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07
107
第二十二章 망사(忘死) (2)
“마흔둘입니다.”
최종 보고가 들어왔다.
“음!”
녹천주는 가는 신음을 흘렸다.
‘너무 많이 당했어!’
화가 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불현듯 울화가 치밀고 눈가에 핏기가 맺힌다.
혈루마옥…… 녹천 사람들 중에서 마흔두 명이나 절명했다.
별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간단하게…… 해질녘이면 끝날 것이라고 여겼는데.
마흔두 명은 서른일곱 명의 생명과 교환되었다.
녹천오수 가운데 세 명이 죽었고, 녹천삼사(綠天三師) 중에서도 한 명이 절명했다.
녹천삼사는 녹천주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는 초고수다.
그들에게 진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해본 적이 없지만, 자신과 손속을 맞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들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다.
녹천삼사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은 녹천 사람은 없다.
헌데 그토록 강한 녹천삼사 중에 한 명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에게 절명했다.
“끝이냐?”
녹천주가 되물었다.
이제야 정말 적벽검문이 멸문한 것인가? 완전히? 또 남아 있는 사람은 없나?
“끝입니다.”
녹천주는 보고를 믿을 수 없어서 다시 물었다.
“빈 곳은? 뒤지지 않은 곳은 없더냐?”
“없습니다.”
녹천주는 그제야 정말로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웃으면서 시작했다가…… 큰 코 다쳤다. 적벽검문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사박! 사박!
누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적벽검문을 향해 걸어갔다.
녹천주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미 싸움은 끝났다.
적벽검문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다.
‘이곳이 적벽검문…….’
누미는 벌써 폐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적벽검문을 무덤덤하게 쳐다봤다.
중원 무인치고 적벽검문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무인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부도 그랬고, 그녀도 그랬다. 적벽검문 문도가 되는 순간, 최강 문파의 일원이 되었다는 자부심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설렜다.
그런데 무너졌다. 반나절 만에.
혈루마옥은 겨우 마흔두 명의 희생만 치렀을 뿐이다. 겨우 마흔 두 명으로 적벽검문의 초고수 서른일곱 명을 죽였다. 적벽검문주를 포함해서.
누가 적벽검문주일까?
그녀는 적벽검문을 걸어 들어가면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봤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퇴색한 무복을 입었다.
물자가 풍부하지 못한 곳에서 생활한 탓에 옷이 해질 때까지 알뜰하게 입는다. 그렇다고 개방도처럼 기워 입는 것은 아니고…… 색깔을 바랬지만 깨끗하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한눈에 알 수 있다.
적벽검문 사람들은 어떤가?
적벽검문 사람들은 가지각색이다. 옷을 기워 입은 사람도 있고, 새하얀 무복을 입은 사람도 있다. 모두 피가 잔뜩 묻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지만 누가 적벽검문주인지, 누가 윗사람들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모두들 나이가 많다.
젊은 사람이라고 해도 마흔이 넘은 중년인들이다.
젊은 사람, 아이…… 수발을 드는 시동조차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에 예순 넘은 사람들은 무척 많다. 죽은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예순이 넘어 보인다.
이곳은 할아버지들만 있는 문파인가.
젊은 사람은 없고, 나이 든 사람만 존재하는 곳인가.
‘검왕! 검왕이 살았어!’
그녀는 퍼뜩 검왕에게로 생각이 돌려졌다.
검왕이 살았다. 그녀의 사부였던 누강도 살아 있다. 즉,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검왕과 누강은 아주 특수한 경우다. 검왕으로 인해서 적벽검문이 봉문을 선포했으니…… 그가 적벽검문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사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곳에 없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경우가 다르다. 적벽검문도이고, 성을 누씨로 바꾸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사문이 봉문하는 시점에 당연히 사문으로 돌아와 있어야 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적벽검문은 멸문했다.
그러나 누미는 ‘봉문’이라는 말처럼 ‘멸문’이라는 말도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적벽검문은 봉문했다. 그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봉문한 적벽검문이 여전히 강력한 숨을 내뿜고 있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사람이 없다.
봉문한 적벽검문이 여전히 실세로 움직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적벽검문의 멸문도 진정한 멸문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꼭 누군가가 살아 있는 것 같아.’
문주도 살아 있을 것 같다. 적벽검문이 양성한 후기지수들도 어디론가 빼돌려졌을 것 같다.
멸문을 자신의 눈으로 목도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사박! 사박!
그녀는 치맛자락을 끌면서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문파였던 곳을 걸었다.
그녀는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
사부의 사부, 사부의 사부의 사부도 만나고…… 요미검체에 대한 칭찬도 듣고.
근골이 뛰어나구나.
아름다운 여인이 될 게다.
미모에 무공까지 겸비하면…… 쯧! 누가 네 짝이 될꼬. 여자가 너무 뛰어나도 못 쓰는 법이여.
그녀는 죽음만 가득한 곳에서 그녀에게 던졌을 말들을 들었다.
이곳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다 끝났어. 이제 사부와 검왕…… 이 두 사람만 죽이면 돼. 꼭 죽일 거야.’
그녀의 눈빛에 원독이 차올랐다.
그 두 사람 때문에 아이를 낳게 되었다.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그녀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죽인다. 일단 죽일 사람은 죽이고 본다.
“살라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방에서 불을 놓았다.
화르르륵!
마른 섶에 불이 붙는다. 섶은 장작에 불을 붙이고, 장작은 거대한 적벽검문을 불바다로 만든다.
불길에 모든 것이 태워진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동료의 시신을 거두지 않았다. 죽은 자리에 그대로 두고 불을 놓았다.
그들은 적벽검문도와 함께 불탄다.
“적벽…… 검문주가 죽었을까요?”
누군가가 불타는 적벽검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는 혼잣말처럼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적벽검문을 무너트리면서 마흔두 명이 죽었다.
허나 그들은 이 희생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무너트렸다고 생각한다.
적벽검문 문주의 무공은 하늘이 아닐까?
혈루마옥 촌장의 무공을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녹천주나 증평주조차도 촌장의 무공은 가늠하지 못한다.
적벽검문 문주의 무공은 그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수에 하늘을 무너트린다. 일수붕천(一手崩天)!
일수에 바다를 가르다. 일수고해(一手?海)!
이곳에서 최소한 그 정도의 무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결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언제 나타나나 고대했다.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녹천삼사 중 한 분이 유명을 달리하기는 했다. 그 정도의 무공은 튀어나왔다. 하늘을 가를 정도는 아니지만 등골이 서늘할 정도는 된다고 본다.
허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적벽검문 문주는 정말 죽었는가. 자신들이 정말로 적벽검문을 멸문시켰는가.
화르르륵!
적벽검문의 상징인 자단목검(紫檀木劍)에 불이 붙었다.
자단목검은 종탑(鐘塔) 꼭대기에 거꾸로 세워져 있다. 검첨이 하늘로 향해 솟구쳐 있다. 색깔은 붉디붉은 적색이며, 크기는 오 장에 이르는 조각품이다.
목검은 자단목으로 제작되어서 종탑 근처에만 가면 은은한 향내가 풍긴다.
언제부터인가 자단목검은 적벽검문의 상징이 되었다.
상징이 불탄다.
“문주는 죽었다.”
녹천주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적벽검문 문주가 살아 있다고 한들 어떤가. 적벽검문의 상징이 불타고 있으니 적벽검문은 멸문한 것이다. 오늘 이후, 적벽검문에 생존자가 있더라도 감히 생존자라고 말하지 못한다. 사문이 멸문했는데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아……!’
입이 있으나 할 말이 없다.
적벽검문은 중원 최강의 문파다. 검성이 있고, 혈천성이 있지만 적벽검문의 비위를 건드리지 못한다.
적벽검문은 정의롭다. 그래서 검성을 선택했다.
적벽검문의 후기지수 중에서도 단연 제일이라는 검왕이 검성에 몸을 의탁했다.
사실대로 말하지만 의탁한 것이 아니라 검성의 이름으로 살육을 한 것이다. 혈천성이라는 마인들을 마음껏 도륙하기 위해서 검성 이름을 빌린 것이다.
만약 적벽검문도 전부가 검왕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혈천성은 진작 멸문했을 게다.
십마? 십마도 존재를 찾을 수 없을 게다.
마인들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적벽검문에서 검성에 몸담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적벽검문은 그들의 행동을 냉담한 눈으로 지켜봤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은 것이다.
혈천성이 그들을 쳐도, 설혹 그들을 죽인다고 해도 적벽검문은 간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혈천성은 검왕을 죽이지 못했다.
그를 죽인 후에 혹여 적벽검문이 본격적으로 무림사에 개입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검왕의 무공은 십마를 능가하지 못했다.
십마 중에 누구라도 검왕을 만나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벼르던 시절이었다.
혈천성이 마음만 먹었다면 검왕을 죽일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누강 역시 적벽검문의 후광을 입었다.
그는 마공관을 지켰다. 마서가 수두룩한…… 마공관은 마공 하나만 수련해도 천하를 질타할 수 있다는 천하제일의 마공이 수두룩하게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곳을 누강 같은 자가 지켰다.
십마가 왜 마공관을 건드리지 않았을까? 혈천성이 왜 마공관을 치지 않았을까? 마공관이 워낙 천험의 요새라서 공격하지 힘들었을까? 아니면 누강이 그만큼 강했던 것인가.
그들 뒤에 있는 적벽검문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토록 강했던 적벽검문이 불타고 있다.
‘혈루마옥, 예상은 했다만…….’
혈루마옥이 중원에 나오면 제일 먼저 적벽검문을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적벽검문은 멸문할 것이다. 적벽검문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혈루마옥에게는 한 수 뒤지니까.
이것이 세간의 평가였다.
적벽검문은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문파이고, 혈루마옥은 저승사자들의 운집체다.
인간이 어찌 저승사자를 이길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토록 무기력하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숨 죽이고 지켜봤다.
적벽검문을 무너트릴 무공이라면 그가 숨어 있는 것도 눈치챌 것이다. 숨소리만 약간 흘려도 당장 칼날을 던져올 게다. 저들 중에 그 누구라도.
‘후우! 후우! 후우!’
그는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적벽검문을 집어삼키던 불길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해가 세상을 비칠 때만 해도 웅장한 건축물이 있었는데, 이제는 온통 무너져 버린 폐허뿐이다.
혈루마옥 마인들을 한참 동안 적벽검문을 지켜보다가 사라져 갔다.
그래도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새어나오려는 숨을 꾹 참고, 빳빳하게 굳어오는 사지를 풀지도 못하고……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잔잔하게 펼쳤다.
만약 중원 무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십마 중에 일인인 비형은잠이 누군가에게 들킬 것을 우려해서 귀식대법을 풀지도 못하고 숨죽인 사실을 알았다면…… 아니다.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믿을 사람이 없을 게다.
동녘에 해가 떠오른다.
화마가 휩쓸고 간 적벽검문에서 검고 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난다.
그는 그제야 움직였다.
‘검왕, 네놈도 참…… 사문의 몰락을 지켜봐야만 하는 네놈도 편한 팔자는 아냐. 절대로 편한 팔자는 아니지.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