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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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二章 혈오(血蜈) (4)
“화혈역심공…… 구수 오십사 초…….”
중년부인이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화혈역심공은 중평의 비전(祕傳)이다. 중평 사람들이라고 모두 아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일부, 아주 선택받은 일부만이 화혈역심공에 손을 댈 수 있다.
무단으로 화혈역심공을 손대면 즉참이다.
화혈역심공이 얼마나 뛰어난 공부이기에 이런 극단의 조치까지 취한 것인가?
뛰어난 공부이기는 하다.
화혈역심공을 수련하면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이루어진다.
근골이 새로 바뀌어 완전히 새로워진 무인으로 마음껏 무공을 구사할 수 있다.
화혈역심공은 모든 무공을 수련하기에 앞서서 가장 먼저 수련하는 기본 공부다.
모든 무공이 화혈역심공 위에서 피어난다.
동충하초처럼…… 화혈역심공이라는 벌레 위에서 어떤 종류의 무공, 버섯이 피어난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화혈역심공의 크기에 따라서 나중에 피어나는 무공의 크기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화혈역심공의 성격에 따라서 같은 무공도 달리 표현된다는 뜻이다.
기본으로 공부한 무공이 평생을 함께 따라간다.
허면 이토록 좋은 공부를 왜 몇몇 사람만 수련하는 것인가? 왜 아무나 수련하면 안 되나? 초절정무공일수록 많은 사람이 배워야 하지 않나.
맞다. 그런 뜻에서 화혈역심공을 제한했다.
화혈역심공은 아무나 익힐 수 없다. 지극히 제한된 몇몇 사람, 하늘의 저주를 정통으로 받은 사람만이 수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주화입마(走火入魔)를 불러온다.
자질의 문제가 아니다. 체질의 문제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수련할 수 없다. 정상보다 못한 사람, 유전자가 손상되어서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만이 수련할 수 있는 마공이다.
정상인이 마공을 접하면 반드시 주화입마에 걸린다.
그래서 화혈역심공을 제한한 것이다. 협곡에 있는 사람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조차도 화혈역심공을 수련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들도 화혈역심공은 정상인이라고 말한다. 그들보다 더 저주받은 사람들을 원한다.
돌이 되기 전에 죽을 아이!
화혈역심공은 아홉 수, 오십사 초로 이루어진다.
정공(靜功)이 아니라 동공(動功)이다.
와공(臥功), 좌공(坐功)이 아니라 입공(立功)이다.
월중수는 훔쳐서는 안 되는 마공을 훔쳤다. 녹천 무공도 아니고 중평 무공을, 잘 알지도 못하는 무공을 대뜸 훔쳐서 수련했고, 전수했다.
월중수는 반드시 주화입마에 걸린다.
앞으로 그가 살 수 있는 날은 채 일 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월중수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훔치지는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얻고 싶은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녹천의 희망일 게다.
“탁자 위에 있다. 가져다줘라.”
여인이 말했다.
“안됩니다! 화혈역심공을 공개하면…….”
그녀에게 모옥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보고했던 자가 급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여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화혈역심공을 제한한 것은 선의에 의해서다. 선의를 무시하겠다면 그러라고 해.”
“아무리 그래도!”
“우리도 충고를 무시하면 돼.”
“네?”
“화혈역심공을 건네주고, 한음천강기(漢陰千剛氣)를 필사해 와.”
“하, 한음천강기! 아, 안됩니다!”
“하! 너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되는 게 있기는 해?”
“하, 한음천강기는 녹천의 마물(魔物)…….”
“필사해와. 이번 기회에 녹천의 마물을 엿보지.”
중년 여인이 웃었다.
“내줄 필요가 없습니다.”
“…….”
“중평에서는 화혈역심공을 내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음천강기는 이미 체내에 음복(陰福)되었는 바, 연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소신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한음천강기를 연구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습니다. 내줄 필요가 없습니다.”
녹천 삼사(三師)가 같은 말을 했다.
아마 그들의 말이 맞을 것이다.
무리(武理)에 관한 한 녹천삼사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촌장조차도 무리만큼은 녹천삼사를 으뜸으로 여긴다.
그들이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누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체내에 음복된 한음천강기를 잘 이용해서 화혈역심공을 누르고 있으면 된다. 혹은 정반대의 상황일 지도 모르겠고.
누미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미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예전에도 이런 길을 시도한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모두 요절하고 말았다.
그들은 임신조차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누미가 두 가지 전혀 다른 성질을 몸에 지닌 채 임신했다는 게 기적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누미를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어디……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자. 결과를 보고 난 다음에 죽여도 늦지 않다.
누미는 한음천강기를 양성하지 못한다.
화혈역심공처럼 한음천강기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련해야 하는 것이다.
어미 뱃속에서 기초를 닦고, 세상 공기를 흡입하는 순간부터 기혈을 휘돌린다.
이러한 기초가 없는 사람은 즉시 주화입마에 부딪친다.
기혈이 딱딱하게 얼어붙는다.
체내의 모든 액체가 날카로운 면도(面刀)로 변해서 오장육부를 휩쓰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자질을 믿는가? 천만에! 한음천강기 역시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체질의 문제다.
중평인이나 세상 무인들에게 한음천강기는 화중지병(畵中之餠), 그림의 떡이다.
드륵!
천주가 서랍을 열었다.
“천주!”
“안됩니다!”
녹천주는 녹천삼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비급을 꺼내서 탁자 위에 놓았다.
“중평주가 화혈역심공을 내놓을 게다.”
“당연합니다.”
“우리도 뭔가 줘야지.”
“꼭 이럴 필요는…….”
“그보다…… 나는 누미라는 그 여자…… 요미검체라고 했나? 요미검체가 이 비급 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 보고 싶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
일순, 녹천 삼사가 침묵했다.
“왜? 왜 아무 말이 없는 게야?”
녹천주가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세 명의 모사 중 한 명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며 대답했다.
“무리로는 우리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하의 요미검체라고 해도, 한음천강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미검체라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찾을 수 없다. 찾을 수도 있다?”
“녹천이 극우(極右), 저희가 극좌(極左)라면 요미검체는 정중(正中)입니다.”
“…….”
녹천주가 녹천일사를 응시했다.
그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다. 협곡 사람들 중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솔직히 화혈역심공과 한음천강기를 한 몸에 지닌다는 것은 명백히 자살행위다.
허나 요미검체이기에 가능하다.
정중은 성질이 전혀 다른 이 두 가지 공부를 중화시킨다.
그래서 기대를 했는데…… 아이가 죽어간단다. 태아가 자살을 택했단다.
정중도 안 되는 것인가.
“정중은 불균형을 찾아내는 데 귀재입니다. 화혈과 한음 중에서 어느 것이든 약한 쪽의 불균형이 먼저 드러날 겁니다. 그 후에는 강한 쪽의 불균형도 찾아지겠죠.”
“음!”
녹천주가 신음했다.
이것 역시 협곡 사람들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무리로는 알고 있다. 아니, 꼭 무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 음양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
물과 불, 두 성질의 상관관계.
불이 강하면 물을 증발시키고, 물이 강하면 불을 꺼트린다.
헌데 이런 뜻이라면…… 물과 불이 균형을 이루면 두 개의 성질은 서로 변하지 않아야 한다. 허나 두 개가 만나면 두 개 모두다 성질이 변한다.
물이 끓는다.
불이 소진된다.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무리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물과 불이 만나면, 두 개의 힘이 똑같다면, 물과 불은 성질이 변하지 않고 영속한다.
이것이 무리다.
녹천 일사가 말한 것은 무리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누미는 물과 불을 다루고 있다.
협곡 사람들도 함부로 수련할 수 없는 최극단의 무공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그런 그녀이기에…… 무엇인가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무리가 아니라 체험으로.
“능구렁이들…… 그러니까 실제로는 이걸 줬으면 하면서도 입으로는 달콤한 소리를 했다는 거군.”
“황감한 말씀.”
녹천일사가 머리를 숙였다.
“가져다줘. 만져봐야 얼음꽃만 만질 뿐이니까.”
녹천주가 미련없이 비급을 던졌다.
“대신!”
“후후후! 나머지는 알겠습니다. 저희도 화혈역심공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던 참입니다. 그런 건 말씀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한다니까요. 하하!”
녹천이사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옜다.”
석화선생이 비급 두 권을 내밀었다.
비급에는 비급명칭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하나는 소가죽으로 표지를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뱀 가죽으로 만들었는지 미끌미끌한 감촉이 느껴진다.
“극독 두 개를 손에 들고 있구나.”
석화선생이 비급을 양손에 나눠 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이게 극독인가요?”
“독 중의 독이지. 어느 것이든 만지는 순간에 절명하고 마니까.”
“저는 절명하지 않았는데요?”
“해본 말이다. 그렇다는 뜻이지.”
석화선생은 두 비급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내력을 말해줄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전지식이 오히려 일을 망칠 경우도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나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곳 사람들이 한음천강기를 모르겠나. 화혈역심공을 모르겠나? 세부적인 것이야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무리 정도는 알고 있다.
누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손도 못 대고 있는 것이다.
“또 필요한 것은?”
“잘 먹어야겠어요.”
“그거야 당연한 말이다만…… 먹을 수는 있고?”
“없어요. 괜찮다고는 하지만 음식을 먹을 정도는 아니에요. 먹기는 하는데 소화가 안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석화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여인들도 임신기간 중에 음식을 먹는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욕지기가 심하게 밀려와도 무엇인가를 먹어야만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극한의 상태에서는 어떻게 하나?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상태에서는?
그런 경우, 이곳 여인들은 마초(魔草)를 태운다.
마초를 쑥불처럼 불에 태우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의식이 까마득한 수렁으로 떨어진다. 마치 미약에 중독된 것처럼 몽환 속을 헤매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음식을 밀어 넣는다.
호흡을 막은 시녀 두 명이 번갈아 음식을 떠넣는다.
정말로 죽지 못해서 산다. 어쩔 수 없어서 먹는다.
누미가 말한 것은 그런 상태가 아니다. 그런 상태는 진작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또 누미는 희한하게도 마초를 태울 만큼 극심한 상태가 아니다.
누미가 원하는 것은 환단(丸丹)이다.
벽곡단(辟穀丹) 형태이지만 영양분을 훨씬 많이 넣어서 한 알만 먹어도 힘이 넘칠 수 있게끔 만든다.
이런 벽곡단은 영약(靈藥)으로 빚어야 한다.
후후! 누미가 정말로 잘 먹기 위해서 벽곡단을 원했을까?
아니다. 그녀는 이번 기회에 두 무공을 정통으로 수련할 생각이다. 그래서 영약을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내공 증진을 할 수 있다면 벌레도 먹을 게다.
석화선생은 만들어 줄 생각이다.
석화선생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최고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마. 그 독약들…… 잘 소화해봐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하늘만 알겠지만.”