어디에서 무기를 만들 철광석을 구한단 말입니까? 이번 일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명운은 여전히 순진한 얼굴로 그를 대했다.
“아, 그런 문제가 있군요.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요?”
조자건이 되물었다.
“어떤 것 말입니까?”
“제가 낙산원을 소유한다고 해도 철광석은 그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조자건은 입술을 실룩거렸다.
‘강하원이 했던 이야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군. 역시 배후는 강하원이었던 것인가?’
그가 두 손을 모으며 물었다.
“시가에 반값으로 철광석을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명운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반값이라니요. 백호대에 어찌 돈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대가 없이 그냥 드리겠습니다.”
그의 되물음에 아래서 듣고 있던 강하원이 크게 놀랐다.
“공자님!”
그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자 명운은 오른손을 손바닥이 보이도록 세웠다.
“강 총관, 내가 대주님과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말을 삼가게.”
열두 살 소년이 위엄을 갖추고자 했지만, 조자건에게는 우습게 보일 뿐이었다.
‘허허허, 어린 꼬마가 세상 물정 모르고 지껄이니, 총관으로서는 속이 타겠지.’
그는 강하원을 가여운 자라 생각했다.
“공자님께서 아무 대가 없이 철광석을 보내 주신다면 사람들이 저희 백호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명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어떻게 보다니요? 백호대는 우리 신교를 위해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 서숙에서 백호대를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철광석값을 받지 않겠다고 호언했다.
“공자님…….”
조자건이 낙산원을 팔지 않으려는 것은 돈이나 철광석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명운이 백호대 근처에 터를 잡는 것 자체가 싫었다.
명운은 그가 대답을 망설이자 재촉하듯 물었다.
“대주님, 안 되는 겁니까?”
조자건이 한숨을 내쉰 뒤 대답했다.
“공자님, 백호대는 그래도 사람이 오백에 땅이 백 경, 전각이 서른두 채에 이릅니다. 공자님께 저희 백호대가 지원받는 모습은 조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은 그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하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조자건은 열두 살 소년쯤은 쉽게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일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명운이 쓸 수 있는 패가 없다고 생각했다.
‘떼를 부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나이지.’
그러나 명운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입에 발린 말에 물러날 것이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
“받아들일 수 없군요.”
“공자님.”
명운이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내기로 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자건이 눈썹을 세웠다.
“내기 말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호대원 다섯과 제 호위무사 다섯이 겨뤄 세 번을 먼저 이기는 쪽이 제 뜻을 이루게 되는 내기입니다.”
조자건은 속으로 피식했다.
‘호위무사라고? 저 문제아들을 말하는 건가?’
그는 직접 팽헌충을 내어준 적이 있기 때문에 명운이 어떠한 이들을 모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뜻을 이룬다면 어떤 말씀이신지?”
명운이 오른손 식지를 접으며 대답했다.
“제가 이기면 낙산원은 서숙 소유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대주님께서 이기신다면 순순히 물러가겠습니다.”
이겨도 본전.
지면 대망신에 낙산원까지 빼앗기는 내기.
명원은 명운의 제안을 듣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터무니없는 내기지만, 다섯 바보의 실력을 보는 대가라면…… 받아들일 수도 있는 내기다.’
내기를 받아들이는 것과 별개로 명운의 승산은 높지 않았다.
백호대는 사신대라 불리는 정예 부대 중 하나였다.
그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은 같은 사신대인 주작대, 청룡대, 현무대밖에 없었다.
조자건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백호대와 대결이라고? 어리석구나. 백 번을 싸운다고 해도 백 번 모두 우리가 이길 것이다.’
그는 천마신교 무인답게 무(武)로 끝을 보는 것을 선호했다.
“공자님, 내기에서 지면 깨끗이 물러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명운이 두 소매를 털며 말했다.
“승부에 승복하지 않는 자는 남자가 아니라 했습니다.”
조자건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내기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내기를 받아들이자 조광을 비롯한 다섯 호위무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우리가 백호대 정예와 싸운다고?’
‘무리야. 상대가 되질 않는다고.’
가장 얼굴이 어두운 것은 백호대 출신 팽헌충이었다.
‘백호대 정예의 실력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이 승부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
그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