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8
18
第四章 대타(代打) (3)
흑포사추는 십마 중에서도 가장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무인들 중에서 그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 무공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가 흑포를 입고, 병기로 흑편(黑鞭)을 사용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이 마인으로 분류될 때는 그에 해당하는 행동이 있는 법인데…… 흑포사추는 어떤 점 때문에 마인으로 분류되었을까? 무공? 성격?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쉭! 쉭! 쉭!
흑포 속에서 흑광이 번뜩였다.
흑포사추 앞에 오체투지하고 있던 화남십랑 중에 일, 이, 팔랑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털썩 가슴을 댔다. 엎드려 있던 모습 그대로 힘을 놓아버렸다.
“킥킥! 조원검법…….”
흑포괴인이 중얼거리면서 부상당한 두 사내에게 다가섰다.
“사, 살려줘…… 살려주…….”
누미에게 검을 맞아 운신을 못 하고 있던 사내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흑포괴인의 손과 그의 가슴 사이에 기다란 흑선이 그어져 있다.
아니, 아니, 기다란 흑선은 어느새 바로 옆에 있던 동료에게 이어졌다.
흑포괴인의 흑편은 폐를 터트린다.
비명을 지르려면 공기가 있어야 하는데, 폐에서 공기가 나와 주어야 하는데…… 폐를 찢어놓으니 입만 벙긋거릴 뿐,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화남십랑은 단 한 명도 요행을 바라지 못했다. 야밤에 한 번 움직인 벌로 이름없는 숲에서 목숨을 내놨다.
“킥킥킥!”
흑포괴인이 죽은 시신들을 보면서 웃었다.
아니, 그가 천천히 뒤돌아선다. 숲 깊은 곳…… 어둠이 물들어 있는 곳을 쳐다본다.
파앗!
흑포 안에서 새파란 인광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착각이었을까? 어둠 속에서도 새파란 인광이 발출되었다. 마치 호랑이의 눈빛처럼.
“킥킥! 킥킥킥!”
흑포괴인이 숲을 노려보면서 키득거렸다.
숲에서는 반응이 없다. 조용하다. 그러다가 마음을 착 가라앉혀주는 잔잔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신기해. 무공은 아무리 봐도 마공이 아닌데 그놈의 잔혹한 손속이…… 그놈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놈들인데 그렇게까지 죽일 이유가 있나?”
“킥킥! 킥!”
“아서라. 우리 둘이 싸우면 둘 중 하나는 뒈져. 내가 뒈질지 네가 뒈질지는 싸워봐야 아는 거고.”
“킥킥킥!”
“좋아, 잘 생각했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한결 편해졌다.
사실, 편해진 것은 흑포괴인이다. 그의 흑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착 가라앉았다.
흑포사추가 진기를 거뒀다. 싸울 생각을 접었다.
스읏!
어둠 속에서 유삼(儒衫)을 입은 서생이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그는 매우 준수하다. 중년의 나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매력적이다. 코 밑에는 팔자 수염을, 턱밑에서는 가슴까지 치렁 내려오도록 수염을 길렀는데, 매우 정갈하게 다듬어서 오히려 시원해 보인다.
유계판서(儒界判書) 화상상(華尙尙)이다.
십마 중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은 네 명뿐인데, 유계판서 화상상이 그중에 한 명이다.
“쯧!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놈들을 죽이니…… ‘마(魔)’라는 딱지가 붙은 거지.”
“킥킥! 조원검공 아래 살아난 놈은 없다.”
“그러니까…… 벌써 죽었을 놈들이니까 죽였다?”
“킥킥!”
“억지군. 그러니까 이마에 마인이라는 딱지가 붙었지.”
흑포괴인은 연속된 도발에도 흥분하지 않았다.
흥분할 이유가 없다. 승부를 내려고 해마다 한 차례씩 십 년째 싸워온 관계이니…… 십마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결정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인지, 결국 넘어설 때는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킥킥! 조원검공을 펼치고도 고작 이런 부상이라면…… 겨우 흉내만 내는 수준이지.”
“그래서? 치려고?”
“킥킥킥!”
“아서.”
흑포괴인이 웃음을 멈췄다.
“들은 말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 일에 혈천혈도가 이미 뛰어들었다. 그 미친놈이 뛰어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피 터지게 싸우고 싶으면 하고.”
“혈천성이? 조원검법…… 혈천성…… 이것들 뭐하는 짓거리지? 킥킥! 아무튼 판 한 번 크게 벌렸어. 킥킥! 백년 마경을 놓고 벌인 판이라…….”
마공관의 마서는 십마들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공관의 마서는 정도무림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마인 혹은 마공이 나타났을 때, 그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 참조하려고 준비해 놓은 비서다.
중원 무림에 십마가 횡행하고 있다. 혈천성이 마인들을 규합하여 검성과 대적할 만한 세력을 만들었다.
그래도 검성은 마공관을 열지 않았다.
혈천성이나 십마 정도로는 마공관의 마서를 참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마인이 나타났을 때에만 마공관을 연다. 지금보다 훨씬 강한 마공이 나타났을 경우에만 마공관 마서를 참조한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마공이기에 그러는가!
헌데 또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간다.
십마 중에 세 명이 검왕에게 당했다.
검왕에게 당한 삼마가 한결같이 하는 말이 예전의 검왕이 아니라는 거다.
마치 검왕이 마공관의 마서를 수련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삼마가 한 말을 자세히 들어보라. 그들이 한 말 중에 검왕이 마공을 수련했다는 말이 한 마디라도 있는지.
그들은 마공의 마 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교묘하게 검왕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있다. 마공관이 폭발했다. 검성 성주의 무학인 조원검공이 나타났다.
무엇인가 대단히 복잡한 일이 전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분명한 것! 이번 일은 검성이 만들어냈다.
검왕? 미끼다. 미끼를 무는 물고기는 잡히듯이, 검왕을 향해 달려들면 당한다.
너무 빤히 보이는 수다.
검성이 획책한 일치고는 너무 어수룩하다.
“킥킥! 킥!”
흑포괴인이 웃었다.
“쯧! 미친…….”
유계판서는 인상을 찡그렸다. 흑포괴인의 뜻을 짐작했기에. 그런데!
‘웃!’
‘음…….’
두 사람은 동시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서로를 쳐다봤다.
비록 입을 벌려서 신음을 토해내지는 않았지만, 저절로 경악성이 튀어나온다.
‘무척 빠르다!’
‘예삿놈이 아냐! 누구지?’
두 사람은 눈짓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주위에 누군가가 있다. 아주 잠깐 기척을 감지했다가, 지금은 또 놓쳐버렸다.
세상천지에 십마의 이목을 가릴 수 있는 자가 있었나?
스읏!
유계판서가 양쪽 소매에서 판관필(判官筆)을 꺼내 움켜잡았다.
흑포괴인은 겉에 두르고 있던 흑포를 누에고치처럼 돌돌 말아 감아 몸을 감쌌다.
파팟! 파파파팟!
진기를 풀어서 주위를 훑어나간다.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을 더듬어간다.
놈! 누구이기에 기척조차 흘리지 않는가!
그러다가…… 두 사람의 눈길이 한 곳에서 멈춰졌다.
나무가 있다. 사람이 있다. 숨어 있지도 않고,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장발,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이는 눈!
두 사람의 눈길은 장발 사내의 전신을 훑다가 손에 쥐고 있는 돌멩이에서 고정되었다.
끝이 날카로운 돌멩이?
삼마가 저런 돌멩이에 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검…… 왕!”
유계판서가 침음했다.
“킥킥! 킥킥킥!”
흑포사추는 괴소부터 터트렸다. 아니, 괴소가 터진다 싶은 순간 어느새 앞으로 훅 달려나가 검은 흑광을 쏘아냈다.
번쩍!
흑광이 검왕을 향해 쏘아갔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흑포사추의 손과 검왕의 가슴 사이에 검은색 줄이 이어졌다.
“킥킥!”
흑포사추가 웃음을 흘렸다. 순간,
쒜엑!
갑자기 흑포사추의 흑선이 고무줄을 늘였다가 놓은 것처럼 확 당겨졌다. 흑포사추를 향해 되려 쏘아졌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
흑포사추의 상반신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마치 몸이 절반으로 뚝 꺾인 사람처럼 상반신을 크게 흔들더니 옆으로 두 걸음이나 밀려났다.
투툭! 쿵!
흑포사추의 몸뚱이는 쭉 뻗은 삼나무에 거칠게 부딪친 후에야 멈춰 세워졌다.
“일, 일초!”
유계판서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그는 이 세상에서 흑포사추의 무공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자그마치 십 년이나 싸워왔으니,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공격할 것인지 물러설 것인지 안다.
그와 흑포사추의 무공은 비등이다.
흑포사추가 일초에 나가떨어졌다면 그 역시 예외를 바랄 수 없다.
흑포사추를 장난감처럼 던져버린 검왕이 싸늘하게 말했다.
“누강, 건들지 마라.”
“그, 그것뿐이냐?”
유계판서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건들지 마라.”
검왕은 볼일을 마쳤다는 듯 휘적휘적 걸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마, 말도 안 돼!”
유계판서는 멀어져 가는 검왕을 보면서 실없이 중얼거렸다.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이런 일을 믿으란 말인가.
“왜 안 죽였을까?”
“검왕이 아냐.”
“…….”
“분위기도 무공도 검왕과 전혀 달라. 절대로 검왕이 아냐.”
“검왕이었잖아.”
“검왕이 회까닥 돌기라도 했다는 거야?”
유계판서가 툭 쏘아붙였다.
흑포사추의 옆구리에는 큼지막한 구멍이 뻥 뚫렸다.
검왕의 돌멩이에 찍힌 구멍인데…… 창으로 찔린 것만큼 상처가 크고 깊다.
그러나 그까짓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검왕이 왜 살려주었을까?
검왕의 말에 유계판서가 ‘그것뿐이냐?’하고 되물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과거에 검왕은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았다. 마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검왕을 염라대왕처럼 대했다. 그를 만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검왕은 마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실…… 삼마가 검왕에게 패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검왕을 아는 마인들은 피식 웃어버렸다.
패해? 무슨 헛소리야?
검왕에게 패한 사람은 없었다. 오직 죽은 사람만 있었다.
검왕이 삼마를 죽이지 않고 눕히기만 했다는 말은 그가 단신으로 삼마를 눌렀다는 말보다 더 믿기 힘들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자신들에게 벌어졌다.
검왕이 자신들을 죽이지 않았다. 마인을…… 십마를…….
검왕이 이마를 단신으로 꺾었다.
그가 꺾은 사람은 흑포사추뿐이지만 유계판서가 달려들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니, 두 사람이 동시에 합공을 취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누강을 건들지 말라고 했어.”
“킥킥! 그것 때문에 날 쳤다는 말이야? 내가 누강을 공격할까봐?”
“하려고 했잖아.”
“킥킥! 킥!”
“주판을 굴려볼까?”
유계판서가 쇠로 된 주판을 꺼내서 알 몇 개를 툭툭 밀어 올렸다.
“화남십랑이 누강을 공격했다. 위험했지. 하지만 내버려두었다. 그 와중에 조원검공이 드러났고. 그럴 때까지 검왕 그놈은 꼼짝하지 않았다.”
“킥킥! 저놈들이 조금만 머리를 썼다면 누강을 잡았을 텐데.”
흑포사추가 죽은 화남십랑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말했다.
타탁! 탁!
주판알이 또 퉁겨졌다.
“헌데…… 어떤 놈이 누강을 공격하겠다고 심중을 굳히자마자…… 놈이 나타났다. 그리고 일격에 까댔고.”
“어떤 놈! 까대!”
“우리! 우리야!”
타탁! 탁! 타타탁!
주판알이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유계판서가 검왕이 사라진 숲을 쏘아보며 말했다.
“검왕 저 자식…… 우리만 주시하고 있어! 십마! 다른 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우리만 주시하고 있는 거야!”
“왜?”
“몰라서 묻냐! 노리는 놈이 우리 중에 하나라는 거잖아!”
유계판서가 주판알을 촤르륵 흩어버리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중에 한 놈이…… 일 저질렀어! 마공관의 마서를 꺼내서 참조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