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33
33
第七章 환사(幻邪) (3)
“휴우!”
혈천혈도가 깊은 숨을 뿜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숨이 끊어지면 근육이 강직하기 시작한다. 살이 돌처럼, 피가 얼음처럼 딱딱해진다.
검왕의 육신은 바위처럼 단단하다. 공고하다.
검왕의 몸에 충격을 가한다는 것은 석공이 망치나 정을 사용하지 않고 바위를 파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회회문사가 사전에 몸을 녹였다.
침을 사용해서 혈과 혈의 연결고리를 끊어놓고, 그곳에 독액을 흘려 넣어 물 먹인 솜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도 힘이 든다.
“굉장한 놈이었군.”
혈천혈도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회회문사가 사전에 작업한 정도라면 썩은 짚단처럼 짓물렀어야 한다.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압력을 가할 때마다 푹푹 들어갔어야 한다.
그런데 이만한 저항을 했다는 것은…… 회회문사가 사전 작업을 했는데도 이토록 힘이 든다는 것은…… 검왕의 내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는 뜻이다.
이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 전력을 다해서 저항한 것과 흡사하다.
검왕이 십마를 가볍게 상대한 것이 일면 이해된다.
“은거한 지 몇 년이나 됐다고 무공이 이렇게나 강해진 거야? 이건 비정상이지. 아무래도 네놈…… 아주 이상한 사공(邪功)에 손을 댄 모양이구나.”
혈천혈도는 검왕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눈꺼풀을 뒤집어 봤다.
검왕의 눈동자는 완전히 죽은 백색이다. 검은 동자가 전혀 없다. 흰 동공만 보인다.
혈천혈도는 검지로 검왕의 미간을 짚었다.
“자, 이제 말해줘야겠다.”
츠으읏!
혈천혈도가 진기를 일으키자, 그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동시에 검지도 붉은색으로 변했다.
양강진기(陽剛眞氣)다.
마고는 음혼차류환시사를 시전할 때, 양강진기로 마류일양(魔類一陽)으로 불리던 백양순회공(白陽瞬灰功)을 사용했다.
백색 열기가 번뜩이면 한 줌 재만 남는 열양진기의 정화다.
혈천혈도는 백양순회공을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
시신에게 양강진기를 쓰는 이유는 뇌에 틀어박힌 철환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쇠를 달궈 열기를 끌어낸다.
끌어낸 열기로 뇌를 태운다. 뇌신경을 자극하여 깨어나게 만든다.
그가 수련하고 있는 홍염만화(紅炎滿花)로 충분하다. 아니, 뇌를 태우기에는 넘치고 넘친다.
홍염만화의 진기가 검지를 통해 미간을 파고든다.
쇳물보다도 뜨거운 열기가 뇌로 퉁겨진 철환을 녹인다. 뜨거운 열기로 검왕의 뇌를 녹인다.
검왕의 안색에 붉으죽죽한 기운이 어렸다.
혈천혈도가 붉은 눈을 더욱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눈을 떠라, 검왕!”
순간, 검왕이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번쩍 떴다.
“후후후! 좋아! 검왕, 말해보자. 널 죽인 놈이 누구냐?”
“…….”
검왕은 대답이 없다. 눈을 뜬 채…… 그러나 여전히 검은 동자가 없는 흰 동공만 드러낸채 침묵한다.
“검왕, 돌아와라.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은 법, 무엇이 두려워서 저승으로 숨는 게냐. 이승의 즐거움을 누려라. 깨어나라, 검왕.”
검왕은 여전히 말이 없다. 딱딱하게 굳은 모습으로 요지부동, 깨어날 줄 모른다. 헌데,
하아아아아!
난데없는 속삭임이 작은 밀실을 휘감았다.
영혼의 속삭임 같은…… 아주 차가운 한풍이 밀실을 더듬고 지나가는 소리였다.
‘됐다!’
혈천혈도의 눈빛이 번뜩 빛났다.
그는 잠시 옆에 놓아두었던 용참대도를 슬그머니 움켜쥐었다. 눈은 여전히 검왕에게 고정시킨 채. 그러면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긴장했다.
‘한 수! 마고가 실패했던 부분!’
시신이 괜히 미쳐서 날뛴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예상과 전혀 다르게 진행될 때는 반드시 그럴 만한 원인이나 이유가 분명히 있는 법이다.
마고는 마지막 순간에 긴장을 늦췄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고, 마지막 침을 놓쳐버렸다.
침을 잘못 놓은 것이 아니라 아예 놓지 않았다.
스읏!
혈천혈도는 마지막 침을 들었다.
“이것이 네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이니…… 후후후! 미치지 마라. 미치면 벤다.”
혈천혈도는 검왕을 노려보면서 단전 깊이 침을 찔러넣었다.
푸욱!
대침이 아랫배에 깊숙이 박혔다.
현재 검왕은 양강의 절정에 있다. 전신에서 화(火)가 들끓고 있다. 침도 양강이고, 독액의 부식(腐蝕)도 양강이다. 모든 작용이 열을 내준다.
마지막으로 그가 찌른 침은 극음이다.
침은 얼음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차서 보통 사람은 만지지도 못하는 냉침을 찔러넣는다.
냉기는 죽은 상태에서 일으키는 시기(尸氣)와 어울려 화(火)에 대응한다.
마고가 음혼차류환시사에 실패한 것은 화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가 시기를 눌러야 깨어날 수 있다.
깨어난 시신은 양강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가. 생각 없는 시신이 폭주하는 양강진기를 감당할 수 있는가. 불끈불끈 치솟는 힘을 어디든 터트리려고 하지 않겠나.
냉침은 양강진기를 다스린다.
시신이 깨어날 때까지 냉침은 침으로 존재한다. 서서히 녹는다. 양강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시신이 깨어난 후, 완전히 녹은 냉침이 양강을 중화시킨다.
마고는 마지막 단계를 놓쳤다.
아마도 시신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 ‘환생’을 이뤘다는 기쁨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망각했을 게다.
혈천혈도가 말했다.
“검왕, 이제 마음 놓고 일어나라. 일어나서 답해야지. 널 죽인 놈이 누구냐?”
지…….
‘지?’
검왕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혈천혈도는 분명히 들었다. 밀실에 ‘지’라는 말이 울렸다.
“검왕, 천천히. 천천히 말해도 괜찮다. 자, 한숨 돌리고…… 천천히 말해봐라. 널 죽인 놈이 누구냐?”
혈천혈도는 바싹 긴장한 채 물었다.
지…… 옥…… 출…… 사…….
‘지옥출사?’
검왕은 입으로, 성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배 속에서부터 우러나온다.
진기의 떨림으로 음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검왕도 하고픈 말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안간힘을 다해서 한 마디라도 하고자 하는가.
‘지옥출사. 지옥이 튀어나왔다는 말인데…… 뭔가? 검왕이 이토록 겁에 질릴 정도라면…….’
혈천혈도는 미간을 더욱 깊이 찌푸렸다.
검왕이나 자신처럼 무공이 일정 수준에 오른 사람은 ‘지옥’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현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무공이 절대적인 힘으로 세상을 짓누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공에 관한 한, 무림에 관한 한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승패는 있다. 패한 자는 패배를 감수해야 한다. 팔다리가 잘릴 수도 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때로는 합공을 펼쳐서 모두가 몰살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지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무인이 된 이상 패배했을 때 돌아올 상처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헌데 지금 검왕은 지옥을 거론했다.
혈천혈도가 다시 물었다.
“지옥이라니? 너를 죽인 자가 지옥에서 나왔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자가 지옥이란 말인가?”
혈…… 해…… 시…… 산…… 혈…… 해…….
“알았어. 시산혈해. 지옥출사. 알았으니까 겁은 그만 주고, 자…… 이제 본론을 말해보자고. 그자가 누구지?”
축…… 골…….
“축골령(畜骨嶺)!”
혈천혈도가 벼락같이 고함을 내질렀다.
검왕은 ‘축골’이라는 말까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축골’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혈천혈도는 지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 집단인 축골령을 떠올렸다.
축골령! 축골령인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축골령은 중원무림에 나올 수 없다. 그들은 금제에 걸려있는데…… 설마 금제를 풀었단 말인가!
혈천혈도는 망연자실, 검왕을 쳐다봤다.
상대가 축골령이라면 검왕이 당한 게 이해된다.
검성이 마공관을 왜 남겨두었겠는가. 나중에 상대하지 못할 마공이 나타나거든 그나마 참고로 하라고.
나중에 상대하지 못할 마공…… 축골령이다.
중원무림은 축골령이라는 존재를 잊고 있지만, 몇몇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한다.
검왕이 혈영마공을 손댄 것도 이해된다.
검왕이 마공관의 마공들을 모두 수련했다고 해도 이해된다.
그러고도 일초에 가슴을 관통당했다? 이해된다. 상대가 축골령이라면.
‘그자들은…… 그자들은…… 나올 수 없어.’
혈천혈도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아무 일도 없으셨습니까?”
회회문사가 물었다.
혈천혈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은 멀쩡히 걸어 나오는 모습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나.
검왕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있다.
마고의 시술에서 무언가 빠진 게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반신이라도 일으켰어야 한다.
“뭔가 잘못된 게 있다.”
“아! 그렇습니까?”
회회문사가 안도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지만, 검왕이 깨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마고의 시술을 믿지 않는다.
죽은 사람을 깨우다니!
회회문사는 자신이 어디서 잘못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시술이 실패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헌데 검왕이 묘한 말을 했다.”
“거, 검왕이 깨어났습니까?”
“실패했다고 했잖나.”
혈천혈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른 때 같으면 차가운 음성으로 질책할 텐데.
그러고 보니 시술이 실패한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평소의 혈천혈도가 아니다. 지금의 혈천혈도는…… 냉정함을 잃은 것 같다.
“검왕이 하고 싶은 말을 진기로 응축시켜놨었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흘러나오도록.”
“아! 예.”
회회문사는 비로소 안심했다.
마고의 시술은 확실히 실패로 끝났다. 천만다행…… 죽은 자가 소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다. 역행이다.
혈천혈도가 불쑥 말했다.
“우리…… 아무래도 정말 봉문해야 할 것 같다.”
“무슨 말씀이신지?”
“축골령. 축골령에 대해서 알아봐라. 알아볼 수도 없겠지만…… 최대한 알아봐. 티끌만 한 단서라도 찾아봐.”
“…….”
일순, 회회문사는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잃었다.
축골령? 축골령이라니. 난데없이 축골령은 왜? 헉! 그럼 검왕을 죽인 자들이!
“마, 마, 마라…… 동천입니까?”
다른 곳을 생각했다. 그곳만 해도 죽음의 악귀들이 득실거린다. 하지만 축골령이라면…… 중원 무인들이 생각하는 곳 가운데 가장 최악이다.
“하!”
혈천혈도가 깊은 숨을 토해냈다.
회회문사도 할 말이 없었다. 멀거니 혈천혈도만 바라볼 뿐이다.
스으으으으읏!
밀실에 감돌던 한기가 체내로 흡수된다.
혈영마공이 독즙을 다스린다. 화를 흡수한다.
일기무사(一氣無俟), 적벽검문의 비전진기가 시기와 극음을 다스린다.
무사(無俟)라는 말은 무공에 쓰지 않는 말이다.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무사는 기다림이 없다는 뜻이다.
촌각이라는 시간을 양자강의 모래알 수만큼 쪼개고, 그렇게 쪼갠 것을 다시 또 한 번 양자강의 모래알 수만큼 쪼갠 순간…… 그 순간을 다시 억만 겁만큼 쪼갠 순간만큼도 기다리지 않는다.
일기무사는 즉시즉발(卽時卽發)을 의미한다.
적벽검문에는 ‘일기무사’라는 말이 크게 쓰여서 편액에 걸려있지만, 그 말뜻을 이해한 사람은 없다. 머리로 이해한 사람은 있지만 몸으로 터득한 사람은 없다.
검왕의 몸에서 일기무사가 일어난다.
청량한 기운이 악기(惡氣)를 다독인다.
혈영마공과 일기무사는 음과 양의 어울림이 되어서 휘돈다.
툭!
첫 번째 침, 백회혈에 틀어박혀 있던 침이 퉁겨나갔다.
그것이 시작이다. 검왕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강침들이 억센 힘에 떠밀려 퉁겨나갔다.
투투툭! 투투투툭!
침들이 밀려 나가고 상처가 봉합된다.
진물이 안으로 말려들어간다. 고름이 스르륵 모습을 감춘다.
검왕은 아주 큰 변화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